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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서 10
  • 신세계역 성경 (연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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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개요

    • 나. 의는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다 (1:16–11:36)

      • 1. 믿음은 구원에 필수적이다 (1:16, 17)

        •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인해 살 것이다” (1:16, 17)

      • 2.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 (1:18-32)

        • 사람들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에 대해 변명할 수 없다 (1:18-23)

        • 하느님께서는 불경건한 사람들을 더러움에 내주셨다 (1:24-27)

        •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오게 되는 결과 (1:28-32)

      • 3. 유대인과 그리스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 (2:1-16)

        • 남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경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2:1-11)

        • 율법 아래 있지만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2:12, 13)

        • 이방 사람들도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 즉 양심을 가지고 있다 (2:14-16)

      • 4. 유대인과 율법 (2:17–3:8)

        • 율법을 따른다고 주장하면서 율법을 어기는 사람은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리는 것이다 (2:17-24)

        • 진정한 할례는 내면의 할례이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정한 유대인이다 (2:25-29)

        •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신성한 선언을 맡았다 (3:1, 2)

        •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해도, 하느님은 참되시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3:3-8)

      • 5. 하느님의 의는 율법과 상관없이 나타났다 (3:9-31)

        •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인류가 죄 아래 있다 (3:9-18)

        •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사람도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3:19, 20)

        •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모든 부류의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3:21-28)

        • 하느님은 유대인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하다 (3:29-31)

      • 6. 아브라함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았다 (4:1-25)

        • 아브라함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때에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여겨졌다 (4:1-12)

        • 아브라함은 믿음에 의한 의를 통해 약속을 받았다 (4:13-15)

        •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고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한 것이 되었다 (4:16-25)

      • 7.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다. 아담을 통해 죽음이 들어오고,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에 이르다 (5:1-21)

        •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으면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고 기쁨과 희망을 갖게 된다 (5:1-5)

        • 죄인이자 적이었지만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다 (5:6-11)

        •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지고 왕 노릇을 하게 되다 (5:12-14)

        •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선물은 의롭다는 인정을 가져온다 (5:15-17)

        • 죄가 아니라 과분한 친절이 왕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5:18-21)

      • 8.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다 (6:1-23)

        •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같은 부활을 받을 희망을 갖게 된다 (6:1-11)

        • ‘죄가 여러분의 몸 안에서 다스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6:12-14)

        • 죄의 종이었다가 하느님의 종이 되다 (6:15-23)

      • 9. 율법의 목적이 달성되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죄의 힘 (7:1-25)

        • 율법에서 풀려나는 것에 대한 비유적 설명 (7:1-6)

        • 율법을 통해 죄를 알게 되다 (7:7-12)

        • 죄와의 싸움 (7:13-25)

      • 10.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의로운 신분 (8:1-39)

        • 영을 따라 걸으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생명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8:1-11)

        •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것을 하느님의 영이 증언한다 (8:12-17)

        • 인류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8:18-21)

        • 피조물이 현재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다 (8:22-25)

        • 영이 거룩한 자들을 위해 하느님께 탄원한다 (8:26, 27)

        •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하게 하신다 (8:28-30)

        •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8:31-34)

        • 어떤 것도 의로운 사람들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 (8:35-39)

      • 11.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하느님의 뜻과 육적 이스라엘 (9:1-33)

        • 바울이 자신의 친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고 슬퍼하다 (9:1-5)

        • 아브라함의 참자손 (9:6-13)

        • 하느님의 선택은 사람의 바람이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다 (9:14-18)

        • 도공이신 하느님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9:19-26)

        • 육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9:27-29)

        • 이스라엘은 믿음을 나타내지 않음으로 걸려 넘어졌다 (9:30-33)

      • 12.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는 방법 (10:1-21)

        •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10:1-4)

        • 믿음에서 오는 의. 구원을 위한 공개적 선언 (10:5-10)

        •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구원을 받으려면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10:11-13)

        • 사람들이 여호와에 대해 듣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부르려면 전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10:14, 15)

        • 육적 이스라엘이 좋은 소식을 배척한 것은 그 소식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10:16-21)

      • 13. 온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 알려 주는 올리브나무의 비유 (11:1-36)

        • 육적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지만 전부는 아니다 (11:1-16)

        • 본래의 가지들인 이스라엘인들 중 일부가 믿음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잘려 나가고 “야생” 가지들인 비이스라엘인들이 접붙여지다 (11:17-24)

        • 어떻게 영적 이스라엘 전체가 구원을 받게 되는지가 신성한 비밀을 통해 밝혀지다 (11:25-32)

        • “오, 하느님의 부와 지혜와 지식은 참으로 깊습니다!” (11:33-36)

로마서 10:1

상호 참조 성구

  • +롬 9: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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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파수대」 (연구용)

    2018/5, 15-16면

    「파수대」

    2005/7/1, 20-21면

    1997/12/15, 17-18면

  • 출판물 색인

    파18.05 15-16; 파05 7/1 20-21; 파97 12/15 17

로마서 10:2

  • 정확한 지식: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지식”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그노시스와 에피그노시스이다. 두 단어 모두 “알다; 이해하다; 깨닫다”를 의미하는 동사 기노스코와 어근이 같다. 여기 사용된 에피그노시스는 그노시스의 강조형(에피는 문자적으로 “위에”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부가적인”이라는 의미)이다. 에피그노시스는 문맥에 따라 흔히 “정확한, 참된, 온전한 지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들의 열심은 약속된 메시아인 예수를 통해 밝혀진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상호 참조 성구

  • +행 21:20; 갈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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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파수대」 (연구용)

    2018/5, 15-16면

    「통찰」 제2권 884면

    「파수대」

    2002/10/15, 29-30면

    2002/4/1, 3-4면

    1989/12/1, 14면

  • 출판물 색인

    파18.05 15-16; 통-2 884; 파02 4/1 3-4; 파02 10/15 29-30; 파89 12/1 14;

    파74 298; 깨74 2/8 23; 파73 469; 깨73 8/22 22; 깨72 11/8 22

로마서 10:3

상호 참조 성구

  • +롬 1:16, 17
  • +눅 16:15; 빌 3:9
  • +마 15:3-6; 눅 7:29, 30

색인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통찰」 제2권 884면

    「통찰」 제2권 587면

    「파수대」

    2010/10/15, 8면

    2002/6/1, 14면

  • 출판물 색인

    통-2 587, 884; 파10 10/15 8; 파02 6/1 14;

    파80 3 37; 깨74 2/8 23; 파73 469; 깨73 8/22 22; 깨72 11/8 22

로마서 10:4

  • 마침: 일반적으로 “끝”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텔로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는 시작과 대비되는 끝, 마침을 가리킬 수 있다. (마 24:14; 막 3:26; 계 21:6) 여기에서 이 단어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모세 율법이 온전히 끝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 1:17; 롬 6:14; 갈 5:18; 골 2:14, 16, 17) 하지만 텔로스는 목표나 목적이라는 의미로서의 끝 즉 “마침”을 가리킬 수도 있다. (동일한 그리스어가 “목적”으로 번역된 딤전 1:5 비교) 바울이 모세 율법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보호자”로 언급했으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이 지향하는 목적 또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갈 3:24) 따라서 이 구절에서 텔로스는 두 가지 의미를 다 담고 있는 것 같다.

상호 참조 성구

  • +마 5:17; 롬 7:6; 엡 2:15; 골 2:13, 14
  • +행 13:38, 39; 갈 3:24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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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 제1권 841면

    「깨어라!」

    1988/5/15, 22-23면

  • 출판물 색인

    통-1 841; 깨88 5/15 22-23;

    파73 469; 깨73 2/22 19

로마서 10:5

상호 참조 성구

  • +레 18:5; 갈 3:12

색인

  • 출판물 색인

    파73 63

로마서 10:6

상호 참조 성구

  • +신 9:4
  • +신 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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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 제1권 704면

  • 출판물 색인

    통-1 704;

    목 137; 파73 63-4

로마서 10:7

  • 무저갱: 또는 “깊은 곳”. 무저갱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아빗소스는 기본적으로 “몹시 깊은” 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경계가 없는”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총 아홉 번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갇혀 있는 장소나 상태를 가리킨다. (눅 8:31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 즉 롬 10:7에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3일 동안 계셨던 상징적인 장소를 가리키며, 그곳으로부터 예수의 아버지께서는 예수를 부활시키셨다. (시 71:19, 20; 마 12:40 비교) 예수께서는 죽으셨을 때 의식이 없고 전혀 활동할 수 없는 상태로 갇혀 있으셨다. 다시 말해, 속박되어 있으셨다. 오직 예수의 아버지만이 그곳에 갇혀 있던 예수를 자유롭게 해 주실 수 있었다. (삼하 22:5, 6; 욥 38:16, 17; 시 9:13; 107:18; 116:3; 행 2:24 비교) 하지만 “무저갱”이라는 표현이 단지 인류의 공통 무덤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용어 설명 “무덤” 참조)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 히브리어 셰올(“무덤”)을 번역하는 데 아빗소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유의할 만하다. 또한 사탄과 악귀들이 갇혀 있게 될 상징적인 장소도 “무저갱”이라고 불리며 “감옥”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 점 역시 “무저갱”이라는 표현이 단지 인류의 공통 무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한다.—눅 8:31; 계 20:1, 3, 7.

상호 참조 성구

  • +신 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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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 제1권 704면

  • 출판물 색인

    통-1 704;

    목 137; 파73 63-4

로마서 10:8

  • 전파하고 있는: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가리킨다.—마 3:1 연구 노트 참조.

상호 참조 성구

  • +신 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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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 제2권 676면

    「파수대」

    1997/12/15, 19면

  • 출판물 색인

    통-2 676; 파97 12/15 19;

    파84 11/15 11; 파84 12/1 14-15; 파80 9 19; 목 137; 파74 105; 파73 63-4

로마서 10:9

  • 예수가 주이심을: 예수께서 땅에 계실 때 그분의 제자가 아닌 사람들도 그분을 “주”라고 불렀다. “주”라는 표현을 존경심이나 예의를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한 것이다. 사마리아 여자가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도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성경 필자들이 사용한 이 그리스어 단어(키리오스)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문맥에 따라 “선생님”, “주인”, “주”로 번역될 수 있다. (마 8:2; 요 4:11)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의 제자들(학생들)이 그분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을 주인 즉 주로 인정한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요 13:13, 16) 특히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되어 하늘에서 높은 지위를 갖게 되신 후로는 주라는 칭호가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바치심으로 제자들을 사셨으며, 그렇게 하여 그들의 주인이자 (고전 7:23; 벧후 2:1; 유 4; 계 5:9, 10) 왕이 되셨다. (골 1:13; 딤전 6:14-16; 계 19:16) 예수를 주로 인정하는 것에는 단지 그분을 주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관련된다. 참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지위를 인정하고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마 7:21; 빌 2:9-11.

    주: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키리오스는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명사로 사용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 단어는 형용사로서 능력(키로스)이나 권위를 소유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디도서와 요한의 편지들을 제외하고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모든 책에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아들이자 종이므로, 그분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하느님을 (요 20:17) “주”(키리오스) 즉, 더 탁월한 능력과 권위를 소유하신 분, 자신의 머리라고 부르시는 것은 합당하다. (마 11:25; 고전 11:3) 하지만 성경에서 “주”라는 칭호가 여호와 하느님께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마 7:21; 롬 1:4, 7), 요한이 환상 가운데서 본 하늘의 장로들 가운데 하나(계 7:13, 14), 천사들(단 12:8), 사람들(행 16:16, 19, 30. “주인들”, “선생님들”로 번역됨), 거짓 신들(고전 8:5)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주이시다”라는 표현이 예수와 그분의 아버지인 여호와가 동일한 인격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맥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알려 주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지신 주로서의 권위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었다.—마 28:18; 요 3:35; 5:19, 30. 이 구절에 나오는 예수가 주이심을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공개적으로 전하고: 그리스어 호몰로게오는 일부 성경에서 “고백하다”로 번역되었다. 많은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공개적으로 전하다(인정하다)”로 정의한다. 10절에서는 이 동사가 “공개적 선언을 하다”로 번역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마음으로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시 40:9, 10; 96:2, 3, 10; 150:6; 롬 15:9)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를 받을 때와 같은 경우에 단 한 번 그러한 공개적 선언을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공개적 선언을 한다. 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일 때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할 때 계속 공개적 선언을 한다.—히 10:23-25; 13:15.

상호 참조 성구

  • +마 10:32; 눅 12:8; 행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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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파수대」

    1997/12/15, 19면

  • 출판물 색인

    파97 12/15 19;

    파84 11/15 11; 파84 12/1 14-15; 파80 9 13; 파79 2 18; 파79 3 19; 목 137; 파76 480; 파74 105-6; 파73 63-4

로마서 10:10

상호 참조 성구

  • +고전 9:16; 고후 4:13; 히 13:15

색인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파수대」 (연구용)

    2019/8, 26-27면

    「통찰」 제2권 676면

    「파수대」

    1997/12/15, 19면

    1988/6/15, 29면

    1988/1/1, 22-23면

    「추리」 121면

    「참다운 평화」 180-183면

  • 출판물 색인

    파19.08 26-27; 통-2 676; 추 121; 파97 12/15 19; 파88 1/1 22; 파88 6/15 29; 평 180, 182-183;

    파84 11/15 11; 파84 12/1 14-15; 파79 3 19; 파79 9 10-11; 파76 480; 파74 105, 107; 근73 153-5; 파73 38, 63-4

로마서 10:11

  • 그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사 28:16의 「칠십인역」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기본적으로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를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이 헛되다는 것이 드러나 수치를 당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롬 9:33과 벧전 2:6에도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상호 참조 성구

  • +사 28:16; 롬 9:33

색인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파수대」

    1997/1/15, 12면

  • 출판물 색인

    파97 1/15 12;

    파76 186

로마서 10:12

  • 주: 이 구절에 나오는 “주”(키리오스)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문맥을 통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성경 학자들도 여기서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인지 주 여호와를 언급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롬 10:9에 나오는 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롬 10:11에 인용된 사 28:16도 예수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롬 10:12에 나오는 “주”가 롬 10:11에 나오는 “그”를 가리키는 표현이라면, 롬 10:12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롬 10:9에서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에 대해 말한다. 또한 롬 10:13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욜 2:32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따라서 롬 10:12에 나오는 “주”가 롬 10:13과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면, 롬 10:12의 “주”는 여호와 하느님일 것이다. 그렇다면 롬 10:12에 언급된 사상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한 하느님이 계시다는 롬 3:29의 내용과 일치할 것이다. 이것은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가 키리오스(주)가 나오는 모든 경우에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할 것인지 결정할 때 문맥을 고려했음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예이다.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과 문맥을 고려할 때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할 만한 근거가 확실치 않은 경우,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는 번역자로서의 한계를 넘어가 해석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라는 표현을 남겨 두었다.—부록 다1 참조.

각주

  • *

    또는 “부유하십니다.”

상호 참조 성구

  • +행 10:34; 15:7-9; 갈 3:28; 골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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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파수대」

    1997/12/15, 19면

    「‘모든 성경’」 209면

  • 출판물 색인

    파97 12/15 19; 감 209;

    파77 240; 깨75 4/8 17

로마서 10:13

  • 누구든지: 여기서 바울은 욜 2:32을 인용한다. 앞 구절에서 그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에게 같은 주가 계시며, 그분은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게 베푸신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구절에 나오는 “누구든지”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편파적으로 대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표현이다.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욜 2:32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연설한 내용이 나오는 행 2:21에도 욜 2:32이 인용되어 있다.—부록 다 참조.

    여호와의 이름: 바울은 여기서 욜 2:32을 인용했는데, 그 구절에는 “여호와의 이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테트라그람마톤이 결합된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 90회 이상 나온다. 그러한 예를 창 12:8; 출 33:19; 34:5; 신 28:10; 32:3; 욥 1:21; 시 118:26; 잠 18:10; 미 4:5에서 볼 수 있다. 한 참고 자료에서는 이 히브리어 표현이 “그 이름만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분의] 전체 그리고 능력을 의미한다”고 알려 준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아니라 속격을 사용하여 “여호와의 이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분의 이름이 일종의 부적처럼 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은 그분의 성품, 방식, 목적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그 이름을 알고 사용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이름을 가지신 분에 대해 알아 가고 그분을 숭배하고 그분의 방식과 일치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롬 10:14에서 알려 주듯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는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 포함된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표현은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단지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알고 사용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과 연관이 있다. 바울이 여기서 인용한 욜 2:32의 문맥을 보면 진정으로 회개하고 여호와의 용서를 신뢰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욜 2:12, 13) 기원 33년 오순절에 베드로는 요엘의 동일한 예언을 인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승인을 얻기 위해 회개하고 행동을 취하라고 권고했다. (행 2:21, 38)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에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께 도움과 인도를 구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시 20:7; 99:6; 116:4; 145:18) 또한 일부 구절들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그분의 이름과 특성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 12:8. 동일한 히브리어 표현이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다”로 번역된 출 34:5 비교) 롬 10:13의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하느님을 부르는 것과 그분을 믿는 것을 연관 짓는다.—롬 10:14.

상호 참조 성구

  • +욜 2:32; 습 3:9; 행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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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구절 이해하기」 기사 3

    「행복한 삶을 영원히 누리십시오!」 제4과

    「통찰」 제1권 324면

    「파수대」

    2008/8/1, 19-20면

    1997/12/15, 16-21면

    「여호와의 날」 187-190면

    「1998 연감」 3-5면

  • 출판물 색인

    파25.05 30; 웹성해 기사 3; 행누 제4과, 13; 통-1 324; 파08 8/1 20; 활 187-190; 연98 3-5; 파97 12/15 16-21;

    파73 64

로마서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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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행복한 삶을 영원히 누리십시오!」 제13과

    「여호와의 날」 187-190면

    「파수대」

    1997/12/15, 20-21면

    1997/1/15, 12면

    1988/1/1, 27-28면

  • 출판물 색인

    파25.05 30; 행누 제13과, 21; 활 187-190; 파97 1/15 12; 파97 12/15 20-21; 파88 1/1 27-28;

    사 77/12 4

로마서 10:15

  • 좋은 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 바울은 여기서 사 52:7을 인용한다. 그 구절에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이”라는 단수형 표현이 사용되었다. 바빌론 유배 기간에 구출의 소식을 전하러 예루살렘으로 오는 전령을 보고 사람들은 틀림없이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야의 예언은 좋은 소식의 가장 위대한 선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크게 성취된다. 바울은 이사야가 사용한 단수형 표현 대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사용함으로 그 예언을 확대 적용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본받아 평화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울은 여기서 사 52:7을 인용한다. 성경에서는 신체의 일부를 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사야는 마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근처에 있는 유다의 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발을 멀리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가 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발”은 그 사람과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의 “발”을 아름답게 즉 귀중하게 여기셨다. 그들이 이 예언을 성취시켜 “좋은 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이 구절에 나오는 좋은 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상호 참조 성구

  • +마 28:19, 20
  • +사 52:7; 엡 6:1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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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자료 찾아보기

    「가까이 가십시오」 242-243면

    「행복한 삶을 영원히 누리십시오!」 제21과

    「통찰」 제1권 812면

    「순결한 숭배」 126-127면

    「이사야의 예언 제2권」 187면

    「파수대」

    1997/12/15, 21면

    1997/1/15, 12-13면

    1995/4/1, 13면

  • 출판물 색인

    까 242-243; 행누 제21과; 순 127; 통-1 812; 예-2 187; 파97 1/15 12-13; 파97 12/15 21; 파95 4/1 13;

    파84 3/15 6; 파71 230

로마서 10:16

  • 여호와여, 우리가 들려준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바울은 여기서 여호와의 종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사 53:1의 앞부분을 인용하면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점을 밝혀 준다.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오시고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은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관해 그들이 모두 좋은 소식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바울 시대에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종에 관한 좋은 소식을 믿었다.—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롬 10:16 참조.

각주

  • *

    또는 “우리가 전한 소식”.

상호 참조 성구

  • +사 53:1; 요 12: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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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

    2011/8/15, 11면

    「이사야의 예언 제2권」 198-199면

  • 출판물 색인

    파11 8/15 11; 예-2 198-199

로마서 10:17

  •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맥을 볼 때 현재 본문의 표현처럼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일부 사본에는 이 부분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에 관한[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표현이 사본상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상호 참조 성구

  • +요 4:42; 17:20; 요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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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자료 찾아보기

    「파수대」 (연구용)

    2021/5, 5면

    「통찰」 제1권 766면

    「파수대」

    2005/2/15, 19면

    1987/7/15, 5, 7면

    「이사야의 예언 제2권」 198-199면

    「추리」 123면

  • 출판물 색인

    파21.05 5; 통-1 766; 파05 2/15 19; 추 123; 예-2 198-199; 파87 7/15 5, 7

로마서 10:18

  • 그 소리는 온 땅에 퍼져 나갔고: 바울은 여기서 시 19:4을 인용한다. 그 구절에서는 하느님의 창조물의 소리 없는 증언이 온 땅에 퍼져 나가는 것을 묘사한다. 바울은 그 내용을 확대 적용하여 전파 활동과 연관 짓는다. 바울은 창조물의 증언이 온 땅에 퍼져 나가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 변명할 수 없게 된 것처럼, (롬 1:20)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롬 10:15)도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유대인들이 그 소식을 받아들일 충분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창조물이 소리 없는 증언으로 모든 사람에게 말없이 증언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변명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롬 1:20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이 거주하는 땅: 여기서 “사람이 거주하는 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오이쿠메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사람이 사는 땅 전체를 가리킨다. (눅 4:5; 행 17:31; 계 12:9; 16:14) 1세기에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던 광대한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눅 2:1; 행 24:5) 바울은 여기서 시 19:4을 인용한 것인데, 그 구절의 「칠십인역」(시 18:5, LXX) 표현을 보면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지역을 가리킬 수 있는 히브리어 단어를 번역하는 데 동일한 그리스어 오이쿠메네가 사용되었다.

상호 참조 성구

  • +시 19:4; 행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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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

    2004/1/1, 9면

    1997/12/15, 21면

    1989/1/1, 3면

  • 출판물 색인

    파04 1/1 9; 파97 12/15 21; 파89 1/1 3;

    파78 9 4

로마서 10:19

상호 참조 성구

  • +마 10:5, 6; 행 2:14
  • +신 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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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 제2권 884면

  • 출판물 색인

    통-2 884

로마서 10:20

상호 참조 성구

  • +롬 9:30
  • +사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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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의 예언 제2권」 373면

  • 출판물 색인

    예-2 373

로마서 10:21

  • 내가 ··· 팔을 벌리고 있었다: 여기서 바울은 사 65:2을 인용한 것이다. 팔을 벌린다는 것은 초대하거나 간청한다는 의미이다. 아버지가 반항적인 아들에게 팔을 벌리듯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고집 센 백성에게 비유적인 의미에서 팔을 벌려 호소하셨다.

상호 참조 성구

  • +사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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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 제1권 1190면

  • 출판물 색인

    통-1 1190

다른 번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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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로마 10:5레 18:5
로마 10:6신 9:4
로마 10:6신 30:12
로마 10:7신 30:13
로마 10:8신 30:14
로마 10:11사 28:16
로마 10:13욜 2:32
로마 10:15사 52:7
로마 10:16사 53:1
로마 10:18시 19:4
로마 10:19신 32:21
로마 10:20사 65:1
로마 10:21사 65:2

일반

로마 10:1롬 9:3, 4
로마 10:2행 21:20; 갈 1:14
로마 10:3롬 1:16, 17
로마 10:3눅 16:15; 빌 3:9
로마 10:3마 15:3-6; 눅 7:29, 30
로마 10:4마 5:17; 롬 7:6; 엡 2:15; 골 2:13, 14
로마 10:4행 13:38, 39; 갈 3:24
로마 10:5갈 3:12
로마 10:9마 10:32; 눅 12:8; 행 16:31
로마 10:10고전 9:16; 고후 4:13; 히 13:15
로마 10:11롬 9:33
로마 10:12행 10:34; 15:7-9; 갈 3:28; 골 3:11
로마 10:13습 3:9; 행 2:21
로마 10:15마 28:19, 20
로마 10:15엡 6:14, 15
로마 10:16요 12:37, 38
로마 10:17요 4:42; 17:20; 요1 1:3
로마 10:18행 1:8
로마 10:19마 10:5, 6; 행 2:14
로마 10:20롬 9:30
  • 신세계역 성경 (연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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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역 성경 (연구용)
로마서 10:1-21

로마서

10 형제 여러분, 나는 그들이 구원받기를 마음으로 원하며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2 나는 그들에 대해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확한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느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4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이 의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 근거한 의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에 의해 살 것이다.”+ 6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로 올라갈 것인가?’+ 하고 말하지 마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 내리겠다는 것이다. 7 또는 ‘누가 무저갱으로 내려갈 것인가?’+ 하고 말하지 마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 올리겠다는 것이다.” 8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말씀이 네 가까이 있어 네 입과 네 마음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당신이 입으로 예수가 주이심을+ 공개적으로 전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 의를 얻고 입으로 공개적 선언을+ 하여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11 성경은 말합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12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주가 계시며, 그분은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게 베푸십니다.* 13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14 하지만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들어 본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파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15 또 보냄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파하겠습니까?+ “좋은 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16 그렇지만 그들이 모두 좋은 소식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가 “여호와여, 우리가 들려준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듣는 것에서 생기며,+ 듣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18 그러면 내가 묻겠습니다. 그들이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사실, “그 소리는 온 땅에 퍼져 나갔고, 그 소식은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끝까지 퍼져 나갔다”라고 했습니다.+ 19 또 묻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우선, 모세는 말합니다. “나는 민족이 아닌 자들을 통해 너희가 질투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을 통해 너희가 격렬히 화를 내게 할 것이다.”+ 20 그리고 이사야는 매우 담대해져서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나를 보려고 청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21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불순종하고 완고한 백성에게 내가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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