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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은 얼마나 절대적인 지침인가?
    깨어라!—1980 | 3월
    • 것을 그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해로운 영향을 무시하기 때문에, 지식 자체만 가지고는 안전한 지침이 될 수 없다. 오직 사랑에 입각하여 지식을 적용할 때에만 안전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사랑이 부족할 경우에, 지식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들로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의 동료들은 격려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랑이 그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지식을 사용하도록 자극한다면, 그러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항상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가 단순히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우월한 태도를 나타낸다면, 사실상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문제를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고린도 전 8:2) 그는 건전한 지식의 근본적인 목적 즉, 다른 사람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 버린 것이다. 더우기, 알면 알수록 그가 알지 못한 것이 많다는 것을 더욱 더 깨닫게 될지 모른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와, 자기 견해에 독선적이고 비이치적인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지식이 건전한 목적을 이루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병행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고린도 전 8:3)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는 동료 신자들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에 나타나야 한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취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 1서 3:15, 16)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 1서 4:7, 8.

      그러므로, 지식 자체는 일정한 상황하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결정하는 일에 절대적인 지침이 아니다. 어떤 행동이 우리에게는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이 관찰자들의 약한 양심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분명히 그것을 고집하지 않고 피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지식을 남을 세워 주는 데 계속 사용할 것이다.—고린도 전 10:24.

  • 부모들—자녀의 처음 교사들
    깨어라!—1980 | 3월
    • 성서의 견해 2

      부모들—자녀의 처음 교사들

      자녀들은 출생 직후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아기의 맨 처음 과목은 사랑에 관한 것임이 틀림없다. 아기는 사랑을 받음으로, 사랑의 본에 접함으로, 먼저 사랑 가운데 거함으로 사랑을 배운다. 이는 요한 1서 4:19에서 말한 원칙과 일치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번역) 아기가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안정하게 된다. 보아달라고 울 때 무시당하면, 아기에게 병이 날 수 있다. 얼마 동안 감정적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아기는 나머지 일생 동안 감정적으로 성장이 방해받게 될 수 있다. 이런 아이는 그 후 일생 동안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거나 어울릴 수가 없게 될 수 있다.

      초기 교육은 감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후 처음 3년간, 어린 아이가 지닌 지적 잠재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성인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두 가지 언어가 말해지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기는 동시에 두 언어를 배운다. 어린 아이에게 교육 환경이 비옥할 수록 속히 배운다. 아이는 ‘스폰지’와도 같이 지식을 빨아들인다.

      이는 부모가 출생 직후부터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최초의 3년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유치원에서부터나 배우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 때는 너무 늦을 수 있다. 심리학자이며 취학전 아동 교육 지도자인 ‘버어튼 화이트’ 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처음 3년간 겪는 일이 그가 그 후에 얼마만큼 유능한 사람이 될 것인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이 기간에 아이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학교에 들어간다 해도 불리한 입장을 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화이트’ 씨는 자녀 교육에 가장 유능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지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도움이나 위로를 바라는 것이든 열중하는 일에 동조해 달라는 것이든, 자녀들의 요청에 예리한 반응을 보이는 한편, 일반적으로 단호하면서도 유능한 훈육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고등 학교 졸업자들과 일부 대학 졸업자들에게 크게 부족한 점들 중 하나는 독서이다. “독서를 위해 학교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는 어느 기사의 표제이다. 이 기사의 맨 처음 항목을 읽어 보면 이러하다. “아이의 학교 성적은 그가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느냐 하는 데 크게 달려 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것보다 더 크게, 그의 가족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그에게 읽기를 격려했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 그 기사에 수록된 제안들 중 얼마를 열거하면 이러하다. 늦어도 첫돌부터 시작하여 포근하게 껴안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되 매일 그렇게 하라. 그림책들을 아이 가까이에 놓아 두라. 취침시의 독서를 습관으로 하라. 이것은 아이를 편안하게 하며, 아이가 긴장을 풀고 쉬면서 부모와 함께 하루를 만족스럽게 끝맺도록 도와 준다. 아이가 글자와 단어를 배워서 스스로 간단한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적절한 자료를 아이에게 제공해 주라.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능력으로는 읽기가 어려우나 이해할 수 있는 더 수준 높은 자료들을 계속 읽어 주라.

      성서는 ‘디모데’가 이런 식으로 초기 교육을 받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5, 새번역; 1:5)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베푸는 데 있어서 가치있는 보조서, 즉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자녀들이 읽기를 배운 후에는 그 내용을 배우기 위해 읽도록 그들을 격려하라.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이 책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성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하루 내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르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니라].” (신명 6:6, 7) 이 모든 가르침에 징계와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브리 12:7) 이렇게 할 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학교 권위에 대해 합당한 존경심을 가질 것이며 징계에 복종하여 공부하게 될 것이다.

      한 아버지는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와 협력하여 취한 행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였다.

      “최소 1년에 두 번 우리는 교장과 선생들이 교과 과정 및 교수 방법을 설명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 다음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들과 만나서 우리 아이들의 행실에 대해 토의할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맨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우리가 선생님들의 권위를 부모의 권위의 연장(延長)으로 간주하며 그러므로, 물론 성서 원칙의 타협이 관련되어 있지 않는 한, 순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독서에 관해 말하자면, 권위자들은 학급의 크기와 다른 요인들로 인하여 학교가 훌륭한 독서가를 만드는 데 충분치 않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가정의 ‘프로그램’ 덕분에 지금 훌륭한 독서가들이다. 아이들이 초급 중학교에 다닐 때 우리는 20분 먼저 일어나 매일 성서 낭독을 하였다.

      “상급 중학교 및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문제가 더 어려웠다. 학교의 규모가 더 크고 교복도 없었고 학생들은 점수가 너무 좋을 경우 ‘샌님’이라 놀림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우리는 여전히 아이의 담임 선생과 만나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 대해 이치적이 되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옷이나 머리 모양이 다른 학생들과 너무 유별나게 다르다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동급생들의 압력이 대단하다.

      “우리 애들이 다녔던 학교들은 훌륭했다. 특히 초급 중학교가 그랬다. 공립학교의 실패의 이유 중 일부는 부모들이 개인적으로 매일 지원과 열의를 보이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이렇게 하기가 어려울지는 모르나 이에 대신할 만한 것이 전혀 없으며 어떠한 교육 제도든 부모의 지원이 없이는 거의가 실패하기 마련인 것 같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또한 학교에서의 마약 및 성적 부도덕에 대해 염려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보호책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 성서에 기초한 도덕 원칙을 배양하는 일이다. 어떠한 행로가 우리의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에베소 3:14-16) 당신의 가족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당신의 가정에 속한 자녀들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당신 스스로가 성서의 표준에 따라 생활하여 올바른 본을 세우는가? 당신의 자녀들은 이 가정에 소속되기 위해서 어떤 표준에 달해야 하는지, 승인받는 행동이 무엇이며 승인받지 못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는가? (에베소 6:1-4; 골로새 3:18-21) 자녀들은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당신의 승인과 사랑, 그리고 그들이 잘 했을 경우 당신이 기뻐한다는 것을 자녀들이 느끼도록 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공정함과 기꺼이 듣는 태도로써 항상 의사 소통의 길을 열어 놓도록 하라.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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