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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사람들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갖는가?
  • 깨어라!—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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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9
깨79 01월호 38-40면

당신은 사람들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갖는가?

사람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단순히 관심을 갖는 것과 사랑에 찬 관심을 갖는 것과의 차이점을 식별하여 그와 일치하게 행동한다면, 즐거움과 만족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뒷공론에 관하여 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오늘날 출판업계에서의 가장 놀라운 성공.” 이것은 1977년 5월 16일자 「비지니스 위이크」지가 「사람들」(people)이라는 잡지에 관해 인용한 말이다. 이 잡지의 이러한 인기는 일반 대중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갈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증거에 불과하다.

당신은 다른 증거들을 본 적은 없는가? ‘유럽’에 가 보면 대부분의 신문 판매대에는 공주들, 백작들 및 국제적인 명사들—상류 사회 인사들 또는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특종 기사로 싣는 잡지가 범람하고 있다. 최근 「맥콜」지의 한 기사인 “뒷공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우리는 사방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어디에서나 [뒷공론을] 들을 수 있다. 그 밖에 가장 잘 팔리는 소설은 모두 뒷공론풍의 실화 소설 형식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이런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 약간의 살을 붙여 꾸민 실제 인물들이다. 이전에 가장 정통적인 부류에 속했던 신문들까지도 사적인 이야기일수록 더 인기를 끄는 명사들에 관한 소품을 싣는 ‘사람들’이라는 난을 할애할 만큼 완화되었다. 그리고 뒷공론은 미국 사람들의 집 현관에서 신문 잡지의 제 1면으로 스며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읽는 것이 “뒷공론”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그것을 “조사 보고”나 “사적인 기사”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류학자 ‘마아가렛 미이드’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열광적으로 전국의 기고가들과 특종 기사 기자들—영국과 서‘유럽’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임—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조달처로서 그들이 성공한 것을 축하하고 있다. 즉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뒷공론으로 성공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나쁜 일이며, 피해야 할 일인가? 그러한 일에는 좋은 면도 있을 수 있는가? 그러한 일은 새삼스런 일인가? 「타임」지 발행인 ‘헨리 루스’는 한 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강조하는 일은 「타임」지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성서가 시작하였다.”

그렇다. 성서에는 사람들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성서는 또 우리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충고를 제공해 준다.

오늘날의 허다한 뒷공론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사람들의 약점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로 구미를 돋구거나 명성을 무너뜨리거나, 또는 단순히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성서가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성서 기록은 좋은 이유에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북돋아 준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이야기는 가정 문제나 혈족간의 싸움에 관한 흥미있는 한 토막의 이야기거리에 불과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서는 이 기록에서 증오를 피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에 관하여 성서가 알려 주는 점은 우리에게 “유익”하다.—히브리 11:4; 요한 1서 3:10-15; 디모데 후 3:16, 17.

심지어 성서가 “선한” 사람들의 결점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도, 생각깊은 독자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상세한 점들을 알려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윗’이 아름다운 ‘밧세바’와 간통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러나 성서 기록은 영화 배우들과 정치가들의 부정한 일에 관해 알려 주는 오늘날의 신문이나 잡지 기사들과는 매우 다르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승인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밝혀 주며, ‘다윗’이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형벌을 받았음을 알려 준다. 성서는 부도덕을 미화하거나 부도덕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성서는 또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도록 만든 ‘다윗’의 진실한 회개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사무엘 하 11:1-12:23; 시 51편.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신문이나 잡지의 뒷공론 기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제한시켜야 하는 점에 관하여 쉽사리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동료들이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우리에게 흔히 말해 주는 이야기는 어떠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흥미거리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어떠한 경향을 항상 억제해야 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왜냐 하면 우리는 친척, 친구 및 동료들에 대한 선천적이며 합당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중의 한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갖거나, 병들거나, 성서 연구에 좋은 발전을 보이거나, 흥미있는 휴가를 보냈거나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분명히 관심을 가질 이유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개개인들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그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성서는 제어되지 않은 어리석은 말을 많이 하는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한다. (잠언 10:19; 15:2) 그리고 성서는 화제에 오르는 사람에 대한 사랑에 찬 관심에 기초하지 않은, 악한 말을 하는 일에 가담하거나 심지어 듣는 것도 단죄한다. (전도서 10:12-14; 요한 3서 9, 10) 이러한 뒷공론에 말려드는 사람들—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은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떤 사람을 깎아내리고자 하고,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자기를 비밀을 가진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의도로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로 해로운 짓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뒷공론이 친구를 이간시킨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분명히 혀는 “양약”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잠언 12:18; 17:9.

그러한 일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사도 ‘바울’은 충고하였다. 제 1세기 ‘바울’ 당시 어떤 여자들은 “할 일 없이 이 집 저 집 놀러다니고 그 뿐만 아니라 수다를 떨고 일만 만들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다”녔다.—디모데 전 5:13. 새번역.

그러면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 대한 우리의 관심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한 가지 방법은 “나는 화제에 오른 사람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갖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는 것이다. 만일 그 말의 내용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도와 주려는 생각을 갖고 듣는가? 어떤 사람이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을 격려해 주고자 방문하거나, 허드렛일을 도와 주거나 우리의 염려와 관심을 나타내는 엽서라도 보내는 일을 생각하는가? 그러나 만일 이야기가 누구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다면, 그 말을 들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 말은 단순한 뒷공론이 아닌가? 심지어 그것은 중상이 될 수도 있다.—잠언 16:28; 로마 1:28-32.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갖는 데 본을 세웠다. 한 때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명한 사람들을 따르고 있다는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다. ‘바울’은 이 소식이 특히 흥미있는 뒷공론이기 때문에 ‘귀를 기우렸’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가졌고, 도움을 주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는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잘못을 시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충고를 주었다.—고린도 전 1:11-13; 3:4-23.

그래서 뒷공론이 “대인기를 끌 때” 그 뒷공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깊이 고려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아무런 선한 목적을 이루지 않는 뒷공론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는가?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찬 관심을 가짐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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