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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희망은 확실한가?깨어라!—1980 |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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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셋은 예수 자신이 수행하신 것이다.—마태 9:18, 23-25; 누가 7:12-15; 요한 11:38-44.
이 성경은 부활된 인류를 위해 어떠한 종류의 생명을 제시하는가? 그것은 이전 것과 비슷할 것인가? 계시록 21:4의 성서 약속에서 본 바와 같이 수천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과 고통이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물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현존하는 악하고, 부패하고 압제적인 사물의 제도를 그 모든 불공평 및 편견과 함께 쓸어 버리실 것이다. 창조주께서 사람을 만드실 원래 목적이 실현될 것이다. 즉 조화 가운데 평화스럽게 살면서 전세계로 확장된 낙원 상태에서 자기의 수고의 열매를 즐길 완전한 인류로 온 땅이 충만할 것이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어떠한 것도 하나님께서 다가오는 의로운 새 질서에서 순종하는 인류를 위해 하실 기이한 일들과 비교할 수 없다.—다니엘 2:44; 창세 1:28; 이사야 55:11; 65:17, 21-25; 미가 4:3, 4.
당신은 거기서 이러한 축복을 즐길 것인가? 당신이 성서를 연구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생명을 주는 지식을 받아 들인다면 이 희망을 당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 (요한 17:3) 본 잡지의 매 ‘페이지’를 읽는 것은 장래에 대한 확실한 희망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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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다깨어라!—1980 |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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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 2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다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가 10:14) 많은 사람들은 이 성귀를 기억할 것이며, 예수께서 얼마나 어린이들이 접근하기에 쉬운 분이셨는가를 보여 주는 데 이 성귀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그 특별한 때의 긴박감을 우리가 인식할 때 예수의 그러한 특성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 이전에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배반당하시고,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로 처형당하실 것이라고 두번 말씀하셨다. 이제 그분의 봉사 기간은 삼년이 지나갔고 그분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고 계셨다. 그분은 고된 시련이 단 몇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그분은 어린이들을 대면하신 직후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라].”—마가 10:33, 34.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께서 어린이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으시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더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 심지어 이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서도 시간을 내셨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마가 10:13, 14, 16.
어린 아이는 자기 부모에게 의지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며 부모를 신뢰하고 확신을 갖는다. 부모의 말이라면 진리로 받아들이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그 부모의 말을 옹호할 것이다. 왕국 사람들도 그들의 천적 아버지께 대하여 그러할 것이다.
한 때 제자들이 자기들 중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에 대해서 논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논점을 지각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나서 그분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셨다. (마가 9:35-37) 예수의 참다운 추종자들은 어린이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내며, 그들로 회중에서 환영받는 부분이라고 느끼게 해준다.
예수께서는 시간을 내셔서 어린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셨다. 그 분은 아이들의 놀이를 당시 세대의 완악함을 비유하는 데 사용하기까지 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하고 예수께서는 질문하셨다.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처음에 그들은 “혼인식” 놀이를 하고 싶어했고 그 다음에 “장례식” 놀이를 하고 싶어했지만 그들의 놀이 친구들은 비협조적이었으며 즐거운 놀이와 슬픈 놀이를 모두 거부하였다. 이와같이 예수 당시의 세대도 침례자 ‘요한’과 ‘나사렛’ 예수를 비난하였다.—마태 11:16-19.
예수의 가장 놀라운 기적 중 한 가지에 어린이 하나가 참여하였다. 커다란 무리가 산간 지대까지 예수를 좇아 왔었다. 시간이 늦고 군중이 시장해 하자 예수께서는 양식에 대해서 물으셨다.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는 떡과 물고기를 불어나게 하셔서 “여자와 아이” 외에 수 천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식량이 남게 하셨다. 그러나 요점은 그 아이가 예수를 신뢰하고 얼마 안되는 자기 양식을 그분에게 기꺼이 건네 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 아이가 군중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보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도 중요하다.—요한 6:2-14; 마태 14:14-21.
어떤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숭배 문제에 대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자기들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견해를 갖지 않으셨다. 돌아가시기 나흘 전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 가셔서 돈 바꾸는 자들과 제물용 동물들을 엄청난 이윤을 붙여 파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다. 이 일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부정 행위를 망쳐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를 찬양하고 그를 ‘메시야’라고 환호한다는 사실을 불평 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의 함성이 시편 8:2의 성취라고 인용하셨다. 그 기록은 이러하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니라].”—마태 21:12-16.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께서 의가 거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여호와의 왕이심을 시인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에게 기쁨이 된다. 의심의 여지 없이, 지난 수 천년 동안 사망한 수 백만의 어린이들이 예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무덤에서 나와 지상 낙원에서 살게 될 것이다. 심지어 현재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큰 환난을 살아남아 그 낙원으로 들어갈 희망을 가지고 있다.—베드로 후 3:13; 요한 5:25-29.
많은 어린이들이 부활될 그러한 시기를 예시하시어 지상에 계셨을 때 예수께서는 몹시 슬퍼하는 한 아버지의 간청을 들어 주셨다. 그의 딸이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그 아이를 고치러 가시는 도중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하는 전갈이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계속 가셨고 그 집에 도착하시어 울고 통곡하여 애도의 뜻을 표하는 시끄러운 군중을 분산시키시고 그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니라].”—마가 5:22-24, 35-42.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하신 바와 같이, 어린이들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내고 그들을 우리 가운데로 받아들여, 그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의로운 새 땅에서 어린 사람과 연로한 사람이 함께 놀라운 환희를 맛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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