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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원하노라’
    파수대—1981 | 10월 15
    • ‘내가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악귀들을 쫓아 내셨다는 소문이 ‘갈릴리’의 어느 한 도시에도 이미 퍼져 있었다. 그 곳에서 온몸에 문둥병이 걸린 한 사람이 그분께 나아왔다.

      문둥병자는 엎드려 무릎을 꿇고 예수께 간청하기 시작하였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성서는 이렇게 보고한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마가 1:40-42; 누가 5:12, 13.

      여기 이 사람은 그 당시 역겨운 병이었던 문둥병으로 괴로와하고 있었다. 그 무서운 전염성을 두려워하여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문둥병자들을 멀리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그는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셨다. 그분은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그 사람에 대한 동정심으로 마음이 끌리셨다.

      예수께서는 매우 바쁘셨는데도, 개개인들의 감정, 필요 및 환경을 등한히하는 일이 결코 없으셨다.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나타내신 그러한 귀중한 예들은 참으로 많다. 예수의 이러한 속성은 우리로 그분을 사모하게 하고 우리에게 위안을 주며 우리를 강화시켜 준다. 그분이 오늘날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가를 문둥병자에게 “내가 원하노[라.]”고 하신 그 말씀보다 웅변적으로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특성을 훌륭하게 반영하고 계셨다.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부족한 것이 없으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자신의 사랑과 지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하늘과 땅에 지각이 있고 지성이 있는, 사랑의 능력을 가진 생명체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자기 창조물에게 집단적 방식으로만 관대하게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면밀한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개개인의 마음을 살피신다.—로마 8:26, 27.

      다른 이들에 대한 비이기적인 개인적 관심을 가짐으로 예수의 참된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고 있으며, 때론 부지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시 방문하기를 원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명하셨다. (마태 24:14; 28:19, 20; 사도 1:8)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사명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매 집을 찾아 다니며 듣는 귀를 가진 자들에게 성서의 소식을 열심히 전한다.

      가장 성공적인 복음 전도자들은 자기 구역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진지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개인적 관심을 가진 “좋은 소식”의 선포자라면 자연히, 사람들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알기 위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신중히 진찰하기 전에는 환자에게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하다면, 그 역시 그들을 알기 원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만 ‘여호와의 증인’은 개개인들을 효과적으로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이 전파 사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는 구두로 제공하는 어떤 연설들을 많이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느낀다면, 우리는 말이 막히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영적으로 돕기 위한 것들을 말하고 행할 것이다.

      우리가 봉사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집을 나온 후까지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방문하기를 원하게 된다.

      ‘코네티컷’(미국)의 한 여자 ‘여호와의 증인’은 어느 날 호별 전파 활동중 한 숙녀를 만난 경험을 자기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숙녀는 그 커다란 푸른 눈으로 나를 쳐다 보면서 ‘난 하나님을 안믿어요’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어머니, 무언가 끌리는데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방문하기를 원해요.”

      그 ‘증인’은 실제로 다시 방문했다. 성서 연구가 시작됐다. 6개월 후 그 젊은 숙녀는 호별 전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후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침례를 받았다. 현재 이전의 이 무신론자는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감독자의 아내가 되어 있다.

      우리가 여호와와 예수를 본받아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갖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와 우리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이끌리게 된다.

      ‘서로 돌아 보시오’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예수의 제자들을 함께 묶어 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에 찬 관심이다. (요한 13:35; 갈라디아 6:10)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인체에 비하여 그 성원들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와 서로에 대한 관심을 묘사하였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 보게 하셨[느니라.]”—고린도 전 12:14-25.

      “서로 같이 하여 돌아 보”다에 해당하는 희랍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서로를 염려해야 한다’를 의미한다. (「왕국 행간 번역」) 이것은 회중 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가져야 할 개인적 관심의 강도를 강조한다. ‘바울’은 이에 대한 설득력있는 논증을 제시하여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즐거워하나니[라.]”—고린도 전 12:26.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좋은 점을 끌어 내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장래성을 보고 그것을 양성해 가게 된다.

      성서가 알려 주듯이, ‘바나바’는 ‘마가’라는 이명을 가진 ‘요한’에 대해 선교 봉사의 동료로서 개인적인 관심을 가졌다. ‘바나바’는 ‘마가’가 ‘바울’과 자기에게 그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중에 곤란한 문제의 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가’에게서 좋은 장래성을 보았다. 그 결과 ‘마가’는 영적으로 발전하도록 도움받아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 되었다. (사도 13:5, 13; 15:36-39; 디모데 후 4:9-11) ‘마가’는 결국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분의 이름이 담긴 성서의 책을 쓰도록 영감받는 탁월한 특권을 받았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에서 한 그리스도인 장로는 회중 내의 어느 십대 소년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는 그 청소년에게 와서 회중 집회 장소인 왕국회관을 건축하는 일에 자기를 도와 달라고 초대하곤 하였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그들은 간식을 들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그 소년은 현재 성인이되어 순회 감독자로서 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장로가 자기에게 보여준 개인적인 관심을 자기의 영적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로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 즉 우리에게서 성서의 소식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회중 내의 청소년, 연로한 분, 병든 분, 미망인, 고아 및 우리 식구들을 포함하는 영적 형제 자매들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활기를 돋구는 즐거움과 인생의 목적을 맛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도 행복으로 채워 줄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여러 방법으로 보상해 주실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보증하신 바와 같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 20:35)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천적 아버지를 본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나타내도록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문둥병자에게 “내가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방법을 예시해 주셨다.

  •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파수대—1981 | 10월 15
    •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1. 아직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열방이 함께 “즐거워하라”고 불리움을 받은 “주의 백성”이 아님이 증명되었읍니까?

      열방들은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도록 불리움을 받았는데 그 “주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로마 15:10) 그것은 ‘유대’ 백성이 아니었읍니다. 아직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육적 ‘유대’인들은 기원 70년에 고대 ‘예루살렘’이 ‘티투스’ 장군 휘하의 ‘로마’ 군단에 의해 멸망된 이후 1,900년 동안 미움과 박해를 받아 왔읍니다. 묘하게도, 육적 ‘유대’인들 자신들도 “주의 백성”, 즉 여호와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지 않았읍니다. 기원전 1473년에 부른 영감받은 노래의 결말에서 ‘유대’인 예언자 ‘모세’는 이렇게 외쳤읍니다.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신명 32:43.

      2. 예수의 추종자들이 “흑암의 권세에서 ·⁠·⁠·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일은 언제 시작되었읍니까?

      2 ‘바울’이 기원 56년 경에 ‘모세’의 그러한 말을 인용하여 적용했을 때, 예수께서는 이미 오래 전인 기원 33년에 죽으셨다가 부활되셔서 승천해 계셨읍니다. 그리하여 그 해 오순절 이후로 “주의 백성”, 즉 여호와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영으로 출생한 제자들이었읍니다. 몇년 후인 기원 60-61년 경에 ‘바울’은 ‘골로새’의 여호와의 “백성”의 성원들에게 편지해 이렇게 말했읍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느니라.]” (골로새 1:12, 13) 그러한 옮기는 일은 예수께서 하늘로 돌아 가신 후인, ‘유대’ 날자로 기원 33년 오순절(‘시완’월 6일)에 시작됐읍니다.

      3. 그들은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영적 왕국으로 옮겨짐으로 인해 그 왕을 위한 무엇이 되었읍니까?

      3 바로 그 날, 영광스럽게 되신 왕자(王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적 아버지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 약 120명에게 일차로 성령을 부어 주셨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의 암흑의 권세 아래에서 “세상의 빛”이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으로 옮기워졌읍니다. (요한 8:12) 그 영적 왕국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 그 왕국에서 영적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국무장관으로 봉사하십니다. 이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가운데, 그분은 영으로 출생한 지상의 제자들을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들”로 사용하십니다. (고린도 후 5:20, 신세) 「개역 영어 성서」에 의하면, 그들은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들”입니다. 그러한 “대사들”은 참으로 봉사의 직무, 즉 다스리는 직무를 가지고 있읍니다.

      4. (ㄱ) 따라서 열방이 함께 “즐거워하”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로 구성되어 있읍니까? (ㄴ) 이방 즉 열방들은 무엇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4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구성하지 않는 열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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