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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과적인 봉사자가 되는 방법
    파수대—1984 | 11월 15일
    • 효과적인 봉사자가 되는 방법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방식들, 신세] 곧 내가 각처 각[회중]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린도 전 4:17.

      1, 2. 사람들이 진리에 이끌리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한 가지 요인은 무엇입니까? (사도 8:12)

      기원 33년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짐으로 그리스도인 회중은 급속히 성장하고 퍼져 나갔읍니다. (사도 2:40-42; 4:4; 6:7; 11:19-21) 그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읍니까? 그토록 많은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및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소식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사도 8:4-8; 10:44-48.

      2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의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특정한 요인들이 작용해야 합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께서 솔선하여 자기 아들을 대속 희생물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 인류에게 나타내신 과분하신 친절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성서 필자 ‘요한’이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 1서 4:9, 10.

      3.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영적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한 각자의 태도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 신세]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라.]” (마태 5:3, 6) 자기 만족에 빠지고 독선적인 사람은 대개 전혀 영적 필요를 의식하지 못하며, 더는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왕국 소식을 전하려고 하면, 그러한 사람은 흔히 ‘나는 관심이 없다. 내 종교는 따로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물질을 추구하는 일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도 영적인 일들을 위해 시간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6:33, 34; 7:7, 8; 누가 12:16-21.

      4. 이제 어떠한 질문들을 고려할 것입니까?

      4 그러나 “영적 필요를 의식”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왕국을 기꺼이 구하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식별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봉사자들로서 우리의 소식을 보다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읍니까? 우리는 어떻게 더 효과적인 봉사자들이 될 수 있읍니까?

      우리는 누구의 방식들을 사용해야 하는가?

      5. ‘바울’에 의하면, ‘디모데’는 ‘고린도’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게 되어 있었읍니까?

      5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첫째 편지를 쓸 때, ‘디모데’를 보낼 것이며,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자신[‘바울’]의 방식들을 생각나게’ (신세 참조) 할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어떤 번역판들에서는 “방식들”(methods)이라고 하지 않고 “생활 방법들”(ways of living), “생활 방법”(way of life), “내가 생활하는 방법”(the way I live)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데이어’ 교수의 「희영 신약 사전」은 그 귀절을 “내가 그리스도의 봉사자 및 사도로서의 나의 직책을 이행하면서 따르는 방식들”이라고 해석합니다. ‘바울’은 그 문장을 “곧 내가 각처 각 회중에서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로 그 문장을 이어가므로, 그의 말에는 단순한 그의 개인적 그리스도인 행실만이 아니라 그분의 활동적인 봉사의 직무가 망라된다고 결론짓는 것이 이치적입니다.—고린도 전 4:17.

      6. 예수의 봉사가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예수께서는 봉사의 직무를 되는 대로 행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 역시 방식을 사용하여 전파하는 일을 하셨읍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사도들, 그리고 후에 70명의 복음 전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읍니다. 그분이 항상 비유와 질문을 사용하시고 성경을 인용하신 것은 그들에게 본이 되었읍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최상의 방식입니다.—누가 9:1-6; 10:1-11.

      7. 우리는 어떻게 최대한의 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달할 수 있읍니까?

      7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는 영원한 생명 아니면 죽음이 달려 있는 일이므로, 우리는 어떻게 최대한의 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달해 줄 수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해질 수 있읍니까? 사도 ‘바울’이 말한 “집집으로” 방문하는 봉사를 포함하여 모든 부면의 봉사를 이용함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읍니다. 사도 행전 20:20에 관해 어느 ‘스페인’어 주해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따른 전파 방식이 나와 있다.”—사도 20:20-27. 신세 참조.

      첫 번째 장애물

      8, 9. (ㄱ) 봉사의 직무에서 첫 번째 장애물은 흔히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 담대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8 너무나도 흔히, 우리가 봉사의 직무에서 넘어야 할 첫 번째 장애물은 우리 자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줍거나 자기가 만나게 될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고 교육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떻게 느끼셨읍니까? 그분은 ‘랍비’계 학교에 다니신 일이 있읍니까? 그분은 고등 교육을 받으셨읍니까? 그러나 그분이 전파하셨을 때, 그분의 동족은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마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물론 예수께서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의 방식들은 그분을 본받아야 하는 주로 “교육을 받지 못한” 제자들이 사용하기에도 실질적인 것이었읍니다. 제자들은 심지어 종교적인 적들 가운데서까지 어떠한 반응을 유발시켰읍니까?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게 되니라.]”—마태 13:54; 사도 4:13.

      9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르친 그 모든 것들을 어디에서 배우셨읍니까? 그분이 봉사의 직무에서 그토록 성공적이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은 현대의 TV 설교가들처럼, 청중을 압도하기 위해 과장된 감정을 사용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예수의 기본 방식은 단순함 그 자체였읍니다. 그분은 보통 사람들이 쓰는 말을 사용하셨고, 그들의 영적 필요를 아셨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그분은 자기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의 회당에서 자신이 받은 봉사 임명을 선언하실 때 그 점을 명확하게 나타내셨읍니다. 그분은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에서 발췌하여 다음과 같이 낭독하셨읍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라.]”—누가 4:16-21.

      10, 11. (ㄱ) 우리는 우리의 봉사의 직무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합니까? (ㄴ) ‘바울’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10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후원, 즉 우주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 하나님의 후원을 받고 있읍니다. 우리는 그분의 소식, 그분의 지혜를 전파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며 그것을 우리의 대화에서 자유로이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교육을 잘 받았고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져서야 되겠읍니까?

      11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 전 1:18-29.

      12. 우리의 봉사에서의 성공은 무엇에서 비롯됩니까? (야고보 4:8)

      12 봉사에서의 성공은 우리의 교육이나 가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호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왕국 소식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요인은 그 사람에 대한 여호와의 선의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요한 6:44.

      13. (ㄱ) ‘바울’과 ‘바나바’는 반대에 어떻게 응하였읍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봉사에서 언제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읍니까?

      13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지원을 신뢰하는 가운데, 제1세기의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봉사의 직무를 이행할 수 있읍니다. 그들이 ‘이고니온’에서 전파하였을 때 그들의 봉사는 의견의 정면 대립과 얼마의 반대를 야기시켰읍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물러섰읍니까? ‘누가’의 기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라.]” 우리 역시 우리 구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다면, 그리고 결과를 여호와의 손에 맡긴다면 봉사의 직무는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사도 14:1-3; 야고보 1:2, 3.

      사람들의 반응

      14. ‘바울’의 전파 활동에 대해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14 전파 활동을 하면서 예수나 ‘바울’도 언제나 호의적인 반응만 얻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아덴’에서 전파하였을 때 대중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라.]”—사도 17:18-20.

      15. 사람들은 우리의 봉사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나타냅니까?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15 우리는 우리의 소식 그리고 보도 매체 및 반대자들에 의해, 각색된 그 소식이 현대의 대중에게도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결과 소문으로 편견을 갖게 된 많은 사람들은 지레 짐작하고 들어 보지도 않고 우리를 배척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덴’ 사람들처럼, 결정을 내리기 전에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듣고 나서도 왕국 희망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배척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소식임을 기억하십시오.—사도 17:32-34; 마태 12:30.

      낯선 사람에서 벗으로

      16. (ㄱ)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읍니까? (ㄴ) 우리의 서론은 무엇을 달성해야 합니까?

      16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됩니까? 어떤 질문들이 우리의 정신을 스칠 것입니까? 십중 팔구, 이런 질문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은 나를 괴롭히지나 않을 것인가 하는 질문들일 것입니다. 봉사자로서 다른 사람의 집 문에 섰을 때 우리는 그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서론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그들의 정신을 편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무어라고 서론을 할 것을 제안하셨읍니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임하게 할, 신세]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태 10:12, 13.

      17. 우리는 서론에서 집주인을 어떻게 안심시킬 수 있읍니까?

      17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하게 하라.’ (신세 참조)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봉사하면서 우리는 모든 사람과 집에 대해 평화를 기원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 마디는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봉사자들임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유대’교인들과 회교도들은 “평화가 그대와 함께 하기를” 혹은 “평화”(‘히브리’어로는 “살롬 알레이켐” 혹은 “살롬”, 그리고 ‘아랍’어로는 “아살람 알라이쿰” 혹은 “살람”) 등의 인사말들을 사용합니다. 물론, 우리의 인사말은 나라마다 지방 관습에 따라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는 같습니다. 즉 남자든 여자든, 왕국 소식을 듣게 될 사람을 안심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먼저 알려 주고 자신이 사는 곳을 언급하는 것은 그 점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숨기고 있는 것이 없음을 알려 줍니다. 우리의 목적과 정직성은 명확하여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울’의 다음과 같은 교훈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공개적인 품행이 비판받을 것이 없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책임이 관련되어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생활하십시오.”—로마 12:17, 18, 필립스역.

      18. 우리는 봉사를 하면서 언제나 어떠한 표준에 달해야 합니까?

      18 우리가 호별 봉사를 하고 있든지, 가두 봉사를 하고 있든지, 우리는 대중의 관찰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대화와 품행은 언제나 비난받을 것이 없고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제공 연설이 온유하고 평화로운 것이기는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변명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개적 봉사자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마가 8:38.

      19, 20. (ㄱ) 가두에서, 보다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읍니까? (ㄴ) 예수께서 비공식 증거에 효과적이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어떤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보다 내성적이고 보수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잡지를 내보이며 자기에게 접근하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보다 슬기로운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바쁘지 않은 사람과 재치있게 대화를 시작하고, 그 다음에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성서 출판물을 꺼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 확실히 예수께서는 그와 비슷한 형식의 전파 활동에 능숙하셨읍니다. ‘사마리아’인 남녀들은 평소에 ‘유대’인들에게 멸시당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야곱’의 우물에서 부도덕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슬기롭게 접근하셨읍니다. 그분의 대화는 비공식 증거와 가두 증거를 위한 본이 됩니다. 또한 그것은 온정이 있고 건설적인 가르침의 훌륭한 본이기도 합니다.—요한 4:5-30.

      21. ‘바울’의 봉사의 직무에서 무슨 다른 중요한 요인이 예시되었읍니까?

      21 우리가 왕국의 좋은 소식을 소개하면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 또 한 가지 있읍니다. ‘바울’은 그것에 정통하였읍니다. 사도 행전 13:16-20; 17:22 및 22:1-3에 나오는 몇 가지 그의 서론에서 그 요인을 식별해 보도록 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그는 자신과 청중의 공통점을 찾아낸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는 신분과 배경에 있어 청중과 일치되는 점을 밝혔읍니다. 그 결과, 그들이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귀를 기울이기는 하였읍니다.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우리의 서론은 우리와 집 주인 사이의 일치점을 찾아 인간적인 접촉을 달성할 수 있읍니다. 아마 그 집에 자녀들이 있는데 우리 자신 역시 부모라는 점에 유의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통점들, 즉 우정적인 기초를 갖게 된 것입니다. 왕국 소식으로 인도할 수 있는 대화점이 있는 것입니다!—마태 18:1-6.

      22. 이제 어떠한 질문들이 대답되어야 합니까?

      22 그러나 이러한 제안들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마침내 또 하나의 제자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처들이 더 필요합니까? 그렇습니다. 또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갖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어떠한 특성들이 우리의 봉사를 더 효과적인 것이 되게 해줄 것입니까?

      어떻게 대답하시겠읍니까?

      ◻ 어떤 사람이 왕국 소식을 받아들이게 되는 데에는 어떠한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 우리는 봉사의 직무에서 소심함과 수줍음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읍니까?

      ◻ 야외 봉사를 할 때 우리의 서론에서는 무엇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까?

      ◻ 예수와 ‘바울’의 본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 효과적인 봉사로 더 많은 제자들을 삼음
    파수대—1984 | 11월 15일
    • 효과적인 봉사로 더 많은 제자들을 삼음

      “그분이 ·⁠·⁠·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복음 전도자, 신 영어 성서]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읍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에베소 4:11, 12, 공동번역.

      1.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읍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은둔 생활을 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의 봉사는 전적으로 사람 지향적인 것이었읍니다. 사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는 거의 언제나 사람들과 관계하셨읍니다. 여행을 하시면서 그분은 사람들의 실정을 보시고 그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끼셨읍니다. 그리스도인 봉사자로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느낍니까?—마태 9:35, 36.

      2.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예수를 본받고 있읍니까?

      2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 봉사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융통성 있는 접근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수행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세계 어디에서나—가두에서나, 문전에서, 분주한 장터에서, 버스 정류소나 전철역 혹은 기차역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사업 구역에서—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증인’들은 복음 전파자로 일하고 있읍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복음”(evangel)이라는 말은 “좋은 소식”이라는 의미를 지닌 희랍어 ‘유앙겔리온’(euaggelion)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은 누구나 좋은 소식의 봉사자, 즉 복음 전파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누구나 사람들과 관계해야 합니다.—디모데 후 4:5; 에베소 4:11, 12.

      3.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입니까?

      3 복음을 전파하는 이 일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까? 많은 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라디오’ 및 TV 접근 방식이 과연 참다운 대답입니까? 자문해 보십시오. ‘라디오’나 TV가 우리의 질문을 즉석에서 대답해 줄 수 있읍니까? 그럴 수 없읍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것들은 비인격 보도 매체입니다.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이 행한 것, 즉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직도 가장 효과적인 봉사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바울’이 그 점을 다음과 같은 간단한 비유로 알려 준 바와 같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린도 전 3:5-7.

      4. 효과적인 봉사의 직무에는 어떤 세 가지 단계가 관련되어 있읍니까?

      4 이 말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세 가지 단계—심는 일, 가꾸는 일 및 거두는 일—를 시사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제일 먼저 심는 일, 즉 왕국의 좋은 소식에 최초로 접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심은 것에 물을 주는 일을 포함한 가꾸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 일은 어떻게 행해집니까? 대화를 더 함으로써, 질문에 대답해 주고, 의문들을 풀어줌으로써입니다. 이것은 흔히 정기적인 성서 연구로 인도되어 성서 진리를 사람의 정신과 마음 속에 깊이 심어 주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최종 결과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또 다른 활동적인 제자, 즉 또 한명의 봉사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어떻게 제자를 거두어 들이는 그 행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읍니까?

      5. 무엇이 효과적인 봉사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5 전 기사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실용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셨읍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나의 방식들’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4:17, 신세 참조) 그의 도움으로 소‘아시아’와 희랍 여기저기에 회중들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성공을 웅변적으로 증거해 줍니다. 우리는 이미 그의 (그리고 예수의) 방식들 몇 가지를 살펴보았지만, 오늘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더 있읍니까?

      무엇이 그 근거이고, 그 소식인가?

      6. 무엇이 우리의 봉사의 주춧돌이 되어야 합니까?

      6 그리스도인의 소식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까? 인간의 지혜나 철학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는 명백한 대답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 ·⁠·⁠· 하기에 유익하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야말로 우리의 봉사의 주춧돌이 되어야 합니다.—디모데 후 3:14-17.

      7, 8. 예수와 ‘바울’은 성경을 사용하는 면에 있어서 어떻게 본을 세워 놓았읍니까?

      7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본이 되셨읍니다. 그분은 항상 성경을 인용하셨읍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하였읍니다. 예를 들어, 그가 ‘데살로니가’에서는 희랍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말았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기록은 다음과 같이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니라.]”—사도 17:1-3.

      8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그 중 어떤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방식을 따라 오늘날 우리의 전파 활동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대화를 위한 성서 주제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에게서 호응의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읍니다.—사도 17:4.

      9, 10. (ㄱ) 오늘날 우리의 전파 활동의 주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ㄴ) ‘바울’의 봉사에서 예를 들어 보십시오.

      9 이제 그 다음 질문은 ‘우리는 무슨 소식을 전파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봉사의 주제는 무엇이었읍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셨읍니다.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 신세]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현 제도의 마지막 날에 관해 이야기하시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누가 4:43; 마태 24:14, 신세.

      10 ‘바울’의 전파 활동에서도 그 동일한 것이 강조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는 “석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신세] 강론하며 권면”하였읍니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강론하여 하나님의 왕국에 관해 증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국”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추진력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9:8; 28:23, 31, 신세 참조.

      호전적인가, 아니면 호감을 사는가?

      11. 사람들은 ‘증인’을 대하게 되면 흔히 어떠한 반응을 보이며,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읍니까? (사도 17:17, 18)

      11 제1세기에 사람들은 종교와 인종 및 국적에 따라 분열되어 있었읍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2:7-11)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 문제에 접하게 되면 자기 나름대로의 선입관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증인’을 만나면 흔히 위협을 느끼고 방어 태세를 취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자세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읍니까? 친절과 재치 및 융통성을 사용함으로써입니다.

      12, 13. ‘바울’은 ‘아덴’의 우상 숭배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그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12 ‘바울’이 우상 숭배지인 ‘아덴’에서 그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유의하십시오. 그가 그토록 많은 우상들을 보고 나타낸 최초의 반응은 분개심이었읍니다. 그가 ‘아레오바고’에 서서 연설하게 되었을 때, 그는 즉각 그들의 우상 숭배를 공격하였읍니까? 그의 서론은 다음과 같았읍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사도 17:16-23.

      13 ‘바울’은 서두의 그러한 말로 청중이 떨어져 나가게 하였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의 접근 방법은 독선적인 것이 아니라 재치있는 것이었읍니다. 비록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숭배는 헛된 것이었지만, 그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았읍니다. 그가 그곳에 선 것은 왕국 소식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그들의 강한 종교성을 인정하였으며, 그것을 토대로 사용하여, 참 하나님과 그분의 대표자이신 부활되신 예수에 관한 주제로 이끌어 갔읍니다. 이 재치 있는 접근 방법의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일부 사람들은 조롱하였지만,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재방문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사도 17:22-32.

      14. 우리는 우리의 봉사에서 어떻게 ‘바울’의 본을 적용시킬 수 있읍니까?

      14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봉사에 이 방식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읍니까? 우선 우리는 집주인의 종교관을 알려 주는 표지들을 관찰하는 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마 그가 종교 장식을 걸치고 있거나 얼마의 종교 장식을 그 집 현관이나 응접실에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흔히, ‘바울’처럼 상대방의 종교적 견해에 대해 잘 알게 될 수 있읍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정적이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비논쟁적인 서론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찾아간 첫째 목적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지 즉각 교리 토론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얻는 것이지, 그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비교 디모데 후 2:23-26.

      15. 예수의 봉사에서 우리는 또 어떠한 훌륭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읍니까? (누가 10:38-42)

      15 그 외에 우리는 또 그리스도의 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그분의 봉사를 검토해 보면, 우리는 그분의 확신과 간결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분은 어떠한 상황으로도 당황하시지 않고 온갖 환경하에서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거리낌없이 이야기하셨읍니다. 그분은 가정과 같이 친근한 상황에서도 전파하실 수 있었고, 군중 앞에 서서 골자나 성서 혹은 확성 시설 없이도 교훈을 베푸실 수 있었읍니다! 그분은 또한 대중의 마음을 끄는 점도 가지고 계셨읍니다. 미천한 사람들도 그분께 접근할 수 있다고 느꼈읍니다. 그분은 밭과 농작물, 그물과 어업과 관련된 그들의 용어를 사용하셨읍니다. 그분의 비유들은 뜻이 깊은 것이기는 하였지만 매우 현실적인 것들이었읍니다. 우리도 봉사하면서 그와 같은 훌륭한 특성들을 나타냅니까?—마태 4:18-25; 13:1-33; 누가 5:1-3.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법

      16. 우리가 유능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정상적으로는,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성서의 소식을 확신하게 되는 데에는 시간과 주의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조사해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보수나 의무감 없이, 정기적인 가정 성서 연구를 하는 마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구들은 상당한 기간 지속되며 여러 가지 제목들 및 질문들을 망라합니다. 확실히 이것은 우리가 유능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과연 본질적으로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입니까?—디모데 전 4:16.

      17. 예수께서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사용하신 한 가지 방식은 무엇이었읍니까?

      17 이번에도 역시 예수에게서 대답을 구하게 됩니다. 그분은 어떻게 가르치셨읍니까? 다음 귀절들을 검토해 보고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신 간단한 방식을 알아 맞추어 보십시오. 누가 복음 6:9, 32-34, 39-42.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분별력있는 질문들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청중이 추리하고 자신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를 검토해 보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질문을 사용하심으로 그분은 재치있게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읍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그분의 추종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듣는 동기가 단순히 피상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마태 13:10-17; 마가 8:34-38.

      18. (ㄱ) ‘여호와의 증인’들이 출판물에서 질문을 그토록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어떤 방식을 지나치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까?

      18 ‘여호와의 증인’들이 봉사에 사용하는 거의 모든 성서 연구 보조 서적에는 각 항목 본문 설명을 위한 질문들이 나와 있읍니다. 이 연구 보조 질문은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로 설명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면 그가 내용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가 밝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예수께서 질문들을 사용하기는 하셨지만, 대답의 첫 마디나 첫 음절을 알려 줌으로 그것이 단순한 추측 놀이가 되게 하신 일이 없었읍니다. 때때로 우리는 일부 성서 연구생들과 그런 식의 연구 방식에 빠진 일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상습적으로 사용할 만한 좋은 방식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은 사소한 추측 놀이가 아니라, 추리와 논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요한 17:3; 요한 1서 5:20.

      누구의 제자들인가?

      19, 20. 이제 조심해야 할 어떠한 점이 있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이제, 조심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읍니다. 생산적인 구역에서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면 우리는 마침내 제자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의 제자들입니까? 우리는 그들을 “나의 양들”로 생각해야 합니까? 그리고 떠받드는 위치에 있게 할 것입니까?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신과 같은 대우를 하려고 하였을 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 유의하십시오. 그들은 군중에게 이렇게 외쳤읍니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와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사도 14:14, 15, 새번역.

      20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에게 주의를 이끌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같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교훈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자신의 추종자들이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봉사는 언제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고린도 전 3:6, 7; 11:1.

      21. 제자들이 봉사자들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때가 되면, 제자들은 봉사자들이 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정말 이야기할 만한 좋은 소식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게 됩니까? 우리만 알고 있을 수 있읍니까?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참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왕국의 좋은 소식의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은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정기적으로 그리고 자진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어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가 반복하는 봉사자들의 연쇄 과정은 계속됩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다음과 같은 교훈에 들어 있는 원칙과 일치합니다.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누가 6:45; 디모데 후 2:2.

      22. (ㄱ) 여호와께서 가르치는 자들 및 복음 전파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만들어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아직도 장차 수행해야 할 어떠한 일이 있읍니까?

      22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전세계에 20세기의 교육자들, 복음 전파자들, 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최상의 훈련을 받은 조직을 두고 계십니다. 2,600,000명이 넘는 그들은 현 악한 제도에 끝이 임하기 전에 행해지고 있는 최종 증거 활동에 참여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 점증하는 무리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도전에 대비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부활로써 돌아올 수십억을 교육시키는 일입니다. 당신도 그처럼 놀라운 특권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읍니까? 당신의 봉사는 현재 생산적입니까? 우리가 효과적인 봉사자로 일함에 따라, 우리의 빛을 비추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하는 바입니다.—마태 5:16; 요한 5:28, 29.

      우리가 공부한 요점들

      ◻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가르치는 일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까? 그 소식은 무엇입니까?

      ◻ 사람들이 우리 말을 듣도록 하는 데는 무슨 특성들이 필요합니까?

      ◻ 예수께서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감동시키셨읍니까?

      ◻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조심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21면 삽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파하고 있다

      [22면 삽화]

      증거 활동을 할 때 우리는 집주인의 종교를 알려 주는 것들을 관찰해야 한다

  • 기억하십니까?
    파수대—1984 | 11월 15일
    •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최근의 「파수대」지들을 흥미있게 읽어 보았읍니까? 이제 기억할 수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 「민수기」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왕국의 설립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기록상의 값진 고리가 들어 있다. 동물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지적해 준다. (민수 19:2-9; 히브리 9:13, 14) 또한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을 피하도록 도와 주며, 하나님과 그분의 피임명자 및 그분의 마련을 거슬러 투덜거리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깨어 있게 한다.—8/1, 9면.

      ◻ 1914년이라는 연대는 어떤 점에서 중요합니까?

      1914년에 세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사건들이 시작되었다. 예수께서 하늘 왕국에서 통치를 시작하셨으며, 그 다음에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났다. 조만간 하나님의 왕국은 통치 제도들을 멸할 것이다. (다니엘 2:44)—8/15, 5, 6면.

      ◻ 영적 균형을 유지하는 몇 가지 비결은 무엇인가?

      (1)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2) 영적으로 위험한 지대를 피하는 것(교묘한 물질주의와 같은 것); (3) 약한 부면들을 알고 계속 노력하는 것; (4) 계속 바쁘게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 (5) 하나님의 조직의 징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6) 회중으로부터 나뉘지 않는 것.—9/1, 7-10면.

      ◻ 어떤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생활에서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참 믿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태 5:6; 요한 10:14, 27; 18:37) 또한 믿음은 하나님의 영이 산출하는 열매이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믿음을 기도로 구하며 진정으로 그것들을 얻어 그에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실 것이다. (마태 7:7)—9/1, 13, 14면.

      ◻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유익을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우리를 감동시켜 온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찾게 한다. 이렇게 할 때 큰 행복을 누리게 되며, 길을 잃어버리거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행로를 추구하지 않게 된다. (시 119:2, 31)—9/15, 20-24면.

      ◻ 탐욕의 근원은 무엇인가?

      인간의 유전받은 불완전성 때문에 탐욕은 물질적인 것들을 소유하고 재정적인 안전을 누리려는 정상적인 욕망에서 파생된 엉뚱한 부산물이 되었다. (로마 5:12) 그것은 소유물이나 명성 또는 부에 대한 지나친 혹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10/1, 6-8면.

      ◻ 제자를 삼는 일을 할 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려면,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가?

      첫째, 올바른 본을 세워야 한다. (누가 6:40) 둘째, 질문들을 하여 연구생이 생각하고 추리하게 한다. (마태 17:24-27) 세째, 연구생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지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신명 10:12, 13) 네째, 연구생이 여호와를 친밀하게 알도록 돕는다. (요한 17:3)—11/1, 17-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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