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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안이 가난하면 어떻게 하나?
  • 깨어라!—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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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2
깨92 2/1 18-20면

청소년은 묻는다 ·⁠·⁠·

집안이 가난하면 어떻게 하나?

조지가 자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판자촌은 그에게 별로 행복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우리는 전형적인 무쿠쿠 집—고작 방 두 칸짜리 작은 양철 오두막에서 살았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한다. 그중 한 방에서 아홉 남매가 함께 지냈다. 겨울철이면 온 동네가 함께 쓰는 공동 수도에서 물을 받아 오기 위해 겨울 바람을 맞아 싸우곤 했다. 조지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가난하게 자라면서 제일 싫었던 것은 아버지가 단지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기에 화가 났던 겁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개발 도상국에서 생활의 일면이다. 그리고 부유한 서구 나라들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수는 깜짝 놀랄 만큼 많다. 아마 당신도 그중 한 사람일지 모른다. 조지처럼 당신도 가난이라는 덫에 걸려들었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와 같은 감정은 가난에 따르는 문제를 호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는 쪽으로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현실 도피의 덫

가난한 청소년 중에는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감각을 무디게 함으로써 가난의 고통에서 도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놀라울 정도로 많다. 연구가 질 스와트에 의하면, 남부 아프리카의 한 도시에서 거리의 어린이들은 “단지 ‘흥분을 맛보기 위해서’ 본드를 흡입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추위와 외로움과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 그것을 사용한다.”

그러면 이 청소년들은 제정신이 돌아오고 흥분이 끝났을 때 어떤 느낌을 갖는가? 질 스와트는 “심한 우울증”, “공격성”, “급격한 감정적 동요”, “시력 손상” 등과 같은 증상 및 가난에서 벗어나는 건전한 “도피구”라고는 보기 어려운 그 밖의 여러 신체적 질병이 생긴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시하였다.

현명한 왕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였다. “술 취하[는] ·⁠·⁠·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잠언 23:21) 알코올이나 본드나 마약으로 정신 상태를 바꿈으로써 가난이라는 현실을 외면하려고 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비교 잠언 31:7)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난한 홀어버이 가정의 16세 소녀, 머리아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현실을 도피하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더 많은 문제가 생기지요.” 더욱이, 파멸을 초래하는 그런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이다 보면 가난에 더 깊이 빠지게 된다. 가난한 청소년은 오직 자신의 처지와 정면으로 맞설 때만 가난을 극복하기를 바랄 수 있다.

분노와 좌절

많은 청소년은 가난한 환경의 덫에 걸려들었음에 분노한 나머지, 폭력, 파괴, 도둑질 및 기타 형태의 청소년 비행으로 분을 터뜨린다. 「월드 북 백과 사전」은 그런 청소년들이 그와 같은 행동을 “지긋지긋한 생활과 가난과 기타 문제로부터의 유일한 도피구”로 생각한다고 알려 준다. 앞에서 언급한 조지는 그의 동배들 중 일부가 분노하고 좌절한 나머지 이웃을 공포에 떨게 하는 폭력단에 가입한 일을 기억한다. 그는 “그들이 대부분 생계를 위해 싸우고 도둑질을 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은 마약 판매처럼 돈벌이가 좋은 불법 활동에 가담함으로써 가난을 헤쳐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비행은 가난을 호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기만 한다. 생산적인 활동—이를테면 유용한 기술이나 직업을 배우는 일—에 쏟을 수도 있는 활력을 허비하는 것이다. 빗나간 행동을 하는 청소년은 자기 처지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한 신체적·감정적 상처를 겪게 된다. 일부 청소년들은 결국에는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거나 폭력으로 목숨을 잃고 만다. 솔로몬 왕이 이렇게 경고한 바와 같다.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느니라.]”—잠언 13:18.

무력감과 절망감

아마 가난이 청소년에게 입힐 수 있는 가장 큰 상처는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과 열등감이 계속 떠나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많은 경우에, 모든 생활 부면에서의 극심한 가난은 생활 수준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 「월드 북 백과 사전」은 청소년들이 종종 “부모들이 나타내 온 것과 똑같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갖게 된다”고 논평한다. 마침내는 “가난의 문화”가 정착되고, 그 피해자들은 불행한 삶에 자신을 내맡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절망감과 무력감 속에서 허우적댄다고 상황이 개선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기껏해야 가난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게 할 뿐이다. 고대의 한 잠언에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전도 11:4) 만일 농부가 부정적인 가능성—바람이 씨앗을 날려 버리거나 비가 곡식을 적셔 놓을 수 있다는 점—만을 골똘히 생각한다면 필요한 행동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부정적인 느낌에만 빠져 있다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도무지 기울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더 나아가 이렇게 충고하였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 11:6) 그렇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가망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움츠리지 말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 부정적인 느낌을 점차 긍정적인 느낌으로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존심을 세움

열한 살 된 제임스의 경우를 고려해 보자. 그는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근처의 무허가 천막촌에서 산다. 물질적인 면으로, 그들은 가진 것이 거의 없다. 제임스는 주말마다 그 지방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을 건축하는 일을 돕기 위해 자진 봉사를 한다. 그 일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손을 늘어뜨리고 보냈을 시간을 선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종의 성취감도 맛보고 있다. 제임스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회관 건축에 하루를 바치고 나면,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만족을 느껴요!” 이 소년은 비록 가난하지만, 여전히 가치 있는 자산—시간과 활력—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생산적 활동은 호별 방문 성서 교육이다. (마태 24:14) 여호와의 증인의 많은 청소년들은 정기적으로 그 일에 참여한다. 그들은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장래의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전해 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존심, 자부심, 존엄성을 발전시킨다. 물론, 그런 일을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고대 서머나 회중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신 소식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물질적으로 매우 가난했지만, 깊이 있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은 예수께서 흘리신 피에 대한 믿음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음으로써 극히 부요하게 될 것이다.—계시 2:9, 10.

가난 속에서 자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무력감이나 절망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가난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전도 8:9) 하나님께서 곧 지상사를 관장하시어 가난과 그 파괴적 영향을 없애실 것임을 알려 주는 증거가 있다. (시 37:9-11)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형주에서 죽어 가시면서 그분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비탄에 잠긴 행악자에게 약속하신 바와 같이, 수십억의 인류를 지상 낙원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누가 23:43, 「신세」 참조) 하지만 그전에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일들이 많다. 앞으로 나오는 호에서 그 점을 다룰 것이다.

[20면 네모]

‘가난이라는 덫에 걸려들었다고 느꼈다’

아프리카 소년 조지는 학교에 계속 다니고 기본 교육을 마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렇게 해야만 보수가 좋은 직장을 구하고 자신과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추리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 집안이 심한 재정적 곤경에 빠졌기 때문에, 조지는 단지 6년 간의 학교 교육을 받은 후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침내 병조림 공장에서 상자에 물건을 담는 일자리를 구했는데, 1주일에 14랜드(약 3900원)밖에 벌지 못했다. 봉급은 모두 가족을 부양하는 데 사용되었다.

조지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이라는 덫에 걸려들었다고 느꼈지만, 생계를 위해 폭력단에 가입하거나 도둑질을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즈음 내 또래 친구들 중 그런 일을 한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낙오자, 술과 마약의 노예가 되었거나 아니면 감옥에 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생활 방식 때문에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조지는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게 되었다. 조지는 이렇게 말한다. “제일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모두가 내게 와서 정중하게 대화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확신과 자존심이 점점 생겨나더군요.” 조지는 또한 시편 72:12, 13 같은 성구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구절은 이와 같다. “저[메시야 왕]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리로다.]” 성서의 약속은 그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요즈음의 조지를 보면, 그가 무력감과 절망감을 긍정적인 견해로 바꾸기 위해 분투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조지는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웨토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회중에서 주임 감독자로 봉사한다.

[19면 삽화]

자포 자기하여 절망감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에 시간과 활력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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