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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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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4
깨74 1/8 18-21면

정신병 환자를 위한 가정 간호?

십년 동안 그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던 부부였다. 남편은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그리스도인 봉사에 활동적이었다. 그런데 그는 기억 상실증에 걸려, 성서 연설을 하는 도중 정신을 잃는가 하면, 직업이 자동차 도공(塗工)인 그는 칠을 하면서 색갈을 뒤섞기가 일수였다.

점차적으로 그의 말 수가 줄어들었고, 이내 그가 말하는 것이라고는 “안돼! 안돼! 안돼!” 하는 소리 뿐이었는데 연달아 8번씩이나 되풀이하기도 하였다. 그 뒤 그는 완전한 침묵에 잠기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신체는 강건하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는 마루 위를 오락가락할 뿐이었고, 그를 침대에 들게 하는 것도 문제였다. 5년이 지난 후 마침내 그는 사망하였다.

이러는 동안, 여러 차례 전문가들과 상담해 보았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그의 병을 역전시킬, 아무런 방도가 없다고 말하였다. ‘뉴욕’의 한 저명한 정신병 의사는 그의 병을 “변질적, 진행성, 장기병(臟器病)”으로 진단하였는데, 진찰을 마치면서 그는 환자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남달리 훌륭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전혀 가망이 없는 남편을 간호하기 위하여 당신이 바친 희생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책임지기 싫은 친척들을 이렇게 되기 오래 전에 요양원으로 보냅니다.”

그 아내가 자기 남편을 가정에서 간호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 부인은 그를 요양원으로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였는가? 더 이상의 의학적인 도움이나, 심지어는 요양소의 마련도 그를 호전시킬 수 없다는 의사들의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이상, 그를 요양원에 입원시켜야 할 것인가?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연인을 배반하는 것과 같은 일이겠지요. 결혼을 할 때에는 어떠한 운명이 되더라도 동고동락하기로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그 부인은 말하였다. “그는 어린 아이와 같읍니다. 어린 아이와 지성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도 사랑을 느낄 수는 있지요. 마찬가지로 저의 ‘존’도 그러합니다.”라고 말한 그 부인은 자기의 신념대로 그에게 계속 애정을 쏟았던 것이다.

요양원의 간호가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 ‘뉴욕’의 노련한 정신병 의사는 그 아내에게 전혀 가망이 없는 남편을 집에서 돌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는 그 부인을 “남달리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하였다. 그가 그러한 견해를 표명한 것은 그러한 정신 질환의 경우에 요양원에서 간호하는 것은 종종 유감스러운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은 8명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정신병자인체 가장하고 실시한 실험에 의해서 뚜렷이 나타났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총 12개소의 요양원에 입원을 자청하여 들어갔다. 그들은 무엇을 발견하였는가? 그 실험을 조직한 사람이자 그 자신이 실험자들 중의 한 사람인 대학교 정신병학자는 자기의 발견은 “요양원 제도가 형편 없다”는 것임을 보고하였다. 예를 들면, 이들 가짜-환자들 (그들은 매일의 기록을 간직하고 있었다) 중의 4명은 병원 의사들이나 간호원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경우, 4번 중에 3번은 무시나 경시를 당하였던 것이다.

이들 실험자들이 얻은 결론 중 하나는 “그러한 환경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닥치는 결과들—무기력함, 무개성화, 분리, 울분, 및 자탄지심—은 의심할 바 없이 역-치료적인 것 같다.”는 것이다. 즉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이다.—「의학계 소식」, 1973년 2월 9일.

1969년 1월의 「정신 위생」지에 게재된 “만성적 정신 분열증 환자를 만듬”이라는 기사 가운데서 다른 2명의 정신병 의사들도 비슷한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들은 정신병 환자들이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는 방법 그 자체로 말미암아 종종 어떠한 해를 입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간호원들은 “빈번히 환자들에게 굴욕감을 주며 그들이 낮게 평가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일부 요양소의 고용인들은 환자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며, 우리에게 나쁜 것이라고 그들에게도 꼭 나쁜 것은 아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비참하게도, 간호원들이 환자들을 대하는 방법 그 자체가 환자들로 억제해야 한다고 간호원들이 주장하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환자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여러가지 징벌을 자초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아주 유명한 한 정신병학자의 말에 의하면, 전기 충격 요법이 정신병 환자 요양원들 간에 너무 지나치게 사용되고 있으며 약품의 사용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가 사적으로 치료를 시킬 때에는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은 가능한 한 병원에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그의 말과 같이, ‘병원은 흔히 환자들이 악화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더 나은 장소일 수 있는 이유

그러한 요양원에 성실하고 헌신적인 의사들이나 직원들도 많이 있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잘못된 점은 무엇인가? 여러가지가 있다! 일예로, 요양원의 재정 사정이 훌륭한 의사들을 고용할 형편이 못되거나, 직원의 부족을 겪고 있다. 따라서 모든 정신병 환자가 자기의 필요에 따라 동정적인 개인적 도움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곳에 있는 많은 간호원들은 정신병 환자라고 언제나 그리고 모든 면에 있어서 비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바꾸어 말하자면, 환자의 행동은 변덕스럽다는 것이다. 어떠한 면에서 언제나 정상적이고 다른 면에서 때때로 비정상일런지 모른다. 그에게도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진정되는 순간이 있으며, 이해심있는 치료에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또한, 경험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정신병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정상적일 때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더 민감하다. 이는 그들의 무력함 때문이다. 정신병 환자는 꾸준한 손길과 조절된 동정심을 지닌 사람의 간호를 필요로 하는데, 그러한 것들이야 말로 요양원에서 보다는 가정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해 주는 것으로 세계 보건 기구에 의하여 제출된 다음과 같은 보고가 있다. “정신병 의학적 제목들에 대한 교육의 확장에 따라, [전문적] 도움을 받음으로써 친척인 환자를 가정에서 보살펴줄 수 있는 식견을 갖게된 사람들의 수가 늘어 가고 있다. ··· 만일 환자의 가족이 그를 가정 내의 긴밀한 감정적인 유대 속에서 돌보아 줄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면 그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항상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바로 이 문제를 다룬 책인, ‘에이취. 에스. 스츄와르츠’ 박사 저 「감정적 환자를 위한 가정 간호」는 이성적이며 인정이 있는 가족은 정신병 환자의 회복에 가장 좋은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고려해야할 요인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성서는 배우자에게 상대방에 대한 의무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돌보아야할 의무가 있다. 자녀들에게 유전시킨 어떤 결함이 문제를 일으켰을런지도 모른다. 반면에 성서는 성장한 자녀들에게 연로한 부모를 보살펴드려야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는 부모들이 더는 정신이 건전하지 못하드라도 그분들을 간호해야 함을 포함할 것임이 분명하다.—디모데 전 5:3-8.

물론, 모든 감정적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집에서 간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가정이 그 환자를 간호해주기 위한 최선의 장소일 것이 분명하다. 가정에서 간호해 줄 때, 그 회복은 가장 빠르고도 쉬울 것이다.

필요한 요소들

감정적인 혼란 즉 병을 앓고있는 사람을 가정에서 간호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환자로서는 자기 방을 따로 갖는 것과 가족으로서는 부분 시간 혹은 전 시간 간호원과 같은 어떤 훈련받은 보조자를 두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또한 이해심 있고 동정적인 의사가 환자를 감독해 주며 때때로 상담에 응해준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이상적인 환경이 구비되지 않고도 자기들의 가정에서 “신경 쇠약”, 혹은 심각한 의기소침증, 또는 다른 형태의 정신 혹은 감정적 병을 극복하였다. 그러나 가족의 다른 성원들도 도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통 가장 큰 짐을 지게 되는 가족 성원은 전술한 경우에서와 같이 환자의 아내나 어머니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장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자제력과 애정을 나타내야 하지만 감상적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는 필요에 따라서 단호해야 하며, 어려움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강인함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 참으로 요구되는 것은 사랑, 기쁨 및 자제력 같은, 성서가 “성령의 열매”라고 이름한 것들이다. 모든 것 위에 특히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갈라디아 5:22, 23; 고린도 전 13:4-8.

사랑은 순수하고, 비위선적이어야 하며, 피상적이 아니어야 한다. 환자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성서는 또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한다. 사랑은 희망을 갖는다. 그러므로 최선을 바라고 환자의 최선에 호소하라. 감정이입을 가지라. 환자를 대하기를 당신이 그의 입장에 처해 있을 때 대우받기를 원하는 대로 하라.—베드로 전 4:8; 1:22.

이해심이 또한 중요하다. 마치 한 의사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다. “목표는 ··· 환자를 이해하는 것이다. 치료를 돕는 사람의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그 목표를 초점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그러한 사람을 이해하게 될 수 있는가? 그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격려함으로써이다.

또한, 정신착란이란 바로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약함의 극단적인 형태임을 인식하라. 예를 들면, 우리 모두는 때때로 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정신병 환자는 죄의식에 너무 압도되어서 가망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환자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라. 그를 놀리는 일을 피하라. 항상 그에게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 가능하다면, 그의 실수에 대한 구실을 찾아주라. 그를 열등한 자로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인 것처럼 대하라. 사실상, 그는 때때로 정상으로 되돌아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저명한 정신병 의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에게 그들이 결여한 것들을 줄 수 있고, 그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지식으로 그들은 색다른 의지를 갖도록 그리고 더 낫게 행동하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최선에 호소하라. ‘유모어’감을 발휘하고, 당신 자신을 농(弄)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를 웃겨주기 위하여 노력하라. 웃음은 긴장을 제거해 주며, 따라서 정신과 육체에 유익하다.

정신병 환자의 통상적인 기본 특징은 반항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들은 흔히 하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행하려고 한다. 그들은 짜증을 부리고, 이성과 자제력이 결여된 점에서 어린아이를 닮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들은 의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간접적인 접근”이 요구될런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어떤 반항적인 환자는 한때 광태를 부리며, 책들을 주위로 마구 집어 던지기 시작하고 창문을 부수겠다고 위협하였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지하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그로 하여금 계속하려는 결심을 단호하게 할 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의사는 간접적인 접근을 사용하였다. 그는 책상 위에 앉아서 그가 책들을 하나 하나 떨어뜨릴 때마다 계속 큰 소리로 헤아렸다. 그런 다음 그는 책을 한권 집어들고 그것을 읽어보았느냐고 그에게 질문하였다. 그는 그에게 그 책의 흥미있는 내용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자제력을 행사하면서 동정적인 ‘유모어’감과 기분 전환의 기술을 발휘한 결과는 무엇인가? 그는 그로 하여금 책들을 허뜨려놓은 것을 사과하면서, 자기를 도와 책들을 책장에 다시 꽂아놓도록 했던 것이다! 비슷한 기술로 그는 자살할 준비를 하고 창가에 서 있는 한 환자를 돌이킨 일이 있다.

육체적인 면

육체적인 면 또한 중요하다. 그러므로 “육체를 잘 돌보는 것은 정신이 건강에 이르는 길”이란 말이 있다. 가능한 한 환자를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의 외관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도 그에게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단호하고 사랑스러운 도움으로 당신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여 그로 세수하는 일, 옷입는 일, 식사 하는 일등을 스스로 마치도록 유인할 것이다.

만일 그가 한쪽 구석에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는 경향이 있다면, 그 환자가 산책을 하도록 격려하라. 안마 또한 도움이 되는데, 아무런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더라도 할 수 있다. 시간 여유를 두고, 온탕을 하는 것도 분열증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다. 각별히 중요한 것은 적당한 식사 조절이다. 한 저명한 정신병학자의 말에 의하면, 적당한 식사 조절은 정신 질환 치료의 열쇄가 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정제되지 않은 식품에서 발견되는 ‘바이타민’류와 ‘미네랄’이다.

성서로부터의 도움

특히, 정신병 환자를 상대하는 사람은 성서 원칙들과 진리를 적용시켜야 한다. 성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의약품과 같이 좋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잠언 17:22) 그것은 또한 음악이 감정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던 한 왕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었는지에 관한 예를 보여준다. 결코 말을 하지 않는 환자들도 노래를 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사무엘 상 16:14-22.

환자의 정신에 하나님께서 지적 자녀들을 돌보아 주심에 관한 표현들을 환기시켜 줌으로써 그를 격려해주는 것도 또한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3,14) 또한 이러한 귀절이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물론 정신병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성귀들과 또한 기도로써 자신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빌립보 4:6, 7.

참으로 정신병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이제 관련된 문제들에 관한 이러한 지식을 갖게된, 정신 및 감정상의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데리고 있는 가족은 그들 집에서 간호하지 않고 대신 정신병 환자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하기 전에 문제를 주의깊이 저울질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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