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는 훈련을 끝마치게 하실 것임’
    파수대—1987 | 6월 15일
    • 직면하여 대처함으로써 우리는 순종, 지혜, 겸손, 담대함, 사랑, 관용 및 기타 다른 여러 가지 특성들을 배양하도록 훈련을 받게 된다.—비교 야고보 1:2-4.

      우리는 또한 이처럼 훈련을 받는 단계가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앎으로 격려를 받는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이처럼 위로하였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여러분이 받는 훈련을 끝마치게 하실 것이며, 신세]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리라.]” (베드로 전 5:10) 이 말은,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고대하는 “큰 무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바로 이러한 생각에 힘입어, 우리는 그러한 훈련의 기회를 참을성있게 받아들이고,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격려적인 말이 참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 6:9.

  • 독자로부터의 질문
    파수대—1987 | 6월 15일
    • 독자로부터의 질문

      ◼ 예수께서는 형주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외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고 믿음으로써 믿음의 부족을 나타내신 것인가?

      마태 27:46이나 마가 15:34에 있는 이러한 말씀을 읽고서, 예수께서 고통스러운 죽음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분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단정한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런가 하면, 이것은 단지 예수의 인간적인 반응, 즉 혈과 육을 가진 한 인간이 극한 고통 가운데서 이해할 만하게도 절망하여 외친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하지만 표면상의 것에 근거한 그러한 인간적인 평가를 초월해서 생각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읍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예수의 그러한 외침에 내포된 것을 모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는 타당한 두 가지 동기를 지적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잘 알고 계셨읍니다. (마태 16:21) 하늘에 계실 적에, 하나님의 이 아들은 심지어 불완전한 사람들도 충절을 지키면서 몹시 고통스러운 죽음을 감수하는 것을 지켜보셨읍니다. (히브리 11:36-38) 그러므로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께서 자기가 직면한 일로 인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는 전혀 없으며, 또한 형주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해서 자기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하지도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 즉 못박혀 죽임을 당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읍니다. (요한 12:32, 33) 그분은 또한 제 삼일에 살아날 것도 확실히 알고 계셨읍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어찌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고 말할 수 있었겠읍니까?

      첫째로, 예수의 충절이 극한 점까지, 다시 말해서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험을 당하도록 여호와께서 자기 아들로부터 보호의 손길을 거두셨다는 한정된 뜻으로, 그분은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단이 조종하는 원수들의 분노에 내맡기셨다고 하여 그것이 완전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아들을 제 삼일에 다시 살리심으로 증명된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계속 예수에게 애정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런 일이 있을 것을 알고 계셨읍니다.—사도 2:31-36; 10:40; 17:31.

      예수께서 형주에 달리어 하신 말씀의 타당한 두번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과 연관이 있읍니다. 즉 그분이 이러한 말씀을 함으로써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성취시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을 하기 몇 시간 전에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6:24; 마가 14:21) 그렇습니다. 그분은 시편 22편에 기록된 일들을 포함하여, 기록된 일들을 이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마 시편 22:7, 8을 마태 27:39, 43과, 시편 22:15을 요한 19:28, 29과 시편 22:16을 마가 15:25 및 요한 20:27과, 시편 22:18을 마태 27:35과 비교해 보면 그 점을 뚜렷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메시야가 경험할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예언이 담겨 있는 시편 22편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 말을 외치셨을 때, 그분은 자신이 예언을 성취시킨 기록을 하나 더 추가하신 것입니다.—누가 24:44.

      시편 필자는 그의 하나님이 그저 그를 배척하셨다거나 포기하셨다고 믿지 않았읍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어서, 자기는 ‘주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권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시 22:22, 23) 그와 마찬가지로 시편 22편을 잘 아셨던 예수께서도 하나님께서 자기가 형주에 달리어 그런 일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여전히 자기를 승인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만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