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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고부 관계를 즐기는 길
  • 깨어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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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0 3/1 8-11면

따뜻한 고부 관계를 즐기는 길

첫 기사에서 언급한, 괴로움에 시달린 며느리 후지코는 마침내 남편을 설득하여 부모 집에서 나와 옆집으로 이사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계속 간섭하였고,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그 방문을 계기로 후지코는 성품을 변하게 한 행로에 들어섰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나아졌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의 태도가 상당히 변하자 시아버지는 ‘무슨 종교이기에 며느리의 성품을 그토록 변하게 하는가’를 직접 알아보려고 연구에 참석하기를 원하였다.

새로운 유대를 인정한다

성서는 성경상의 결혼 마련에 대해 분명히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첫 인간 남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맺어주신 후, 이러한 원칙을 정하셨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세 2:24) 그러므로 신혼 부부는 그들이 새로운 유대를 갖게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이제, 한쪽 부모와 함께 살지라도 독립된 단위로서 서로 연합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자녀들이 결혼하게 되면 부모를 등질 수 있고 더는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성서는 훈계한다. (잠언 23:22) 그렇지만 결혼으로 인해 관계에 조정이 있다. 가족 각자가 이 점을 정신에 잘 새겨두는 한, 젊은 부부는 부모의 경험과 지혜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에 동반한, 좋은 평판을 받은 청년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외조모 로이스 역시 디모데의 인생을 틀잡는 데 한몫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디모데 후 1:5; 3:15) 그렇다고 해서 조모에게 자녀 훈련에 개입하여 부모와 다른 표준을 세울 권리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자녀를 훈련하는 일에서 나이든 세대가 젊은 세대를 도울 적절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디도 2:3-5.

“지혜로운 여인”

두 세대가 자녀 훈련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협조하려면 양쪽 다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성서의 잠언은 말한다. (잠언 14:1) 여자는 어떻게 집을 세울 수 있는가? 도미코는, 며느리 후지코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의사 소통이었다고 말한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한다고 성서는 교훈한다.—잠언 15:22.

의사 소통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불쑥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 소통할 때야말로 지혜가 힘을 발휘할 때다. “지혜 있는 자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다.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가 무언가 할 말이 있을 듯한데,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명철을 나타내어 ‘그들의 생각을 길어내야 한다.’ 그런 다음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다.—잠언 1:5; 15:28; 20:5.

때를 잘 맞추어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성서 잠언은 말한다. (잠언 25:11) 도키코와 며느리는 상대방을 언짢게 할 수 있는 의견을 표현하기 전에 적당한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한다. 도키코는 이렇게 말한다. “자부에게 무언가를 지적하고 싶은 경우 말하기 전에 생각하려고 합니다. 요점을 생각해 두고, 자부가 기분 좋고 시장하지 않을 때 이야기합니다. 시장한 사람은 짜증을 내기가 쉬우니까요.”

지혜로운 여자는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억제할 것이다. 시어머니와 30년간 함께 생활한 일본의 필자 다나카 스미에는,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상대방에 대해 나쁘게 말한 것은 무엇이나 결국 본인에게 알려지게 될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쁘게 말할 것이 아니라 직접, 간접으로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에 대해 좋게 말할 것을 다나카는 주장한다.

하지만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가 당신의 노력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

고부간의 심각한 문제는 흔히 다른 사람이 한 행동이나 말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로 인해 벌어진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며 “말에 실수”가 있기 때문에,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야고보 3:2; 잠언 12:18) 그렇지만 함부로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을 상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고부간의 문제를 극복한 사람들은 성서의 이러한 교훈을 청종해 온 사람들이다. ‘혹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시오.’ (골로새 3:13, 새번역) 고부간에, 특히 불평할 일이 있을 경우 참고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는 강한 동기가 있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잘못도 용서하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마태 6:14, 15.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불교와 도교, 유교, 신도를 따르는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성서를 연구하여 자애로운 창조주에 관한 진리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한 인식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쓰디쓴 감정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고부 관계에는 확고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 연로한 시어머니 혹은 병약한 며느리를 의무감에서 돕는 것은 언제나 최상의 관계를 이루게 하지는 않는다. 하루코는 시어머니가 암으로 죽어갈 때 그 점을 배워 알았다. 하루코는 시어머니를 보살피느라 병원에서 시간을 거의 다 보냈으며, 그에 더해 자신의 가족도 돌보았다. 하루코는 몹시 시달린 나머지 머리카락이 상당히 빠졌다.

어느 날 시어머니의 손톱을 깎다가 무심결에 너무 바짝 깎았다. “건성으로 시중을 드는구나!”하고 시어머니가 쏘아붙였다.

하루코는 그러한 섭섭한 말에 충격을 받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시어머니에게 의무감에서 모든 것을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그토록 서럽게 여겼음을 깨달았다. 하루코는 사랑을 추진력으로 하여 시어머니를 보살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에베소 5:1, 2) 그로 인해 그는 서러웠던 감정을 극복하고 시어머니가 사망할 때까지 회복된 관계를 유지하였다.

참으로 성서에서 말하는 사랑은 가정의 내분을 가라앉히는 열쇠다. 사도 바울이 그것에 관해 말한 바를 읽어 보고, 공감할 만한 점이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성내지 않습니다. 남의 악행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와 함께 즐거워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모든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바랍니다. 모든 것을 견딥니다.” 바울이,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신세)라고 덧붙인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I 고린도 13:4-8, 새번역) 그러한 사랑을 어떻게 배양할 수 있는가?

성서는 “사랑”을 하나님의 영의 “열매” 중의 일부로 꼽는다. (갈라디아 5:22, 23) 그러므로 그러한 종류의 사랑을 배양하려면 자신의 노력에 더하여 하나님의 영을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성서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그분과 같은 사랑을 자신의 성품에 더해 달라고 간청할 수 있다. (요한 1서 4:8) 물론 이 모든 것에는 그분의 말씀인 성서를 연구하여 그분에 관해 배워 아는 것이 필요하다. 여호와의 증인은 후지코와 그 외의 많은 사람을 도운 것처럼, 매우 기쁘게 당신을 도울 것이다.

성서에서 배워 알게 된 것을 적용하는 사람은 그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를 포함하여 주위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성서에서 약속하는 것 즉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할 것이다.—빌립보 4:6, 7, 신세.

이 기사들에서 언급한 후지코와 그 외 사람들은 그러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으며, 당신도 그것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인 성서의 교훈을 따름으로써 당신 역시 시어머니이든 며느리이든 고부간의 따뜻한 관계를 세우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8, 9면 네모]

남편—평화 조성자인가, 평화 방해자인가?

2, 3대가 한지붕 아래 살 경우,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남편의 역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남편의 전형에 관하여 가정 사회학 전문가인 규슈 대학교 아리치 도루 교수는 이렇게 기술한다.

“부부가 [어머니와] 함께 살 경우 어머니는 아들의 필요를 감지하며, 그러한 필요를 감지할 경우 무심코 아들을 돌봐 준다. 아들은 그러한 돌봄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만약 아들이 어머니의 개입과 관련하여 아내의 입장을 좀더 생각하고 어머니를 합당한 위치에 둔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들이 그 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그러면, 남편은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데 어떻게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미쓰하루는 성서 원칙을 적용한 것이 가정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아들의 유대는 아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아들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그는 술회한다. 그는 아내하고만 자녀 양육과 훈련에 관한 문제를 상의함으로 원칙을 적용하였으며, 집안일에서 아내와 어머니를 비교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와 부모는 서로 존중합니다. 우리 각자는 개입하지 않아야 할 부면과 돕고 협조해야 할 부면을 압니다.”

남편은 ‘아내와 연합하는 것’에 더하여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창세 2:24) 남편은 잘 듣는 사람이 되어 그들이 마음을 털어놓게 해야 한다. (잠언 20:5)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운 한 남편은 우선 아내의 느낌을 알아낸다. 그 다음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관련된 문제에 관해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그런 식으로 아들은 평화 조성자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가정의 유쾌한 관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9면 삽화]

귀기울여 듣고 의사 소통을 하라

[10면 삽화]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은 훌륭한 관계를 세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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