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팜플렛은 진리 탐구자를 돕는다
1 금년 여름의 “경건한 정성” 지역 대회의 첫째 날 오전 회기에서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다”라는 훌륭한 연설 후에,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라는 팜플렛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었는가? 이 팜플렛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빛을 더해 주어서 수많은 진리 탐구자들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도울 것으로 확신한다. (요한 17:3; 디모데 전 2:4) 그러나 누가 이 팜플렛을 진리 탐구자들에게 전해 줄 것인가?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진한 것처럼, 우리도 11월중 이 팜플렛을 열심히 전함으로 자진하지 않겠는가?—이사야 6:8.
이 팜플렛의 가치
2 이 팜플렛은 거짓 가르침 때문에 정신적 혼란을 일으킨 양 같은 사람들을 돕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히브리어와 희랍어 성경을 통하여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신명 6:4; 이사야 46:9; 디모데 전 2:5.
3 이 팜플렛은,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이 다양하며, 한 역사 자료는 “[삼위일체가] 전적으로 이교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고 알려 준다. (「삼」 3면)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는 거짓이며 이교 교리로서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또한 어떻게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의 중심 교리가 되어왔는지 자세히 밝혀 준다. “하나님은 혼란의 하나님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이러한 교리가 성서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고린도 전 14:33, 개역 표준역.
4 이 팜플렛의 12면부터는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무엇인가?”를 소개하며 삼위일체가 거짓 가르침임을 논리 정연하게 논파해 가면서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해준다. (고린도 전 8:6) 하나님의 진리를 갈망하는 관심자들은 이 팜플렛을 받아 읽고 참 진리를 발견할 때 얼마나 큰 기쁨에 넘칠 것인가? 우리는 11월중 이 팜플렛을 야외에서 250원의 헌금으로 제공하게 된 것을 아주 기뻐한다. 성공적으로 제공하려면 잘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이 팜플렛을 주의 깊이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제 팜플렛을 제공하는 데 사용할 만한 점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전한 모든 곳을 재방문하여 성서 연구를 시작하려는 간절한 노력을 여호와께서 넘치게 축복해 주시기 바란다.
도움이 되는 제안
5 이 팜플렛을 제공할 때, “성서를 연구하는 이유”라는 대화를 위한 제목을 잘 사용하기를 원할 것이다. 마지막 성구 요한 복음 17:3을 읽은 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생을 가져오는 하나님과 예수에 관한 지식을 얻으시도록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라는 이 팜플렛이 마련되었습니다. 12면의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무엇인가?’라는 제목하에서는 두분의 관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합니다. 단지 250원의 헌금으로 이 팜플렛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교국의 어떤 종파에 속한 사람을 만났다면 대화를 위한 제목의 연설을 끝낸 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삼위일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 팜플렛 7면에서는 (펴서 보이며)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해 줍니다. 더 나아가 12면에서는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에 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읽어 보시고 하나님과 예수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단지 250원의 헌금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외로도 집주인의 반응에 따라 적절한 곳을 직접 인용하여 설명해 줌으로써 이 팜플렛을 널리 전하기 바란다.
6 그렇다, “이 세상 신”인 사단 마귀가 삼위일체라는 거짓 교리를 조장하여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팜플렛이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져다 주어서 정직한 마음의 사람들이 커다란 위안을 얻으며, 예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거짓 교리로부터 자유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린도 후 4:4; 요한 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