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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는 마땅히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파수대—1985 | 1월 15일
    • 예수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그분께 준 분은 누구였읍니까? 그리고 그것을 받기 이전의 예수의 지위는 어떠하였읍니까?’ 그렇게 할 때 삼위일체론자는 그 성귀를 새로운 견지에서 보게 됩니다. 그와 비슷하게 지옥불을 믿는 사람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사용하여 불타는 지옥이 있다고 증명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누가 16:19-31)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갔읍니까? 하늘로 갔다면 그것은 하늘에 있는 모든 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는 의미입니까? 게다가, 예수께서는 그 당시까지 하늘에 올라간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읍니까? (요한 3:13) 그러한 질문들은 그 비유에 묘사되어 있는 그 가난한 사람의 사후 상태가 상징적인 것임에 틀림없음을 밝혀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죽”은 후의 상태 역시 상징적인 것이며,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지옥에 관하여 다른 성귀들이 말하는 바를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전도 9:10.a

      19. 어떤 상황에서 가르치든, 질문이 매우 가치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질문들은 연구생이 가르치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수사 질문(듣는 사람이 대답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도 듣는 사람의 생각을 자극합니다. 예수께서 마태 복음 11:7-11에서 수사 질문을 사용하신 것에 유의하십시오. 또한 질문은 다른 방도로도 사용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도와 주기에 앞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경우가 있읍니다. 예수와는 달리 우리는 마음을 읽을 수 없으므로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입니다. 바로 주의 깊이 생각해 낸 질문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잠언 18:13; 20:5.

      20. ‘우리 자신과 가르치는 일을 잘 살필’ 때의 상은 무엇입니까? (디모데 전 4:16, 새번역)

      20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기술입니다. 그 기술을 기르기 위해서, 가르치는 사람은 발전시켜야 할 특성들이 있으며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 기술은 기를 수 있읍니다. 여하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에는 가르치는 일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적용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일과 가르치는 일을 잘 살[피시오.]” 물론, 이 면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재능을 더 타고난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열심을 내고 여호와께 도움을 구한다면 누구나 가르치는 일에 성공적이 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의 상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꾸준히 이 일에 힘을 다하시오. 그리하면 그대 자신도 구원하고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디모데 전 4:16, 새번역.

  • 새로운 사람들을 하나님의 조직으로 인도하라
    파수대—1985 | 1월 15일
    • 새로운 사람들을 하나님의 조직으로 인도하라

      “형제[형제들의 총 연합체, 신세]를 사랑하[라.]”—베드로 전 2:17.

      1, 2.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교리 외에도 어떠한 것들을 알려 줍니까?

      가르치는 사람의 일은 사실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가르치는 사람은 그 이상의 일을 합니다. 그는 가치관을 전달해 주며 연구생이 배우고 있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도와 주고 그것을 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르치는 사람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합니다. 물론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로마 1:25) 그러나 그것에는 단순한 교리 지식 이상의 것이 관련되어 있읍니다. 성서에서는 여호와께 대한 경외심과 선함 및 지각력과 같은 특성들을 가르칠 것을 권고합니다.—시 34:11; 119:66, 신세 참조.

      2 예수께서는 가르쳐야 할 것들을 더 말씀해 주셨읍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 20) ‘분부하신 모든 것’ 가운데에는 우리 시대를 위해 예언된 전세계적인 전파 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마태 24:14, 신세) 그리고 그 외에도 성서 연구생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것이 또 있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대답을 얻기 위해 사도 ‘바울’의 봉사를 고려해 보고 그의 가르치는 일에서 두드러진 특징이 된 일에 유의해 보십시다.

      조직자인 ‘바울’

      3. ‘바울’은 ‘고린도’에서 새로운 관심자들을 가르칠 때 어떻게 하였읍니까?

      3 사도 ‘바울’은 ‘고린도’를 처음 방문하였을 때, ‘유대’인 사회로부터 반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잘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 새로운 관심자들을 단순히 개인적으로만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거기서 [‘유대’인 회당으로부터]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사도 18:7) 그 집은 새로운 제자들이 함께 모여 숭배하는 장소가 되었읍니다. 이윽고 ‘바울’은 그들을 하나의 회중으로 조직하였읍니다.—고린도 전 1:2.

      4. ‘바울’이 ‘에베소’에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후 곧 그곳에는 무엇이 생기게 되었읍니까?

      4 후에 ‘바울’은 계속하여 ‘에베소’로 여행했는데, 그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는 “집집으로” 다니며 관심자들을 개인적으로 가르쳤읍니다. (사도 20:20, 신세) 그러나 그는 또한 새로운 제자들이 함께 연합할 수 있게 하는 마련도 신속히 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유대’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사도 19:9) 이윽고, 이 무리의 그리스도인들도 임명된 장로들이 있는 하나의 회중으로 조직되었읍니다.—사도 20:17, 18.

      5. 초기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가능한 한 속히 어떻게 하였읍니까?

      5 분명히, 제 1세기에 새로운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았읍니다. 그들을 회중으로 모이게 하였읍니다. 이들은 당시의 통치체로부터 격려를 받는 것을 기뻐하였읍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장성한 형제들이 많은 시간을 바쳐 이 새로 형성된 회중들을 가르쳤으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 전파”하였읍니다. (사도 15:30-35)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 훈련받은 자기 양심에 의존해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행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회중으로 모인 이유는 무엇인가?

      6.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회중들로 조직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6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자기 주위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던 많은 일들을 그만두었읍니다. (요한 17:14, 15) 만일 그가 고립된 채로 홀로 남아 있었다면, 그 상황은 매우 외로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지방 회중의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였다면 그는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강화되었을 것입니다. 그에 더하여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이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7:11) 그처럼 ‘하나됨’을 특히 볼 수 있는 곳은 회중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 13:35) 그리스도인들이 외부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징이 될 정도로, 그러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으려면, 그들이 공동체로서 존재해야 하였읍니다. 그 공동체란 지방 그리스도인 회중들이었읍니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영적 또는 신체적 복지를 돌보았읍니다. (빌립보 2:4) 예를 들어, ‘바울’이 ‘디모데’와 논한, 과부들을 위한 구제 마련이 여러 회중을 통하여 조직되었음이 명백합니다.—디모데 전 5:3-10.

      7. (ㄱ) 히브리서 10:24, 25의 ‘바울’의 말의 취지는 무엇입니까? (ㄴ)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제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역할은 무엇이었읍니까?

      7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지방 회중을 지원할 것을 직선적으로 권고하였읍니다. “서로 돌아 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 10:24, 25) 그에 더하여, 제1세기에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성취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은 회중들을 통하여 조직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었음이 명백합니다. (로마 10:11-15) 그리하여 성령은 ‘안디옥’ 회중의 장로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임명되지 않은 구역의 선교인들로서 파견하도록 인도하였으며, ‘바울’은 ‘예루살렘’ 회중의 장로들이 그에게 어디로 가서 전파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시할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였읍니다.—사도 13:1-3; 갈라디아 2:8-10.

      오늘날의 지방 회중들

      8, 9. 오늘날 우리도 새로운 사람들을 지방 회중으로 인도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우리도 새로운 관심자들을 지방 그리스도인 회중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울’ 시대처럼 오늘날도 그리스도교는 고립주의자들의 종교가 아닙니다. 「잠언」은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고 경고합니다. (잠언 18:1) 반면에,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습니다. (잠언 13:20)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 회중이 제공하는 영적, 도덕적 및 감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의 사랑, 장로들의 직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그토록 기쁘고 독특한 경험이 되게 해주는 즐거운 연합을 체험할 필요가 있읍니다.—시 133:1.

      9 오늘날에도 왕국의 좋은 소식의 전세계적인 전파 활동은 주로 지방 그리스도인 회중들을 통하여 조직적인 방법으로 수행되고 있읍니다. (마태 24:14)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그 활동에 참여해야 할 의무를 가르칠 때, 그들을 지방 회중으로 인도하고 회중과 협력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국제적인 형제 관계

      10.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국제적인 연합을 가리키는 몇 가지 성귀들을 언급하십시오.

      10 그러나 사도 ‘바울’은 새로운 사람들을 단순히 지방 회중으로만 인도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에베소’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에베소 4:4) 전세계적으로 단 하나의 “몸”이 있었읍니다. 수많은 산재한 회중들이 지방적으로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예수께서도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 줄 권위를 부여받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관하여 이야기하셨을 때 지상에 있는 그 “몸”의 살아 있는 성원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 24:45-47) 전세계의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이 그 종에게서 ‘양식을 받’으려면 이 “종”의 권위를 인정해야 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로 된 국제적 연합체가 생기게 되어 있었읍니다.

      11. (ㄱ) ‘베드로’는 이 국제적 그리스도인 조직을 무엇이라고 불렀읍니까? (ㄴ) 어떤 마련이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교리상의 연합을 유지시켰읍니까? ‘바울’은 이 마련을 인정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1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그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들의 총 연합체”라고 불렀읍니다. (베드로 전 2:17, 신세) 그들은 국제적인 “연합체” (희랍어 아델포테스, “형제 관계”)였읍니다. 새로운 사람들은 단순히 지방 회중만이 아니라 이 전체적인 국제적 형제 관계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회중들은 서로 연락을 취하였읍니다. (골로새 4:15, 16) 교리상의 질문이 생길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나름의 결정을 내리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당시에 세계적인 통치체 역할을 한 ‘예루살렘’ 회중의 장로들에게서 권위있는 대답을 기대하였읍니다. (사도 15:2, 6-22) ‘바울’ 자신도 교리에 대한 그 통치체의 권위를 인정하였읍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특별한 계시를 통하여 진리를 받았었지만,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여 그들에게 자기가 전파하고 있는 좋은 소식을 설명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읍니다.—갈라디아 1:11, 12; 2:1, 2, 7-10.

      12. 그에 더해 어떠한 활동들이 “형제들의 총 연합체”를 더욱 결속시켜 주었읍니까?

      12 형제들의 “총 연합체”의 생각과 행동의 연합을 유지시키기 위해, ‘디모데’, ‘디도’ 및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여행하는 봉사자들이 형제들을 방문하여 세워주도록 파견되었으며, ‘바울’, ‘베드로’, ‘야고보’, ‘요한’ 및 ‘유다’와 같은 사람들의 편지들이 그들 가운데서 회람되었읍니다. 그러한 형제 관계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보다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유다’ 지역에 고난이 닥쳤을 때 그곳의 형제들의 궁핍함을 들었으며, ‘바울’이—여러 회중을 통하여—궁핍한 형제들에게 구제품을 전달하는 일을 조직할 수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16:1-4)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은 ‘세상에 있는 전체 형제들의 연합체’의 인내와 믿음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격려를 받기도 하였읍니다.—베드로 전 5:9, 신세.

      새로운 사람들을 “총 연합체”로 안내하라

      13. 제1세기와 오늘날의 전세계적인 “형제들의 총 연합체” 사이에는 무슨 유사점들이 있읍니까?

      13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한 “형제들의 총 연합체”가 있읍니까? 참으로 있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여전히 존재하며 여전히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마태 24:45-47) ‘바울’ 시대처럼, 통치체는 이 “종”을 대표하며 “좋은 소식”을 전세계에 전파하는 일을 감독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통치체에서 나오는 편지 및 인쇄된 출판물에 의하여, 그리고 회중에서 봉사하는 장성한 가르치는 사람들에 의하여 국제적 연합이 강화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진리를 배우게 되면, 그 사람은 지방 회중의 일원이 되고 자신이 전세계적인 ‘전체 형제들의 연합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어야 합니다. 성서 연구생이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다른 사람들이 “총 연합체”를 사랑하도록 도움

      14. 성서 연구생들에게 지방 회중과 하나님의 백성의 국제적인 조직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는 데 있어서 어떤 방법들이 성공적임을 알게 되었읍니까?

      14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르치는 사람은 연구생에게 회중과 국제적인 형제 관계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 다음에 그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 있읍니다. 연구생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읍니까? 가르치는 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읍니다. 성서 연구 전후에 시간을 내서, 회중과 그것의 성경적 중요성, 그리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및 그 종이 오늘날 우리를 위해 일하는 방법 등을 이야기해 줍니다. 왕국회관과 집회들을 설명해 줍니다. 자신이 집회 중 배운 흥미 있는 점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연구 전후의 기도 중에 지방 회중과 국제적인 형제 관계를 언급합니다.

      15. 관심자들에게 지방 회중과 국제적 조직을 보여주는 훌륭한 방법 몇 가지는 무엇입니까?

      15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읍니까? 성공적임이 증명된 몇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될 수 있는대로 속히 동료 회중 성원을 초대하여 그 연구에 동반함으로 연구생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새로운 벗들을 갖게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가 낡은 사물의 제도에서 어떠한 벗관계를 상실하게 되든, ‘세상에 있는 전체 형제들의 연합체’의 새로운 벗들 가운데서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임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 19:27-29; 베드로 전 5:9, 신세) 「이십세기의 여호와의 증인」 ‘팜플렛’을 온전히 활용하십시오. 이것은 현대 ‘여호와의 증인’의 국제적 조직을 설명하며 큰 대회, 전형적인 왕국회관, 진행중의 집회, 전파 활동 등등을 보여 주는 훌륭한 삽화가 몇 가지 들어 있읍니다. 그것은 연구생에게 “형제들의 총 연합체”에 대하여 시각적으로 알려 줄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제23장에도 오늘날의 하나님의 조직에 대한 ‘컬러’ 삽화가 곁들인 설명이 나옵니다.

      16. (ㄱ) 우리는 성서 연구생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떠한 성경적 이유가 있읍니까? (ㄴ) 우리는 성서 연구생이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도록 돕는 일에 있어서 순회 감독자나 지역 감독자의 방문으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까?

      16 ‘바울’은 또한 ‘에베소’에서 관심자를 찾게 되자 즉시 집회를 조직하였읍니다. (사도 19:9, 10) 그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보통 사람’이 잘 조직된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게 되면,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게 된다고 알려 주었읍니다. (고린도 전 14:24, 25, 신세 참조)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하게, 연구생이 지방 회중과 빨리 연합하게 될수록 그는 참으로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더 빨리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르치는 사람은 연구생들이 회중 집회나 큰 대회에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참석하도록 초대합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가는 길에 관심자 집에 들러 집회로 그를 몸소 동반합니다. 현대의 “디도” 혹은 “에바브로디도”인 순회 감독자나 지역 감독자가 자기네 회중을 방문할 때 그들은 자기 성서 연구생이 그 부부를 꼭 만나보게 하며 아마 그 방문한 손님들을 정기적인 성서 연구에 함께 하도록 초대하기까지 합니다.

      17. 그러므로, 가르치고 제자를 삼는 우리의 일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마태 28:19, 20) 이것이 어떻게 연구생에게 유익합니까?

      17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들의 세계적인 회중은 “진리의 기둥이며 받침”입니다. (디모데 전 3:15, 신세) 새로운 관심자들이 이러한 “받침”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이들 기름부음받은 자들과 연합하기 위해 집결하고 있는 수많은 온유한 사람들과 합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스가랴 8:23) 오늘날 이들 온유한 사람들은 이백 오십만 이상의 무리로 된 국제적 형제 관계를 확고하게 하고 있으며,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에는 그 국제적 형제 관계와 연합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새로운 관심자가 그것의 일원이 되면 그는 그것이 제공하는 모든 지원과 보호를 누리게 됩니다. 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형제 사랑 가운데서 즐거워하게 되며 그 보답으로 자신의 사랑을 주는 기회도 갖게 됩니다. (히브리 13:1) 이것은 또한, 그들이 다가오는 큰 환난을 통과하여 영원하고 행복한 동료 관계에 함께 들어가게 될 셀 수 없이 많은 국제적 무리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 7:9-17) 그러므로 성서 연구생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그를 “형제들의 총 연합체”로 인도하고 그것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베드로 전 2:17, 신세.

      기억하십니까?

      ◻ ‘바울’은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새로 찾은 관심자들을 어떻게 하였읍니까?

      ◻ 그러므로 바울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읍니까?

      ◻ 교리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우리는 성서 연구를 무엇으로 안내하는 데 깨어 있어야 합니까?

      ◻ 그렇게 하는 실용적인 방법 몇 가지는 무엇입니까?

      [22, 23면 삽화]

      새로운 사람들은 “형제들의 총 연합체”로 따뜻한 환영을 받는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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