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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님의 이름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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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님의 이름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 깨어라!—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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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2001
깨01 7/8 20-24면

하느님의 이름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샌디 야시 초시의 체험담

모르몬교인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렸을 때, 나와 여동생들은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서로 때리기도 하면서 침대 밑에 숨어 있으려고 하였습니다.a 하지만 노크 소리에 결국 나가 보지 않을 수 없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전통을 자랑하는 나바호족 사람들이며 백인의 종교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다고 무례하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러 교역소에 가고 없었으며, 해 질 녘에 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부모는 돌아와서 내가 모르몬교인들을 무례하게 대했다는 것을 알고, 내게 어느 누구라도 존경심 없이 대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충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친절하게 대하라고 가르침받았습니다. 어느 날 예기치 않게 한 손님이 우리 집에 찾아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부모는 그때 집 밖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그 손님을 후대하여 그에게 먼저 음식을 권하였으며, 우리는 그 후에 음식을 먹었습니다.

보호 구역에서의 삶

우리는 호피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북서쪽으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애리조나 주의 하우얼메이사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은 북적대는 도시나 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미국의 남서부에 속해 있는데, 미국의 남서부는 사막 풍경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사막에는 드문드문 붉은 빛의 진기한 사암층들도 있습니다. 이곳에는 메사가 많은데, 메사란 가파른 절벽 위로 높이 솟아 있는 고원 지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처럼 높은 곳에서는 우리가 키우는 양들이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풀 뜯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내 고향 시골의 평온함을 나는 정말 사랑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사촌들과 무척 가까워졌는데, 그들은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AIM)이라는 단체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b 나는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내 신분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수십 년간 겪은 압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백인들에게 강하게 피력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그러한 압제에 대한 책임이 인디언 사무국(BIA)에게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외사촌들과는 달리, 나의 증오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증오심을 마음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 때문에 성서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백인들이 우리의 땅과 우리의 권리 그리고 고유의 신성한 의식을 행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갈 힘을 갖게 된 것은 성서 때문이라고 추리하였습니다! 기숙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의무적으로 교회에 참석해야 할 때면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종교 의식에 빠지기 위해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학교들은 우리를 동화시키고 우리의 인디언 전통을 잊어버리게 하려는 의도로 설립된 학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우리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연과 주변의 환경에 대해 깊은 존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우리는 동쪽을 향해 기도를 한 다음 신성한 옥수수 꽃가루를 뿌려 감사를 표하였습니다.c 그것이 내가 나바호 식으로 훈련받은 공식적인 숭배 방식이었으며, 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마음을 다하여 그러한 훈련을 받아들였습니다. 천당에 간다는 그리스도교국의 사상은 호소력이 없었으며, 불타는 지옥의 고초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은 땅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방학이면 매우 가깝게 지내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나바호족이 사는 집인 호건을 청소하고 직물을 짜고 양을 치는 것이 나의 일과였습니다. 나바호족 사람들은 여러 세기 동안 양치는 일을 해 왔습니다. 우리가 살던 호건(아래 사진 참조)을 청소할 때마다 빨간 색의 작은 책이 눈에 띄었는데, 그 책에는 성서 시편과 “신약”의 일부가 실려 있었습니다. 나는 그 책을 발로 차서 이리저리 치우곤 하면서, 그 책의 내용이나 의미 따위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결혼—환상과 환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있는 직업학교에 다닐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로 떠나기 전에 남편이 될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결혼하려고, 레즈라고 부르는 나바호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부모는 결혼하여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아왔습니다. 나도 부모가 간 길을 따라 가고 싶었으며, 그래서 결혼하였습니다. 집에서 가정 주부로서 살림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으며, 특히 아들 라이오닐이 태어나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매우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 소식과 함께 우리의 행복도 끝나 버렸습니다!

그 소식이란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불충실 때문에 우리의 결혼 생활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으며 남편을 몹시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양육권과 재정 지원을 놓고 공방이 계속 되자, 나는 그저 슬퍼졌으며 내 자신이 무가치하며 희망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몇 킬로미터씩 달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툭하면 울음을 터뜨렸으며 식욕도 잃었습니다. 너무도 외로웠습니다.

얼마 후에, 나처럼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던 한 남자와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상처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동료감을 나타냈으며 내가 필요로 하던 감정적 지원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나는 가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인생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내 말을 잘 들어 주었으며, 그것은 그가 나를 염려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결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마저도 불충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남자와 절교하였습니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어 몹시 우울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고, 복수심에 불탔으며, 자살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는 두 번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참 하느님에 대해 처음으로 조금 알게 되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하느님에게 기도하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외경스러운 우주를 창조한 최고 존재자가 있다는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면 마음이 끌렸으며, 그러한 장관을 즐기도록 누군가가 허락하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하였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창조주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 정말로 존재하신다면 나를 좀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다시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한편 우리 가족, 특히 아버지는 나를 걱정하였습니다. 부모는 나를 치료하도록 주술사를 고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훌륭한 주술사는 절대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자기가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축복의 길’이라는 나바호 종교 의식에도 몇 차례 참여하였습니다.

머리맡에 놓인 라디오를 제외하고는 세상과 담을 쌓고 호건 속에 틀어박혀 여러 날을 보냈습니다. 교직자의 단죄하는 설교를 들을 때는 정말 역겨웠습니다. 마음속에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백인의 종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내 종교에도 신물이 났습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하느님을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혼자 지내는 동안 그 작은 빨간색 책이 다시 눈에 띄었습니다. 그 책이 성서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다윗 왕의 고통과 우울한 마음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 38:1-22; 51:1-19) 하지만 백인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읽은 모든 것들을 재빨리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백인의 종교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럭저럭 아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아들은 격려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기도를 해 주는 종교 텔레비전 프로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움을 받으려고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간절한 마음으로 무료 전화번호를 이용하여 그 프로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50달러나 100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말을 듣고는 쾅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나는 이혼 소송 때문에 우울해졌으며, 남편이 부족의 판사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아들에 대한 양육권 분쟁 때문에, 이혼이 확정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승소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묵묵히 사랑으로 나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증인과의 첫 만남

나는 오늘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한번은 한 나바호족 가족이 이웃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 몰래 그들을 관찰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일종의 호별 방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 집에도 찾아왔습니다. 나바호족 사람인 샌드라는 자신을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여호와라는 이름에 관심이 끌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죠? 댁의 종교는 새로운 종교인 것 같군요. 어째서 교회에서는 나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죠?”

샌드라는 친절하게 성서 시편 83:18을 펴서 보여 주었는데, 그 구절은 이러합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당신, 당신만이 홀로 온 땅을 다스리는 가장 높으신 분임을 사람들로 알게 하소서.” 그는 하느님에게는 고유한 이름이 있으며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여호와의 증인이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와 예수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고 제의하면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내게 주었습니다.d 나는 들뜬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요. 나도 이 새로운 종교를 알아보고 싶어요!”

그날 밤에 그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참신하였고 뭔가 달랐습니다. 그 책에서는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 알려 주었으며, 그러한 설명은 인생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었습니다.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쁘게도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질문들이 성서로부터 대답되었습니다. 나는 배우는 모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한 지식들은 이치에 맞았으며, 진리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나는 아들이 여섯 살 때부터 아들에게 성서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생각과 우리가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쳤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그 작은 팔로 나를 감싸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엄마 울지마. 여호와께서 우리를 돌보실 거야” 하고 위로해 주면 어디선지 모를 큰 힘이 솟았습니다. 그러한 아들의 말은 대단히 위로가 되었으며 성서 연구를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기도로 인도를 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 집회가 미친 영향

여호와께 감사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우리는 왕복 240킬로미터를 여행하여 튜바 시에서 열리는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여름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겨울에는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일요일에 하루 종일 집회를 보았습니다. 한번은 차가 고장나서, 길에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왕국회관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장거리 운전은 피곤했지만, 죽을 정도가 아니면 결코 집회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아들의 말 덕분에, 여호와로부터 나오는 영적 교훈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집회에서, 더는 불행한 일을 겪지 않을 영원한 생명을 강조하는 왕국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내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집에 초대하여 점심이나 다과를 차려 줌으로 후대를 실천하였으며, 우리는 그들의 가족 성서 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나타냈으며 우리의 말을 잘 들어 주었습니다. 특히 장로들은 우리에게 감정 이입을 나타내는 면과 여호와 하느님께서 돌보신다는 우리의 확신을 강화하는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진정한 친구들을 얻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더는 못 견디겠다고 느낄 때에도 새 힘을 주었으며 때로는 나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마태 11:28-30.

두 가지 중대한 결정

여호와의 마련으로 만족하고 있을 무렵, 남자 친구가 돌아와 화해를 청하였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의 애원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결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는 진리가 그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생애 최대의 실수였습니다! 나는 불행해졌습니다. 양심이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절망스럽게도, 그는 진리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 장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성서를 펴서 나와 추리하였으며 내가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결코 내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고통을 주시지 않지만, 불완전한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내 사랑이 얼마나 깊든지 간에 내게 아픔과 고통을 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소위 관습법상의 결혼에서는 아무런 안전감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신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사랑하였으며 그분을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84년 5월 19일에는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물침례를 받았습니다. 아들 라이오닐 역시 침례받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가족과 전 남편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계속 문제를 여호와의 손에 맡겼습니다. 결과는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11년의 긴 세월이 지나자 가족의 박해는 누그러졌으며 가족은 우리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나는 가족을 무척 사랑하며, 그들도 여호와에 대해 알아보고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울증과 자살로 나를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용기 있게 내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다시 행복을 찾은 모습에 만족하였습니다. 나는 여호와께 기도하고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나는 고통과 불완전성과 거짓과 증오의 흔적이 모두 다 완전히 사라지게 될 때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나바호 지역이 온갖 식물들로 뒤덮이고 예전에 이곳에 있던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의 꽃이 만발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서로 다른 부족 출신의 사람들이 강과 비의 도움을 받아 메마른 고향 땅을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모시키는 일에 참여하는 기쁨도 상상해 봅니다. 나바호족 사람들이 인근의 호피족을 비롯한 다른 부족 사람들과 최근까지 그랬던 것처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땅에서 함께 사는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의 말씀이 모든 인종과 부족과 씨족을 연합시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부활을 통해 가족들과 친구들이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하는 모습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영원한 생명의 전망이 있는 매우 기쁜 때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전망에 대해 배우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바호 지역의 신권적 확장

튜바 시에 왕국회관이 지어지고, 나바호 보호 구역과 호피 보호 구역에서 친리 회중, 케옌타 회중, 튜바 시 회중, 킴스캐니언 회중 등 네 개의 회중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설레는 경험이었습니다.e 1983년에 처음으로 신권 전도 학교에 등록하였을 때, 신권 전도 학교가 나바호어로 사회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닙니다. 1998년부터는 신권 전도 학교가 나바호어로 사회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고유한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한없이 많은 축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나바호어로 모두 번역되어 나온 「땅에서 영원히 사는 길」,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그리고 최근에 나온 「당신도 하느님의 벗이 될 수 있다!」라는 팜플렛을 통해, 우리 고유의 언어로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표현들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이 기쁜 일입니다. 디네라고 하는 나바호족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와 부족과 언어에 속한 사람들이 유익을 얻도록 성서 교육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마태 24:45-47.

나는 생계를 위해 전 시간 일을 하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나는 독신으로 지내는 이 생활을 가치 있게 생각하며, 정신이 산만해지는 일 없이 여호와를 섬기고자 합니다. 나바호족 사람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여호와는 마음이 꺾인 자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영이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어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시 34:18.

이제 더는 성서가 백인의 종교 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는 그 말씀을 배우고 적용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당신을 방문한다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십시오. 그들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하느님의 이름 여호와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해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각주]

a 모르몬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지 1995년 11월 15일호 참조.

b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은 1968년에 한 아메리카 원주민이 창설한 민권 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는 종종 인디언 사무국을 비판하는데, 인디언 사무국은 정부 기관으로서 표면적으로는 미국 인디언들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목적으로 1824년에 설립되었다. 인디언 사무국은 광물이나 물을 비롯하여 보호 구역과 관련된 이권들을 인디언이 아닌 사람들에게 임대하는 일을 많이 하였다.—「월드 북 백과사전」.

c 꽃가루는 신성한 물질로 여겨지며 기도와 의식에서 생명과 재생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나바호족은 꽃가루가 뿌려진 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몸이 거룩해진다고 믿는다.—「아메리카 원주민 종교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Native American Religions).

d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하였지만 지금은 절판됨.

e 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 1996년 9월 8일호에 실린 일련의 기사 “아메리칸 인디언—그들의 미래는 어떠한가?” 참조.

[21면 삽화]

나바호족의 전형적인 호건

[21면 삽화]

아들 라이오닐과 함께

[23면 삽화]

1993년 모스크바 국제 대회에서 러시아 친구들과 함께

[24면 삽화]

애리조나 주 케옌타 회중에 있는 내 영적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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