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도무지 말이 안 통해요!”
    파수대—1993 | 8월 1일
    • “도무지 말이 안 통해요!”

      변호사인 마이클은 활기찬 의사 소통자가 되어야만 하였다. 직업상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이클은 결혼 생활을 한 지 16년이 지났는데도, 집에 돌아와 아내 에이드리언을 대하면 자기의 의사 소통 기술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이클은 이렇게 회상한다. “시끄럽게 잔소리하고, 바가지를 긁고, 툭하면 빈정대는 통에 아내와 나는 항상 반목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지치지 않고 배기겠는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불화와 반목이 결혼 생활이란 말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런 식으로 함께 여생을 살 바에야 차라리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그런 식으로 끊임없는 반목과 긴장 속에서 앞으로 20년, 30년, 40년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이클과 에이드리언만 그런 심정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툭하면 싸우고 냉전을 갖는 많은 부부의 심정도 다를 바 없다. 매우 간단한 대화도 말다툼으로 치닫는다. 그런 부부들은 말하지 않은 것도 “듣는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한다. 서로 공격하고 비난하고 나서 분을 삭이며 침묵 속에 빠져든다. 그들은 헤어진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한 몸”도 아니다. (창세 2:24)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 뒤로 물러서자니 갈라서게 되겠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기다리는 것은 불화뿐인 것이다. 이런 부부들은 고통스럽게 양단간에 결정하느니, 서로 감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면서 체념하고 산다.

      그런 부부들은 결혼 생활에 ‘숙련된 지침을 얻을’ 필요가 있다. (잠언 1:5, 「신세」) 이런 지침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서 얻을 수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는 성서가 ‘가르치는 일과, 책망하는 일과, 사물을 바로잡는 일에 유익’하다고 확언한다. (디모데 후 3:16, 「신세」) 이 말은 부부간 의사 소통의 단절을 치유하는 데도 참됨이 증명된다. 그 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 의사 소통—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파수대—1993 | 8월 1일
    • 의사 소통—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관광객이 무리지어 구경한다고 생각해 보자. 모든 사람이 같은 경치를 보지만 사람마다 보는 경치는 다르다. 왜 다른가? 사람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경치 중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각 사람은 특별히 흥미를 일으키는 다른 면을 발견한다.

      결혼 생활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 맞는 부부일지라도 문제를 똑같은 관점으로 보는 부부란 없다. 남편과 아내는 감정상의 구성, 어린 시절의 경험, 가족의 영향과 같은 요소들에서 다르다. 그 결과 갖게 된 다른 시각은 심한 말다툼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솔직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과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7:28, 「신 영어 성서」.

      의사 소통에는 이런 차이점을 한 몸의 관계로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포함된다. 그러려면 대화할 시간을 낼 필요가 있다. (7면 네모 참조)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통찰력을 나타냄

      성서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그 입이 통찰력을 나타내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잠언 16:23, 「신세」 참조) 이 구절에서 ‘통찰력을 나타내게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기본적으로 신중하고, 정신에서 문제를 심사 숙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의사 소통의 초점은 마음이지 입이 아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의사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감정 이입하면서 귀기울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 1:19) 또한 배우자의 표면적인 행동 밑에 깔려 있는 감정과 문제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잠언 20:5.

      어떻게 분간할 수 있는가? 때때로 갈등을 둘러싼 환경을 관찰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배우자가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심한 긴장 상태에 있는가? 병이 배우자가 나타내는 기질의 한 원인인가?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성서는 말한다. (잠언 15:23) 따라서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잠언 25:11.

      그렇지만 갈등의 원인은 종종 현재의 상황 밖의 문제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를 이해함

      어린 시절의 경험은 성인의 사고 방식을 틀잡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부부는 상이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상반되는 견해를 갖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성서에 기록된 한 사건이 이 점을 예시한다. 계약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다윗은 자기의 열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아내 미갈은 어떠하였는가?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사무엘 하 6:14-16.

      미갈은 자기의 불의한 아버지 사울의 믿음 없는 기질을 나타냈다. 성서 주석가 C. F. 카일과 F. 델리치는 이런 이유 때문에 미갈이 16절에서 다윗의 아내가 아니라 “사울의 딸”로 언급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어떻든 간에, 이어지는 다윗과 미갈 사이의 말다툼으로 볼 때 그들은 이 즐거운 행사에 대해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사무엘 하 6:20-23.

      이 예는 가정 교육의 미묘한 영향으로 인해 문제를 보는 남편과 아내의 견해가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을 잘 나타낸다. 이 점은 연합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부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감정적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내는 유별나게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할지 모른다. 이로 인해 남편은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골백번은 말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덥잖아합니다!” 하고 한탄하는 남편이 있을지 모른다.

      이 경우에 있어서, 의사 소통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도 눈을 두”는 것이 관련된다. (빌립보 2:4, 「신세」) 남편은 의사 소통을 위해 자기의 시각이 아니라 아내의 과거 시각으로 아내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아내도 그에 자극되어 남편을 같은 식으로 보아야 한다.—고린도 전 10:24.

      과거에 학대당한 경우

      배우자가 어린 시절에 강간을 당했거나 성적으로 학대당한 적이 있는 경우 특히 개인적 관심이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이 문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내는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현재와 과거, 배우자와 폭행자, 성관계와 성적 학대를 구분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로 인해 좌절할 수 있는데, 특히 남편이 이 미묘한 문제를 아내의 시각에서 고려하지 않을 경우 그러하다.—베드로 전 3:8.

      남편은 과거를 되돌릴 수도, 과거의 영향을 완전히 치유할 수도 없지만 괴로워하는 배우자를 위로하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다. (잠언 20:5)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남편 된 사람들이여, 아내를 잘 이해해 주면서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하고 베드로는 편지하였다. (I 베드로 3:7, 「새번역」) 배우자의 과거를 이해해 주는 것은 의사 소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감정 이입에 의한 동정심이 없다면 남편의 말은 무의미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직접 병에 걸려 본 적이 없으셨지만 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불쌍히 여기”셨다. (마태 14:14) 그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가 겪은 것과 같은 무관심이나 학대를 직접 경험한 적은 없을지 모르지만, 아내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과거를 인정하고 아내를 지원해야 한다. (잠언 18:13)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로마 15:1.

      울분에 휩싸일 경우

      결혼은 귀한 그릇과 같다. 결혼이 간음으로 손상될 때 헤아릴 수 없는 해가 초래된다. (잠언 6:32) 무고한 배우자가 용서하기로 결정한다면, 화해를 통해 깨진 조각들을 다시 붙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음매는 남게 마련이며, 말다툼하는 동안에 그런 이음매를 바라보고 과거를 무기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배우자의 불충실에 대해 울분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배우자를 용서하였다면, 응어리진 분노가 용서하는 행동을 통해 이룩한 좋은 결과를 헛수고로 만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울분을 말없이 가슴속에 담고 끓이든 사정없이 터트리든 간에, 울분을 없애지 않는 것은 부부 양편에 다 해롭다. 왜 해로운가?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배우자 때문에 아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도 배우자에 대해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움츠리거나 앙갚음하려 든다면, 배우자에게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해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건전하기를 바라던 관계를 끝장내는 것이다.”

      그렇다.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고는 절대 결혼 생활의 불화를 해소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 배우자에게 자기 감정을 털어놓으라. 왜 마음이 아픈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설명하라. 결코 지나간 과거를 말다툼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무기로 사용하지 말라.

      중독성 습관은 의사 소통을 해친다

      배우자가 알코올이나 약물을 남용할 때 결혼 생활은 심한 곤경에 빠진다. 중독되지 않은 배우자는 성서에 나오는 아비가일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아비가일이 남편 나발의 어리석은 행동의 결과를 되돌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나발은 ‘대취해 있었다.’ (사무엘 상 25:18-31, 36) 한쪽 배우자는 중독성 습관에 빠져 있고 다른 배우자는 중독된 배우자의 행실을 바꾸게 하려고 애쓰는 결혼 생활은 종종 나발과 아비가일의 가정과 같다.a

      중독자가 회복되기 시작할 때 커다란 안도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작은 도시를 사정없이 황폐시키는 맹렬한 태풍을 상상해 보라. 집은 무너지고, 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전화선은 땅바닥에 널려 있다. 폭풍우가 멈추면 모두 크게 안심한다. 그러나 이제 광범한 복구 작업을 요한다. 배우자가 회복되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너진 관계들을 복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뢰와 본연의 상태가 다시 확립되어야 한다. 의사 소통의 줄이 다시 회복될 필요가 있다. 회복중인 중독자의 경우, 이렇게 점진적으로 복구하는 일은 성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양하도록 요구하는 “새 인간성”의 일부다. 이 새 인간성에는 “정신을 움직이는 힘”이 포함되어야 한다.—에베소 4:22-24, 「신세」.

      성서 연구를 함으로써 레너드와 일레인은 마약 남용을 중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움직이는 힘이 온전히 작용하지는 않았다.b 얼마 안 있어 다른 중독성 습관에 빠져 들었다. 일레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20년 동안 성서 원칙을 적용하여 만족스런 결혼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중독성 습관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겁니다. 연구와 기도를 통해서도 그런 습관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레너드와 일레인은 자기들의 중독성 습관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조언을 구하였다. 어린이 학대와 알코올 중독, 여성을 존중하는 일과 관련하여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마련한 시기 적절한 내용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c (마태 24:45-47) “우리는 손상을 회복하고 서로 다시 가까워지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고 일레인은 말한다.

      문제를 해결함

      리브가는 아들 에서의 아내들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다른 아들 야곱마저 에서의 본을 따를까봐 두려운 나머지, 리브가는 남편 이삭에게 이런 말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창세 27:46.

      리브가가 자기 감정을 단호하게 표현하면서도 이삭을 인신 공격하지 않았음에 유의하라. 리브가는 “다 당신 탓이에요!”라든가,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에 손을 썼어야지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브가는 그 문제가 자기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묘사하면서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였다. 이런 접근 방법은 이삭에게 체면을 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켰다. 이삭은 인신 공격을 당했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리브가의 간청을 즉시 들어준 것 같다.—창세 28:1, 2.

      남편과 아내들은 리브가의 본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갈등이 생길 때, 서로를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 리브가처럼, 문제가 어떻게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의 관점에서 자기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라. “·⁠·⁠·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라든가 “·⁠·⁠· 때문에 오해를 샀나 봐요”라는 말이, “당신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라든가 “당신은 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해요!”라는 말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지속되는 것 이상이 필요함

      첫 인간 부부인 아담과 하와의 결혼 생활은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면서 여러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창세 5:3-5)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결혼 생활이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일찍이, 독립의 영과 창조주의 의로운 법에 대한 불경으로 인해 그들의 한 몸의 띠는 손상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결혼 생활도 지속되기는 하면서도 의사 소통의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결여될 수 있다. 단단히 뿌리박힌 생각과 부적당한 성품상의 특질을 뿌리뽑아야 할지 모른다. (비교 고린도 후 10:4, 5) 이것은 계속적인 교육 과정이다. 그러나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결혼 마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결혼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다. (말라기 2:14-16; 히브리 13:4)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역할을 다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노력을 인정하시고 부부간의 의사 소통의 어떤 단절도 치유하도록 필요한 지혜와 힘을 공급해 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비교 시 25:4, 5; 119:34.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