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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의 자유 회의가 ‘쓴 맛을 남기다’
  • 깨어라!—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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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8
깨78 2/8 3-4면

종교의 자유 회의가 ‘쓴 맛을 남기다’

「깨어라!」 ‘네델란드’ 통신원 기

‘암스테르담’에서 지난 해에 독특한 행사가 있었다.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힐튼 호텔’에서 제 1차 종교의 자유 세계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의 주최자들은 이 회의 목적이 다음과 같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1. 국제 종교 자유 협회(IRLA)를 종교의 자유를 촉진하는 참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기구로 만든다. 2. 국제 종교 자유 협회를 보도 수단을 통해 세계 지도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게 한다. 3. 특정 국가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증진시킨 정치인들에게 국제적인 상을 수여한다. 4. 종교의 자유에 관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비논쟁적 토론회를 마련한다.

“태도가 모호한 회의”

이 회의의 공식 지지자들은 이 회의의 의도가 “조용한 외교”의 일환이며 ‘종교적 자유의 남용을 폭로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짐하였다. 일반적으로 연사들은 각기 자기네 나라가 종교적 자유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찬양하는 데 급급했고 자유가 억압을 당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사실을 숨겼다.

매우 좋은 내용이 포함된 연설도 일부 있었다. 예를 들면, 한 대표는 신교 개혁 이후 통치자들은 굵직한 종교 단체를 옹호하는 협정을 맺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작은 단체나 개인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연사는 대체로 이들은 보호와 자유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자유는 단지 커다란 종교 단체에만 허용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일부 지역에서의 종교 탄압에 대하여 이 연사는 흥미있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뒤떨어진 사람들에게 문명을 전달하는 것이 식민지가 존재하게 된 이유로서 천명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화의 진정한 동기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었다는 점이 즉시 분명해졌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 회의의 전반적인 효과는 실망적이었다. 어떤 상황하에서는 숭배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좋다는 이론까지 제시되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 대표는 불리한 사회 환경으로 인하여 굶주리고 압제당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종교 문제에 있어서 명백하게 생각하고 올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대표의 의견에는, 이러한 사회적 불공평이 시정된 후에라야 회교도들이 다른 종교 사상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그는 선언하였다.

이 회의의 참석자들은 숭배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구로서 국제 연합에 의존할 것을 거듭 촉구하였다. 다수 참석자들이 국제 연합이 아직도 종교적 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선언문을 채택하지 않은 데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a 이 특별 회의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 한 관측자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현재 숭배와 언론의 자유가 짓밟혀 인류 중 다수가 파멸에 이르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다루는 진지한 정신을 맛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 회의는 다정한 친구들이 모여 어깨를 두들기고, 악수와 온화한 미소를 교환하는 친목회 같았다. 아무튼, 이 분위기는 이 회의의 천명된 목적과 목표를 매우 잘 반영하였다.”

“이 회의는 태도가 모호한 회의였다. 각자는 다른 사람의 발을 밟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하였다. 회기 도중 간부 한 사람이 이렇게 표현한 바와 같다. ‘이 모든 훌륭한 연설을 듣고 있노라면 종교의 자유에 관한 한 세계 어디에서나 잘못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잘못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연사들이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그들이 귀국한 후에 참으로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원회가 ‘여호와의 증인’의 설명을 듣다

‘여호와의 증인’을 대표하는 두명의 관측자가 ‘말라위’를 위시한 몇몇 나라에서의 증인들에 대한 박해에 관해 특별 위원회 앞에서 연설하도록 마련되었다. 위원회는 매우 주의 깊게 그리고 정중하게 경청하고 그 문제에 관한 예리한 관심을 표시했다.

후에, 개인 대화에서, 위원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곤경에 대해 들려 준 데 대한 감사를 나타냈다. 그들은 그러한 박해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처럼 잔인한 줄은 몰랐었다고 시인하였다. 이 특별 위원회 위원들은 피해자들을 돕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최종일에 이 회의는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당초에 계획되지 않은 것이었다. 종교적 편협과 박해에 대한 ‘여러 가지 불평’이 전날 저녁에 있은 후에 비로소 이 회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말라위’나 세계의 기타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비인도적인 처우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언급이 없었다. “조용한 외교” 및 ‘종교적 자유의 남용을 폭로하고 단죄하지 않으려는’ 의도와 일치하게, 결의문은 명확하지 않고 애매 모호하였다.

예를 들면, 참석자들은 이 회의를 후원하는 단체들에게 세계의 종교적 자유의 실정을 예의 주시하는 특별 위원회를 설립하도록 요청하고,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인간의 기본 권리에 정부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종교적 차별을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라고 정부들이 국제 연합에 요청하도록 촉구할 것을 결의하였다.

‘네델란드’의 보도 기관들은 제 1차 종교의 자유 세계 회의에 대해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전국적인 방송에서 간략한 보도가 있었을 뿐이다. ‘텔레비젼’에서는 ‘필립 포터’ 세계 교회 협의회 사무 총장이 이 회의에 대해 약간 논평하였다. 신문들은 이 회의에 대해 별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기사는 주목할 만하다. ‘암스테르담’에서 발행되는 「뉴우스반 데 닥」지는 “‘힐튼 호텔’ 내의 고요함”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렇게 요약하였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이 회의는 쓴 맛을 남겼다. 사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조금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악은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자는 식이었다. 외부에서 볼 때 ‘힐튼 호텔’에서는 그지없는 고요함이 있었다. 아마 이러한 종교인들이 곧 담대해져서 많은 사람들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지는 못하므로 이번 회의에서 좀 더 강력한 발언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각주]

a 1977년 1월 8일호 「깨어라!」 “‘유우엔’이 종교를 억압하려고 하는가?”와 “놀랍게 뒤틀린 두개의 ‘유우엔’ 결의안”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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