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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에게 하느님은 관심을 기울이시는가?
    파수대—2012 | 9월 1일
    • 여성에게 하느님은 관심을 기울이시는가?

      “죄는 여자로부터 시작하였고, 우리의 죽음도 본시 여자 때문이다.”—집회서, 기원전 2세기.

      “너는 악마의 출입문이다. 너는 금단의 나무에 최초로 손을 댄 자이다. 너는 하느님의 법을 처음으로 저버린 자이다. ··· 너는 하느님의 형상인 남자를 너무도 쉽게 망쳐 놓았다.”—테르툴리아누스, 「여성들의 복장에 관하여」(On the Apparel of Women), 기원 2세기.

      고대의 이 문구들은 성서에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 세기 동안 이 문구들은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극단적인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 서적의 문구들을 인용해, 인류의 문제들이 여자 탓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합니다. 여자가 남자의 멸시와 학대를 받는 것이 정말 하느님의 뜻입니까? 성서는 무엇이라고 알려 줍니까?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것은 ‘원래의 뱀 곧 마귀라고 하는 자’입니다. (창세 3:14; 계시 12:9) 아담이 아내를 “지배”할 것이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은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도록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창세 3:16) 그분은 단지 최초의 부부가 죄로 인해 겪게 될 슬픈 결과를 예언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을 학대하는 일은 인간의 죄 짓기 쉬운 성향의 직접적인 결과이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서는 여자가 원죄를 씻기 위해 남자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사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로마 5:12.

      하느님은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1:27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기 시작하셨으니,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다.” 따라서 시초부터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느님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게 창조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서로 달랐지만, 둘 다 동일한 사명을 받았으며 창조주 앞에서 동일한 권리를 누렸습니다.—창세 1:28-31.

      아담이 열매를 따는 동안 바구니를 만드는 하와

      하와는 아담의 보완자이자 돕는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은 하와를 창조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아담]를 위하여 그의 보완자로서 돕는 자를 만들겠다.” (창세 2:18) “보완자”라는 말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히브리어 단어는 “보충자” 또는 남자에게 “적합한 조력자”로도 번역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술 중에 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가 어떻게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둘 중에 한 사람이 없다면 수술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수술할 때 실제로 집도하는 사람이 외과 의사라고 해서 그가 더 중요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히 협력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창세 2:24.

      무엇을 보면 하느님이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불완전하고 죄 많은 남자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내다보시고, 하느님은 오래전부터 여자들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나타내셨습니다. 기원전 16세기에 제정된 모세 율법에 관해, 로르 에이나르라는 저술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본 성서」(La Bible au féminin)라는 책에서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율법 계약에서 여자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는 대부분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율법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공경하고 존중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탈출 20:12; 21:15, 17) 또한 임신한 여자를 합당하게 배려해 줄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탈출 21:22) 오늘날에도, 그처럼 여성을 보호한 하느님의 법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부 여성이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사실, 하느님이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증거는 더 있습니다.

      율법은 여성에 대한 하느님의 견해를 반영한다

      여호와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율법은 남녀 모두에게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잘 듣고 순종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땅의 다른 모든 나라들 위에” 높여졌습니다. (신명 28:1, 2) 율법에 의하면, 여성은 어떤 위치에 있었습니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1. 개인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고대의 많은 나라에 살던 여자들과 달리 이스라엘 여자들은 상당한 자유를 누렸습니다. 가정의 머리 역할은 남편에게 주어졌지만, 아내는 남편의 전적인 신뢰를 받아 “밭을 신중히 생각해 본 다음에 그것을 취득”하고 “포도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실을 잣고 천을 짜는 기술이 있다면, 자기 사업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잠언 31:11, 16-19) 모세 율법 아래, 여자들은 단지 남자의 부속물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개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자들은 하느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누릴 자유도 있었습니다. 성서에는 한나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한나는 사적인 문제에 관해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은밀히 서원을 했습니다. (사무엘 첫째 1:11, 24-28) 수넴이라는 도시의 한 여자는 안식일이 되면 예언자 엘리사를 찾아가 그의 말을 듣곤 했습니다. (열왕 둘째 4:22-25) 드보라나 훌다와 같은 여자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대표자로 사용하셨습니다. 흥미롭게도, 탁월한 위치에 있는 남자들과 제사장들이 기꺼이 그들의 조언을 구했습니다.—재판관 4:4-8; 열왕 둘째 22:14-16, 20.

      2. 교육받을 기회가 열려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율법 계약의 당사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이 낭독될 때 와서 들으라는 초대를 받았으며, 그런 기회들을 통해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신명 31:12; 느헤미야 8:2, 8) 그에 더해, 공개적인 숭배의 특정 부면들에 참여하도록 훈련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들은 장막에서 “조직된 봉사”를 수행한 것 같으며,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탈출 38:8; 역대 첫째 25:5, 6.

      시장에서 장사하는 고대 이스라엘 여성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자들은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여자는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언 31:24) 또한, 당시 다른 나라들에서는 오직 아버지만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어머니도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가르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잠언 31:1) 분명 고대 이스라엘의 여성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3. 존경과 존중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에는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라는 분명한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출 20:12)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잠언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징계를 잘 듣고 네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아라.”—잠언 1:8.

      율법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행실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자에 대한 존중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레위 18:6, 9; 신명 22:25, 26) 훌륭한 남편은 아내의 신체적·생물학적 한계를 고려해야 합니다.—레위 18:19.

      4. 보호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성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아버지 없는 소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재판관”으로 묘사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권리를 지켜 줄 아버지나 남편이 없는 이들의 보호자이셨습니다. (시 68:5; 신명 10:17, 18) 그래서 한번은 예언자의 아내였던 과부가 빚쟁이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여호와께서 기적으로 개입하셔서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열왕 둘째 4:1-7.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장인 슬로브핫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다섯 딸은 약속의 땅에서 자신들에게 “소유물”을 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보이신 반응은 그들의 요청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들에게 상속 소유물을 주고, 그 아버지의 상속 재산이 그들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때 이후로 이스라엘에서 여자들은 아버지로부터 상속 재산을 받을 수 있었고, 그것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민수 27:1-8.

      여성에 대한 하느님의 견해를 왜곡하다

      모세 율법 아래, 여자들은 존중받는 위치에 있었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았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부터 유대교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 문화권에서는 여자들이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고대 문헌에 나타난 여성 차별” 네모 참조.

      예를 들어,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기원전 8세기)는 인류의 모든 문제를 여자들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 「신통기」에서 “멸성인 남자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아주 사악한 종족인 여자의 무리”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기원전 2세기 초에 유대교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기원 2세기부터 편찬된 탈무드에서는 남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여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말라. 결국 부정을 저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이러한 불신은 유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미 예수 시대에는, 성전 경내에서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여인의 뜰로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종교 교육은 오직 남자들만 받을 수 있었으며, 여자들은 회당에서 남자들과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탈무드에는 한 랍비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자기 딸에게 토라[율법]를 가르치는 것은 딸에게 음란 행위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견해를 왜곡하여, 남자들이 여자를 멸시하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그러한 편견을 보셨습니다. (마태 15:6, 9; 26:7-11) 그분은 여성을 대하실 때 그런 가르침의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그분의 행동과 태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참그리스도교는 여자들에게 위안을 주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대 문헌에 나타난 여성 차별

      기원 1세기 이후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같은 저술가들은 그리스 철학에 비추어 창세기 기록을 재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필로는 하와가 성적인 죄를 지었으며 그 결과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고 남편의 지배에 예속된” 삶을 형벌로 받았다고 썼습니다. 그처럼 여성을 멸시하는 태도는 유대교에 스며들었고 교부들의 기록물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2세기의 유대교 문헌인 「미드라시 랍바」에는 여자들이 머리 덮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 한 랍비의 말이 나오는데,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자는 잘못을 범하여 사람들 앞에 자신을 보이기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자와 같다.”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의 기록물은 일찍이 기원 2세기부터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는 여자들이 자신을 “하와처럼 여기면서 애통해하고 회개하는 태도로” 다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흔히 성서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받는 그러한 가르침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 하느님은 여성이 존중받기를 원하신다
    파수대—2012 | 9월 1일
    • 하느님은 여성이 존중받기를 원하신다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을 친절하게 대하시는 예수

      예수께서는 지상에 있는 동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일하시는 방식을 완벽히 반영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자의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이것들을 말합니다. 나는 언제나 그분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합니다.’ (요한 8:28, 29; 골로새 1: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여성을 대하신 방식과 그들에 대한 그분의 태도를 살펴보면, 하느님이 여성을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여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기를 기대하시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 기록을 살펴본 여러 학자들은 여성에 대한 예수의 견해가 매우 혁신적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중요한 점으로, 그분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자들에게 해방감을 줍니까?

      예수께서 여성을 대하신 방법

      예수께서는 여자를 단지 성적 대상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일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성과의 접촉이 정욕을 일으킬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유혹의 근원으로 여겨져 기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남자에게 말을 걸거나 머리 덮개를 쓰지 않고 외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남자들에게 여자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육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여자들을 품위 있게 대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마태 5:28.

      예수께서는 또한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아내를 거슬러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 10:11, 12) 당시에는 “어떤 근거로든”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고 허용한 랍비들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러한 가르침을 배척하신 것입니다. (마태 19:3, 9) 아내를 거슬러 간음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를 거슬러 간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오직 여자만 불충실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한 성서 해설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남편이 아내와 동일한 도덕적 의무를 지게 하심으로 여성의 지위와 존엄성을 높이셨다.”

      오늘날 그분의 가르침이 미치는 영향: 여호와의 증인의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여자들은 집회 때 남자들과 자유롭게 어울립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부당하게 친근하게 굴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남자들이 “연로한 여자들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이 하고, 젊은 여자들에게는 극히 순결하게 자매에게 하듯이” 대하려고 조심하기 때문입니다.—디모데 첫째 5:2.

      예수께서는 시간을 내어 여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랍비들의 견해 때문에 여자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자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그분은 가르침받는 즐거움을 마리아에게서 빼앗지 않으심으로, 여자들이 부엌에서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누가 10:38-42) 나사로가 사망한 후에 마리아의 친자매인 마르다가 한 명석한 대답을 보면, 마르다 역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유익을 얻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요한 11:21-27.

      예수께서는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 여자들은 대부분 훌륭한 아들, 가능하다면 예언자인 아들을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여자가 ‘당신을 밴 태가 행복합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더 나은 것을 여자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누가 11:27, 28) 그분은 영성이 더 중요함을 지적하심으로, 전통적으로 여자에게 요구되는 역할보다 더 의미 있는 것에 주의를 이끄셨습니다.—요한 8:32.

      오늘날 그분의 가르침이 미치는 영향: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회중 집회 때 여자들이 하는 해설을 가치 있게 여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훌륭한 행실을 유지함으로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장성한 여자들을 존중합니다. (디도 2:3) 그뿐 아니라,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에서 여자들의 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시 68:11; 9면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금지했습니까?” 네모 참조.

      예수께서는 여자들의 복지에 관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성서 시대에는 딸을 아들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견해가 반영된 탈무드에는 “아들들을 둔 아버지는 행복하고, 딸들을 둔 아버지는 화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딸을 큰 짐으로 여겼습니다. 신랑감을 찾아 주고 지참금을 주어야 하지만, 노년에 딸에게는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나인에서 과부의 아들을 부활시키셨듯이 야이로의 딸도 부활시키심으로, 소년의 생명만큼 어린 소녀의 생명도 중요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가 5:35, 41, 42; 누가 7:11-15) 그분은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를 고쳐 주신 후에 그를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셨는데, 이 말은 유대인 기록물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표현입니다. (누가 13:10-16, 성경전서 새번역) 예수께서는 존중심과 친절이 담긴 이 표현을 사용하심으로, 그 여자를 사회의 어엿한 성원으로 여기셨고 그의 큰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누가 19:9; 갈라디아 3:7.

      오늘날 그분의 가르침이 미치는 영향: 아시아의 속담에는 “딸을 키우는 것은 이웃집 정원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자한 그리스도인 아버지는 그런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아들이든 딸이든 모든 자녀를 잘 돌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모든 자녀가 적절한 교육과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사도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알리는 막달라 마리아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사도들에게 알리는 영예를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여자들을 신뢰하셨습니다. 유대인 법정에서 여자의 증언은 기껏해야 종의 증언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들은 원래 경솔하며 뻔뻔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에, 여자들의 증거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여자들이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마태 28:1, 8-10) 충실한 그 여자들은 이미 주께서 처형되고 매장되신 일의 목격 증인이었는데도, 사도들은 그들의 말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마태 27:55, 56, 61; 누가 24:10, 11) 하지만 부활되신 그리스도는 처음에 여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 여자도 다른 제자들처럼 증언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셨습니다.—사도 1:8, 14.

      오늘날 그분의 가르침이 미치는 영향: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서 책임을 맡은 남자들은 여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고려함으로 그들에게 사려 깊은 태도를 보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의 말을 주의 깊이 들음으로 아내를 “존중”해 줍니다.—베드로 첫째 3:7; 창세 21:12.

      성서 원칙은 여자들에게 행복을 더해 준다

      여자를 위해 문을 열어 주는 남자

      성서 원칙을 따르는 사람은 여성을 대할 때 존중심을 나타냅니다

      남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여자들은 하느님이 원래 목적하신 대로 존중을 받고 자유를 누립니다. (창세 1:27, 28) 그리스도인 남편은 남성 우월주의를 편들기보다는 성서 원칙을 따르며, 그러한 원칙은 아내에게 행복을 더해 줍니다.—에베소 5:28, 29.

      옐레나는 성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남편의 가혹한 대우를 묵묵히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 지역에서는 신붓감을 납치하고 아내를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옐레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서에서 배운 내용은 내게 힘이 되었습니다. 나를 매우 사랑하시고 가치 있게 여기시며 내게 관심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만일 남편이 성서를 연구한다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리라는 것도 알았지요.” 그의 꿈은 현실이 되어, 결국 남편이 성서를 연구하여 침례를 받고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옐레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은 자제와 참을성을 잘 나타내게 되었어요. 우리는 서로 기꺼이 용서하는 법을 배웠답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나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며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는 데, 성서 원칙이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골로새 3:13, 18, 19.

      옐레나만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결혼 생활에 성서 원칙을 적용하려고 남편과 함께 노력하기 때문에 행복을 맛보고 있습니다. 또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리면서, 존중받고 위로를 얻으며 자유를 누립니다.—요한 13:34, 35.

      남자든 여자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죄 많고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허무한 것에 복종하게 된” 창조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 많은 하느님 아버지 여호와께 가까이 감으로, 그들은 “부패의 종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느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의 돌봄 아래 남자와 여자가 모두 가질 수 있는 참으로 놀라운 전망이 아닙니까!—로마 8:20, 21.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금지했습니까?

      “여자들은 회중에서 잠자코 있으십시오”라고 사도 바울은 썼습니다. (고린도 첫째 14:34)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울이 여자들의 지적 능력을 하찮게 여긴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여자들의 건전한 가르침에 대해 자주 언급했습니다. (디모데 둘째 1:5; 디도 2:3-5)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방언과 예언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다른 신자들이 말할 때 “잠자코” 있으라고 조언했습니다.a (고린도 첫째 14:26-30, 33) 아마도 일부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새로 갖게 된 믿음에 너무 열성적이 된 나머지, 당시 그 지역의 관습대로 연사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처럼 무질서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바울은 여자들에게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질문”하도록 권고했습니다.—고린도 첫째 14:35.

      a 회중에서 여자들이 하는 역할에 관해 더 자세히 살펴보려면, 23면의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는 여성 성직자도 있습니까?”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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