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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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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 깨어라!—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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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10/1 8-9면

성서의 견해

운명—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많은 부모들에게 공통적인 부드러운 손길로 곱게 어루만지는 손이 한 아이의 얼굴에서 더러운 먼지를 닦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은 상황이 끔찍스레 다른 것이다. 이 아이는, 공포속에 나머지 세상을 전율케 하며 전 인도를 비탄의 충격 속에 몰아넣은 재난으로 죽은 2,000여명 중 하나인데, 이제 곧 매장되려는 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자욱하게 새어나온 백색 독‘가스’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보팔’ 시를 상해와 죽음의 도시로 만든 것이다.

일부 인도인들은 이 비극을 보고 “운명!”이라고 소리쳤다. 다른 인도인들은 ‘그것은 천명이다’라든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라는 생각들로 체념해 버렸다. 하지만 인도인 모두가 ‘보팔’의 재난을 맹목적인 운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운명 때문이었는가? 운명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운명이 ‘우리를 지배’하는가?

운명은 “인간으로서는 변화시킬 수 없는 방식으로 일들이 언제나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운명론적 교리와 관련이 있다. 누가 정했는가? 일부 운명론자들은 “비인격적인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는 시기와 방법을 포함하여 전체 인생 행로가 신에 의해 정해져 있으며, 아무 것도 그것을 변경시킬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서는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제시한다. 성서는 어떤 일들과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한 번역판에서 사용된 “운명”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성서 사전」(Dictionary of the Bible)은 이렇게 말한다. “문맥을 조사해 보면 어디에서도 맹목적인 운명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때때로 언급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운명이며, 때때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초래하는 혹은 지역 사회에 초래하는 멸망의 운명을 언급한다.”—일례로 민수기 16:29의 「개역 표준역」 참조.

성서가 옹호하는 근본적으로 이치적인 이러한 인과 법칙에 유의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 6:7) 이는 자명한 이치이다. 증거를 대거나 “이유”를 달 필요도 없다. 우리가 심은 것을 우리가 거두는 것이기에, 자신에게 일어난 많은 일들의 결과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맹목적인 운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의 자유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다음의 성귀를 보아도 분명하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라.]” (신명 30:19, 20)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택하라고 권하실 이유가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인간 ‘로봇’에 불과하여 하늘에 있는 어떤 조작자가 미리 정해놓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라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신 예수의 교훈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또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영적으로 나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려고 힘쓸 이유도, 성서의 지침들을 고수하는 일에서 인내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누가 13:24; 마태 24:13.

예수의 추종자 ‘바울’이 자신의 최종 운명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고 믿었다면, 그의 이러한 말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끝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읍니다, 예루살렘 성서]”—빌립보 3:12-14.

만일 경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누가 상받을 것인지가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잡”고 “끝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것이 이치적인가? 어차피 경주를 시작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다’는 신조는 성서적 관점과 부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초능력자의 손에 조종당하는 꼭둑각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다.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이유

운명이 우리의 생활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기와 우연”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대답한다. (전도 9:11)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로 무고한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좋지 않은 시간에 좋지 않은 장소에 있을 수 있다.

성서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대답은 인류가 죄를 유전받았으며 그러기에 불완전 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 5:12) 그러므로 사람들의 행동에는 실수와 약점이 따르기 마련이고, 또 그들이 세우거나 만들어 내는 물건들도 마찬가지이다. 안전 예방책의 무시, 발하여진 경고에 유의하지 않는 일, 선의가 탐욕에 압도당하는 것 및 그와 같은 일들은 인류의 불완전한 천성 때문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운명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자유로이 택할 수 있다. 영국 시인 ‘윌리엄 에르네스트 헨리’는 그와 같은 확신을 이처럼 표현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니라.” 그러나 ‘헨리’보다 3,000여년 전에 살았던 한 성서 필자는 그 점을 더 정확히 표현하였다. 그는 장래의 좋거나 나쁨이 본인에게 달려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지 순종하지 않을 것인지를 택하는 여부에 달려 있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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