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의 질문
◼ 어떤 그리스도인이 회중 내의 어떤 사람의 행실이나 태도 때문에 그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경우, 그는 데살로니가 후서 3:14, 15에 따라서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지목”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부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의 원칙들에 따라 살기를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는 그들과 교제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일이 있을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고 12 사도 중 3명의 사도를 특히 가까이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 모두를 택하셨고,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셨으며 그들 모두를 사랑하셨읍니다. (요한 13:1, 23; 19:26; 마가 5:37; 9:2; 14:33) 이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결점이 없는 형제는 없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동료 신자들이 건전한 벗들임을 알고 있읍니다. (베드로 전 4:8; 마태 7:1-5)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식별케 해주는 표입니다.—요한 13:34, 35; 골로새 3:14.
그러나, 어떤 경우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승인할 수 없는 태도나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옳지 않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아마 ‘먹고 마시며 즐기자’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 ‘고린도’에 있는 일부 사람들에 관해 기술하였읍니다. 회중 내의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였읍니다. ‘바울’이 이렇게 충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나쁜 교제, 신세]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린도 전 15:12, 32, 33.
이 일반적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 적절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기네 자녀들이 아직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세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다른 특정한 청소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해로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한 다른 어린 아이들은 이제부터 비로소 경건의 훈련으로부터 유익을 얻으려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증거를 분명히 볼 수 있을 때까지, 그 부부는 자기네 자녀들이 그러한 청소년들과 함께 놀고 그들을 찾아가는 일에 대해 제한을 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후서 3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지목”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부모는 단순히 “나쁜 교제”를 피하라는 ‘바울’의 충고를 적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목’해야 할 정도의 상황은 위의 자녀들이 관련된 예보다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때때로 회중 내의 어떤 사람이, 아직 고린도 전서 5:11-13에 언급된 제명 처분될 만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매우 혼란을 야기시키는 비성경적 행실을 일삼을지 모릅니다. 고대 ‘데살로니가’ 회중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일이 있었으며,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느니라.]”—데살로니가 후 3:11.
‘데살로니가’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였읍니까?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데살로니가 후 3:6, 13-15.
이처럼, ‘바울’은 게으른, 일만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채 그러한 사람들의 심각한 행동을 회중에 폭로하였읍니다. 그 결과 규모 없이 행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지목”받는 사람들로 대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지목하여”라는 교훈에 사용된 희랍어 단어는 “표시를 하고 있으라”, 즉 ‘어떤 사람을 특별히 유의함’을 의미합니다.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바울’은 “저로 하여금 부끄”러워 하도록 지목받은 사람과 “사귀지 말”라고 말하였읍니다. 형제들은 그 사람을 완전히 멀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같이 권하라”고 충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사교적인 교제를 제한함으로써 형제들은 그가 부끄러워 하게 하고 아마 그에게 성서 원칙들에 순응할 필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읍니다. 그러는 동안 형제 자매들은 그 사람의 불건전한 영향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디모데 후 2:20, 21.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 회중은 이러한 교훈을 적용시킵니다.a 「파수대」 1982년 7월 15일호 24면에서는, 지목하는 일이 단순한 개인의 견해에 따라 혹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과의 친밀한 교제를 피하기로 결정함으로 행해지는 것이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였읍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있었던 경우가 알려 주듯이, 지목하는 일에는 성서의 원칙들을 심각하게 범하는 일이 관련됩니다. 먼저 장로들은 그를 훈계함으로써 반복해서 원칙을 범한 그 사람을 도우려고 할 것입니다. 문제가 계속된다면, 그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경고했던 것처럼 그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관련된 규모 없는 행실에 관하여 회중에 경고하는 연설을 할 수 있읍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은 그 잘못을 범한 사람을 “지목”할 것입니다.
지목하는 온갖 부면들에 관한 규칙들을 미리 정해 놓는 것보다는 좋은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었던 그 문제에 관하여, 어떤 사람이 얼마 동안이나 일하기를 거절해야 그를 지목할 수 있는지를 명시하는 것과 같은, 상세한 규칙들을 알려 주지 않았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장로들은 양떼를 접하면서, 특정한 상황이 회중에 경고하는 연설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하고 혼란을 야기시키는 일인지를 판단하는 일에 합리성과 분별력을 사용할 수 있읍니다.b
지목을 하는 한 가지 목적은 규모 없이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움직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그가 하던 비성경적인 행실을 중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를 지목하는 개개인들, 특히 장로들은 집회 및 야외 봉사에서 그와 접촉하면서 계속 그를 격려하고 그의 태도에 유의할 것입니다. 그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문제와 태도가 개선된 것을 보게 되면 그들은 그와 사귀는 일에 대한 제한을 철회할 수 있읍니다.
따라서, 지목하는 일을 개인이나 가족이 나쁜 교제를 피하라는 하나님의 교훈을 적용하는 일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지목하는 일이 종종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분명히 지목하는 일은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이 취했던 것처럼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취하게 되는 성경적 조치이어야 합니다.
[각주]
b 예를 들어, 장로들은 “주 안에” 있지 않은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대하는 일에서 분별력을 행사해야 한다.—「파수대」 1982년 9월 1일호 24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