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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를 사용해서 믿음에 대해 교훈하시다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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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장
무화과나무를 사용해서 믿음에 대해 교훈하시다
마태복음 21:19-27 마가복음 11:19-33 누가복음 20:1-8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믿음에 관한 교훈
예수의 권한을 따지고 들다
월요일 오후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 올리브 산 동쪽 비탈에 있는 베다니로 돌아오십니다. 아마도 그분은 친구들인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서 밤을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니산월 11일 화요일 아침에, 예수와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갑니다. 이날은 성전에 계시는 마지막 날입니다. 또 공개적으로 봉사하시는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분에게 남아 있는 일은 유월절을 기념하고 자신의 죽음의 기념식을 제정한 다음 재판받고 처형당하시는 것입니다.
베다니에서 올리브 산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전날 아침에 저주하신 나무를 보고 말합니다. “랍비,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마가복음 11:21.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이 나무가 말라 버리게 하셨습니까? 그분은 이런 대답으로 그 이유를 밝혀 주십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러분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던져져라’ 해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청하는 것은 모두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1:21, 22) 이와 같이 그분은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이전에 말씀하신 요점을 반복하십니다.—마태복음 17:20.
예수께서는 나무가 말라 버리게 하심으로, 하느님께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실물을 사용하여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청하는 것은 모두 이미 받았다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4) 예수의 제자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이 아닙니까! 얼마 안 있으면 어려운 시험을 겪게 될 사도들에게 특히 적절한 교훈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리는 것과 믿음이라는 특성 사이에는 관련된 점이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무화과나무처럼 겉모습이 기만적입니다. 이 민족에 속한 사람들은 하느님과 계약 관계에 있으며 겉으로는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것같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민족은 전체적으로 믿음이 없고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친아들을 배척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심으로, 열매 없고 믿음 없는 이 민족의 끝이 어떨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얼마 후에 예수와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예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성전에 가서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수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전날 예수께서 돈 바꿔 주는 사람들에게 하신 일을 마음에 두었는지 그분에게 따져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권한을 주었소?”—마가복음 11:28.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내게 대답하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요한의 침례는 하늘에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입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이번에는 반대자들이 답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서로 상의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그러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무리가 모두 요한이 참으로 예언자였다고 여겼”던 것입니다.—마가복음 11:29-32.
예수를 반대하는 자들은 그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르겠소”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겠습니다.”—마가복음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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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에 관한 두 가지 비유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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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장
포도원에 관한 두 가지 비유
마태복음 21:28-46 마가복음 12:1-12 누가복음 20:9-19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경작자들의 비유
성전에서 방금 예수께서는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지는 수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보기 좋게 응수하셨습니다. 예수의 답변을 듣고 그들은 아무 말도 못 합니다. 그때 그분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갔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습니까?” (마태복음 21:28-31) 답은 분명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행한 사람은 맏아들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반대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세금 징수원들과 매춘부들이 여러분보다 앞서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세금 징수원들과 매춘부들은 처음에는 하느님을 섬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맏아들처럼 나중에 회개했으며 지금 하느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반대로, 종교 지도자들은 둘째 아들처럼 하느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지적하십니다. “[침례자] 요한이 의의 길로 여러분에게 왔으나, 여러분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금 징수원들과 매춘부들은 그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본 후에도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마태복음 21:31, 32.
이어서 예수께서는 또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는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여기는 정도가 아님을 보여 주십니다. 사실상 그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구덩이를 파서 포도주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원을 경작자들에게 세놓고 외국에 갔습니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경작자들에게서 포도원의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그들에게 종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종을 붙잡아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그가 다시 다른 종을 그들에게 보냈으나,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때리고 모욕했습니다. 그가 또 다른 종을 보냈으나, 그들은 그 종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들을 많이 보냈으나, 그중 얼마는 때리고 얼마는 죽였습니다.”—마가복음 12:1-5.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이 비유를 이해할 것입니까? 그들은 이사야가 한 비판의 말을 기억할지 모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집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이 좋아하시던 농원이다. 그분은 늘 공의를 바라셨는데, 보라! 불공정뿐이구나.” (이사야 5:7) 이 말은 예수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밭 주인은 여호와이시고, 포도원은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하느님의 율법이라는 울타리로 보호를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백성을 교훈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도우려고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경작자들”은 주인이 보낸 그 “종들”을 학대하고 죽였습니다. 예수께서 설명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에게는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내 아들은 존중하겠지’ 하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경작자들은 자기들끼리 ‘저자는 상속자다. 자, 그를 죽이자. 그러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를 잡아 죽였습니다.”—마가복음 12:6-8.
“이제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마가복음 12:9) 종교 지도자들이 대답합니다. “그들이 악하므로 그들을 가차 없이 멸하고, 제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경작자들에게 포도원을 세놓을 것이오.”—마태복음 21:41.
이렇게 하여 그들은 본의 아니게 스스로에 대해 심판을 선언한 셈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포도원”인 이스라엘 민족의 “경작자들”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경작자들에게서 마땅히 기대하시는 열매에는 메시아 즉 그분의 아들에 대한 믿음이 포함됩니다. 예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을 똑바로 보며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런 성구를 읽어 본 적이 없습니까?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주된 모퉁잇돌이 되었다. 이것은 여호와에게서 났으며, 우리 눈에 경이로운 것이다.’” (마가복음 12:10, 11) 그런 다음, 그분은 요점을 분명히 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여러분에게서 빼앗아, 왕국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입니다.”—마태복음 21:43.
서기관들과 수제사장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염두에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누가복음 20:19) 그들은 정당한 “상속자”인 예수를 한층 더 죽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는 무리를 두려워하여 그 즉시 예수를 죽이려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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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결혼 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을 부르다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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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장
왕이 결혼 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을 부르다
결혼 잔치의 비유
예수께서는 봉사 활동이 끝나 갈 무렵에 계속 비유를 사용하여 서기관들과 수제사장들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죽이고 싶어 합니다. (누가복음 20:19) 하지만 예수께서 그들에 대해 폭로하시는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또 다른 비유를 드십니다.
“하늘 왕국은 아들을 위해 결혼 잔치를 베푼 왕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가 결혼 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을 부르러 종들을 보냈으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2:2, 3) 예수께서는 “하늘 왕국”을 언급하심으로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왕”은 여호와 하느님일 것입니다. 그러면 왕의 아들은 누구이고,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 답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왕의 아들은 여호와의 아들 즉 지금 비유를 말씀하고 계신 분이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늘 왕국에서 아들과 함께 있을 자들입니다.
처음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와 사도들이 누구에게 왕국에 대해 전파했습니까? 유대인들입니다. (마태복음 10:6, 7; 15:24) 이 민족은 기원전 1513년에 율법 계약을 받아들여서 “제사장 왕국”을 구성할 전망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9:5-8) 그렇지만 실제로 “결혼 잔치”에 오라고 그들을 부르는 때는 언제입니까? 논리적으로 볼 때, 이런 초대는 예수께서 하늘 왕국에 대해 전파하기 시작하신 기원 29년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초대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 대부분은 예수를 하느님이 임명하신 왕으로,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기회가 또 한 번 있을 것임을 암시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왕은]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말했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음식을 차려 놓았소. 수소와 살진 짐승들을 잡았으며 모든 것이 준비되었소. 결혼 잔치에 오시오.”’ 하지만 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갔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왕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마태복음 22:4-6)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 회중이 일단 설립되고 나서 벌어지는 상황에 해당합니다. 그때에도 유대인들에게는 왕국에 있을 기회가 여전히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부름을 무시하고 “왕의 종들”을 모욕하기까지 했습니다.—사도행전 4:13-18; 7:54, 58.
그 민족의 결말은 어떠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왕은 격분하여 군대를 보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마태복음 22:7) 유대인들은 기원 70년에 그 일을 당하게 되는데, 그때 로마가 “그들의 도시”인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이 왕의 부름을 거절했기 때문에 더는 아무도 초대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비유에서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왕이]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결혼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격이 없구나. 그러니 도시 밖으로 나가는 큰길로 가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결혼 잔치에 초대하여라.’ 그래서 그 종들은 큰길로 나가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만나는 대로 다 모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결혼 연회장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마태복음 22:8-10.
유의할 만하게도, 나중에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나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은 사람—이 참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기 시작합니다. 기원 36년, 로마 군대의 장교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은 하느님의 영을 받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늘 왕국에서 자리를 받을 전망을 갖게 됩니다.—사도행전 10:1, 34-48.
결혼 잔치에 온다고 해서 모두가 결국 “왕”이 받아들일 만한 사람으로 판명되지는 못할 것임을 예수의 이런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왕이 손님들을 살펴보려고 들어왔다가,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에게 ‘여보시오, 어떻게 당신은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소?’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자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쫓아라. 거기서 그가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초대된 사람은 많으나 선택된 사람은 적습니다.”—마태복음 22:11-14.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의 의미나 취지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분이 상한 나머지, 자신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자를 없애 버리겠다고 어느 때보다 더 굳게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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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함정에 빠지지 않으시다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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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장
예수께서 함정에 빠지지 않으시다
마태복음 22:15-40 마가복음 12:13-34 누가복음 20:20-40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부활된 후에도 결혼하는가?
가장 큰 계명
예수의 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기분이 상합니다. 방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드러내는 비유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덫에 걸려들게 하려고 모의합니다. 그들은 로마 총독에게 넘길 구실로 삼을 만한 말이 예수의 입에서 나오게 만들려고 하며,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자기네 제자들을 매수합니다.—누가복음 6:7.
그 사람들이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올바로 말하고 가르치며 편파적이 아니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인두세를 바쳐도 됩니까, 안 됩니까?” (누가복음 20:21, 22) 예수께서는 그들의 입에 발린 말에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그 말에는 위선과 속임수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세금을 바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시면 로마에 대항하는 반역죄로 고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시면 로마의 속박에 시달리고 있는 백성이 오해하여 예수를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응수하십니다. “위선자들이여, 왜 나를 시험합니까? 인두세로 내는 주화를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이 초상과 글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고 물으십니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명답을 제시하십니다.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마태복음 22:18-21.
그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크게 놀랍니다. 능수능란한 답변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고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노력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실패한 뒤에 다른 종교 집단의 지도자들이 예수께 다가옵니다.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인들이 부활과 시숙 결혼에 관해 질문합니다. “선생님, 모세는 ‘어떤 사람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그의 형제가 그의 아내와 결혼하여 죽은 형제를 위해 자손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7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했다가 자식 없이 죽어 아내를 자기 형제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둘째와 셋째도 그렇게 되었고, 일곱째까지 모두 그렇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그들 모두가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마태복음 22:24-28.
예수께서는 사두개인들이 인정하는 모세의 기록을 사용하여 답변하십니다. “여러분은 성경도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일으켜지는 것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나오는 가시덤불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여러분은 읽어 보지 못했습니까? 그분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24-27; 출애굽기 3:1-6) 이 대답을 듣고 무리는 크게 놀랍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잠잠하게 만드시자, 이제 이 반대자들은 한데 뭉쳐 그분을 더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한 서기관이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어느 것입니까?”—마태복음 22:36.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 계명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시니,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마가복음 12:29-31.
서기관은 그 대답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한 분이시며, 그분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말씀은 옳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이해력을 다하고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 서기관이 현명하게 말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왕국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마가복음 12:32-34.
예수께서는 3일(니산월 9, 10, 11일) 동안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 서기관처럼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으며, 그 뒤로는 “감히 그분에게 더 묻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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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질책하시다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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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장
반대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질책하시다
마태복음 22:41–23:24 마가복음 12:35-40 누가복음 20:41-47
그리스도는 누구의 아들인가?
예수께서 반대자들의 위선을 폭로하시다
예수를 반대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의 평판을 떨어뜨리지도 못하고, 그분을 함정에 빠뜨려 로마 정부에 넘기지도 못합니다. (누가복음 20:20) 니산월 11일, 아직 성전에 계신 예수께서는 이제 상황을 바꾸어 이렇게 먼저 질문을 던지심으로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지를 밝히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누구의 아들입니까?” (마태복음 22:42)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다윗의 아들이라고 그들은 대답합니다.—마태복음 9:27; 12:23; 요한복음 7:42.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그러면 다윗이 영감을 받아 그를 ‘주’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한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적들을 너의 발밑에 둘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이처럼 다윗이 그를 ‘주’라고 불렀다면, 어떻게 그가 다윗의 아들이 되겠습니까?”—마태복음 22:43-45.
바리새인들은 아무 대답도 못 합니다. 그들은 다윗의 후손인 한 인간이 그들을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시편 110:1, 2에 나오는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메시아가 한낱 인간 통치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님을 명확히 밝히십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주’이며,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은 뒤에 능력을 행사하실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반대자들은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제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즉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치려고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에 관해 경고하십니다. 그분이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교훈은 이러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은 모두 행하고 지키십시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따라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3:2, 3.
이어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보여 주는 이런 실례를 드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부적처럼 차고 다니는 성구 갑을 크게 합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율법의 짧은 구절들을 담은 비교적 작은 성구 갑을 이마나 팔에 차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에 열심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성구 갑을 크게 합니다. 그들은 또한 “옷 술을 길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옷에 술을 달아야 했는데, 바리새인들은 옷 술을 꽤 길게 합니다. (민수기 15:38-40) 그들이 하는 이런 일은 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3:5.
예수께서는 제자들도 탁월해지려는 욕망에 이끌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렇게 조언하십니다. “여러분은 랍비라고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선생은 오직 하나이며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 또 땅에 있는 그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또한 지도자라고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도자는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처신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큰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마태복음 23:8-12.
뒤이어 예수께서는 위선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다고 거듭거듭 선언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위선자들이여, 당신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사람들 앞에서 하늘 왕국을 닫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3:13.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영적 가치관이 없다고 질책하십니다. 그들이 제멋대로 구별 지어 놓은 규정들을 보면 그들의 그런 상태가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여호와를 숭배하는 장소의 영적인 가치보다 성전의 금을 더 중요시하여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눈이 멀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율법의 더 중요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등한시해 왔”습니다.—마태복음 23:16, 23; 누가복음 11:42.
예수께서는 그 바리새인들을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부르면서, “당신들은 작은 벌레는 걸러 내면서 낙타는 삼키고 있습니다!”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3:24) 그들이 포도주에서 작은 벌레를 걸러 내는 이유는 그 벌레가 의식상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의 더 중요한 것을 등한시하는 그들의 행동은 마치 의식상 부정하기는 마찬가지인데 크기는 훨씬 더 큰 동물인 낙타를 삼키는 것과 같습니다.—레위기 1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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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전에서 보내시는 마지막 날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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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장
예수께서 성전에서 보내시는 마지막 날
마태복음 23:25–24:2 마가복음 12:41–13:2 누가복음 21:1-6
예수께서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더 지적하시다
성전이 파괴될 것이다
가난한 과부가 작은 동전 두 닢을 헌금하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마지막으로 계시는 동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계속 폭로하시며, 그들을 대놓고 위선자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탐닉이 가득[합니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먼저 잔과 접시의 속을 깨끗이 하십시오.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23:25, 26) 바리새인들은 의식상 정결한 것과 겉모양에는 세심하게 신경 쓰면서도 속사람은 소홀히 하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꾸미는 일을 나서서 하는 면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하지만, 예수의 말씀대로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입니다. (마태복음 23:31)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함으로 그 점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요한복음 5:18; 7:1, 25.
이어서 예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당할 것인지를 지적하십니다. “뱀들이여, 독사의 자식들이여, 당신들이 어떻게 게헨나의 심판을 피하겠습니까?” (마태복음 23:33) 게헨나는 “힌놈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근처에 있는 이 골짜기는 쓰레기 소각장이므로, 악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영원히 멸망될 것임을 실감 나게 보여 줍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언자들과 지혜로운 사람들과 강사들”로서 예수를 대변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을 것입니까?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당신들은 [내 제자들] 중에 얼마는 죽이고 기둥에 달아 처형할 것이며, 또 얼마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도시 저 도시로 다니며 박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당신들이 ··· 살해한 ··· 스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흘려진 모든 의로운 피가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고도 하십니다. “진실로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이 모든 일이 이 세대에게 닥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4-36) 기원 70년에 바로 그 일이 닥칩니다. 그때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유대인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끔찍한 상황을 예상하며 괴로워하십니다. 애처로운 심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보내진 이들을 돌로 치는 자야,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너의 자녀를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당신들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당신들의 집이 버림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7, 38)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그분이 무슨 “집”을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바로 이 웅장한 성전,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 성전을 생각하고 계신 것일 수 있습니까?
뒤이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하는데, 당신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축복받으신 분!’ 하고 말할 때까지, 이제부터 당신들은 결코 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9) 그분은 시편 118:26에 나오는 이런 예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축복받으신 분.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그대들을 축복한다.” 일단 이 성전이 멸망되고 나면 아무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곳에 오지 않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나팔 모양의 헌금함이 있는 성전 구획으로 이동하십니다. 사람들은 헌금함 위에 있는 작은 구멍에 헌금을 넣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양한 유대인들이 그처럼 헌금하는 것을 보시는데, 부자들이 “많은 주화를 넣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한 가난한 과부가 “가치가 아주 적은,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십니다. (마가복음 12:41, 42) 틀림없이 예수께서는 이 과부의 헌금을 하느님이 얼마나 기뻐하실지 알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헌금함에 돈을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그들은 모두 넉넉한 가운데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43, 44) 이 과부의 생각과 행동은 종교 지도자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니산월 11일인 이날 예수께서는 이제 마지막으로 성전을 떠나십니다. 제자 하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들이며 건물들입니까!” (마가복음 13:1) 사실 성전 벽의 어떤 돌들은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성전이 오랫동안 끄떡없을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이런 말씀은 당연히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저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습니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반드시 다 무너질 것입니다.”—마가복음 13:2.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올리브 산의 한 장소로 올라가십니다. 어느 시점엔가 네 명의 사도 즉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한자리에 있게 되십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웅장한 성전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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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표징을 알려 달라고 하다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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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장
사도들이 표징을 알려 달라고 하다
마태복음 24:3-51 마가복음 13:3-37 누가복음 21:7-38
네 제자가 표징을 알려 달라고 하다
1세기와 그 이후에 있을 성취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
화요일 오후입니다. 니산월 11일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기간도 끝나 가고 있습니다. 그분은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도시 밖에서 묵으셨습니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아침 일찍부터 성전으로 오곤” 했습니다. (누가복음 21:37, 38) 이제 그런 일도 끝나고 예수께서는 네 사도 즉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함께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십니다.
이 네 사람은 따로 그분에게 왔습니다. 방금 예수께서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성전에 대해 우려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성전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전에 그들에게 이렇게 권하신 적이 있습니다. “준비하고 있으십시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40) 또한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그날”에 대해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7:30) 그런 말씀들이 방금 성전에 대해 하신 말씀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까요? 사도들은 몹시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며, 무엇이 주의 임재와 세상 제도의 종결의 표징이 되겠습니까?”—마태복음 24:3.
사도들은 가까이 보이는 바로 그 성전의 끝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그들은 ‘사람의 아들’의 임재에 관해서도 물어봅니다.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곳으로 가게 된 어떤 귀족’에 관해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가 생각났을지 모릅니다. (누가복음 19:11, 12) 끝으로, 그들은 “세상 제도의 종결”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세히 대답하면서 성전을 포함하여 기존의 유대 제도가 언제 끝날지를 보여 주는 표징을 알려 주십니다. 하지만 더 많은 점을 알려 주십니다. 이 표징은 미래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때가 그분의 “임재” 기간이며 이 땅의 전체 세상 제도의 끝 부분임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도들은 예수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지켜봅니다. 사실 그분이 예언하신 많은 일이 그들의 생애 중에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37년 후인 기원 70년에 깨어 살피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을 포함한 유대 제도의 멸망이 곧 닥칠 때 느닷없이 함께 멸망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예언하시는 모든 일이 기원 70년까지 이르는 기간에 실제로 다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왕국 권능을 가진 예수의 임재를 분명히 알려 주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사도들에게 그 답을 밝혀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전쟁을 벌이는 소리와 전쟁에 관한 소문”이 있을 것이고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왕국과 왕국이 맞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마태복음 24:6, 7) 또 “큰 지진이 일어나고 곳곳에 식량 부족과 역병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1:1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라는 경고도 하십니다. (누가복음 21:12)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며, 불법이 증가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리고 끝이 올 것입니다.”—마태복음 24:14.
예수의 예언이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그리고 그 이전 기간에 부분적으로 성취되기는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이후로 더 큰 성취가 있을 것도 생각해 두셨을 것입니까? 예수의 중대한 예언이 현대에 주로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임재의 표징에 포함시키시는 일 한 가지는 “황폐시키는 혐오스러운 것”이 등장하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24:15) 기원 66년에 이 혐오스러운 것은 “진을 친 [로마] 군대”의 형태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 군대에는 우상과도 같은 깃발 즉 군기가 있습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다음 그 성벽 일부를 허뭅니다. (누가복음 21:20) 그렇게 해서 “혐오스러운 것”은 그것이 서 있어서는 안 될 곳, 즉 유대인들이 “거룩한 곳”으로 여기는 장소에 서 있게 됩니다.
예수의 예언은 이렇게 더 이어집니다.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환난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었고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킵니다. 성전을 포함한 유대인의 “거룩한 도시”가 정복되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실제로 일종의 큰 환난입니다. (마태복음 4:5; 24:21) 그 도시와 유대인들이 그때까지 겪은 어떤 멸망보다 훨씬 규모가 큰 그 환난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따라 온 조직된 숭배 제도가 끝나 버립니다. 따라서 예수의 예언이 나중에 더 크게 성취될 때도 틀림없이 끔찍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예언된 기간에 가져야 할 확신
예수께서는 왕국 권능을 가진 자신의 임재와 세상 제도의 끝에 관한 표징에 관해 사도들에게 해 주실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제 사도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런 자들이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자들까지 잘못된 길로 인도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24) 그렇지만 이 선택된 자들은 잘못된 길로 인도되지 않을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은 눈에 보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의 임재는 눈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제도의 끝에 있을 더 큰 환난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9) 이 섬뜩한 말씀을 듣고 있는 사도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몹시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일들을 보고 어떤 영향을 받을 것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주하는 땅에 닥칠 일들에 대한 두려움과 예상 때문에 사람들은 기절할 것입니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26) 정말이지 예수의 이 말씀은 인류가 존재한 이후 가장 어두운 시기가 어떠할 것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위안이 되게도,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올’ 때 모든 사람이 다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도들에게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마태복음 24:30) 그분은 “선택된 자들 때문에” 하느님이 개입하실 것이라고 이미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22) 그러므로 그처럼 충실한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질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격려가 되는 이런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일어서서 머리를 드십시오. 여러분의 구출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누가복음 21:28.
그렇다면 이 예언된 기간에 살고 있는 예수의 제자들은 끝이 가깝다는 것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린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면 여러분은 여름이 가깝다는 것을 압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그가 문 앞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마태복음 24:32-34.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표징의 여러 부면이 성취되는 것을 볼 때, 끝이 가깝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중대한 기간에 살고 있을 제자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이렇게 교훈하십니다.
“그 날과 그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노아의 날처럼,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쓸어버릴 때까지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36-39) 예수께서는 자신의 임재와 비교할 만한 것으로 과거 노아 시대의 홍수를 언급하시는데, 그 홍수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리브 산에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도들은 분명 계속 깨어 있을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과 과음과 생활의 염려로 짓눌려, 갑자기 그날이 올무처럼 순식간에 여러분에게 닥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깨어 있고 항상 간구하십시오.”—누가복음 21:34-36.
예수께서는 자신의 예언이 제한된 규모로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십니다. 그분이 예언하시는 사건들은 몇 십 년 안에 있을 일이나 예루살렘 도시와 유대 민족에게만 영향을 미칠 일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사태의 진전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계속 깨어서 살피며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점을 강조하려고 또 다른 비유를 드십니다. “한 가지는 알아 두십시오.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았더라면, 깨어 있으면서 집에 도둑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준비하고 있으십시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4:43, 44.
이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낙관적인 견해를 가질 이유를 제시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예언이 성취되는 기간에 깨어서 활동할 “종”이 있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보증하시는데, 사도들이 쉽게 연상할 만한 상황을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안 일꾼들을 돌보도록 임명하여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누어 주게 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과연 누구입니까? 주인이 와서 그 종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종은 행복합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주인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그를 임명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종”이 악한 태도를 키워서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면, 주인이 “그를 매우 엄하게 처벌”할 것입니다.—마태복음 24:45-51. 누가복음 12:45, 46 비교.
그렇지만 예수의 이 말씀은 일부 제자들이 악한 성향을 키울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인상 깊게 새겨 주시려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어지는 비유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그분은 제자들이 계속 깨어서 활동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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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살피라는 교훈—열 처녀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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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장
깨어 살피라는 교훈—열 처녀
예수께서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임재와 세상 제도의 종결에 관한 표징을 묻는 사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계십니다. 이제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지혜로운 교훈을 하십니다. 이 비유가 성취되는 것을 볼 사람들은 예수의 임재 기간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이런 말씀으로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하늘 왕국은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열 처녀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중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마태복음 25:1, 2.
이 말씀은 하늘 왕국을 상속받는 제자들 중 절반은 어리석고 절반은 슬기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요점은 왕국과 관련하여 깨어 살필 것인지 한눈을 팔 것인지를 제자들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자신의 종들 개개인이 충실을 유지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고 계십니다.
이 비유에서 열 처녀 모두 신랑을 환영하고 결혼 행렬에 가담하려고 나갑니다. 신랑이 도착하면 처녀들은 자기 등불을 들고 길을 비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신랑이 미리 준비해 둔 집으로 신부를 데리고 갈 때 신랑을 영예롭게 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져갔지만 기름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불과 함께 병에 기름을 담아 가져갔습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그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5:3-5) 그들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신랑이 빨리 오지 않습니다. 너무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그사이에 처녀들이 잠이 듭니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어떤 귀족 즉 멀리 가서 “마침내 ··· 왕권을 받은 후 돌아”온 귀족 이야기가 생각날지 모릅니다.—누가복음 19:11-15.
예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 마침내 신랑이 도착할 때 어떤 일이 있는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신랑이다! 나가서 맞이하여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마태복음 25:6) 그러면 그때 열 처녀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준비를 갖추고 깨어 살피고 있습니까?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그러자 그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자기 등불을 준비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와 너희가 함께 쓰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구나. 차라리 기름을 파는 사람들에게 가서 너희가 쓸 것을 사렴.’”—마태복음 25:7-9.
이처럼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깨어 살피지 않고 신랑이 도착할 때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 처녀들은 등불에 쓸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름을 더 구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된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결혼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그 후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열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진실로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나는 당신들을 알지 못하오.’” (마태복음 25:10-12) 준비를 갖추고 깨어 살피지 않은 결과가 정말 안타깝지 않습니까!
사도들은 예수께서 언급하시는 신랑이 예수 자신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신랑에 비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5:34, 35) 그러면 지혜로운 처녀들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는 왕국을 받을 “적은 무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옷을 입어 준비하고 여러분의 등불을 켜 놓으십시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32, 35)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 비유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처녀들이 자신들과 같은 충실한 제자들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비유를 통해 예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이 비유의 결론에서 그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살피십시오. 여러분은 그 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5:13.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의 임재와 관련하여 충실한 제자들이 ‘깨어 살펴야’ 한다고 교훈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충실한 제자들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를 갖추고 깨어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귀중한 희망을 잊은 채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상을 놓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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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해야 한다는 교훈—달란트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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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장
부지런해야 한다는 교훈—달란트
예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시다
여전히 네 사도와 함께 올리브 산에 계신 예수께서는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며칠 전에 예리코에서 미나의 비유를 들어 왕국이 먼 미래에 올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제 말씀하시는 비유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의 임재와 세상 제도의 종결에 관한 질문을 받고 하신 대답의 일부로서, 그분이 맡기신 것을 가지고 제자들이 부지런히 일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비유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늘 왕국은 어떤 사람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긴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5:14) 예수께서 이미 자신을 “왕권을 받아 오려고” 외국으로 간 사람에 비하신 적이 있으므로, 사도들은 이 비유에 나오는 “사람”이 예수를 가리킨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19:12.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외국으로 가기 전에 종들에게 값진 소유물을 맡깁니다. 예수께서는 3년 반 동안 봉사하면서,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집중하셨고 제자들이 그 일을 하게 훈련하셨습니다. 이제 곧 떠나가실 그분은 제자들이 훈련받은 대로 일할 것임을 확신하십니다.—마태복음 10:7; 누가복음 10:1, 8, 9. 요한복음 4:38; 14:12 비교.
비유에서 그 사람은 자기 소유를 어떻게 나누어 줍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외국으로 갔습니다.” (마태복음 25:15) 이 종들은 주인이 맡긴 것으로 무엇을 할 것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해서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남길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즉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그렇게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만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겨 놓았습니다.” (마태복음 25:16-18) 주인이 돌아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을 보면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결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5:19) 처음 두 종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주인이 맡긴 것을 가지고 부지런히 열심히 일해서 이익을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두 배로 늘렸으며,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 당시에 노동자가 한 달란트에 해당하는 돈을 벌려면 19년가량 일해야 했습니다.) 주인은 그 종들 각자에게 이렇게 똑같은 말로 칭찬해 줍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실했으니, 네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네 주인과 기쁨을 함께 나누어라.”—마태복음 25:21.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지나치게 요구하는 분이라서,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넉가래질하지 않은 곳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가서 주인님의 달란트를 땅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여기 주인님의 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24, 25) 그 종은 주인에게 적어도 얼마의 이익이 생기도록 돈을 은행가에게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상 주인에게 손해가 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적절하게도,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아, 성심껏 부지런히 일하려는 종에게 줍니다. 주인은 자신의 표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질 것이지만, 가지지 않은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복음 25:26, 29.
예수의 제자들은 이 한 가지 비유만으로도 생각할 것이 많아집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맡기시는 것 즉 제자를 삼는 귀한 특권이 무척 값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 특권을 부지런히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그분은 자신이 맡긴 전파 활동을 모든 제자가 동일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다. 비유에서 알려 주듯이 각자는 “능력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게으른” 태도를 보이고 주인의 소유를 늘리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예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라는 보증의 말씀을 듣고 정말 기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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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양과 염소를 심판하시다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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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장
권능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양과 염소를 심판하시다
예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시다
올리브 산에서 방금 예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임재와 세상 제도의 종결의 표징에 관해 사도들이 한 질문에 대답하고 계십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 대답을 어떻게 마무리 지으십니까? 마지막으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들어 그 대답을 끝내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시작하면서 그 배경을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신의 영광 중에 모든 천사와 함께 와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1) 예수께서는 이 비유의 중심 인물이 자신임을 분명히 지적하십니다. 그분은 종종 자신을 가리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8:20; 9:6; 20:18, 28.
이 비유는 언제 성취될 것입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영광 중에” 천사들과 함께 “와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을 때 성취될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과 함께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에 대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언제 있을 것입니까? “환난 후에 즉시”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9-31; 마가복음 13:26, 27; 누가복음 21:27) 그러므로 양과 염소의 비유는 미래에 예수께서 영광 중에 오실 때 성취될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무슨 일을 하실 것입니까?
예수께서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면] ···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모아질 것이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리하듯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분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양은 자기 오른편에, 염소는 자기 왼편에 둘 것입니다.”—마태복음 25:31-33.
예수께서는 은혜받는 쪽으로 분리된 양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왕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께 축복받은 사람들아, 와서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된 왕국을 상속받아라.’” (마태복음 25:34) 양들이 왕의 은혜를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왕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다.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나를 맞아들여 후대했고, 벌거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 주었다.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와 주었다.” 이 양들 곧 “의로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 그런 선행을 했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왕이 대답합니다. “너희가 이 내 형제들 중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 25:35, 36, 40, 46) 양들이 그런 선행을 하늘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는 병들거나 굶주리는 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선행은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왼편으로 분리된 염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그리고 [왕은] 자기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나를 맞아들여 후대하지 않았고, 벌거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 주지 않았으며, 병들고 감옥에 있을 때에 나를 돌보아 주지 않았다.’” (마태복음 25:41-43) 염소들이 이런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유는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사도들은 미래에 있을 이 심판으로 인해 영구적인—영원한—결과가 있을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왕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영원한 끊어짐을 당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마태복음 25:45, 46.
예수의 제자들은 누구나 그분이 사도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내용을 통해 많은 점을 생각해 보고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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