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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한 진화인가, 창조의 산물인가?
    깨어라!—1982 | 1월 1일
    • 우연한 진화인가, 창조의 산물인가?

      열띤 논제가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과학적 창조론은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 그것은 미국 공립 학교의 과학 수업에서 진화론과 균등한 시간 배당을 원하고 있다. 그 보다는 약한 정도로 그것은 ‘캐나다’에서도 논쟁점이 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것이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 수업에 속하지 않으며,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논쟁이 미국 전역에서 신문들의 표제가 되고 있다. 그 문제가 주 의회에서 토론되어 왔으며 법정 심리의 쟁점이 되어 왔다.

      심지어 잘 알려진 미국 과학 진흥 협회까지도 작년의 모임에서 창조론을 맹렬히 비난하고, 내년 회의에서는 창조론을 저지하는 방법을 토의할 것임을 잠정적으로 선언하였다.

      100여년 전에 ‘다아윈’에 의해 시작된 논쟁이 아직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에는 말려들지 않으면서 ·⁠·⁠·

      본지 특별호는 다음의 몇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려하고자 한다.

      진화는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확증된 사실인가? 아니면 입증되지 않은 학설인가?

      창조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과학적인가?

      진화론자들은 무생명의 화학 물질이 어떻게 살아서 번식하는 최초의 단세포가 되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가?

      화석 기록은 그 최초의 세포가 어떻게 인간을 포함한 지상의 온갖 생물들로 진화하였는지를 알려 주는가?

      마구 잡이 돌연변이가 생물에서 복잡한 설계와 경탄할 만한 본능을 산출할 수 있는가?

      놀라운 세포를 들여다 봄으로 조사를 시작해 보자. 그것은 한 때 생각하던 것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 놀라운 세포
    깨어라!—1982 | 1월 1일
    • 놀라운 세포

      내부를 살펴봄

      100,000,000,000,000개의 인체 세포가 그저 우연히 생겨났는가?

      ‘차알스 다아윈’ 시대에 진화론이 제창되었을 때, 과학자들은 후에 발견된 세포의 엄청난 복합성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보통 세포의 대부분의 부분들은 강력한 전자 현미경으로나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직경이 0.0025‘센티미터’에 불과한 용기 속에 가득 들어찬—대표적인 동물 세포의 몇몇 부분들이 아래의 도면에 나와 있다.

      [도해]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세포막

      ‘골지’체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중심자

      ‘리보소옴’

      ‘리소소옴’

      ‘미토콘드리아’—이 작은 ‘소시지’ 모양의 부분들은 ATP라 불리우는 특별한 분자를 생산하는 중심지이다. 세포는 ATP 분자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다. ‘미토콘드리아’의 복합막 안에서 ATP 생산은 맹렬한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각 ATP 분자를 만드는 데는 12가지 이상의 각기 다른 화학 반응들이 필요하며, 인체 세포들은 전부 함께 1초에 수 조(兆)개의 ATP 분자를 만들어 낸다.

      ‘리보소옴’—아주 조그마한 이 미립자들은 강력한 전자 현미경으로도 거의 볼 수 없으며, 그것은 대부분의 세포에 수천개 들어 있다. ‘리보소옴’은 다른 분자들로부터의 지시를 읽고 신체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데, 정확한 설계 명세서에 따라 그렇게 한다. ‘리보소옴’은 대단히 복잡하며, 적어도 55개의 각기 다른 단백질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소관(微小管)—세포들은 이 구조 요소들을 만들거나 분해하여 세포의 “골격”에 유연성을 부여함으로써 모양을 바꿀 수 있다. 아주 긴 신경 세포 속에서, 미소관들은 내부 “급수송(急輸送)”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리소소옴’—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효소들이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들이기 때문에, 세포의 위장 역할을 하여 물질들을 세포가 사용할 수 있도록 부수는 일을 한다. 백혈구 세포들은 자기의 ‘리소소옴’ 안에 든 효소들을 가지고 해로운 ‘박테리아’를 공격한다.

      소포체(小胞體)—단백질과 기타 분자들을 넣어 두는 창고의 역할을 하는 것 같으며, 이들 분자들은 각기 분리되어 축적되었다가 나중에 세포 안에서 사용되거나 밖으로 실려 내 보내진다.

      ‘골지’체—소포체에서 나오는 새로 합성된 단백질을 세포가 사용할 수 있도록 일괄하는 것을 돕는 것 같다.

      핵막(核膜)—세포의 DNA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핵막은 이중막으로 되어 있으며, 단순한 구멍들이 아니라 어떤 때는 열리고 어떤 때는 열리지 않는 복합적인 문들인 공(孔)들을 내포한다.

      염색체—핵 내부에 위치하고, 그 안에 세포의 DNA 즉 유전자 종합 기본 계획이 들어 있다. DNA는 ‘히스톤’이라고 불리우는 특별한 단백질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것은 DNA 조절을 도울 수 있다.

      중심자(中心子)—이 원통형의 기관들은 각기 세 개의 작은 관들로 된 아홉 개의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가 분열할 때, 중심립은 새로운 각 세포가 올바른 유전 정보를 얻도록 염색체들을 따로 따로 분리시키는 아주 가는 섬유를 조절함이 분명하다.

      세포막—단순한 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막은 세포 안으로 들어 오는 것과 밖으로 나가는 것들을 조절함에 틀림없다. 너무 액체가 많으면 세포가 파열될 수 있는 반면 액체가 충분치 않으면 세포 내의 화학 반응이 중지될 것이다. 식품은 위험한 물질들 때문에 주의깊은 조사를 받아야 하며, 기다리고 있는 ‘리소소옴’으로 운반되도록 얇은 막으로 안전하게 둘러싸인 다음에야 세포로 들어 가는 것이 허락된다.

      물론 이상의 목록은 겉만 겨우 훑어본 것에 불과하다. 단 하나의 세포가 이제까지 인간이 만든 어떤 것보다 엄청나게 더 복잡하다. 과연, 그 세포가 우연히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 ‘박테리아’가 우연히 생길 수 있었는가?
    깨어라!—1982 | 1월 1일
    • ‘박테리아’가 우연히 생길 수 있었는가?

      가장 단순한 생명체의 복합성

      단순한가? ‘박테리아’는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분자들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4면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은 동물 세포들이 경이로운 생물학적 복합체임을 쉽사리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생명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즉각 덧 붙일 것이다. “지상 최초의 생명체는 ·⁠·⁠· 아마 현대의 발효 ‘박테리아’를 닮은 단세포 실체들이었을 것이다”라고 화학 교수 ‘리차드 E. 딕커슨’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기술하였다.

      그렇다면 좋다. 하등 ‘박테리아’를 고찰해 보고 창조주 없이 그것이 존재하게 될 수 있었는가를 당신이 직접 판정해 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은 ‘박테리아’의 세포벽이 보다 고등한 생명체의 세포벽보다 원시적일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다. 보다 고등한 식물 세포들은 일련의 당분 분자들로 이루어진 섬유소 벽을 가지고 있다. ‘박테리아’의 세포벽 역시 일련의 당분 분자들로 시작하지만 이 일련의 열은 짧은 열의 ‘아미노’산과 함께 복잡하게 엉켜져 있다. 한 과학자가 설명한 것처럼 전체 세포벽은 “보통 보기에는 거대한 자루 모양의 분자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이 자루는 극히 강하다. ‘박테리아’ 세포벽은 약 6평방 ‘센티미터’당 약 136‘킬로그램’의 내부 압력을 터지지 않고 견뎌낸다. 자동차 ‘타이어’에 그런 압력을 가해 보라!

      ‘박테리아’가 보다 고등한 생명체의 세포처럼 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박테리아’까지도 일반적인 유전 물질인 DNA를 상당히 가지고 있다. 핵막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은 ‘박테리아’의 DNA는 일반적으로 ‘박테리아’ 내부에 긴 단일 고리를 형성한다. 과학자 ‘존 캐언즈’ 박사에 의하면, 보통 ‘콜리 박테리아’(대장균)는 그것의 거대(巨大) DNA 고리 속에 “하나의 생물 체계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가장 큰 분자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은 어떤 원시 해안으로 단지 밀려 들어 올 수 있었던 그 어떤 것을 말하는 것 같은가? “가장 큰 분자”가 비활성 화학 물질의 우연한 결합체일 수 있는가?

      ‘콜리 박테리아’는 다음 분열을 위한 준비로 DNA를 증식한다. 그 일이 일어나려면 비비꼬인 큰 ‘지퍼’처럼 설계된 DNA 분자 ‘지퍼’ 양쪽의 반쪽들이 그 나머지 반쪽을 형성할 수 있도록 “열려”져야 한다. DNA 분자의 염기쌍이라 불리우는 부분들은 ‘지퍼’의 이에 해당한다. 대단치 않은 ‘콜리 박테리아’ 안의 그러한 염기쌍들은 분당 150,000개의 비율로 빈틈없이 정확하게 증식되고 있다.

      ‘콜리 박테리아’가 여행할 필요가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글자 그대로 ‘프로펠러’가 하나 솟아난다. 생물학 교수 ‘호워드 버어그’에 의하면 6개의 사상체(絲狀體)가 세포 여기 저기에 생겨나 함께 모여 다발을 형성하게 된다. 이 사상체들은 회전을 하는 데 그것은 “회전자, 고정자 및 회전 축받이와 똑같은 구조”를 요하는 것이라고 ‘버어그’ 박사는 말한다. 그러한 “원시적” 형태의 생명체로서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 뿐이 아니다. 모든 생물들처럼, ‘콜리 박테리아’도 DNA를 사용하여 자기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화학 물질들의 합성을 지시한다. 하등 ‘박테리아’는 필요에 따라 DNA 마디들을 활성화시키거나 쉬게 하는 정교한 ‘피이드 백’ 장치를 통하여 DNA를 제어한다. 생화학자 ‘장 삐에르 샹죄’는 “누구나 잠시 멈추어 그 제어 체계의 놀라운 경제성과 효율성에 관해 말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하고 말하면서 이렇게 탄복한다. “제어하는 데 세포는 조금의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습니다. ·⁠·⁠· 작동하는 데 ‘에너지’가 전혀 안드는 제어 계전기를 갖춘 공장은 산업의 효율성이 달성할 수 있는 최종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박테리아’의 복합성만이 그것들의 진화 이론을 논박하는 것이 아니다. ‘박테리아’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단백질 자체와 기타 생물들은 진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희박함을 입증한다. 어떻게 그러한가?

      진화론자들은 얼마의 ‘아미노’산을 포함한 ‘가스’ 및 수많은 합성 화학 물질의 혼합물에 방전을 일으킨 1952년 실험을 중시한다. 이 실험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아미노’산은 적절히 결합되면 모든 생물의 생성의 기본 요소인 단백질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미노’산이 결합되는 방법에 따라 그것은 “좌형”일 수도 있고 “우형”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스’ 및 방전에 의해 생겨난 ‘아미노’산은 좌형 및 우형 표본들을 동수 내포한다. 그러나 진화론자 ‘리차아드 딕커슨’이 시인한 것처럼, “어떤 특별한 적응형들을 제외하고는 ·⁠·⁠· 오늘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은 모두 좌형 ‘아미노’산들만 결합시킨다.”

      전형적인 단백질이 400개의 ‘아미노’산을 가졌을 경우 그것들 모두가 좌형일 확률은 동전을 던져 400번 연속 윗 부분만 나올 확률에 비할 수 있다. 그것은 1에 0을 100개 이상 붙인 수 중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확률이다. 그것은 알려진 우주의 모든 은하들의 총 원자 수의 몇배나 되는 수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만 어쩌다 400개의 좌형 ‘아미노’산으로 된 단백질이 저절로 결합되었다 하더라도 20가지의 적절한 좌형 ‘아미노’산들이 올바른 순서로 형성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다.

      우연에 의한 단백질의 자연 발생은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될 수 있다. 즉 만져서 구별할 수 있는 문자와 수자가 적힌 사각형 모양의 작은 나무들의 각각 똑같은 양이 든 상자가 당신에게 있다고 해 보자. 이제 눈을 가리고, 당신이 이 작은 사각형들 중에서 400개를 골라낸다고 하자. 당신이 수자는 내버려 두고 문자만 골라낼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다. 당신이 고른 문자가 적힌 400개의 판자들은, 당신이 고른 순서로 나란히 적어 놓았을 때, 의미있고 문법적으로 정확한 글귀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콜리 박테리아’의 복합적인 체계는 진화가, 원시적인 생명체일지라도, 생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의 또 다른 문제점을 드러내 준다. DNA 분자가 생명에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생명이 나올 수 없다. 효소와 같은 다른 매우 복잡한 분자들이 DNA 활동을 지시하고 함께 협력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생명체는 여러 가지 매우 복합적인 체계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어 함께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작용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어떠한 복합적인 체계도 다른 체계들이 적소에 있지 않는 한 원시적인 생명체조차 결코 생성시킬 수 없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그저 진화에 대한 자기들의 “신앙”을 주장하여 그러한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6면 삽입]

      ‘박테리아’의 세포벽은 약 6평방 ‘센티미터’당 약 136‘킬로그램’의 내부 압력을 견뎌낸다

      [7면 삽입]

      ‘콜리 박테리아’의 염기쌍들은 1분에 150,000개씩 증식되고 있다

  • 화석 기록—진화론자들의 최상의 증거
    깨어라!—1982 | 1월 1일
    • 화석 기록—진화론자들의 최상의 증거

      진화론자들의 주장과 사실

      진화론자들 스스로가 화석 기록에 관해 말하는 점들

      그들의 주된 증인

      “화석들은 진화의 최상의 증거가 되고 있다.”—‘레지널드 맨웰’ 저 「원생 동물학 개론」, 36면.

      “화석의 도움으로 이제 고생물학자들은 우리에게 고대 생물을 훌륭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리차아드 캐링턴’ 저 「지구사 입문」, 48면.

      “고생물학은 진화가 진리임을 결정적으로 입증해 주었다.”—‘D. D. 데이비스’ 저 「유전학, 고생물학 및 진화론」(‘엡슨’, ‘마이어’, ‘심프슨’ 공동 편집), 87면,

      그들의 주된 증인의 증언

      생명의 기원에 관하여

      “지질학은 우리에게 생명의 기원에 관해 아무 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A. C. 슈어드’ 저 「식물사」.

      미생물에 관하여

      “우리는 아직도 원생 동물의 진화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맨웰’ 저 「원생 동물학 개론」, 42면.

      식물에 관하여

      “학술상의 원시 형태를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형태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지만, 실지로 그런 형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슈어드’ 저 「식물사」.

      곤충에 관하여

      “원시 조상 곤충들이 어떻게 생겼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알려진 화석은 없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곤충류」 14면.

      어류에 관하여

      “최초의 물고기는 진화하였다. ·⁠·⁠·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이 새로운 동물과 어떤 그 이전 형태의 생명을 연결 짓는 ‘중간 동물’이 전혀 없다. 물고기는 모든 동물을 고등 생물과 하등 생물로 구분 짓는 구조인 등뼈를 가지고 나타났을 뿐이다.”—‘쟝 죠르즈’ 저 「동물 세계의 경이와 신비」 25면, (「리더스 다이제스트」사 발행).

      양서류로 변해가는 어류에 관하여

      “이 과도기로 추정되는 것의 자취는 극 소수만 발견되었을 뿐이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어류」, 64면.

      파충류로 변해가는 양서류에 관하여

      “척추 동물 역사의 화석 기록의 낙담케 하는 특징 중 한 가지는 그것이 껍질에 싸인 알이 발달 중이던 때인 파충류의 최초기 진화에 관해 알려 주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라이프’ 자연계, 「파충류」, 37면.

      포유류로 변해가는 파충류에 관하여

      “불행히도, 화석은 우리가 최초의 진짜 포유류라고 간주할 만한 생물에 관해 알려 주는 바가 거의 없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포유류」, 37면,

      “포유류와 파충류를 [이어 주는] 중간 동물이 없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파충류」, 41면.

      조류로 변해가는 파충류에 관하여

      “파충류에서 조류로의 현저한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관한 화석의 증거는 없다.”—‘W. E. 스윈튼’ 저 「생물학과 비교 생리학」, 제 1권, 1면.

      유인원에 관하여

      “약 6천만년 내지 8천만년에 달하는 제 3기 전체 기간에 대해, 우리는 몇 주먹의 부러진 뼈들과 치아들로 영장류 진화의 역사를 판독해야 한다.”—「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956년 6월호, 98면, ‘아이슬리’ 기고.

      “불행히도, 우리가 유인원의 출현을 추적할 수 있게 해줄 만한 화석 기록은 아직도 절망적으로 부족하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영장류」, 15면.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불행히도, 인간 자신의 특유한 계열을 따른 진화 과정의 초기 단계들은 아직도 전적으로 신비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영장류」, 177면.

      “비교적 최근의 역사조차 불확실한 점들 투성이다. 권위자들은 흔히 기본적인 점들과 세부점들 모두에 관해 심한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메오도시우스 도브찬스키’ 저 「진화하는 인류」, 168면.

      우리의 결론:

      우리는 예수께서 알려 주신 적이 있는 절차,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라”라는 절차를 따라 본 것이다. (누가 19:22) 진화론자들은 화석은 진화의 최상의 증거이며, 그것은 진화를 훌륭하게 설명해 주며, 결정적으로 진화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미생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식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곤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양서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파충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포유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조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유인원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알려 주는 화석은 없다.’

      그들의 “최상의 증거”는 증거가 아니다. 그들의 ‘훌륭한’ 설명은 완전 백지 설명이다. 그들의 ‘결정적 증거’는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의 주된 증인의 불만족스런 증언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가? 다음 기사는 그들의 수정된 책략을 폭로한다.

  • 진화론의 개혁
    깨어라!—1982 | 1월 1일
    • 진화론의 개혁

      ‘다아윈’의 대안을 구함

      새로운 해답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진화가 “거의 50년 내에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깊은 개혁을 겪고 있다”고 1980년 10월 ‘시카고’에서 열린 한 모임에 관한 보고서는 말하였다. 약 150명의 진화론 전문가들이 “대(大)진화”라는 주제로 4일간의 회의를 열었다.

      미국 과학 진흥 협회의 기관지 「사이언스」는 그 분위기를 이렇게 보도하였다. “개성의 충돌과 이론상의 논박은 눈에 띄는 긴장을 조장하였고 ·⁠·⁠· 진행 과정은 때때로 무질서하고 격렬하기까지 하였다.” 실망한 많은 과학자들은 “논문의 많은 부분이 자료의 제공보다는 설명과 주장으로 더 특색을 이루었”음을 불평하였다. 그러나, 자료가 아닌 주장이 오랫동안 진화론자들의 전술이지 않았는가?

      ‘다아윈’은 생명체가 단 세포 생명체에서 인간을 포함한 지상의 온갖 생물로 약간씩의 변화를 통하여 아주 서서히 진화하였다고 말했었다. 화석 기록이 그러한 변천을 입증해 주어야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함을 인정하였다. 백 이십년 전에, 그는 그 기록이 불충분하다고 말하였지만, 머지 않아 그 간격들을 메울 더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리라고 생각하였다.

      “지난 120년 동안 발견되리라고 말했던 모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뉴우요오크’의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나일즈 엘드리지’는 선언하였다. 그는 새로운 종(種)이 점진적인 변천으로부터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돌발적 진화로 생겨났다고 믿고 있다. ‘다아윈’의 진화론에 필요한 여러 가지 과도기 형태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어떤 화석도 그 간격을 이어 주지 못할 것이다.

      ‘하바드’의 ‘스티븐 제이 고울드’도 ‘엘드리지’의 의견에 동의한다. ‘시카고’ 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확실히 기록은 빈약하지만, 우리가 보게 되는 변천의 돌발성은 간격들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돌발적 방식의 진화적 변화로 인한 결과다.” UCLA 고생물학자 ‘에버레트 올슨’은 “화석 기록이 자료의 근거라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말하였다. 서서히 변화했다는 ‘다아윈’의 학설의 주요 옹호자였던 ‘프란시스코 아얄라’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이제 나는 고생물학자들의 말로 보아 약간씩의 변화들이 축적되지 않음을 확신합니다.”

      「사이언스」지는 그 논쟁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시카고’ 회의의 중심 논점은 소진화[종의 범위 안에서의 약간씩의 변화들]의 기초가 되는 기작(機作)들이 대진화[종의 경계를 뛰어 넘는 큰 도약들] 현상을 설명하는 데 확대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 명료하게 주어질 수 있는 대답은 ‘아니다’였다.”

      진화에 대한 이처럼 수정된 견해를 “급변의 평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한 가지 종이 화석 기록에서 수백만년 동안 존재하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새로운 종이 마찬가지로 갑자기 기록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새로운 안이 아니다. ‘리차아드 골드쉬미트’가 1930년대에 그 안을 발전시켰으며, 그것을 “그럴듯한 궤변” 가설이라고 불렀고, 당시에 그로 인해 많은 비방을 받았다. “급변의 평형”이란 명칭은 훨씬 더 인상적이다.

      이 학설은 진화론자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 이론은 변천 형태들이 나타나야 할 필요성을 없애 주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변화들이 너무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화석은 그 사건들을 기록할 수 없지만, 우리가 그러한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유리해질 수는 없다. 창조론자들이 자연의 복잡한 설계에는 설계자가 필요함을 지적하였을 때, 진화론자들은 자연 도태를 설계자의 자리에 앉혔다. 이제 자연 도태의 역할이 약해지자, 우연을 그 자리에 앉혔고, 창조론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듯이, 진화론자들은 우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고울드’는 자연 도태가 우연에게 밀려났음을 이렇게 인정한다. “유전 변화의 상당한 양은 자연 도태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으며 개체군들을 통해 마구잡이로 퍼질 수 있다.”

      1979년 1월에 나온 ‘시카고’의 「박물학 회보」에서 지질학 관장 ‘데이비드 라우프’는 ‘‘다아윈’과 고생물학 사이의 불일치’에 관해 기술한다. ‘라우프’의 말에 의하면 화석 기록이 변화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자연 도태로서의 가장 이치적인 결과로서의 변화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며 ·⁠·⁠· 그런 변화는 좋은 예들이 의외로 희귀하긴 하지만 자연계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 자연 도태에 대한 최근의 주요 대안은 순전한 우연의 결과와 관련이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적자생존 못지 않게 행자(幸者)생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마 “포유류가 공룡보다 더 낫다기 보다는 단지 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다아윈’에 관한 이러한 말로 그의 기사를 결론지었다. “그가 빠뜨린 부분은 우연이라는 간단한 요소였다!”

      우연이 진화를 인도하는 주도 역할을 함으로 말미암아 설계에 관한 이러한 괴로운 질문이 다시 대두된다. 즉 어떻게 우연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복잡하고 경탄할 만한 설계를 달성할 수 있는가? ‘다아윈’은 눈 때문에 자신의 신념이 크게 흔들렸다고 말하였다. 더우기 우연에 의한 그러한 설계의 기적들은 단 한번만 일어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무관한 종들 가운데서 재삼재사 일어나야 된다.

      예를 들어, 낙지는 인간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그 눈은 놀라울 정도로 “인간의 눈”을 닮았다. 서로 무관한 물고기와 뱀장어는 전기 충격 장치를 가지고 있다. 서로 무관한 곤충, 벌레, ‘박테리아’ 및 물고기들은 냉광(冷光)을 발하는 발광 기관을 가지고 있다. 서로 무관한 칠성 장어, 모기 및 거머리는 그들의 먹이의 피가 응고되지 않게 하는 항응고제를 가지고 있다. 서로 무관한 바늘 두더지와 고슴도치는 독립적으로 진화된 가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서로 무관한 돌고래와 박쥐가 음파 탐지 체계를 가지고 있다. 서로 무관한 물고기와 곤충이 공기와 물속에서 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서로 무관한 많은 동물들—갑각류, 어류, 곤충류, 조류, 포유류—에게 놀라운 이주 능력이 있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진화론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온혈 동물들은 냉혈인 파충류로부터 세번의 각기 다른 발달을 한 것이고, 천연색 시력은 세번 독립적으로 발달하였으며, 날개와 비행력은 서로 무관한 물고기, 곤충류, 익수룡(翼手龍)류, 조류 및 포유류에서 다섯번 발달하였다고까지 믿게 하려 한다.

      우연이 그러한 재주를 몇번이고 반복할 수 있었는가? 수확의 확률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외친다. 진화론의 개혁은 진화론이 간격이 떠 있는 화석 기록을 가지고 살아남게 도왔을지 모르지만, 우연에게 그것이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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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듯한 궤변” 가설이 “급변의 평형”이 되어 재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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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자생존이 있기 전에 먼저 우연에 의한 적자의 출현이 있어야 한다

  • 하나님께서 그 일을 처음에 하셨다
    깨어라!—1982 | 1월 1일
    • 하나님께서 그 일을 처음에 하셨다

      인간은 모방자

      인간들은 하나님의 발명품들에 대해서는 그분께 영예를 돌리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발명품에 대해서는 특허를 얻고 있다

      온도계

      인간은 매우 좋은 감도의 온도계와 기타 열 계기들을 만들어 왔지만, 그런 것들은 어떤 뱀들이 수천년간 발휘해온 선천적 능력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예를 들어, 방울뱀은 섭씨 천분의 일도의 열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보아’뱀은 0.035초만의 열 변화에 반응을 보이는 반면, 인간이 만든 좋은 감도의 계기로는 같은 측정을 하는 데 일분이 걸린다. 그러한 뱀들은 열 감지력을 사용하여 어두운 데서 온혈 동물 먹이를 찾아서 잡아 먹는다. 그 열 감각기들은 또한 열원의 방향도 알려 준다.

      체온 저하법

      외과의들은 현재 특정한 수술들을 위해 체온을 낮추어 심장 박동과 호흡을 느리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오래 전에, 동면하는 동물들은 체온 저하법을 실행하였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13줄박이 땅 다람쥐는 여름 활동 중에는 매분 수백회의 속도로 심장 박동과 호흡을 한다. 그러나, 겨울 잠을 자는 동안에는 심장 박동이 일분에 한번 내지 두번으로 느려지고 호흡은 오분마다 한번씩의 느린 호흡이 된다. 체온은 바깥의 추운 겨울 날씨와 몇도 차이 안나는 범위까지 떨어진다. 그렇지만 겨울 내내 혈액은 전부 순환하고, 혈압은 정상을 유지하며, 산소가 공급되고, 근육 상태도 유지된다.

      전기

      ‘루이기 갈바니’의 동물 전기에 관한 논문에 자극을 받아, ‘이탈리아’의 물리 화학자 ‘볼타’는 최초의 인공 정전류 전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수천년 전에 약 500종의 전기 어류들은 전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메기는 350‘볼트’의 전류를 생산할 수 있고, 북 대서양의 거대한 시끈 가오리는 60‘볼트’에 50‘암페어’의 단속 전류를 방출한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전기 뱀장어의 충격은 886‘볼트’로 측정된다. 전류는 전기판들로 된 더미가 전지 효과를 냄으로써 생산된다. 각 전기 판은 겨우 일 ‘볼트’도 못되는 전류를 생산하는 개별적인 전기 화학 세포인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들 안에서 수천개의, 때로는 수백만개의 그런 세포들이 직렬과 병렬로 다양하게 연결되면 천연 전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화학전

      신경 ‘가스’ 안의 두개의 산탄 통에 든 화학 물질은 비교적 독성이 없지만 그 탄환이 발사되면 화학 물질들이 뒤섞이고, 폭발하여 치사적인 신경 ‘가스’가 방출된다. 이보다 오래 전에, 그리고 순전히 방어의 목적으로, 방귀벌레는 화학 반발력을 사용해 왔다. 분비선들은 두 가지의 다른 화학 물질을 생산하여, 근육 판막으로 폐쇄된 각기 다른 방에 저장해 둔다. 공격을 받으면, 그 판막이 열리고 두 가지의 화학 물질이 튼튼한 벽을 가진 세번째 방으로 흘러 들어 간다. 그곳에서 효소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 반응을 일으켜 방귀벌레가 어느 방향으로나 겨냥할 수 있는 포탑으로부터 유독한 연기를 발사하게 한다. 방귀벌레는 수분간 수십 차례 반복적으로 발사할 수 있으며 개미, 거미, 사마귀, 새, 뱀 등은 숨이 막혀 물러나게 된다.

      ‘컴퓨터’

      ‘컴퓨터’는 굉장한 물건이지만, 사람의 두뇌와는 비교가 안된다. 체중의 2‘퍼센트’에 불과한 약 1.36‘킬로그램’의 신비스러운 인간의 두뇌는 혈액의 20‘퍼센트’와 산소 공급의 25‘퍼센트’를 사용한다. 100억 내지 1,000억에 이르는 신경 세포와 100조(兆) 내지 500조 개에 달하는 신경 접합부(‘시냅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매초 1억 ‘비트’ 정보가 흘러 들어 오고, 두뇌는 10분의 1초마다 20‘왓트’의 전력으로 작동하여 자체 분석 평가한다. 두뇌는 정보를 받아 처리하여 평가하고, 결정을 내리고, 목표를 정하며, 행동을 개시하고, 음악과 예술을 창작한다. 오직 인간의 두뇌에만 말할 수 있도록 짜여진 체계가 들어 있다. 그리고 오직 인간의 두뇌에만 더 우월한 능력자를 믿고 숭배할 선천적 욕구가 들어 있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컴퓨터’를 ‘전자 두뇌’라고 부르는 사람은 두뇌를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리차아드 레스탁’ 박사가 인간의 두뇌는 “알려져 있는 우주 내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엄청나게 더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인류학자 ‘헨리 페어필드 오스본’은 이렇게 선언한 적이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인간의 두뇌야말로 전 우주에서 가장 불가사이하고 신비에 싸인 물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하신 일들은 무한히 많다

      박쥐와 돌고래는 음파 탐지기를, 낙지는 ‘제트’ 추진력을, 모기는 피하 주사 바늘을 사용한다. 나나니벌은 종이를 만들고, ‘비이버’는 둑을 쌓는다. 개미는 다리를 놓는다. 벌과 흰개미는 공기 조절 장치를 이용한다. 물고기와 벌레 및 곤충들은 냉광을 만든다. 새들은 엮는 일을 하고, 매듭을 묶고, 부화기를 짓고, 벽돌을 만들고, ‘아파트’를 짓고,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고, 나침판과 내부 시계를 가졌으며, 항행한다. 딱정벌레는 수중 호흡기를 사용한다. 거미는 잠수종을 사용하며, 문을 만드는 기구 조종사들이다. 일부 물고기와 딱정벌레는 복 초점 ‘렌즈’를 가지고 있다. 북미산 거북과 물전갈은 잠수용 환기 장치를 사용한다. 인간의 태양 전지처럼 동물의 눈은 빛을 전기로 바꾼다. 개미는 정원을 가꾸며 가축을 돌본다. 딱정벌레는 나무 가지를 친다. 이와 같은 인간 발명가들이 모방하는 창조물들의 기계 장치들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인간의 업적은 자기들의 재능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업적은, 적어도 진화론자들에 의해서는, 맹목적인 우연으로 묵살되고 말았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 설계에는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
    깨어라!—1982 | 1월 1일
    • 설계에는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그렇다”와 “아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브리 3:4.

      무생명인 집이 저절로 세워졌다고 주장한 진화론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무생명인 우주—각각 알려지지 않은 수백만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수백만개의 은하들로 이루어진, 그리고 모두가 1초의 어김도 없는 정확성을 가지고 경외감을 주는 장관을 이루면서 움직이는 우주가 저절로 생겨났다는 점에 있어서는 독단적이다.

      그리고 그 뿐이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지상의 무수한 생명체들의 구조는 모두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저절로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은 끝까지 소급하여 모든 생명의 최초의 원 조상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그 원 조상은 생명이 없는 화학 물질로부터 저절로 생겨났다고 말한다. 또한 진화론자들은 이 모든 생물에서 놀라운 복합성과 복잡하고 목적이 있는 설계를 보고도 그 행로를 돌이키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 설계자들의 기발한 발명품들에 경탄하지만, 그들의 최고의 걸작품도 가장 단순한 생명체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20세기 과학 기술을 총동원하여도, 과학자들은 작은 단세포 ‘아메바’ 하나 만드는 일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맹목적인 우연—자연 도태로부터 의심스러운 도움을 받는 마구잡이 돌연변이—이 지상의 온갖 생물을 만드는 힘이라고 아주 태연하게 말한다.

      여기에 너무나 명백한 모순이 있다. 진화론자들은 온갖 복합적 생물들을 설계하는 힘은 우연이라고 쾌히 말하면서, 동시에 극히 단순한 물건들에는 지성있는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한 과학자는 어떤 고대 유적을 파서, 가운데 둥근 홈이 있는 타원형 돌을 하나 발견하고는 확신에 차서 그것은 원시인이 막대기에 묶어 망치나 무기로 사용한 돌이라고 발표한다. 그 돌은 지성있는 생물에 의해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새의 깃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의 날개깃은 깃대에서 자란 수천 개의 깃가지, 그 깃가지에서 나온 수십만개의 작은 깃가지 그리고 이 모든 부분들을 결합시켜 날게 하는 수백만개의 조그마한 고리들을 가지고 있다. 깃가지들이 풀어지면 새는 부리로 그것들이 다시 서로 맞물리게 할 수 있다. 사람이 ‘지퍼’를 “발명”하기 오래 전에 나온 ‘지퍼’인 것이다!

      지성있는 설계자의 작품인가? 진화론자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한 경이로운 구조가 어떻게 진화하였는가? 깃털은 비늘이 일부 변화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파충류의 비늘같은 느슨하게 붙어 있는 길죽한 비늘의 가장자리가 해지고 펼쳐져 마침내 오늘날의 고도로 복잡한 구조로까지 진화하였다고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은 그리 많은 상상을 요하지 않는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조류」, 34면.

      진화론자의 독단의 또 다른 예가 있다. 진화론자는 끝이 뾰족하고 납작한 돌을 발견하고, 그것이 지성있는 석기 시대 인간이 설계한 칼 혹은 흙 파는 도구라고 확신한다. 그러면서도, 진화론자는 “미모사 거들러”(mimosa girdler)라고 불리우는 작은 딱정벌레에 대하여는 설계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암컷은 ‘미모사’나무에 기어 올라, 큰 가지의 끝으로 가서, 나무 껍질 속에 틈을 내고 거기에 알을 낳는다. 그 다음 암컷은 그 가지의 중간 지점으로 돌아와 형성층을 끊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이 가지 주위를 둥그렇게 갉아 먹는다. 그러면 가지 끝이 죽어 떨어진다. 딱정벌레의 알은 흩어져 부화하고 순환 과정이 다시 시작된다. 한편, ‘미모사’나무에게도 유익이 있다. ‘미모사’는 가지를 치게 되고, 그로 인해 수명이 그렇지 않을 경우—40내지 50년—보다 두배나 길어진다. 사실상, ‘미모사’나무는 ‘미모사 거들러’를 유혹하는 냄새를 풍기며, 이 작은 딱정벌레는 다른 나무에서는 번식을 못한다. 납작하고 뾰족한 돌에도 설계자가 있어야 했는데, ‘미모사 거들러’는 그냥 생겨났다고 하다니,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다른 비교: 화살촉 모양의 날카로운 부싯돌 한 조각을 보고 진화론자는 그것이 화살이나 창의 끝에 사용하려고 사람이 설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진화론자는 그처럼 목적있게 설계된 물건들은 우연히 생길 수 없다고 결론 짓는다. 그러나 그는 거미의 경우는 다르다고 말한다. ‘아라네아’거미를 고려해 보자. 그 거미에게는 6개의 유두가 있고, 각 유두에는 약 100개의 꼭지가 있으며, 각 꼭지는 거미 내부의 각기 다른 선(腺)에 개별적인 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미는 각기 다른 실을 만들거나 함께 합쳐서 넓은 비단 띠를 생산할 수 있다. 거미들은 7가지 종류의 실을 만든다. 7가지를 모두 만드는 종은 없으며, 모든 거미는 최소한 3가지를, 그리고 ‘아라네아’는 5가지를 만든다. 600개의 관 모두가 실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일부는 줄의 일부를 끈적 끈적하게 만드는 접착제를 준비한다. 그러나, ‘아라네아’는 발에 기름을 발라 결코 달라붙지 않는다. 이러한 실 돌기들의 근원은? 진화론자들은 다리가 실 돌기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깊이 생각해 보라: 거미는 실을 만드는 화학 실험실과 그 실을 내는 물리적 장치를 가지고 있고, 거미줄을 만드는 본능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어느 한 가지도 다른 두 가지가 없으면 있으나 마나 하다. 그 세 가지가 모두 우연에 의해 그리고 동시에, 동일한 거미 내에서 진화했어야 한다. 진화론자들은 그랬다고 믿고 있다. 당신도 그렇게 믿는가? 날카로운 부싯돌 조각과 거미 중 어느 것이 더 쉽사리 저절로 생겨날 수 있는가?

      우주 시대에 들어가 ‘코넬’ 대학교의 ‘카알 세이건’ 박사의 말을 들어 보자. “명백히 지성있는 존재들로부터 퍼져 나온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별 사이에 무선 통신문을 띄우는 것은 쉬운 일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사진을 보내는 것이 최고로 믿음직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전송하도록 제안된 한 사진은 남자, 여자, 어린이, 태양계 및 여러 개의 원자를 보여 줄 사진으로—각각 “비트” 정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점들과 선들로 전송하여 그 일이 완수되며 1,271‘비트’가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추리해 보자. 만일 특정한 순서로 이어진 1,271‘비트’의 정보들이 질서와 설계를 암시하고 “명백히” 그것이 “지성있는 존재들로부터” 나왔음을 증명한다면, 모든 살아있는 세포의 염색체 내에 암호로 들어 있는 약 100억 ‘비트’의 정보들은 어떠한가? 진화론자들은 1,271‘비트’의 정보들이 ‘명백히 지성있는 설계자를 증명한다’고 말하면서, 100억 ‘비트’의 정보들은 아무 설계자 없이 저절로 생겨난 것으로 묵살한다.

      당신은 그러한 추리가 불합리하고, 독단적인, 심지어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간단한 설계에도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면 극도로 복잡한 설계에는 더 위대한 설계자가 훨씬 더 강력하게 요구되지 않겠는가? 영국의 이론가 ‘에드워드 밀느’는 우주의 기원을 고찰하고 나서 이처럼 현명하게 결론지었다. “우리의 이해는 그분 없이는 불완전하다.”

      [15면 삽화]

      화살촉은 설계자가 필요하지만, DNA는 필요없는가?

  • 본능—출생 전에 ‘프로그램’된 지혜
    깨어라!—1982 | 1월 1일
    • 본능—출생 전에 ‘프로그램’된 지혜

      작은 수재, 놀라운 재주

      “그것들은 본능적으로 지혜롭다.”—잠언 30:24, 신세.

      믿기 어려운 여정

      작은 ‘블랙푸울 워블러’는 진화의 확립을 ‘떠맡을’ 생물 같아 보이지 않지만 그 일을 떠맡고 있다. 이 북미 산 명금의 몸무게는 4분의 3‘온스’도 안되어 겨우 20‘그램’이고 길이는 13‘센티미터’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새의 이주 솜씨는 굉장하다.

      가을이 다가오면 이 새는 ‘알래스카’의 여름 숙소를 떠나 북미 대륙을 횡단하여 동남쪽으로 대서양 해안까지 날아 간다. 이 새는 그 여행을 하면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데, 그 이유는 ‘워블러’의 여행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뉴우 잉글랜드’ 해안을 따라, ‘블랙푸울 워블러’는 기다리며 날씨를 살핀다. 이 새는 자기에게 필요한 날씨가 해안의 동남쪽을 지나 대서양으로 빠져 나갈 강한 한랭전선임을 어떻게 해서인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한랭 전선에 이르면, 이 작은 명금은 순풍의 도움을 받으면서 출발하여 동남쪽으로 날아 바다로 나간다. 한랭전선은 도중에 싸워야 할 열대 폭풍우도 십중팔구 없을 것을 뜻하기도 한다.—참으로 현명한 날씨 선택이다!

      동남쪽으로 계속 날아가면서 이 작은 새는 절망적으로 멀고 목적지도 아닌 ‘아프리카’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블랙푸울 워블러’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이 새는 도중에 쉬지 않고 ‘버어뮤다’를 지나 ‘안티구아’ 가까이의 해발 6,400‘미터’까지 올라간다. 그 고도에서는 춥고 산소가 희박하다. 이 작은 ‘워블러’가 그 곳에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곳에서 진짜 목적지인 남‘아메리카’를 향해 서쪽으로 부는 우세풍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삼일 밤낮 이상을 쉬지 않고 약 3,800‘킬로미터’ 이상을 날아 ‘워블러’는 다른 대륙, 즉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작은 새가 매년 보여 주는 솜씨에 경탄한다. 이 새는 어떤 기상 상태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어떻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남‘아메리카’로 데려다 줄 바람을 찾으려면 언제 고도를 바꿔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대양의 정확한 지점에서 자기를 그러한 바람들과 교차할 수 있게 해 줄 올바른 방향을 어떻게 정확하게 선택할 줄 아는가? 과학자들은 설명할 수 없다. 확실히 진화론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블랙푸울’의 특이한 항로에는 좋은 이유가 있다. 이 새의 남‘아메리카’행 해양 항로는 “섬 징검 다리” 여행보다 훨씬 더 짧으며, 육식 동물을 거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블랙푸울 워블러’는 특별히 설계된 신진 대사 때문에 경마용 말이 1.6‘킬로미터’를 2분에 달리는 속도로 연속 80시간을 달리는 것과 똑같은 거리를 쉬지 않고 날을 수 있다. “만일 ‘블랙푸울 워블러’가 비축된 체내 지방 대신 ‘가솔린’을 태운다면, 이 새는 약 3.8‘리터’로 1,152,000‘킬로미터’를 간다고 자랑할 수 있다”고 한 과학자는 기술한다.

      흰개미—온도 조절 기술자

      흰개미를 보게 되면 아마 그들의 신체적인 약함에 조금은 동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흰개미는 유연하고 약한 경향이 있어서, 온도와 습도가 주의깊이 조절되어야 한다. 그런 곤충들은 열대 지방의 극심한 기후에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흰개미들은 열대 지방에서 번성한다. 어떻게?

      흰개미의 건축술과 공학 기술이 그 대답이다. 열대 지방의 흰개미 집은 손도끼로 쳐도 불꽃이 튀길 정도로 단단한 진흙 둔덕이다. 어떤 ‘오스트레일리아’ 흰개미는 언제나 북과 남을 향하는 길고 좁은 쐐기 모양의 둔덕을 짓는데 그것은 한 낮의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다른 종들은 멀리서 보면 사람의 오두막들 같이 생긴 둔덕들을 짓는다.

      흰개미 둔덕의 바깥 면은 너무나 뜨거워 만질 수 없을 정도지만 내부는 섭씨 30도의 안락한 온도를 유지한다. 어떻게 온도가 조절되는가? 두꺼운 벽이 도움이 되지만,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다. 일부 흰개미들은 보금자리 밑 땅 속으로 40‘미터’ 깊이의 굴을 파서 물을 얻는데 그 개미들은 그 물의 증발로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 공기에서도 보금자리를 시원하게 하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한다! 다른 흰개미들은 “지하실”과 “다락”을 보금자리와 함께 짓는다. 공기 교환을 위해 둔덕을 바깥 면에는 온도를 조절하고 보금자리 내부에 반드시 신선한 공기가 풍부하도록 만들어 주는 구멍난 통로들이 있다. 관찰에 의하면 흰개미들은 이 통로들에서 끊임없이 작업을 하며, 그들이 그 통로들을 열고 닫음으로써 온도 조절 장치는 완벽하게 조절될 수 있다.

      누가 흰개미에게 건축 및 공학 기술을 가르쳤는가? 맹목적인 진화인가? 아니면 통찰력있는 대 설계자인가?

      춤추며 투표하는 벌

      아마 당신은 꿀벌의 본능적인 재주들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생물들은 종종 짧은 생애 중에, 여왕벌과 애벌레의 시중드는 일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점차적으로 벌집을 짓고, 벌통을 지키며 문지기 일을 하는 등 많은 직업을 갖게 된다. 그러나 화밀과 기타 필요한 물질들을 찾아 다니는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는 것은 보다 나이 든 벌들로서 그들의 본능적인 능력은 대단한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찾아 나선 벌이 새로운 화밀이 있는 곳을 발견하면, 집으로 돌아와 그 좋은 소식을 알린다. 그것은 춤을 통하여 행해 진다. 춤의 속도와 형태(빙빙 돌거나 8자 모양) 및 춤추는 벌의 복부를 흔드는 정도는 다른 벌들에게 화밀이 있는 곳의 거리를 알려 준다. 태양과 관련된 화밀의 방향도 춤으로 가르쳐 준다. “벌들에게 언어가 있다고 믿기가 어려워 보이지만, 그 점은 수많은 실험들에 의해 확증되어 왔다”고 「곤충류」라는 책은 인정한다.

      벌집이 혼잡해 지면 일부 벌들이 늙은 여왕벌을 따라 새집으로 이사한다. 벌들은 자기들이 갈 곳을 어떻게 아는가? 새로운 벌떼의 정찰병들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꽃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나무의 빈 구멍이나 벽의 갈라진 틈같은—새로 집을 지을 장소를 찾고 있는 것이다. 돌아와서 정찰병들은 꽃이 있는 곳을 알리기 위해 춤을 추는 것과 아주 흡사하게 그 새로운 장소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춤을 춘다. 좋은 장소를 발견한 정찰병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춤을 추며, 때때로 몇시간 동안 계속 춤을 춘다. 한편 다른 많은 벌들은 그 정력적인 춤으로 인해 가서 보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덜 마땅한 장소를 발견한 정찰병들은 그만큼 오래 혹은 열정적으로 춤을 추지 않으며, 보다 소수의 벌들이 그 곳들을 조사하도록 자극을 받는다.

      벌들은 몇몇 장소로 자기들의 선택을 점차적으로 좁혀가, 마침내는 후발 정찰병들의 열정적인 춤이 가장 좋은 장소에 대한 지원을 더욱 더 이끌어냄에 따라, 단 한 군데로 선택을 좁힌다. 그리하여 벌떼는 몇 군데의 예정 장소들을 본 셈이 되어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에 투표를 하게 된다. 전체 과정은 5일 정도 걸릴 수 있으며, 그 후에 벌떼는 만장일치로 새로운 보금자리로 날아간다!

      우연한 돌연변이와 마구잡이 사건들이 그런 놀라운 의사소통 솜씨와 사회적인 조화를 산출할 수 있는가? 우발 사건들과 무질서가 다른 어떤 사회에 조화를 만들어 내는가?

      [16면 삽화]

      ‘블랙푸울 워블러’—천부적인 대양 이주자

      안락한 온도 조절 장치를 갖춘 흰개미집

      [17면 삽화]

      투표하는 벌들

  • 그것은 사실인가?
    깨어라!—1982 | 1월 1일
    • 그것은 사실인가?

      과학적 방법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많은 과학자들이 독단적이지만, 논리적인 의문을 품을 만한 여지가 있는가?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미 국립 박물관 연구소의 과학자 ‘포오터 키이어’는 매우 독단적이다. 미국 과학 진흥 협회의 지난 연례 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분류되고 식별된 화석이 전세계의 박물관들에 일억개나 있다. 그것들은 진화를 증명하는 일억 가지 사실이다.” 그 학설에 필요한 과도기 화석들이 아님이 분명한 100,000,000개의 화석들이 어떻게 진화를 증명하는 100,000,000가지 사실들을 구성하는지는 전혀 불분명하다. 그 다음 ‘키이어’는 진화론자들이 세부점들에 대해서는 논쟁을 벌일지 모르지만, “진화가 사실이며 기정 사실화되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고 부언한다.

      유명한 진화론자 ‘데오도시우스 도브찬스키’는 그렇게 독단적은 아니다. 「진화」라는 책에서 ‘도브찬스키’와 그의 공동 연구가들은 진화론을 하나의 가설 혹은 학설이라고 평하고 이렇게 시인하였다. “과학의 가설들은 그것이 진실임이 결코 결정적으로 확증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잠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 책은 또한 권위자인 ‘카알 포퍼’ 박사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원칙적으로, 관찰[실험]에 의해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가설은 과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하아버드’와 ‘스티브 제이 고울드’ 역시 ‘포퍼’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원칙적으로, 허위임이 증명될 수 없는 일련의 사상은 과학이 아니다.”

      이 모든 점들이 우리의 토론과 관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바로 이 점을 근거로 ‘고울드’ 및 다른 사람들이 창조를 과학으로 간주하지 않고, 따라서 과학 수업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창조는 시험해 볼 수가 없어, 과학적인 실험으로 허위임을 증명할 수가 없다. 창조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였다’고 말하므로 그것을 시험해 보거나 그것이 허위임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 창조론’은 바로 그것이 허위임이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모순에 빠지는 표현이다”라고 ‘고울드’는 말한다. 그러나 그는 진화가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매우 흥미롭게도, ‘포퍼’ 박사는 그 동일한 기준을 진화에도 적용한다. 그는 “‘다아윈’의 학설이 시험해 볼 수 있는 과학적 학설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연구 계획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말한다. 진화론은 시험해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정의들에 의하면 과학이 아니다. 실험에 의해 관찰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오직 독단적인 주장에 의해서나 뒷받침되는 진화론은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될 수 없다. 과학적 방법에 관한 연구로 높이 존경받는 ‘포퍼’ 박사는 그 방법에 기초해서 진화론이 이치에 닿는 과학적 학설로서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히려 그는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연구라는 말에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오만 커즌즈’는 과학적 방법의 정의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도 이렇게 알려 준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과학적 방법, 즉 체계적인 사고 방법, 증거를 수집하여 그것을 평가하는 방법, 특정한 환경에서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내다보기 위한 실험을 행하는 방법, 자신의 실수를 알아내고 인정하는 방법, 오래 가졌던 개념의 잘못된 점들을 발견하는 방법 등이다. 과학 자체가 주로 과학적 방법으로 인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질병의 분석」, 120, 121면.

      진화와 창조는 모두 과거에 발생했던 혹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을 묘사한다. 그 일들을 목격한 인간 관찰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 것들이 실험실에서 재생될 수 없다. 어떤 과학 실험도 진화나 창조를 증명 혹은 반증할 수 없다. 그러한 추리에 따라 성서의 창조 기사가 비과학적이라면, 동일한 전제로 진화 역시 비과학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그처럼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포퍼’ 박사는 “‘다아윈’의 학설이 아주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그 적응된 학설이 확신을 주는 최초의 무신론적 학설이었고, 유신론은 궁극적인 설명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주므로 실패를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것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진화론자 ‘피터 메다워’는 이렇게 설명한다. “생물학자로서 진화의 한계 내에서 사고방식의 대안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주로 그 대안인 유신론, 즉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 대안이 싫기 때문에 어떤 학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적인가? ‘메다워’ 같은 과학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면 그분의 창조물에 관한 놀라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때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하기에는 그들의 자존심이 너무 강한가? 무신론자인 ‘올더스 헉슬리’의 다음과 같이 시인하는 말은 또 다른 가능성을 드러내 준다. “우리는 성서가 우리의 성적 자유를 방해하기 때문에 [성서의] 도덕을 반대하였다.”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아니다.

      진화는 시험해 볼 수 있는 과학적 학설인가? 아니다.

      진화는 과학적 방법에 고착하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화론은 도대체 무엇이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 기사를 살펴 보도록 하자.

      [18면 네모]

      논리적인 의문을 품을 만한 이유가 있는가?

      ‘아메바’가 물고기가 되었다는 것, 물고기가 도마뱀이 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은 논리적인가? 혹은 도마뱀이 울새와 이리로 변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은 논리적인가?

      「진화」란 책에서 ‘도브찬스키’는 진화가 사실인지는 결코 확증될 수 없지만, “논리적인 의문의 여지없이 확인된” 가설이라고 말하였다. “논리적인 의문”이란 “인생의 보다 신중하고 중요한 일들에 처해 이치적이고 분별력있는 사람이 멈추어 부과된[혹은, 요구된] 문제의 진상에 따라 행동하기를 주저하게 할 정도의 의문”이라고 공식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한 재판관은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 “‘논리적인 의문’이란 곧은 사람이 진리를 찾는 정직한 조사 중에 품을 수 있는 의문이다.”—「흑인 법률 사전」 580면.

      법정에서는 한 가지 결정적인 증거에 의문을 품을 만한 이유가 있을 경우, 유죄 선고는 내려지지 않는다. 생명이 우연에 의해 저절로 생겨 났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은 논리적인가? ‘아메바’가 물고기가 되었다는 것, 혹은 물고기가 도마뱀이 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은 논리적인가? 또 도마뱀이 울새와 이리로 변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논리적인가? 진화에 의문을 품는 것은 논리적인 의문인가? 아니면 비논리적인 의문인가?

      만일 당신이 진화론을 믿고 있다면, 자신의 침실 거울 앞에 혼자 있을 때,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을 잃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내가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에 대한 증거를 댈 수 있는가? 나는 그 점을 자신에게 만족스럽게 증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다른 사람들이 내가 믿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믿고 있는가? 그것은 참으로 “논리적인 의문의 여지없이 확인된” 사실인가?

  •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깨어라!—1982 | 1월 1일
    •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종교적 “신앙”인가? 철학인가?

      진화론은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의문시되고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배우지 못하고, 비이치적이고, 무책임하고, 자격이 없고, 무지하고, 독단적이고, 오래된 망상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지도적인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관찰 및 실험상의 증거로 뒷받침받는 냉정하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추리라면 그러한 인격적인 악담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진화론자들의 태도야말로 종교적인 독단주의의 성격을 더 띠고 있다. 고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무리가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자, 그들은 그를 체포하려고 경비병들을 보냈는데 그 결과는 이러하였다. “성전 경비병들이 그대로 돌아온 것을 보고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를 잡아 오지 않았느냐?’ 하고 물었다. 경비병들은 ‘저희는 이제까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너희마저 속아 넘어 갔느냐? 우리 지도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믿는 사람을 보았느냐? 도대체 율법도 모르는 이따위 무리는 저주받을 족속이다’ 하고 말하였다[조롱하였다, 현용영어 성서].”—요한 7:32, 45-49, 공동 번역.

      그들의 말은 옳지 않았다. 증거는 다수의 지도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그분의 추종자가 된 제사장들도 있었다. (요한 12:42; 사도 6:7; 15:5) 예수를 논박하지 못하자, ‘바리새’인들의 집단은 압제적인 권세를 동원하였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그와 똑같은 술책을 쓰고 있다. 즉 ‘어리석은 무리들, 그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이름있는 과학자들은 모두 진화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디스커버」지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현재 그 신성화된 학설은 정통파 그리스도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름있는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의문시되고 있다.”—1980년 10월호.

      「사이언스」지에 기고하면서, ‘R. E. 기브슨’은 ‘갈릴레오’가 “인간 권위에 기초한 어떠한 종류의 독단에 대해서도 강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의 지성적 성실로 인해 그는 종교 재판소에서 문제를 겪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실이 “요즈음은 인기가 없으며, 오늘날에는 이제 강력하게 자라난 과학 사회가 ‘갈릴레오’ 시대의 교회가 행한 바와 매우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기브슨’은 주장한다. 현대 과학은 세력과 명성을, ‘가톨릭’ 교회가 그랬던 것보다 더 잘 활용하고 있는가? ‘아인시타인’은 우리가 ‘갈릴레오’ 시대로부터,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것 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사이언스」, 1964년 9월 18일, 1271-1276면.

      ‘로버트 쟈스트로우’는 증거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을 때 나타내는 “과학자의 종교적 신앙”과 짜증에 대해 말하였다. ‘J. N. W. 설리반’은 자연 발생에 대한 신념을 “신앙 개조(箇條)”라고 부르며 ‘T. H. 헉슬리’는 그것은 “철학적 신앙 행위”라고 말하였다. ‘설리반’은 지상의 모든 생물이 진화되었다고 믿는 것은 “터무니없는 신앙 행위”라고 말하였다. ‘J. R. 듀런트’ 박사는 “많은 과학자들이 독단에 빠져 거의 포교자같은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개념을 꽉 붙잡으려는 유혹에 굴복한다. ·⁠·⁠· 진화론의 경우, 포교자같은 영이 만연해 온 것 같다”고 지적한다. 물리학자 ‘H. S. 립슨’은 ‘다아윈’ 이후에 “진화는 어떤 의미에서 과학적 종교가 되었으며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였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관찰한 바를 그것과 부합하도록 기꺼이 ‘구부’리려 한다”고 말한다.

      상기 점을 실증하여, 「U. S. 뉴우스 앤드 월드 리포오트」지(1981년 3월 2일)는 과학 실험실 내의 추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예일’의 한 연구가는 “그것은 과학의 ‘워터게이트’다”라고 말하였다. 그 기사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뉴우 잉글랜드 의학지」의 편집인인 ‘아놀드 렐먼’ 박사는 ‘그것은 충격적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우상에게 타격을 가하고 있다. 누구나, 심지어 일부 연구 과학자들까지도 기초가 부실함이 밝혀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진화의 의의」에서 ‘심프슨’은 진화론자들은 “서로 정반대되는 학설들을 ‘증명’하기 위하여 동일한 자료를 사용할지 모르며” 각각 “자기의 독특한 학설을 그 자료에 삽입한다”고 말하였다. (137-139면) ‘설리반’은 이렇게 말하였다.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과학에 관하여 조차 항상 진리를 말하지도 않으며, 말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거짓말장이임이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대개, 종교적인 혹은 반종교적인 편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과학의 한계」 173-175면.

      본래의 진리 탐구는, 그것이 과학적 독단이든 혹은 종교적 교리든, 각자 자신의 감정적인 확신을 뒷받침하는 사상들을 수집함에 따라 종종 잊혀지게 된다. 진화는 인간을 달에 보내거나 유전 부호를 분류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명령적으로 말하는 교직자같은 권위, 파벌 언쟁,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있지도 않는 중간 동물과 있지도 않는 돌연변이에 대한 믿음, 맹목적으로 따르는 평신도, 그들의 교리에 부합되도록 증거를 왜곡하는 일 및 믿지 않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로 비난하는 일 등으로 보아 종교에 더 가깝다. 그러면 그들의 신은? 고대인들이 제물을 바치고 “운수 신에게 상을 베”푼 바로 그 신이다.—이사야 65:11, 난외주 참조.

      ‘한스 크리스챤 앤더슨’의 황제의 새 옷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에서, 황제에게 그가 벌거벗었음을 알려 준 것은 어린 아이였다. 진화론은 현재 완전히 옷입혀진 사실처럼 뽐내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벌거벗었음을 말할 수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정직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립슨’ 교수같은 담대한 과학자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받아들일 만한 유일한 설명은 창조뿐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이것이 실로 나에게 그런 것처럼, 물리학자들에게 저주스러운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실험상의 증거가 우리가 싫어하는 이론을 지지한다면 그것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창조를 믿을 어떤 증거가 있는지 다음을 살펴 보라.

      [20면 네모]

      진화론자들이 사용하는 “압제적인 권위”

      “그[‘다아윈’]가 진화론을 완성시켰을 때, 이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진화가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라이프’ 자연계 문고, 「진화」 10면

      “우리가 진화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진화에 대한 증거는 압도적이다.”—‘도브찬스키’의 「진화, 유전학 및 인간」 319면.

      “진화의 본질적 진실성은 현재 판단할 자격이 있는 과학자들에 의해 널리 인정받고 있다.”—‘P. V. 하아딘’의 「자연과 인간의 운명」.

      “진화 과정에 의한 생명 계보의 확립은 현재 모든 믿을 만한 과학자들에 의해 널리 인정받고 있다.”—‘캐링턴’의 「지구사 입문」 82면.

      “오늘날 지식인으로서 인간이 물고기와 개구리의 세계로부터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내려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라이프」지, 1966년 8월 26일호, ‘아드레이’.

      “진화는 거의 자명해졌으며, 오랜 망상과 편견에서 벗어난 이치적인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치 않다.”—‘심프슨’의 「진화의 의의」 338면.

      “현재 무지하고, 독단적이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나 유지되는 특별 창조라는 켸켸묵고 완전히 논파된 것 하나를 제외하고는 겨룰 만한 가설이 없다.”—‘뉴우먼’의 「일반 동물학 개요」 407면.

  • 사실들에 부합하는 것은 무엇인가?
    깨어라!—1982 | 1월 1일
    • 사실들에 부합하는 것은 무엇인가?

      읽어 보고 스스로 판단하라

      지식이 진보함에 따라 진화론은 밀려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투구 풍뎅이가 갑자기 땅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그것들이 스스로 생겨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암컷이 똥 덩어리들 속에 알을 낳고 묻어둔 데서 나중에 자손이 나왔다. 자연 발생인가? 기원전 5세기에 희랍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와 ‘엠페도클레스’는 그렇게 가르쳤고, 한 세기 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벌레들과 복족류(달팽이)는 부패 작용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중 기원 17세기에 과학자 ‘프란시스 베이콘’과 ‘윌리엄 하아비’는 자연 발생을 가르쳤다.

      지식의 진보로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같은 17세기에 ‘레디’는 파리가 고기 위에 알을 낳은 후에야 구더기가 고기에 나타남을 보여 주었다. ‘박테리아’가 발견되어 생명의 자연 발생의 예들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한 세기 후에 ‘스팔란짜니’는 그 풍선처럼 부푼 학설을 터뜨려 버렸다. 그 다음 세기에 ‘파스퇴르’는 “생명은 생명에서만 나온다”는 말로 그것을 완전히 말살시켰다. 그것은 이제 자명한 원칙이다. 심지어 ‘다아윈’도 이 점을 인정하여, 「종의 기원」의 마무리 짓는 문장에서 생명은 “창조주가 몇 가지 혹은 한 가지 종류 속에 최초의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기원하였다고 말하였다.—‘멘토르’판, 450면.

      창조는 “생명은 생명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에 잘 부합한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이런 기록이 있다.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나이다.]”—시 36:9.

      다음에, 화석들은 창조를 지지해 준다. ‘심프슨’은 「진화의 의의」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약 500,000,000년 전에 형성된 ‘캄브리아’ 초기의 암석들은 화석들로 가득차 있다. 지상 이곳 저곳의 ‘캄브리아’ 초기 이래의 거의 모든 시대의 화석 광상 역시 풍부하다. 그러나 1,500,000,000년의 긴 기간을 나타내는 ‘캄브리아’기 이전 시대의 암석에는 일반적으로 화석들이 희귀하여 흔히 모호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척추 동물을 제외한 모든 주요 집단 즉 문(門)의 화석들의 화석 기록의 이러한 돌연한 격증을 ‘심프슨’은 “생물사의 주된 신비”라고 불렀다.—16-19면.

      ‘하아버드’의 ‘로우머’ 교수는 그 신비에 관한 ‘다아윈’의 말, 즉 “나는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고 이렇게 부언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 다음에 그는 이렇게 진술하였다. “이치적으로 말할 때 일반적인 양상은 ‘캄브리아’기 시초의 특별 창조 개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캄브리아’기 이래의 화석 기록이 대단히 풍부하다는 사실은 척추 동물 혹은 등뼈를 가진 생물의 시작을 알려 주는가? 그렇지 않다. 동물학 교수 ‘골드 쉬미트’는 「진화의 실질적인 기초」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들은 고등한 부류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 종의 기원에 관하여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165면) 오늘날 화석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진화론자들은 창조를 맹렬히 부인하면서도 화석 기록이 진화보다는 창조와 더 잘 조화됨을 알고 있다. 수년 전에 여러 사람들이 그 점을 이렇게 인정하였다. “고생물학을 더욱 연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확실해지는 것은 진화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오로지 믿음, 종교의 크게 신비로운 사건들에 직면할 때 가질 필요가 있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 유일한 대안은 특별 창조설인데, 그것이 사실일지 모르며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L. T. 모어’) “진화 자체가 동물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증거에 의해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유일한 대안인 특별 창조가 분명히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D. 왓슨’) “진화는 증명되지도 않았고 증명할 수도 없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 이유는 오로지 유일한 대안이 특별 창조이고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아아더 케이드’ 경.

      오늘날, 여전히 창조가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식물 학자이자 진화론자인 ‘J. H. 코오너’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아직도 공정한 입장에서 볼 때 식물의 화석 기록은 특별 창조를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적 식물학 사고」 1961년 발행 97면) 1980년 5월호 「물리학 회보」에서 ‘립슨’ 교수는 마지못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받아들일 만한 유일한 설명은 창조 뿐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석 기록은 진화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이 알려 주는 사실들은 창조에 부합한다.

      돌연변이 조차 진화론을 실망시키고 있다. 돌연변이는 유전 물질에 일어나는 변화이며 생명체 내에 새로운 유전 특성을 산출한다. 대다수의 작은 돌연변이들은 해롭고, 큰 것들은 병신이 되게 하거나 치사적이다. 돌연변이는 생명체의 퇴화를 거드는 것으로 믿어지며 수많은 질병과 기형들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기작(機作)으로 돌연변이에 희망을 두고 있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새로운 과(科) 종류들은 산출하기에는 부적합함이 밝혀졌다. 진화론자 ‘벵겔스도르프’는 이렇게 말하였다. “유전자 내의 근본적 변화를 포함하여, 돌연변이는 두 사람 사이의 차이점 정도는 설명할 수 있지만 ·⁠·⁠· 여러 가지 이유로, 전반적인 진화, 즉 물고기, 파충류, 조류 및 포유류가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다.”

      창조론자들은 창세기 1장의 과 종류들 내의 변이 즉 「사이언스」지 1980년 11월 21일호에 의해 입증된 다음과 같은 정도의 변이를 항상 인정해 왔다. “종이 실제로 자기들의 신체적 및 기타의 특성에 있어서 사소한 변화를 입을 역량을 갖고 있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은 제한되어 있으며, 좀 더 엄밀히 말해서, 그것이 나타나는 범위는 평균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점을 실험적으로 입증하기 위하여 유전학자들은 급속히 번식하는 생물들에게 다량의 돌연변이를 유발시켜 왔다. 하지만, “며칠 내 수 세대를 산란하는 과실 파리의 진화를 40년간 조작해 보았을 때 많은 기묘한 변화들을 볼 수 있었지만 과실 파리는 언제나 과실 파리 그대로다.”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화석 기록은 진짜 수백만 년 동안 번식하고 있는 종들을 보여 준다고 한다.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돌연변이는 종의 불변성을 입증해 준다. 생명은 “그 종류대로” 낳는다고 말하는 창세기 1:12, 21, 24은 과학적 사실들과 부합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큰 간격이 있다. 진화론자들이 인간과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굉장한 간격이 있다. “비교적 최근의 역사 조차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다. 권위자들은 흔히 기본적인 점들과 세부점들 모두에 관해 심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도브찬스키’는 말한다. (「진화하는 인류」 168면) 인류학자들은 몇 점의 뼈와 치아들의 발견물들에 대해 흥분하여 주장하고, 다음에 그와 유사한 다른 토막들을 발견하면 그것들은 중간 동물 자리에서 쫓아내고 새로 발견한 것을 유인원과 사람 사이의 중간 동물 자리에 앉히고는, 자기들의 발견물이 진짜 중간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진화론자들과 논쟁을 벌인다.

      언어, 추리, 창조적인 사고, 음악과 예술, 과거와 현재 및 미래의 시간 의식, 성취감과 인생의 의의 및 목적의 필요성, 공의, 친절, 동정 및 사랑 등의 특성을 가질 수 있는 능력 등 인간이 소유한 선물들은 인간을 어떤 동물보다도 훨씬 고등하게 해 준다. 이 점이 진화를 근거로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른 인간 창조로는 설명될 수 있다. (창세 1:26, 27) 또다시,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창조다.

  • 성서는 과학에 대해 언급할 때 언제나 과학적이다
    깨어라!—1983 | 6월 1일
    • 성서는 과학에 대해 언급할 때 언제나 과학적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 1:1. 「신과 천문학자들」이라는 책 14면은 이렇게 말하였다. “현재 우리는 천문학적 증거가 세계의 기원을 성서적인 견해로 이끌어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는 ·⁠·⁠· 땅을 공간에 다시[느니라]”—욥 26:7. ‘이집트’인들은 지구가 기둥들에 의해, 희랍인들은 ‘아틀라스’ 신에 의해, 다른 사람들은 우주 바다를 헤엄치는 거북이 등에 서 있는 코끼리에 의해 떠받혀져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5세기에 「욥기」는 과학적으로 정확하였다.

      기원전 8세기에 ‘이사야’(신세)는 여호와께서 “땅의 원(圓) 위에 거”하신다고 기록하였다. “원”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호후그”는 ‘데이빗슨’의 「콘코던스」와 ‘윌슨’의 「구약 단어 연구」에 의하면 “구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모팻’역은 이사야 40:22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그분은 둥근 지구 위에 앉으시다”

      성서는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고 말한다. 과학은 현재 푸른 별, 노란 별, 흰 꼬마 별 및 기타 여러 가지 별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고린도 전 15:41.

      박물학자들이 이주 동물에 대해 알게되기 수세기 전에 ‘예레미야’는 (기원전 7세기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하늘의 황새는 그 이주 시기를 알고, 비둘기와 제비와 딱다구리는 돌아오는 계절을 안다.”—예레미야 8:7, 「신 영어 성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천년 전에 ‘솔로몬’은 혈액 순환에 관해 비유적인 말로 기술하였다. (전도 12:6) 그리스도께서 오신지 15세기 후에 ‘하아비’ 박사의 연구가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의학은 그것을 이해하였다.

      ‘모세’의 율법(기원전 16세기)은 ‘파스퇴르’보다 수천년 전에 병원균에 대해 알고 있음을 나타냈다. 그 율법에는 전염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법령들이 들어있었다.—레위 13, 14장.

      1907년에 의학은 설치류가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전염병이 퍼지는 동안 사무엘 상 6:5은 “땅을 휩쓸고 있는 쥐들”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신 영어 성서) 이것은 기원전 11세기의 일이었다. 각 과(科)종류가 “그 종류대로” 번식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생물학적으로 정확함이 화석 기록과 현대 유전학에 의해 입증되었다.—창세 1:12, 21, 25.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라] ·⁠·⁠· [개미는]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언 6:6-8) 비평가들은 그렇게 하는 개미는 없다고 조롱하였다. 그러나 1871년에 영국의 한 박물학자는 곡물 창고를 관리하는 개미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추수 개미라고 불리운다. 성서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수백년 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

      수정된 인간 난세포 안의 유전 청사진에 그 존재에 대한 암시가 주어지기도 전에 모든 신체 부분들을 위한 계획들이 들어 있다. 시편 139:16의 이러한 말씀과 비교해 보라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 [여호와]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

  • 선택: 절망적인 미래, 찬란한 미래
    깨어라!—1982 | 1월 1일
    • 선택: 절망적인 미래, 찬란한 미래

      선택하기 전에 지식을 얻으라

      많은 사람들이 회피하려는 사실: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것 또는 희망을 버리는 것

      과학자들은 팽창하는 우주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점점 어두워지고 모든 생명이 종식될 것이라고, 혹은 우주가 스스로 붕괴하여 모든 생명이 종식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과학자 ‘피콕크’는 “그러므로 과학은 ‘희망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답해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말살될 것이 확실한 우주 내에서의 인간 생명의 궁극적 의의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존재가 진화로 인한 것이라고 하고 하나님과 성서 및 도덕적 제한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인생에 있을 수 있는 어떤 목적과 의의도 없어지게 된다. 우리는 개미와 코끼리, 벌레들과 바랭이, 바퀴벌레와 고양이들과 형제가 되는 것이다. 개미나 바랭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또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에게서 의의를 빼앗아간 진화론자들은 우리의 인생을 의의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 많은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저서를 끝맺는 말로, 지금부터 수백만년에 걸려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떤 눈부신 위관의 극치를 안겨 줄 진화 사다리의 한 다리가 되는데 참여하는 영광에 관해 맥없는 무의미한 말을 한다.

      진화론자들의 무의미한 철학적 해석들

      ‘밀리컨’ 교수는 인간이 미래의 극점에 이르는 진화의 오르막 길에 참여하는 데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엄청난 감정적 매력”에 대해 허풍을 친다. 유전학자 ‘허만 물러’는 우리를 위협하는 생물학적 ‘아마겟돈’ 돌연변이를 생각하고 겁을 내지만, 여전히 돌연변이가 우리를 “전혀 예상외의 극치”로 진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음식이 맛이 있는가 알아 보려면 맛을 보아야 하는데, 진화론자는 자기에게 돌연변이가 일어나게 하여 그것을 맛보려 하지 않는다. ‘도브찬스키’는 진화해 나아가려는 인간의 노력이 희망과 품위와 인생의 의의를 부여한다고 말하고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되풀이하여 말하지만, 진화는 희망을 준다.”

      그러한 무의미한 말로 위안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리반’은 「과학의 한계」에서 정확하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종교적인 충동은 인생에 심오한 의의가 있다는 신념보다 못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149, 150면) 우리의 결국이 영원히 잊혀지는 것이라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부터 수백만년 후의 우리의 가상 후손들에게도 결말을 의미한다면, 그들의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진화론자들은 무의미한 철학적 해석으로 신에 대한 선천적인 필요를 억누르려고 암중모색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내던진 종교적 버팀대를 대신할 새로운 버팀대를 다듬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희망을 두든지 아니면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회피한다.

      성서적 희망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희망을 주시는가? 그분은 땅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영원한 낙원이 되어 순종하는 인류가 영원히 거하도록 지으셨다. (전도 1:4; 이사야 45:18) 사람들은 좋은 시계, 아름다운 건물들, 정교한 정원들을 단순히 파괴하기 위해 만들지 않는다. 또한 땅과 그 위의 모든 생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도 좌절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내게는 목적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반드시 이룰 것이다”고 말씀하신다.—이사야 46:11, 「미국역」.

      땅에 대한 그분의 관심을 지금 땅을 오염시키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겠다는 그분의 선언에서 볼 수 있다. (계시 11:18) 그리스도 예수 하의 하나님의 왕국은 계시록 21:3, 4절에 묘사된 다음과 같은 상태를 가져다 줄 것이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진화론의 “희망”은 절망적이다. 그 희망이란 영원히 잊혀지는 것이다. 성서가 주는 희망은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찬란한 미래다. 선택은 각자가 해야 한다. 선택하기 전에, 충분한 지식을 얻기 바란다.

  • 당면문제: 과학 수업에서 창조가 진화와 균등한 시간 배당을 받아야 하는가?
    깨어라!—1982 | 1월 1일
    • 당면문제: 과학 수업에서 창조가 진화와 균등한 시간 배당을 받아야 하는가?

      성서의 견해

      심지어 종파들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의 정통파 기독교인들은 공립 학교의 과학 수업에서 “과학적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게 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 보고서는 40개 주의 의회가 그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고려해 왔다고 주장한다. ‘아아칸사’ 주는 그러한 법을 통과시켰다. 그 쟁점이 법정에서 논의되어 왔다. 교과서가 수정되고 있다. 그 쟁점이 ‘캐나다’에서도 논쟁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기들의 자녀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목표는 자녀들의 믿음이다. 공격 장소는 교실이다. 공격자들은 진화론자들이다. 무기는 과학이 아닌 주장이다. 기술은 위협과 세뇌 공작이다. 결과는 가치관의 부패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말에, 특히 마지막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가 ‘H. G. 웰즈’는 동의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역사의 개요」 956, 957면에서 ‘다아윈’의 저서 「종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로 인해 진정한 도덕의 문란이 일어났다. ·⁠·⁠· 1859년 이후로 진정한 믿음의 상실이 있었다. 많은 경우에 종교가 주는 금처럼 정말 보배로운 것이, 그것을 그토록 오랫동안 간직했던 낡아빠진 주머니와 함께 내던져졌으며, 다시 회복되지 못하였다.”

      급속한 도덕의 붕괴

      오늘날 도덕의 몰락은 훨씬 더 악화되었으며, 매일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혼전 성관계, 혼전 임신, 낙태에 의한 산하 제한, 동성애 등 마구 행해지고 있다. 자신이 보기에 옳은 일은 무엇이나 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언 16:25.

      교실에서 창조를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 종교 단체들의 대답들은 일정치가 않다. 가르쳐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한 교회 단체 내에서 조차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때가 많다. 반대자들은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이 지금 무신론적인 진화론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고 있음에 항의한다. 정치적 논쟁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여호와의 증인’들의 견해는 어떠한가? 그들은 세상의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하의 여호와의 왕국이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엄청나게 줄지어 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요한 18:36)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유일한 희망으로 부지런히 전파하고 있으며, 그 전파 내용에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도 포함된다.

      여러 차례 ‘여호와의 증인’의 대표자들이 교실에서 그들의 조직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초대되었다. 그러한 연설에는 창조에 관한 내용도 포함된다. 일부 교사들은 수업 중의 토론을 위해 「사람은 진화되었는가 혹은 창조되었는가?」라는 제목의 ‘증인’들의 출판물을 사용하기까지 하였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르치다

      ‘여호와의 증인’의 자녀들은 교사가 진화에 관해 말할 때 종종 창조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가정에서 그 주제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이들 부모들은 기원에 대해, 세속 교사나 일요 학교 선생에게 그러한 교육을 맡겨 버리지 않고 자녀들을 손수 가르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부모에게 부가된 이러한 성경적 책임에 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들이시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그들을 징계와 여호와의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십시오.” 또한 “[너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에베소 6:4, 신세; 신명 6:6, 7.

      ‘여호와의 증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은 진화론적 철학을 신봉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여호와야말로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고 만민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인정한다.—이사야 42:5.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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