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기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바빌로니아 탈무드’로 알려진 고대 ‘유대’인 기록의 수집물에는, 2세기 초의 것으로 되어 있는 메시야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해설이 들어 있다.
“‘그리고 땅은 슬퍼할 것이다.’ (스가랴 12:12) 이렇게 슬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랍비’ ‘도사’는 ‘메시야가 살해당할 것에 대해 [그들이 슬퍼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이 귀절은 메시야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개념이 제 1세기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임을 살펴 보았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견해의 변화가 있게 되었는가?
메시야가 죽을 운명이라는 생각은 통용 기원 제 2세기 중에 특히 ‘시므온 바르 코크흐바’가 죽은 후에 유행하게 된 것 같다. ‘바르 코크흐바’는 전사이며 정치 혁명가였다. 그는 메시야로 널리 추앙받았다. “모든 ‘랍비’ 중 가장 영향력있는 현인”으로 불리운 ‘랍비’ ‘아키바 벤 조셉’까지도 ‘바르 코크흐바’를 메시야로 찬양하였다.
드디어, ‘바르 코크흐바’는 ‘유대’ 반란군을 이끌고 ‘로마’ 정부에 항거하였다. ‘로마’ 군단에 대한 최초의 승리가 있은 다음에, ‘바르 코크흐바’는 3년 동안 반격해 오는 ‘로마’ 군대를 격퇴시키며 50만 ‘유대’인의 생명을 희생시킨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반란군은 기원 135년에 진압되었으며, ‘바르 코크흐바’는 죽임을 당하였다.
‘바르 코크흐바’를 온 마음을 다해 지지하던 세대는 이제 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바르 코크흐바’의 죽음은 메시야에 대한 희망뿐 아니라 ‘랍비’ ‘아키바’에 대한 존경에도 의문을 일으켰다. ‘예루살렘’의 ‘히브루’ 대학교의 ‘조셉 하이네만’ 박사는 ‘바르 코크흐바’의 죽음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세대는 어떻게 해서든지 불가능한 일을 달성하기 위해, 즉 ‘바르 코크흐바’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메시야라고 고집하기 위해 노력했음에 틀림없다. 이 모순된 입장으로 인해, 크게 상반된 양면을 지닌 전설에 나오는, 군국주의적인 메시야는 전사할 운명이지만 진정한 구속자는 남아있다는 것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유대’인들은 이 ‘메시야’가 죽을 운명이라는 생각과 메시야가 왕으로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조화시킬 수 있었는가? ‘라파엘 파타이’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그 ‘딜레마’는 ‘메시야’의 인격을 둘로 나눔으로써 해결되었다. 즉 그중 하나는 ‘메시야 벤 조셉’[즉 ‘조셉’의 아들]이라고 불리는데 그는 ‘이스라엘’ 군대를 일으켜 그들의 원수들과 싸우고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고 기적을 행한 다음 희생된다는 것이다. ··· 다른 하나인 ‘메시야 벤 다윗’[즉 ‘다윗’의 아들]이 그 뒤를 이어 ··· ‘이스라엘’을 이끌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메시야에 의한 행복한 시대로 인도할 것이다.”
메시야가 죽을 운명이라는 주지(主旨)는 ‘바르 코크흐바’가 죽은 이후 여러 해에 걸쳐 계속 발전하였고, 마침내 전사하게 되어 있는 미래의 메시야에게 적용되게 되었다. 이 점을 밝히면서 ‘파타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누구나가, 자기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은 ··· [메시야가] ‘조셉’의 아들로서 시대의 끝의 문턱에서 죽지만, 그런 다음 ‘다윗’의 아들로서 생명으로 돌아와 그가 그의 이전 화신에서 시작한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유사하다! 양 집단은 모두 예언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메시야가 죽고 부활될 것이라는 신앙을 주장한 것이다!
새로운 거부 반응이 일어나다
통용 기원 처음 몇세기 만에 이교 ‘로마’ 제국은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였고, 그 당시, 반‘유대’주의가 예수를 추종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여러 해에 걸쳐 ‘유대’인들은 십자군 및 종교 재판소와 같은 잔악 행위와 “이웃 사람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히 범하는 행위들을 목격하였다. (레위 19:18) 더군다나, 예수를 추종한다고 주장하던 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숭배와 같은 비그리스도인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모세’는 “주는 한 분이다”라고 가르쳤었다. (신명 6:4) 그러므로 죽을 운명의 메시야이기 때문에 예수를 배척한다는 본래의 거부 반응이 더는 근거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한편, 새로운 거부 반응 즉 예수를 추종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비성경적 행실과 신앙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유대’교는 계속 그리스도교를 배척 하였다.
메시야—실제 인물인가, 상상 인물인가?
‘이스라엘’의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 내려왔다. 예를 들어, 중세의 ‘랍비’ ‘메이모니데스’는 신앙의 13개 항을 정립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나는 ···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메시야가 올 것을 믿으며, 비록 그가 지체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매일 그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보다 현대에는 인격적인 메시야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이 많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잊혀져 버렸다. 예를 들어, 일 세기 전에 ‘조셉 퍼얼’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올바로 교육받은 ‘유대’인들은 결코 메시야를 실제 인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실제 인물로가 아니라 상상 인물로 생각하며, 따라서 메시야보다는 메시야의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한다. 그러나, 인격적인 메시야 없이 메시야의 시대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이 메시야는 언제 오게 되어 있는가? 「히브리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