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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이 사실인가?
    파수대—1981 | 3월
    • 약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유전에 문제가 있다. 원래,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러한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완전하였고 죄에 대하여 균형잡히고 이치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쁜 선택을 하여 하나님께 반역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그리하여 완전에서 불완전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죄의 경향 즉, 쉽게 나쁜 길로 흐르는 경향을 유산으로 물려 주었다. 사도 ‘바울’은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 5:12.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선한 동기를 가졌더라도 우리는 죄를 짓지 않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 사도 ‘바울’ 자신도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로마 7:19) 우리 모두는 그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치명적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좋은 의향을 가지더라도 좌절되어 온 것은 바로 이러한, 쉽게 잘못에 빠지는 그 자신의 경향 때문이었다. 이기심과 탐욕의 결과로 오염, 가난 그리고 불공평이 생겨 났다. 의심과 불신은 국제 관계만이 아니라 가족 관계까지도 불안하게 만든다. 부패와 범죄는 여러 나라의 노력을 방해하여 발전을 막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그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더우기, 인간의 유전받은 죄의 경향 때문에 로마서 6:23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칙이 재난의 먹구름처럼 우리 머리 위를 덮고 있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떤 수를 써도 우리의 죄로 인한 죽음의 형벌을 면할 길이 없다. 우리의 힘으로는 죄를 완전히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로 우리 자신의 불완전성에 의해 좌우된다.

      죄와 관련된 것은 이것이 전부인가? 인간은 앞으로도 언제나, 자기 자신의 약함의 저지를 받아가면서 자신의 최상의 꿈과 열망을 실현하지 못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를 도와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죄에 안 빠질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시인하고 나서 계속 이렇게 말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의 대답은 무엇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로마 7:24, 25) 그렇다, 우리가 죄의 매우 강력한 권세하에 매여 있음과 우리 자신을 구출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식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과 사려 깊음으로 우리에게 이미 도움을 베풀어 오셨다는 데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된다.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도움을 베풀어 오셨는가?

  • 죄의 얼룩을 지워 없애는 일
    파수대—1981 | 3월
    • 죄의 얼룩을 지워 없애는 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 활동을 마치신 후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만물을 내려다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셨다. (창세 1:31)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은 완전하였다. (신명 32:4) 죄가 이 의로운 제도에 침투하였을 때 그것은 건강한 몸에 침투한 못마땅한 암 세포와도 같았다.

      사실상 인간만 하나님께 반역하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성서는 “범죄한 천사들”에 대해 말한다. (베드로 후 2:4) 그것은 영물인 ‘사단’ 마귀로서 애초에 ‘아담’과 ‘하와’를 나쁜 행로로 이끌어들인 자였다. (요한 8:43, 44) 그러나, 이 악한 영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들은 완전하였으며 고의적인 선택을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죄로 물든 얼룩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완전히 멸망됨으로써 우주에서 없어질 것이다.—마태 25:41.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기로 선택하였다. 완전하게 창조되었지만, 그들은 고의적으로 잘못을 범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죄의 노예들이 되었다. 예수 자신이 이렇게 설명하신 대로였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노예, 공동번역]이라.” (요한 8:34)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이 죄로 인한 불완전성의 결과로 죽도록 내버려 두셨을 때 지상에서 그들은 없어졌다.—창세 3:19; 5:5.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 역시 죄의 종들이기는 하지만 결코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죄인인 것은 우리가 그렇게 태어 났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노예로 팔린 것이다. (로마 5:12; 7:14)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지혜로, 우리가 정말 바라기만 한다면, 죄의 노예 살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마련을 해 주셨다.

      문제의 해결

      ‘이스라엘’ 민족과 관계하시는 가운데,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도로 사는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예를 들어, 어느 ‘이스라엘’ 사람이 가난해져서 자신을 비‘이스라엘’인에게 종으로 팔아야 했을 경우, 능력이 있는 가까운 친척이 그를 도로 살 수 있었다. 즉, 몸 값을 치르고 구해 낼 수 있었다. (레위 25:47-49) 그 가격은 정확하게 계산되어, 도로 사는 일은 전적으로 공정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범죄를 다루는 데 있어서 등가(等價)의 원칙도 세우셨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고의적으로 동료 ‘이스라엘’인에게 신체적인 해를 입혔다면, 공의에 따라 그와 똑같은 해를 당해야 하였다. 그 법은 이처럼 상술하였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출애굽 21:23-25.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죄의 노예살이로부터 도로 사는 일을 허락하시겠지만, 이 일은 공의와 일치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불해야 할 대가는 정확해야지, 마치 도로 사는 것이 아무런 실제 가치가 없는 것인양, 하찮은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아담’이 버린 것은 완전하고 죄 없는, 영원히 살 전망을 가진 완전한 인간 생명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귀중한 것이었다.

      인간이 소유한 것 중에 그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제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 전부로도, 영원한 생명을 사기는커녕, 이 불완전한 생명조차 연장할 수 없다.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라].” (시 49:7-9) 그러므로, 인류 밖의 외계로부터 도움이 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도움을 베푸시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처음으로 알려 주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순종 대신에 죄를 선택한 직후였다. 그분은, 인류를 죄로 끌어들인 악한 영물의 영향력을 대항할 “씨”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셨다. (창세 3:15) 연속적인 계시들을 통해 그분은 어느 가계에서 그 씨 즉, 후손이 나올 것인가를 밝혀 주셨다. 결국, 이러한 계시들은, ‘로마’ 제국 시대에 ‘팔레스타인’에 살던 약혼한 남녀 ‘요셉’과 ‘마리아’에게 집중되었다.—창세 22:15-18; 49:10; 누가 1:26-35.

      이 남녀는 ‘마리아’가 낳게 될 아들이 하나님의 창조물로부터 죄의 얼룩을 지워 없애는 일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호와의 천사가 ‘요셉’에게 꿈 속에서 이렇게 알려 주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마태 1:20, 21) 드디어 “그 형제를 구속”하실 수 있는 분이 등장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 나셨으며, 그리하여 진짜 ‘다윗’ 가계의 ‘유대’인이 되셨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처럼, 실제로는 인간이 되시기 이전에도 그분은 존재하셨었다. 여호와의 기적의 능력이 그분의 생명을 ‘마리아’의 태로 옮기셨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요한 1:1-3, 14)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그 당시에 이르도록 전 인류를 무력하게 만들어 왔던 죄의 경향을 물려 받으시지 않았다. ‘아담’처럼 그분은 완전하셨다. ‘아담’과는 달리 그분은 순종을 고수하셨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에서 유일하게, 예수만이 죄를 결코 지은 적이 없는 분이셨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니라].” ‘바울’은 예수께서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셨다고 설명하였다.—베드로 전 2:22; 히브리 7:26.

      그러므로 예수만이 유일하게 완전한 인간 생명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 즉, 또 하나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이 죽으셨을 때 그분의 죽음은 “죄의 삯”이 아니었다. (로마 6:23) 예수께서는 죽으셔야 할 아무런 합당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이 죽으셨을 때 그분은 ‘아담’이 잃어 버렸던 완전한 생명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제물로 바치신 것이다.—디모데 전 2:6.

      예수의 희생은 ‘아담’의 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 전 15:22)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바쳐 인류를 죄로부터 사는 댓가를 지불하실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느니라.]”—갈라디아 1:4.

      죄로부터의 해방

      그리하여 드디어 인류에게는 해방의 길이 열렸다. 속죄의 대가가 치루어진 것이다. 이 말은 현재 누구나 할 것 없이 자동적으로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어 완전성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말인가? 그럴리 없다. 이 마련이 작용하는 방법을 예수 자신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해 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그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자마다”, 신세]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그렇다, 하나님의 대속의 마련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아담’의 고의적인 불순종이 그들에게서 끊어가 버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예수의 희생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유익을 받는다. 물론, 그들은 아직 불완전하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문자적인 인간 완전성으로 회복시키실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불완전성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된다면, 이 일이 그들의 천적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끊어 놓지 못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 1서 2:1, 2) 그렇다, 만일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죄에 빠지게 될 경우, 우리는 예수의 희생을 기초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요한 1서 1:7-9.

      그렇다면, 이 말은 사실상 죄가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인가? 이러한 사랑의 마련이 있으니까, 우리는 이제 우리가 원하는 어떠한 죄이든 범하고 나서 예수의 희생으로 인하여 용서받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이 마련으로부터 유익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죄에 대해 예수와 똑같은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 그분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셨다. 우리도 그래야만 한다. (히브리 1:9) ‘바울’처럼 우리는 죄의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한다. (고린도 전 9:27) 이렇게 하는 데에는 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 그리고 죄를 저항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 점에 있어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 일 개인으로서 진정한 변화를 하게 될 수 있다.—로마 12:2.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로 흐르는 경향과 싸우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부가적인 말이 우리에게 적용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리라.]”—히브리 10:26, 27.

      결국, 불완전한 육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노예살이에서 풀려 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보다 더 훌륭한 전망도 갖게 된다. 그들은 죄가 옛일이 되어 버릴 새 질서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약속받고 있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물로부터 완전히 제거되어 있을 것이다. 그 때에 가서는,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11:9)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우리에게 “악인[즉, 고의적으로 죄짓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 반대로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될 것이다.—시 37:10, 11.

      죄로 인한 나쁜 결과들—질병, 죽음 및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은 모두 옛일이 될 것이다. (계시 21:3, 4) 그 대신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완전히 성취 될 것이다.—마태 6:9, 10.

      그렇다, 예수의 대속 희생 덕분에,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침내 죄의 노예살이에서 풀려 나올 훌륭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 필자의 이러한 격려는 시기에 매우 적절한 말이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시 37:27, 28.

  •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파수대—1981 | 3월
    •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정신의 평화, 오늘날의 거칠은 세상에서 누가 이것을 얻을 수 있는가? ‘테러’주의자들은 종종 동료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피난민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전전한다. 핵 무기들은 풍부히 쌓여 전 인류를 파멸시킬 가능성 있는 파수병으로 세워져 있다. 물가고는 모아둔 돈을, 종종 평생 동안 모은 돈을 급속히 잠식해 들어 간다. 이 모든 일에 건강 문제와의 수많은 개인적인 “투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오는 깊은 슬픔, 그리고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흔한 수많은 걱정들이 추가된다. 그러므로 확실히 현대 사회에서 참다운 정신의 평화는 찾아 보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안전과 바라는 정신의 평화를 찾아 어디로 향하는가? 흔히들 돈과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둔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

      아마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리없이—거의 감지할 수 없게—해가 바뀜에 따라 그 물질의 가치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부유한 사람이 값비싼 많은 의복을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의장에 갖춘 의복을 과도히 소중히 여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네 날개 달린 곤충—특히 애벌레일 때—은 값비싼 의복을 쏠아 못쓰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 좀 벌레가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안전감과, 기대한 정신의 평화를 빼앗아 갈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좀의 피해를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옷은 닳아지거나 도둑이 훔쳐갈 수도 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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