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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98 9/22 18-20면
  • 어떻게 하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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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하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까?
  • 깨어라!—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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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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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묻는다·⁠·⁠·

어떻게 하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까?

“집회에 가서 앉아 있으면서도 별로 얻는 것 없이 여러 해를 보냈어요. 그저 정신을 딴 데 팔곤 했거든요.”—매슈.

학교의 교실이나 그리스도인 집회에 앉아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무슨 얘기가 진행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까? 때때로 당신의 정신이 방황하는 경향이 있다면,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앞서 실린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주의 지속 시간이 짧은 것은 청소년들에게 흔히 있는 일입니다.a 하지만 노력을 좀 기울이고 태도를 어느 정도 조정하기만 하면, 집중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흥미를 가짐

훈련받은 운동 선수를 생각해 봅시다.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서 자제를 나타”낸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운동 선수가 단 한순간이라도 한눈을 판다면, 경기에서 질 수 있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떠들어대는 관중의 소리를 무시하고, 고통과 극도의 피로를 잊어버리고, 패배할지 모른다는 생각조차도 떨쳐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운동 선수들은 도대체 무슨 동기로 그처럼 각별한 노력을 기울입니까? 사도 바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부패할 면류관을 얻으려고”, 즉 승리한 사람에게 주는 트로피와 찬사를 받으려고 그렇게 노력합니다.—고린도 첫째 9:25.

마찬가지로, 당신도 주의를 기울이려는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윌리엄 H. 암스트롱은 「공부는 힘든 일이다」(Study Is Hard Work)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흥미를 갖는 것은 학생의 책임이다. 아무도 우리 대신에 흥미를 가져줄 수는 없으며, 우리가 원하지 않는 한 아무도 우리의 흥미를 돋우어 줄 수 없다.” 지식은 우리 주위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쉽다’고 잠언 14:6은 말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학교는 적어도 사고력을 기르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비교 잠언 1:4, 「신세」 참조) 정신을 징계해서 집중력을 나타내는 사람은, 평생토록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흥미를 잃은 교사와 흥미없게 강의하는 교사

하지만 일부 십대 청소년은, 심지어 교사들도 흥미를 잃은 것 같다고 불평합니다. 제시라는 청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들은 교단에 서서 뭔가 얘기를 하고, 숙제를 내 주고, 그리고는 수업을 끝내시지요. 제 생각엔, 태만하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이 수업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우리들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많은 교사들은 단순히 일종의 악순환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콜린이라는 십대 청소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무도 선생님들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니까, 선생님들도 배우고 싶은 학생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데 정력과 열정을 쏟지 않으시는 거죠.”

믿어지지 않을지 몰라도, 당신이 이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단순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입니다. 흥미를 가진 학생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지루해하던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사들의 경우에는 수업을 흥미 있게 진행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공상에 빠져 들기 전에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선생님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알고 있는가?’ 사실이 그렇다면, 그분에게서 무엇인가 배우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주의 깊이 들어야, 즉 집중해야 합니다! 수업 중의 토의에 참여하십시오. 적절한 질문을 하십시오. 「고등 학교에서 공부하는 법」(How to Study in High School)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많은 학생들은 교사가 칠판에 적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강조하는 도해, 단어, 도표, 정의, 요점 등을 필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임

하지만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잘 듣는 문제에는, 훨씬 더 큰 유익과 손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시는 이렇게 시인합니다. “때때로 청소년들은 집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집회나 그와 같은 모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요.” 우리는 히브리 2:1에서 “우리가 결코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들은 것들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은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난 뒤, 각 프로에서 어떤 점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프로를 누가 다루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때때로 있습니까?

이 경우에도, 문제는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생명 자체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요한 17:3) 잘 생각해 볼 점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성서에 관해 배울 때, 우리는 바로 하느님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사야 55:8, 9) 그리고 배운 것을 적용할 때, 우리는 성서의 표현대로 “새 인간성”을 입게 됩니다. (골로새 3:9, 10) 반면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개선을 하지 못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을 막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정신이 산만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렇게 간절히 권고하십니다. “나를 청종하라 ·⁠·⁠·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이사야 55:2, 3.

집회에서 더 많은 유익을 얻는 방법

그렇다 해도, 집회에서 주의를 바짝 기울이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우리가 거듭해서 집중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뇌는 그 일에 더 숙달된다고 주장합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매슈는 집회 시간에 정신을 딴 데 파는 경향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를 기울이도록 나 자신을 징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얼마쯤 지나면 차차 나아지면서, 더 긴 시간 동안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매슈는 자신이 집회를 즐기게 된 가장 큰 요인 딱 한 가지를 지적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미리 예습을 합니다.” 샤리스라는 청소년도 그와 비슷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습을 했을 때는 집회에 더 온전히 참여하는 기분이에요. 연설들이 더 호소력이 있는 것 같고 저에게 의미가 더 깊어요.”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생각들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의 머리 속에는 처리해야 할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음주에 닥칠 시험,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개성의 마찰, 앞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런 충고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의 수명을 한 큐빗 더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음 날에 대하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음 날에는 그 날의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의 나쁜 일은 그 날로 족합니다.” (마태 6:27, 34) 회중 집회에서 집중한다고 해서 우리의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힘을 얻어 문제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비교 고린도 둘째 4:16.

주의 깊이 잘 듣는 것 또한 계속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매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연사가 연설을 하면서 무슨 내용을 이끌어 낼지 미리 생각해 보고 나서 그가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지금 다루어지는 요점은 무엇인가? 나는 배우고 있는 내용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연사가 다음에 말할 것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정신을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사가 추리하는 방식을 따라가려고 노력하십시오. 그가 사용하는 성경적인 논증에 유의하십시오. 그가 말하는 요점을 잘 생각해 보고 간추려 보십시오. 간단하고 의미 있게 필기를 하십시오. 청중이 참여해야 하는 프로라면, 참여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계속 정신을 쏟고 생각이 방황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사가 열정이 부족하거나 생기 없는 연설을 할 경우에 귀기울여 듣기가 무척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사도 바울의 연설 능력을 어떻게 여겼는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한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직접 함께 있어 보면 약하고, 그의 연설은 멸시할 만하다.” (고린도 둘째 10:10) 그러나 바울은 그런 비평에 대한 응답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에는 능숙하지 못할지라도 지식에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 둘째 11:6) 그렇습니다. 만일 바울의 연설을 듣던 사람들이 그의 연설 능력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말하는 내용에 집중했더라면, 그들은 “하느님의 깊은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2:10) 마찬가지로 우리도 정신을 집중하여 잘 듣는다면, 심지어 “따분한” 연사로부터도 배울 수 있습니다. 누가 압니까? 그 연사는 어떤 미묘한 의미상의 차이를 언급하거나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방법으로 성구를 적용할지도 모릅니다.

누가 8:18에 있는 예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이렇게 잘 요약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듣는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사실, 주의를 기울이는—그리고 정신을 딴 데 팔지 않는—법을 배우는 데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유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더 나은 성적을, 그리고 더 중요한 영적 성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각주]

a 본지 1998년 7월 22일 호에 실린 “청소년은 묻는다 ·⁠·⁠·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할까?” 기사 참조.

[20면 삽화]

듣는 내용에 대해 흥미를 갖는 것이 주의를 기울이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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