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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이 폭발할 때
    파수대—1981 | 4월
    • 제어해 온 것인가? 우리가 증오심을 터뜨리지 않는 한 그것은 괜찮은가? 예수의 대답에 의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살인을 정죄하는 한편, 그분의 말씀은 살인으로 인도할 수 있는 해로운 영 역시 정죄받는다는 것을 시사한다.—마태 5:21, 22 참조.

      때때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나 감정을 참고 불쾌한 상황에서 말 한 마디 없이 떠나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며칠 혹은 몇주 후까지 그 일에 대해 여전히 생각하고 속상해 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우리의 영을 제어해 온 것인가? “나는 용서할 수는 있지만 결코 잊을 수는 없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자기 영을 제어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화는 내지 않지만 무뚝뚝해지고 부루퉁해지며, 자기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여기는 사람들과는 말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마음 속에 생기는 욕구 불만이나 시기심을 무시해 버리거나 그러한 것들을 “정상”으로 생각해 넘겨서는 안된다. 이러한 감정들이야 말로 우리의 참된 “영”, 즉 지배적인 개성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바로 이러한 내적 감정들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제어되지 않은 내적 감정들의 해로운 결과를 알려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 그리고 나서 그분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태 15:19, 20) 그렇다, 우리의 영을 제어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 즉 바로 우리의 태도와 동기를 제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제, 화가 치밀 때 자신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영을 제어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 우리의 영—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가?
    파수대—1981 | 4월
    • 우리의 영—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불완전한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의 종류를 어느 정도 좌우한다. 또한 우리의 환경과 배경 역시 우리의 개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난 원래 그런 걸, 어쩔 수 없어” 하는 말로 문제에 대해 무관한 태도를 나타내야 하는가? 이것은 분명히 성서가 우리에게 지시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새 인간성을 입”으라는 격려를 받고 있다. 이것은 “낡은 인간성”과 싸워서 그것의 나쁜 경향들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에베소 4:20-24, 새번역; 로마 12:2.

      우리는 때때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아무도 자기 영을 완전하게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의 영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함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불건전한 “영”을 상쇄하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누가 11:13; 갈라디아 5:22, 23, 25) 이렇게 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

      우리의 영을 불안케 하는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긴장하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우리가 고려해 볼 만한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된 세 가지 제안을 살펴보도록 하자.

      자신을 반성해 보라.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면 참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문제와 관련된 점을 추리해 보고 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볼 수 있다. 종종 이렇게 해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이유”라는 것들이 매우 사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는, 존재한 줄 몰랐던 동기를 자신 가운데서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반성의 유익은,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잘못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고, 우리가 조처할 길이 거의 없는 상대방의 잘못에만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실망하게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문해 볼 수 있는 얼마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습관이나 결점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습관이 비성경적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 자신의 배경과 교육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인가? (이러한 후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상대방보다는 자신에게 더 있을 수 있다) 나는 내 자신, 나의 인종 혹은 나의 가족에 대해 어떤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 성급하게 화를 내는가? 또는 충고를 받을 때 마음이 상하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내 자신에 대해 약간은 너무 높이 생각하고 과민한 까닭일 수 있는가? 특정한 사람이 나를 화나게 만드는가? 나는 (감독자나 부모의 경우) 충고가 청종되지 않을 때 실망하게 되는가?

      이러한 반성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특정한 약점을 깨닫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쳐’서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더 좋은 위치에 있게 된다.—고린도 전 9:27.

      상대방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라. 어떤 사람이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약점만 보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보시는 것처럼 그를 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 전반적으로 그 사람은 좋은 “영”을 나타내고 있고 아마 단지 한두 가지 점에 있어서만 실수를 하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가 그의 “옳”고 “정결”하고 “사랑할 만”한 특성들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빌립보 4:8.

      한두 가지 “성나게 하는” 습성을 근거로, 마치 그에게는 좋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처럼 그를 고의적으로 거절하는 식으로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참으로 공정하거나 합당한가? 우리의 판단이 너무나 자주 순간적인 우리의 개인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자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야고보’는 문제를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여 이렇게 묻는다.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야고보 4:12.

      상대방의 견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라. 이렇게 하는 것은, 특히 그의 견해가 우리의 견해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일 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물을 그 사람처럼 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우리 자신의 감정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가 왜 그런 식으로 느끼거나 행동하게 되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인들에게 한 다음과 같은 현명한 교훈을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시오. 각각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남의 일도 돌보아 주시오.”—빌립보 2:3, 4, 새번역.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실제로 양면을 다 고려하지 않고 조급히 판단하는 덫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잠언 18:13) 처음 보기에는 자기가 100‘퍼센트’ 옳고 우리 형제가 전적으로 틀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보다 신중히 관찰함에 따라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잠언 18:17은 현명하게도 이렇게 진술한다. “법정에서 먼저 입여는 사람이 옳아 보여도 상대방이 나타나 대질해 봐야 밝혀진다.”—공동 번역.

      계속 노력하라

      이러한 제안들을 따름으로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패배주의자의 태도를 취하여 “어찌 할 도리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가 우리가 제어력을 상실할 가능성을 줄여줄 것이다. 그것은 또한 특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항상 화를 낸다면, 자신의 생각을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의식하게 해준다.

      우리는 감정을 극복해 가면서 항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다. (미국) ‘뉴우 저어지’의 한 젊은 부인은 이 점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는 항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쉽사리 화를 내었다. 자신의 이러한 경향을 대항해 맹렬히 싸우는 한편 그는 또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호와께 아무쪼록 나의 의심을 없애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읍니다. 나는 그분이 내 마음 깊숙한 곳, 즉 내 몸의 가장 깊은 내부까지 살피시고 제발 어떠한 악한 생각도 제거해 주실 것을 간구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실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렇게 부언한다. “이제 여러 달 동안 나는 나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내 감정은 많이 가라 앉았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들을 적용하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에도, 자신이 때때로 심각하게 감정이 불안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가? 먼저, 우리는 이로 인하여 지나치게 낙담하여 포기하고 싶을 정도에까지 이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여호와의 용서를 구하고 투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을 간구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실제로 고민하는 동안 시편 4:4의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는 분내어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난외주)

      그것은 최선의 방법인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화가 날 때 “밖으로 터뜨려버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자기 남편으로 모자를 걸게 하기 위해 어느 날 아침에 그렇게 하려고 한 부인은 화를 터뜨린 다음에 이렇게 시인하였다. “물론, 실제로 성낸 적은 거의 없지만 화를 내면 그 다음 이삼일 동안은 병을 앓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날 아침 식사 후 나의 감정은 대단하였읍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남편은 모자를 치우는 때보다는 ‘테이블’ 위에 그냥 버려 두는 때가 여전히 더 많습니다.” 이 말이, 화를 터뜨리는 것이 이 부인이나 이의 남편에게 유익하였다는 것처럼 들리는가?

      화를 참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하는 결과는 다음과 같다. “배탈이 난다.” “온 몸이 떨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정말 격노케 된다.” 이러한 것들이 유익한 결과들인가?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신체적인 해 외에도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개인 관계에 미치는 해도 있다. 한창 화나 있을 때는 많은 말과 행동을 해버리기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끝으로, 제어력의 상실은 여호와를 불쾌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누구도 성서의 다음과 같은 진리의 말씀을 부인할 수 없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느니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니라.]”—잠언 14:17, 29.

      또한, 잠언의 이러한 말씀도 인생에 얼마나 참된가!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15:18) 의문의 여지 없이, 자기 영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으며, 문제를 악화시킨다. 반면에 온유한 영을 나타내는 사람은 문제를 가라앉힐 수 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

      그렇다, 우리의 영을 제어하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다. 그것은 나쁜 결과들을 피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방법도 배우게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영적 형제들을 신뢰하고, 그들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것은 그들의 약점을 되풀이하여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의 좋은 특성들을 관찰하고 본받는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 결과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더 친밀해지고 우리도 그들에게 친밀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보다 사랑에 찬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사실상 한 집단의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함께 모이면 그들은 어떤 “영” 즉 지배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빌레몬 25) 그것이 고무적이고 격려적인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이고 실망을 주는 것인가는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들에게 크게 달려 있다. 전세계의 수만개의 회중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건전한 영을 나타낸다.

      당신이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라면, 당신이 연합하고 있는 회중의 건전한 영에 기여하는 것을 당신의 목표로 삼지 않겠는가? 당신은 자신의 영을 제어함으로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따뜻하고 우정적이고 격려적이 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당신의 영적 형제 자매들 사이에 가족적인 행복한 영을 퍼뜨리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관대하게 베품에 따라 당신은 자신의 영을 제어하는 가운데 당신 자신이 도움을 받게 되는 부가적인 이득도 거두게 될 것이다. 이것은 좋은 영이 전염되며 관대함이 관대함을 낳기 때문이다. 현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니라.]”—잠언 11:25.

      [30면 삽화]

      나는 다른 사람의 습관이나 결점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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