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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파수대—1981 | 6월
    • 기적을 배척할 것이다. 그러나 한때 영국의 시인 ‘코우퍼’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기적이다. 그러나 너무나 (규칙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적은 다 헛되다.”—그러나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 우리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실제적인가?
    파수대—1981 | 6월
    • 우리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실제적인가?

      한때 미국의 한 ‘랍비’가 ‘아인시타인’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고 질문하자 ‘아인시타인’은 “나는 ‘스피노자’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존재하는 사물의 질서있는 조화 가운데 자신을 나타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17세기의 그 ‘유대’계 ‘네델란드’인 철학자는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가? 간단히 말하여, 그 개념은 “존재하는 것은 어느 것이나 하나님의 일부이며,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완전 문자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아인시타인’에게 그러한 하나님은 얼마나 실제적이었는가?

      그분은 ‘스피노자’와 ‘아인시타인’에게는 기껏해야 범신론적 하나님에 불과하였다. 범신론적 하나님? 그렇다. 왜냐하면, “범신론”이라는 용어는 “모든”과 “신”을 의미하는 두 어원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용어는 “우주의 힘 및 법칙이 곧 하나님이라고 보는 신조”라고 정의된다.

      “자연의 책”인 우주가 하나님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밝혀 준다는 점에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실제적이 되려면 그분에 대한 단순히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그분의 계시가 필요하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먼저 들어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 (로마 10:14) 인자하고, 지혜롭고, 공의로우시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계시 즉, 자신의 말씀인 성서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그분이 위대하신 제일원인이심을 알게 될 뿐아니라, 그분의 특성들, 즉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시며, 전적으로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사랑의 체현이시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더우기,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서 그분의 목적에 대하여도 배울 수 있다.—창세 18:14; 신명 32:4; 이사야 45:23, 24; 로마 11:33-35; 요한 1서 4:8.

      하나님에게 몸이 있는가?

      사실상,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이 편재(遍在)해 계시다고 가르침으로써 혼란을 일으켜 왔으며, 그분의 숭배자들에게 하나님이 실제적이 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나님이 모든 곳에 동시에 계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영자이시며, 이것은 그분에게 물질적인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 있음을 의미한다. 영자에게 몸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육의 몸이 있으면 영의 몸도 있읍니다.”라는 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 전 15:44, 신세; 요한 4:24) 하나님은 개체이시고 영의 몸을 가진 한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거주하는 장소가 있으며, 따라서 그분은 어느 다른 곳에 동시에 계실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열왕기 상 8:43에서 하늘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말을 읽게 된다. 또한 히브리 9:24에서 “그리스도께서는 ·⁠·⁠·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니”라는 말을 읽게 된다.

      더 나아가서, 제자 ‘스데반’과 사도 ‘요한’은 환상에서 하늘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두분이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만큼 한분의 인격체, 즉 개체이심에 틀림 없다. (사도 7:56; 계시 5:1, 9) 결국 하늘에서 살 희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분과 같이 될 것임을 보장받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한분의 인격체이시며, 몸과 상주하시는 특정한 지역이 있음을 알려 준다.—요한 1서 3:2.

      아마 어떤 사람들이 혼돈해 온 것은 하나님이 무엇이나 다 보실 수 있고 그분의 능력을 어느 곳에서나 느낄 수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역대 하 16:9) 이러한 사실들은 하나님을 발전소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발전소는 도시의 특정한 거리의 특정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발전소의 전기는 전 도시에 분배되어 빛과 동력을 공급해 준다. 여호와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그분은 가장 높은 하늘에 거하시지만, 그분의 활동력, 즉 성령은 계몽의 빛을 제공하고, 그 힘은 어느 곳에서나, 우주 전역에서, 느낄 수 있다.

      성서는 하나님의 숭배자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러한 형상에 절하지도, 숭배하지도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한편, 신인 동형론을 사용한다. 즉, 하나님에 대해 사람의 특성들을 사용해 묘사한다. 그리하여 성서는 하나님의 얼굴, 눈 및 귀, 하나님의 콧김과 입, 팔 그리고 발에 대하여 말한다. (신명 4:15-20; 시 27:8; 베드로 전 3:12; 시 18:15; 이사야 1:20; 신명 33:27; 이사야 41:2) 물론 이러한 묘사적인 말은 그분의 영의 몸이 인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을 통하여 우리는 도움을 받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보다 실제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독특한 인격체이시며, 감정이 있고, 그분을 기쁘시게도 불쾌하시게도 할 수 있으며, 웃으실 수 있고, 진노하실 수 있고, 자비로우시고 부드러운 애정을 가지신 분임을 알려 준다. 그분은 인류 개개인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사실상 하나님은 인류 세상을 깊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독생자를 땅에 보내셔서 희생물로 죽게 하심으로써 그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다.—시 2:4, 12; 요한 3:16; 히브리 10:38; 야고보 5:11; 베드로 전 5:7.

      그분을 왜 두려워하는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실제적이라면, 바로 그분의 특성들은 우리로 그분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 것이다. 성서는 “여호와를 경외함(두려워하는 것, 신세)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하며, 그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 111:10; 잠언 8:13) 이것은 단순히 여호와께 경건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단지 하나님께 건전한 존경심을 갖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책임있는 위치에 임명하신 사람들에 대해 경건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으며, 모든 정직한 사람들에 대해 건전한 존경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한다.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확실히 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불에 소멸될 위험이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히브리 12:28, 29.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이러한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린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불쾌하게 하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왜 그러한가? 아들에게 아버지는 매우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볼 수 있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아버지가 아들인 자기보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을 안다. 더 나아가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물질적인 필요, 즉 의식주를 사랑스럽게 마련해 주며, 아들의 오락의 필요, 정신적 및 영적인 필요를 사랑스럽게 마련해 준다. 그러므로 아들에게는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아버지를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실제적인 이유에 더하여 도덕적인 의무가 있는 것이다. 현명한 아들은 자기의 아버지를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도록 힘쓸 것이며,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온전히 인식하게 되는 정도, 바로 그 정도만큼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를 참으로 원할 것이다.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 모두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 (마태 6:9) 모든 좋은 것들이 그분으로부터 나온다. (야고보 1:17) 우리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실제적이 되면 그분을 불쾌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건전한 두려움이 우리 속에 자라나게 된다는 사실은 족장 ‘야곱’의 아들인 ‘요셉’의 생애중에 생긴 한 일에서 볼 수 있다. ‘요셉’이 ‘애굽’의 궁정 관리인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보디발’의 아내는 미남 청년 ‘요셉’을 유혹하려 들었다. 무엇이 ‘요셉’이 이 큰 유혹을 저항할 수 있게 해주었는가? 하나님이 그에게 실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에게 한 ‘요셉’의 이러한 말에 그 점이 나타나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에게 하나님이 매우 실제적이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실제적이 되게 하는 것은 우리도 유혹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치도록 도와 줄 것이다.—창세 39:9.

      비유로 되돌아가서 아버지가 사업차 한 동안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하자. 물론 그는 여전히 가족을 부양할 것이며, 틀림없이 아들을 포함한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것이다. 아들은 이 편지들을 열심히 읽을 것이며, 그 편지는 아버지가 계속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증해 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불쾌함을 사지 않으려는 노력에 부주의하는 경향이 있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편지들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의무를 계속 일깨워 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가 하늘 중의 하늘에 멀리 떠나 계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약속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며, 우리에게 66권의 성서 형태로 된 편지를 보내 주셨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참으로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셨고,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 행하실 모든 일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 영감받은 편지들을 매우 귀하게 여길 것이다. 우리는 그 편지들을 진지하게 여러 번 숙독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영감받은 편지들은, 우리가 비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하실 일들을 행하지 않도록, 우리가 조심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그래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실제적임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이를 테면, 자주 그분께 기도로 이야기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훌륭한 특성들에 관하여 말해 주는 것 등, 훨씬 더 많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실제적이 되게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도 그분이 더욱 더 실제적이 될 것이다.

  • 우리의 혀를 제어해야 할 이유?
    파수대—1981 | 6월
    • 우리의 혀를 제어해야 할 이유?

      당신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가? 잠언 10:19은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예수의 이부 동생인 ‘야고보’는 혀를 제어하지 못하면 숭배를 무용케 할 수 있기 때문에 혀로 인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밝혔다.—야고보 1:2-8.

      우리 가운데 혀를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눈에 띄게 개선시킬 수는 있다.—야고보 3:2-8.

      이것은 우리가 벙어리가 되어 결코 대화에 참여하거나 거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한번 시험해 보지 않겠는가? 얼마 동안 당신의 충동적인 면을 조사해 보라. 여럿이 대화할 때 당신은 무슨 화제에 대하여 끼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살펴 보라. 생활상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대화에서 당신은 거의 언제나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끼어드는가? 만일 그렇다면 잠언 10:19을 얼마간 묵상해 보는 것이 보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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