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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1 1/1 25-27면

232편 기에서 내가 겪은 고통

한 생존자의 체험담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기가 지난해 아이오와 주(미국)의 한 옥수수밭에 추락했을 때, 110명의 탑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186명이 생존하였다.

“수 시티에 불시착을 할 것입니다. 다소 불편할 것입니다” 하고 조종사가 알려 주었다.

때는 1989년 7월 19일이었으며, 나는 남편, 케빈이 경영하는 컴퓨터 회사의 회의에 참석차 남편과 함께 시카고로 가던 중이었다. 우리는 이미 앨버커키에서 덴버까지 날아왔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같은 회의에 참석차 가는 한 친구를 만났으나 비행기편이 달랐다. 나는 서로 누가 먼저 시카고에 도착할 것인가에 대해 농담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탄 비행기인 유나이티드 232편 기가 먼저 떠났고, 다른 비행기는 약 10분 뒤에 이륙할 예정이었다.

비행중의 사고

우리가 기내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굉음이 나더니 비행기가 흔들리면서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즉시 조종사는 엔진 하나가 고장났으며 늦게야 시카고에 도착할 것이라고 방송하였다. 조종사의 목소리는 침착하였다.

승무원들은 불안해 하였으나 지나칠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일어난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했지만 공포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후에, 나는 엔진이 분해되면서 유압관들이 동강났기 때문에 비행기가 단지 우측으로만 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종사는 곧 우리가 아이오와 주 수시티에 착륙할 것이며, 그 착륙이 다소 불편을 줄 것임을 방송하였다. 그는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우리에게 불시착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승무원들은 좌석 벨트를 단단히 매는 방법 및 발목을 거머쥐는 방법을 실연했다.

엔진이 고장난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그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나를 잡고 우리 둘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여섯 살과 두 살 난 두 딸이 이 여행에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우리가 착륙에 대비하였을 때, 두 아들과 함께 내 옆에 앉은 여자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비행기는 부드럽게 내려갔고, 착륙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정말로 무사히 착륙한 줄로만 알았다.

생존과 입원

나의 눈은 계속 감겨져 있었고 마치 오락용 활주차를 타면서 감겨진 눈 사이로 햇빛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일은 구두가 벗겨지려고 해서 발가락을 구부려 벗겨지지 않도록 애쓰던 것이었다.

눈을 뜨자, 어두컴컴했으며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한 구조원이 나의 의자를 돌려놓고 있었다. 우리는 밭 가운데에 있었다. 밭은 검푸르게 그을렸고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내 옆의 좌석 벨트에 묶인 채로 있었다. 이름을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구조원들이 나를 땅 위에 눕혔으며, 나는 팔꿈치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남편이 무사한지 물어 보았다. 구조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로 맥이 풀렸다. 구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 온갖 소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귀담아 들은 것은 아니었다. 눈이 부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리언 군 보건소에서, 사람들이 잘 돌봐 주어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로리라는 간호사가 그러했다. 나는 그에게 앨버커키에 사는 여동생의 전화 번호를 알려 줄 만큼 정신을 차렸으며, 그는 전화를 걸어 나의 가족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아이오와 주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보러 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실제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첫날 밤에, 여호와의 증인의 지방 회중으로부터 두 명의 장로가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흘간 머무르는 동안, 지방 증인들이 계속 방문하고, 전화를 걸고, 편지를 하였다. 유나이티드 항공사가 J. C. 페니 백화점에 예금 계좌를 개설해 주었고, 증인들이 내 대신 쇼핑을 해주어 입을 것이 생겼다.

이튿날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시동생과 시부모 모두가 도착하여 나와 함께 있게 되었을 때 다시금 놀랐다. 그들 중 아무도 내게 남편이 사망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여전히 남편이 신원 불명 부상자들 중에 끼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어렴풋이 품고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면서 내가 본 내용은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추락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비행기가 막 착륙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가 무사하다고 추정하였다. 잠시 멈추어 우리가 왜 비행기 밖에 있게 되었는지 분석조차 하지 않았었다. 남편과 내가 앉았던 좌석의 줄은 날개 뒤쪽에 있었다. 우리는 중앙에 있는 5인용 좌석에 앉았으며, 비행기가 박살나면서 우리의 의자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남편과 내 옆에 앉은 여자는 사망하였으나 그 여자의 어린 두 아들과 나는 살아 남은 것이다.

한 구조원—기억이 난 유일한 사람—이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살고 어떤 사람들은 죽은 것에 대해 괴로워하였다. 나는 그러한 일은 ‘당사자들에게 임하는 시기와 우연’의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전도 9:11)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죽게 될 좌석에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살아 남을 좌석에 앉도록 정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에게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는가?」라는 성서 전도지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는 팜플렛을 주었다. 서로 힘껏 포옹을 하였는데, 그가 조금은 나은 감정을 가지고 떠났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응급실에서 나의 상처를 보살펴 준 로리는 내가 자신의 환자 명부에 올라있지 않았는데도, 병원에 머무르는 동안 계속 나를 방문하였다. 로리는 나의 내적인 힘에 감탄하였으며, 나는 그에게, 대처하도록 도와주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그 힘을 얻는다는 점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시 121:1-3.

계속 대처해 나감

7월 23일 금요일경에는 집에서 요양할 준비가 되었다. 우리가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나는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이야기를 함으로써 마음을 진정시켰고 숨쉬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두 살 난 딸 머시디스는 온통 붕대를 감고 멍이 들어 있는 나를 보자 아는 체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딸아이가 다시 나에게 호의적이 된 것은 사나흘이 지나서였다. 태라는 엄마가 돌아오자 기뻐했지만 아빠를 그리워했다.

남편을 알던 사람들과 남편의 영적 발전(남편은 10월에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침례받을 예정이었다)을 알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남편이 죽었다는 현실을 직시하기가 더 어려웠다. 어떤 사람들은 산타페에서의 남편의 장례식보다 더 성대한 장례식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남편은 친구가 되는 법을 알았으며 많은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었다.

나는 계속 바쁠 필요가 있음과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보다 더 나은 활동은 결코 없음을 깨달았다. 4월과 5월에는, 전 시간 봉사의 한 형태인 보조 파이오니아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제 나는 9월에 다시 보조 파이오니아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문제들에 몰두하는 것이 참으로 도움이 되었다. 나는 또한 집안일들, 이를테면 창문에 블라인드를 다는 일, 식당과 서재에 도배하는 일 및 식탁을 다시 손질하는 일과 같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사고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두 건의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었는데 추락 사고 후, 이전의 한 연구생이 다시 연구를 시작하기를 원하였다. 세 명의 연구생은 모두 ‘당신 남편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왜 여호와께서는 당신은 구하면서 남편은 구하지 않으셨나요?’하고 질문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처사와 자연재해 또는 돌발 사고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었다. 하나님의 처사의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한 예로 노아 시대의 홍수가 있다. 그 경우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 재난을 피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셨다. 노아는 방주를 건축해야 하였다. 반면에, 돌발 사고와 자연재해는 예기치 않은 일로서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구별없이 누구에게나 임한다. 우리가 탄 비행기의 어딘가에 고장이 나리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만일 알았더라면, 아무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생존은 남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우연한 일이었다.

나보고 참으로 “굳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자주 눈물을 머금는지를 잘 모른다. 내가 체험한 것을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남편에 대하여 이야기하거나 사진을 보고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는데, 그러다가 혼자 있게 되면 울고 만다. 겨우 7년이라는 그토록 짧은 기간밖에 함께 살지 못하고 배우자와 사별을 한 것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어린 딸들은 방문차 들른 그리스도인 형제들 누구에게나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며, 때로는 가지 못하게 하려고 다리에 매달리기도 한다. 태라는 한동안 골을 냈으며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가끔 울곤 했다. 그렇지만, 태라는 학교 생활을 잘하며 급우들에게 부활에 관하여 이야기하려고 애쓴다.—요한 5:28, 29.

우리는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생활의 길로 삼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완수할 것이다. 약 1년 전, 한 친구가 나에게 정규 파이오니아 봉사를 계획해 보고 시작하라고 격려하였다. 그 격려를 받아들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전 시간 봉사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배워 알도록 돕는 일을 한 것은 지상 낙원을 만드시고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하나님의 웅대한 목적에 계속 집중하도록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누가 23:43; 계시 21:3, 4)—리디아 프랜시스 애트웰의 체험담.

[26면 삽화]

비행 전에 남편과 함께

[25면 사진 자료 제공]

UPI/Bettmann News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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