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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가, 아니면 사이비 그리스도인인가?파수대—1983 |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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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참조하여 예수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관한 성경의 소식을 경시하려 해왔다.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 편지로나 주[여호와]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 ···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마태 24:3; 데살로니가 후 2:1, 2, 신세 참조.
과연, ‘바울’은 참으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주의 임재와 여호와의 날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갖지 않기를 바란 것이었을 수 있는가? 오히려 그는 그들이 그 문제에 대해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모든 사물을 확인”(신세)함으로써 ‘정신을 차’리기를 원한 것이 아닌가? 그래야 그들은 여호와의 날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 입증되지 않은 소식으로 마음의 평온을 잃게 되지 않을 것이고, 또 그 날을 대비하지 않거나 그 날에 대해 방심하거나 무관심해지지도 않을 것이다.—데살로니가 전 5:8, 21; 베드로 후 3:3, 10-12 및 요한 1서 4:1 비교.
여기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여호와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온전히 알고 있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무관심해질 이유가 되기는커녕, 그들이 ‘노하심이 아니라 구원을 얻게’ 정하신 사람들로서 ‘계속 깨어’(신세) 있어야 함을 의미하였다. 배교가 온전히 출현하게 된 후에 여호와의 날은 올 것이다. 이러한 일은 틀림없이 “불법의 사람”을 포함한, 여호와의 왕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즉각적이고 돌연한 멸망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 전 5:1-11) 의로운 심판을 집행하는 그 날에 ‘하나님을 알고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한’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데살로니가 후 1:8.b
본을 받고 있는가, 시늉만 내고 있는가?
‘바울’이 사랑에 찬 관심에서 우러나와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쓴 편지는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의 참 추종자들이 마땅히 어떠해야 하며, 그들은 무엇을 믿고 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리스도나 ‘바울’ 및 충실한 ‘데살로니가’인들을 본받지 않는 사람 및 무리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그저 그리스도인 시늉만 내고 있는 것임이 폭로되어 있다! (데살로니가 후 3:6, 7; 베드로 후 2:1-3) ‘바울’은 “복음을 복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왕국의 지상 영역을 상속하는 의로운 “양”과 관련하여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데살로니가 후 1:4-10; 마태 7:21과 25:31-34 비교.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의해 밝혀진 좋은 소식을 읽고 우리는 하나님의 봉사에서 힘쓰고 높은 도덕 표준의 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렇다, 즐겁고 기도에 힘쓰고, 인식 깊고 활기차고 비난받을 것이 없어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 안팎에서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줄 그리스도인 생활을 꾸준히 영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데살로니가 전 5:16-23) ‘바울’의 본과 편지들 그리고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어 그리스도의 본을 “더욱 많이” 받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구출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 통치 아래서의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데살로니가 전 1:10; 4:1; 히브리 12:2, 3; 계시 21:1,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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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부터의 질문파수대—1983 |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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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부터의 질문
◻ 제명된 친척을 둔 회중 성원들을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장로와 다른 사람들이 이러한 입장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따뜻하고 사랑에 찬 배려를 나타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친절과 이해심을 보임으로써 그러한 입장으로 그들에게 생길 수 있는 감정적인 그리고 영적인 긴장이 줄어들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명된 친척을 둔 그리스도인들과 돕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제명 처분에 대한 분명하고 올바른 견해를 가질 필요가 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회개하지 않고 죄를 짓는 사람들을 회중에서 추방하라고 명합니다. (고린도 전 5:11-13) 이렇게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회중을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고 회중의 명성을 지켜줍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가정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을 돕기 원하는 다른 사람들 역시 보호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제명받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것인지를 고려함으로써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읍니다. 제명 처분과 관련된 다음의 두 가지 상황에 유의하십시오.
첫째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잃고 제명될 수 있는 심각한 죄를 지었을 때 영적인 장로들의 위원회는 그 사람과 모임을 갖습니다. 그는 이미 자기 행로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 마음에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기 시작하였을지 모릅니다. (사도 26:20) 그럴 때,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책망하고, ‘그의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드는 일에 관한 성서적인 충고를 하며, 그와 함께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회개하였기 때문에, 그는 그의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명된 자로 추방되거나 간주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디모데 전 5:20; 히브리 12:13; 야고보 5:14-16.a
둘째로, 위원회가 범죄한 자와 모임을 가질 때 그는 아직 회개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모임 중에 장로들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가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깊이 느끼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사무엘 하 12:1-13 비교) 물론, 장로들은 그가 그 때까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전혀 맺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가 그저 발견되었다는 점을 유감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누가 3:8) 회중을 염려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가 이제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심의 여지없이 확신해야 합니다. (사도 26:20) 만일 그들이 그가 회개한 것을 확신한다면, 그는 회중 내에 머물러서 장로들과 가족 및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언급한 이 두 가지 양상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사람이 제명된다면 그가 그 때에 참으로 악한 마음을 가졌었거나 하나님께 모독이 되는 행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러한 사람의 상태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보다 더 나쁘다고, 그는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우러 돌아가는 돼지’와 같다고 말하였읍니다. (베드로 후 2:20-22) 이것은 그리스도인 친척들과 다른 사람들이 제명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갖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과 애착은 강력한 영향을 미쳐, 친척이 관련된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제명 처분 판결과 일치하게 행동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읍니다. (민수 16:16-33 비교) 예를 들어, 충실한 그리스도인 아내는 그의 남편이 제명된 것이 이전에 존재하던 영적인 띠가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남편은 그의 행실과 그 결과로 자신과 참 그리스도인 사이의 영적 유대를 끊은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들처럼, 남편과 가장으로서의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계속 나타낼 것입니다. (베드로 전 3:1, 2) 그러나 그와 영적인 동료 관계를 누리거나 그 전처럼 성서 토론과 기도를 그와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잠언 28:9) 아내는 틀림없이 이러한 상실감을 느낄 것입니다.
또 다른 종류의 상실감을 제명된 자녀를 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 조부모가 느낄지 모릅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그들의 자녀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그들의 손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 부모는 여호와의 표준과 방법을 배척하였기 때문에 제명당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가정 내의 사정이 이전과는 다릅니다. 물론, 조부모는 일부 필요한 가정 문제로 제명된 자녀들과 제한된 접촉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손자녀들이 자기들을 방문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비그리스도인 행로로 그러한 조부모가 즐기던 정상적인 즐거움에 지장을 주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러한 예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회중 내의 어떤 사람에게 제명된 가까운 친척이 있을 때 존재할 수 있는 특별한 필요에 깨어 있어야 될 이유를 알려 줍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라’고 강권하였는데, 우울한 영혼이란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 가족 성원들을 잘 묘사한 말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신세) 우리는 제명 처분이 내려질 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단 한 마디의 표현으로 제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세워줄 필요성이 오랫동안 계속될 수 있읍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필요성은 그 충실한 사람이 장기간 그 가족 성원과의 영적인 동료 관계를 누리지 못하게 됨에 따라 커질 수 있읍니다. 물론, 우리가 대화에서 제명 처분을 계속 언급할 필요는 없읍니다. 우리는 단지 시간을 내어 따뜻하고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고,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읍니다.—잠언 15:23; 전도 12:10.
또한 그리스도인 교제를 마련함으로써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읍니다. 때때로 배우자가 제명된 그리스도인은 고립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추방된 배우자는 우리가 어울리기를 원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님이 증명되었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그 그리스도인 배우자를 방문하거나 돕기 원하다가 그 추방된 배우자와 동료 관계를 갖게 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아마 그 제명된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방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제명된 친척이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이러한 영감받은 말씀이 참됨을 인식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읍니다. 즉 “어떤 친구는 [육적인] 형제보다” 혹은 다른 육적인 친척보다 “친밀”합니다. (잠언 18:24) 우리는 제명된 사람이 그의 그리스도인 친척에게 끼친 모든 상처를 상쇄하거나 모든 상실감을 보충해줄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필요를 의식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에서 이러한 특별한 필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강화시킬 수 있읍니다.—고린도 후 1:3, 4; 히브리 12:12, 13.
[각주]
a 참다운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일”과 관련된 것들을 식별하기 위해 고려할 여러 가지 요인들에 관한 더 자세한 토론을 위해, 「파수대」 1981년 11월 1일 13-15면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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