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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화 재료로 건축하는 일
    파수대—1984 | 11월 1일
    • 그들은 “불”을 견뎌낼 것인가?

      21. (ㄱ)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내구력 있는 특성들을 심어 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1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내구력 있는 특성들을 세우도록 돕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계속 이렇게 설명합니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린도 전 3:13) 그러므로 “불”은 우리가 과연 어떤 식으로 건축하고 있는지를 “시험”할 것입니다. 여기서 “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난폭한 육체적 박해를 의미합니까? 그렇지 않음이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각각 공력”이 불에게 드러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난폭한 박해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불”은 우리의 영성을 파멸시킬 수 있는 모든 압력과 유혹을 의미합니다.

      22.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불같은 시험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22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불”이 중립 문제의 형태로 올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정치 활동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투옥을 당하는 압력을 받을 수 있읍니다. (요한 15:19) 때때로 그 “불”은 보다 교묘한 것일 수 있읍니다. 아마 그것은 성과 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려는 유혹일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에게는 그 “불”이 성적 자극에 노출되는 것, 마약을 사용하게 하려는 권유 혹은 세상의 저속한 오락에 참여하게 하려는 압력 등의 형태로 올 수 있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에게 타협하도록 엄청난 압력을 가할 수 있읍니다.—요한 1서 2:16.

      23. (ㄱ) 그러한 시험에 직면하는 일과 관련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기며, 그 대답은 무엇에 달려 있읍니까? (ㄴ) 다음 기사에서는 무엇을 논할 것입니까?

      23 대부분의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불같은 시험들을 견뎌내는 데 성공하였읍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렇게 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도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가 가르친 사람들이 “불”에 직면하게 될 때 그들은 어떻게 응할 것인가? 그들은 내화 재료인 금과 은과 보석으로 꾸며진 그 아름다운 궁전과 같아서 굳게 설 것인가? 아니면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오두막과 같아서 타버리고 말 것인가? 물론 그것은 주로 연구생 자신에게 달려 있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가르치는 사람들에 따라서도, 즉 우리가 어떻게 건축하느냐에 따라서도 많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게 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그처럼 내구력 있는 특성들을 세워 줄 수 있는가? 바로 이 점이 다음 기사에서 토론될 것입니다.

  • 가르칠 때, 마음을 감동시키도록 하라
    파수대—1984 | 11월 1일
    • 가르칠 때, 마음을 감동시키도록 하라

      1, 2. (ㄱ) 사람들에게 여호와와 그분의 표준에 대한 깊은 인식을 세워 주는 데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ㄴ) 머리에 지식을 주입하는 일 이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두막 집은 쉽게 지을 수 있지만, 확실히 궁전을 하룻밤 사이에 지을 수는 없읍니다. 제자를 삼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여호와와 그분의 표준에 대한 깊은 인식을 세워 준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궁전”을 짓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기술을 요합니다.

      2 이를 달성하는 데는 지식을 주입하는 일 이상이 관련되어 있읍니다. 잠언 3:1의 다음과 같은 말과 같습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우리의 연구생들은 성서대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진리가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내화의 특성들을 세워 줌으로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튼튼한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도우려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3. (ㄱ) 마음을 감동시키는 여부가 “가르치는 기술”에 많이 달려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얼마의 실용적인 제안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누구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까?

      3 이렇게 하는 것이 말보다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올바른 건축 재료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기술”도 사용해야 합니다. (디모데 후 4:2, 신세) 연구생들에게 진리를 알려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르치는 기술”에는 그들이 생각하도록 그리고 배운 것을 추리하도록 돕는 일이 관련되어 있읍니다. 물론 우리의 재능이나 방법이 영적 발전을 산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고린도 전 3:5, 6) 그렇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들이 있읍니다. 그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우리의 성서 연구생 및 자녀들을 염두에 두도록 하십시다.

      올바른 본을 세우는 일

      4. (ㄱ) 예수께서 사람들을 감동시키시는 일에 효과적이 되게 해준 한 가지 것은 무엇입니까? (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때 올바른 본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법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훌륭한 본이 있을 수 있겠읍니까? 그분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일에 그토록 성공적이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는 예수께서 자신이 가르치신 것을 실천하심으로 자기 추종자들이 따라야 할 권위있는 본이 되셨다는 점입니다. (요한 13:15; 베드로 전 2:21) 그러므로 첫 번째 제안은 올바른 본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세워 주고자 하는 내구력있는 그리스도인 특성들을 우리 자신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논리적이 아닙니까? 예수께서 “잘 훈련받은 학생은 누구나 그의 선생과 같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누가 6:40, 뉴우 버클레이 역.

      5. 성경은 올바른 본을 세우는 일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과의 관계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5 성서는 올바른 본을 세우는 일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과의 관계를 반복적으로 알려 줍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6:4-6에서는 여호와께 대한 사랑을 먼저 “[부모의] 마음에 새”겨야만 자녀들의 마음 속에 그것을 가르쳐 심어 줄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잠언 20:7)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 당시의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상할 것이 있읍니까?—마태 23:3; 13:13-15.

      6.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과 일치하게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로마 2:21-23)

      6 그러므로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과 우리의 행동은 일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연구생이나 자녀들에게 여호와께 대한 사랑과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욕망을 세워 주고자 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기도와 언행에서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과 욕망이 있다는 증거를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우리가 성서 원칙들에 대한 강력한 정성을 넣어 주려고 한다면, 그들은 먼저 우리의 언행에서 그러한 원칙들을 제쳐 두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야 하지 않겠읍니까?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 특히 자녀들은 흔히 우리의 말보다는 우리의 행동에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과 일치하게 생활한다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더 좋은 입장에 있게 될 것입니다.

      질문들을 사용하라

      7, 8. (ㄱ)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일의 성공 여부는 주로 무엇에 달려 있읍니까? (ㄴ)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에 있어서 질문들이 유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두번째 제안은, 예수를 그토록 효과적인 선생님이 되게 한 또 다른 것으로서, 질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로 생각하고 추리하게 하는 일에 능숙하셨읍니다. (마태 17:24-27)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의 성공 여부는 주로 질문을 사용하는 데 달려 있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8 첫째, 우리는 질문을 사용함으로써 연구생이 배우고 있는 것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읍니다. 결국 연구생이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 내용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그것이 그의 마음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겠읍니까? (누가 8:15) 둘째로,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아는 것이 유익합니다. 선입관과 거짓 종교의 가르침들이 확고하게 뿌리박혀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마음을 읽을 수 없으므로, 특히 연구생이 자기 마음에서 느끼는 바를 자기 말로 표현하게 하는 질문들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얼마의 예들을 고려해 봅시다.

      9, 10. 견해 질문의 효과적인 사용의 예를 들어 보십시오.

      9 가령,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제10장 “힘이 있는 악한 영들”이라는 내용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시다. 96면 18항에 이르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인쇄된 질문이 나옵니다. “‘에베소’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어떠한 본이 영매술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좋은 본입니까?” 연구생이 항목으로부터 정확한 대답을 할지 모르지만, 그는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읍니까? 아마 그는 다년간 영매술을 행했기 때문에 그것을 강하게 믿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럴 경우, 그는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읍니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읍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이 내용을 생활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요?’ 이제 그가 대답하는 방법은 그 내용이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까지 감동시켰는지를 밝혀 줄 것입니다.

      10 또 다른 예로서, 같은 책 26장의 “옳은 일을 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내용을 자녀와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합시다. 220면 8항 “ㄴ”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청년의 표현처럼 우리는 어떠한 견해를 갖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까?” 처음에 자녀는 항목 내용에서 대답을 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실제로 표현하지는 못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부드럽게 좀더 깊이 캐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너에게도 이 견해가 이치적인 것 같은가?’ 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할 수도 있읍니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네게도 피우라고 권한다고 하자. 많은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네가 거절하는 것을 보고 너를 조롱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하겠니?’ 이러한 질문들을 슬기롭게 사용할 때 자녀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11. (ㄱ) 질문들을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자녀가 그릇된 견해를 표현한다 할지라도 부모가 특히 조심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골로새 3:21)

      11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읍니다. 때때로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실망시킬 수 있읍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만일 그것이 민감한 제목이라면, 그것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 정도로 해두지요. 그 문제에 관해서는 언젠가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요한 16:12) 부모의 경우라면 특히 이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릇된 견해를 표명한다 할지라도 감정을 억제해야 합니다. 부모는 의사 소통의 통로가 막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자녀가 자기의 느끼는 바를 표현하기를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알고 그를 도울 수 있겠읍니까?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지혜를 강조하라

      12, 13. (ㄱ)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지혜를 깨닫는 것이 왜 연구생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할 것입니까? (ㄴ) 연구생이 여호와께 순종하는 것의 지혜를 깨닫도록 돕는 일에는 무엇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12 세번째 제안은 연구생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지혜를 깨닫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신명 4:5, 6; 10:12, 13) 이것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만일 그가 여호와의 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최상의 유익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도록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112:1.

      13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지혜를 깨닫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우리는 여호와의 법을 “접근 금지” 표지판에 비함으로써 이 점을 설명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표지판 자체가 경고가 되기는 하지만, 그 표지판에 경고의 이유가 담겨 있다면 더 쉽게 순종하게 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겠읍니까? 예를 들어, 그 표지판에 “접근 금지—고압 전류”라는 말이 적혀 있다면, 접근하려던 사람은 신상의 위험의 가능성을 깨닫고 더 쉽게 경고를 청종할 것입니다.

      14. (ㄱ) 특정 행로가 왜 지혜로운지 혹은 어리석은지를 연구생이 깨닫도록 돕기 위해 연구생과 함께 어떠한 방법으로 추리할 수 있읍니까? (ㄴ) 특정 행로가 좋고 나쁜 이유를 알려 주는 것이 중요함을 어느 성귀들이 예시해 줍니까?

      14 하나님의 법도 이와 비슷합니다. 연구생에게 그저 단순히 성서에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는지를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마십시오. 특정 행로가 왜 지혜로운지 혹은 어리석은지를 그가 깨닫도록 도우십시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그에게 어떻게 유익할 것인지를 그와 함께 추리하십시오. 그러한 요구 조건들을 무시하는 것의 결과들을 깨닫도록 도우십시오. 때때로 성서 자체가 그렇게 해주는 때가 있읍니다. 잠언 22:24, 25; 23:4, 5; 24:15, 16, 19, 20을 직접 읽어 보십시오. 이 모든 경우에 성서는 특정 행로가 왜 좋은지 혹은 왜 나쁜지를 알려 준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15. 마련된 질문과 성귀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부정직과 음행에 관해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로움을 논하십시오.

      15 예를 들어, 다음의 질문과 성귀들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의 지혜를 어떻게 강조하는지 고려하도록 하십시오.

      거짓말, 도둑질: 부정직이 해로운 이유는 무엇인가? (잠언 15:27; 20:10; 계시 21:8)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정직한 것이 어떠한 유익이 있는가? (잠언 3:3, 4; 12:19; 히브리 13:18)

      음행: 부도덕은 어떻게 우리에게 해를 줄 수 있는가? (잠언 5:9; 7:21-23; 고린도 전 6:18) 그것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데살로니가 전 4:6; 고린도 전 5:6; 히브리 12:15, 16) 성서의 도덕 표준을 청종할 때 어떻게 유익할 수 있는가? (잠언 5:18, 19; 히브리 13:4)

      성서의 법에 대해 이러한 방법으로 추리한 후에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최상의 유익을 생각하신다는 것이 분명하지요? 그분의 법들이 실제로 우리에게서 아무 것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까?’

      16. 이런 식으로 추리하는 것은 연구생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읍니까?

      16 연구 중에 술취하는 일, 세금을 내는 일, 담배 피우는 일, 피 문제 등에 관한 하나님의 법에 대해 이와 비슷하게 추리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연구생이나 자녀는 하나님의 법은 어느 것이나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깨닫도록 도움을 받게 됩니다. 연구생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에는 언제나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몇 가지 예들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불”, 즉 시험이 닥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보다 쉽게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고린도 전 3:13.

      하나님을 알도록 도우라

      17. 어떠한 부가적 제안이 연구생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7 네번째 제안은 연구생이 하나님을 알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요한 17:3) 여호와께서 존재하시고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도록 돕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연구생이 그분을 친밀하게 알게 되도록 도우십시오. 이것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은 곧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8. 연구 중에 우리는 어떻게 여호와의 특성으로 주의를 이끌 수 있읍니까?

      18 연구생이 여호와를 친밀하게 알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한 가지는 누구든지 그분의 특성과 방법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연구 중에 여호와의 비길 데 없는 특성들로 주의를 이끄는 일에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흔히 고려되고 있는 제목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대속을 논한다면, 우리는 적절한 점에서 멈추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대속 마련은 우리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의 깊이를 어떻게 돋보이게 해줍니까?’ 또는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일에 관하여 고려하는 경우라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그렇게 악한데도 어떻게 그렇게 오래 참아 오셨읍니까?’, 혹은 ‘여호와께서 ‘에덴’에서의 반역을 다루신 방법으로 볼 때 어떻게 비길 데 없는 지혜를 나타내셨읍니까?’ 이런 식으로 추리하는 것은 연구생에게 여호와께 헌신하려는 강한 감정을 세워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를 사랑과 매혹을 느끼게 하는 특성을 가지신 인격체로 보게 될 것입니다.

      19, 20. (ㄱ) 여호와를 친밀하게 알기 위해서는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ㄴ) 이 항에 나오는 경험담은 기도 문제에 있어서 올바른 본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을 어떻게 예시합니까?

      19 그뿐 아니라, 누구와도 얼마의 의사 소통이 없이는 잘 알게 될 수 없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연구생도 여호와와의 의사 소통이 없이는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없읍니다. 이 점을 인식하고 연구생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합당한 기도 제목이 될 만한 일들이 참으로 다양함을 연구생이 깨닫도록 도우십시오. (요한 1서 5:14) 여호와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인식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시 65:2) 가장 깊숙한 감정을 표현함으로 여호와께 “마음을 토하”도록 격려하십시오.—시 62:8.

      20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 자신의 본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정성의 깊이를 반영합니까? 이것은 자녀들을 포함하여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매우 건전한 영향을 줄 수 있읍니다.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고려해 보십시오.

      수년 전에 어느 그리스도인 부부는 만 세살된 아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밤 그 아이는 여호와께서 엄마와 아빠를 축복해 주실 것을 기도한 후에 여호와께 “월리”를 축복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이었다. “월리”란 누구인가? 부모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월리”를 위해 매우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매우 궁금하던 차에 마침내 부모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 아이는 (당시에 박해를 받고 있던) ‘말라위’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월리”라고 잘못 발음한 것이다. 요점은 그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들이 기도하는 것을 들었으며 그들의 훌륭한 본을 따랐다는 점이다. 그 부모가 어떻게 느꼈겠는지 생각해 보라!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 올바른 본을 세우는 것의 중요성을 예시해 주는 것이 아닙니까?

      상

      21. (ㄱ) 고린도 전서 3:14, 15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건축자로서 우리는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읍니까? (ㄴ) “상”이란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까? 설명하십시오.

      21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내화력있는 특성들을 세워 줌으로 그들이 여호와와의 좋은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돕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바울’은 그 점을 다음과 같은 말로 지적하였읍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내화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빈약하게 건축했기 때문에]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즉 그가 건축한 것을 “불”로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그 “상”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이 여기에서 염두에 둔 것은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상이 아닌 다른 것임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빈약하게 건축한 사람이 “상”은 상실하지만, 그 자신은 “불” 가운데서 얻음같이 구원을 받게 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고린도 전 3:14, 15.

      22, 23. (ㄱ)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관련하여 무슨 상을 받았읍니까? (ㄴ)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무슨 “상”을 바라며, 우리는 그 상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읍니까?

      22 그러면 이 “상”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말한 내용이 빛을 던져 줍니다. 그곳의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우리의 자랑이요 기쁨!”, 오늘날의 영어 역본]이니라.” (데살로니가 전 2:19, 20) ‘바울’은 이들 ‘데살로니가’인들이 진리의 길로 들어오도록 도왔읍니다. 그리고 시초부터 박해를 받았지만, 그들은 굳게 섰읍니다. ‘바울’이 받은 상은 그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었읍니다. 이것은 바울이 잘 건축하였음을 증명해 주었읍니다.

      23 이 점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내구력있는 그리스도인 특성들을 발전시킴으로 그들에게 닥칠지도 모를 유혹과 압력들을 직면해서도 굳게 설 수 있도록 돕기를 마음으로부터 원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성서 연구생과 자녀들이 그처럼 불같은 시험을 견뎌내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보람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 건축하였음을 증명해 줍니다. 당신도 올바른 기초 위에 내화 재료로 건축하면서 여호와께서 당신의 노력을 축복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가운데 그러한 상을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답할 수 있읍니까?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 올바른 본을 세우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 어떠한 질문들이 도움이 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연구생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지혜를 깨달을 필요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연구생이 기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9면 삽화]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정성의 깊이를 반영하는가? 이것은 자녀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

  • ‘휘일체어’ 그늘 속의 생활
    파수대—1984 | 11월 1일
    • ‘휘일체어’ 그늘 속의 생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서른 살도 되기 전에 ‘휘일체어’에 매인 생활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게 되었군요.”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보세요! 난 아흔 살이 아니라 열 아홉 살이란 말이어요!” 불쑥 대꾸했다.

      “어쩔 도리가 없어요.” 조용한 대답이었다. “받아들여야 해요. 세상에는 서른 살인데도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중 한 사람이 될거예요.”

      정형 외과 의사의 냉정한 말은 선천적인 척추 상태로 인해 마침내 내가 영영 불구가 될 것임을 최초로 알려 준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자전거에 뛰어 올라 재빨리 달아났다.

      시간을 최대로 활용함

      그때는 내가 이곳 영국에서 이년간 ‘파이오니아’로 전 시간 봉사에 참여해 온 때였다. 그 기간은 얼마나 행복한 때였던가! 내 마음은 계속하기로 작정돼 있었지만, 의사의 말이 계속 귓전을 두드렸다. 과연 그렇게 될까?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되든 안 되든, 그때가 실제로 오기 전에 그만 둘 이유야 없지 않은가?” 나는 ‘파이오니아’를 계속하기로 했다.

      다음 십년간 등뼈 상태가 악화돼 가는 것이 점차 분명해 졌다. 내가 전 시간 전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파이오니아’ 동료인 ‘엘사’의 격려와 신체적 도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수백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 바닷가 마을에서 증거했고, 아름다운 시골로 여행했는가 하면, 교외 지역에서도 봉사했다. 결국에는 ‘런던’ 도심부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했다. 다가오는 지상 낙원의 놀라운 약속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우리의 시간 모두를 바칠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가 느낀 자유와 만족감은 얼마나 깊었던가!

      여러 번 수술을 하기 위한 입원 기간 때문에 내 활동에 약간 공백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파이오니아’를 계속할 수 있었다. 다리 보조 지팡이를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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