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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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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6 7/8 16-19면

튤립—한때 풍파를 일으킨 꽃

「깨어라!」 네덜란드 통신원 기

“네덜란드에 봄이 오면, 마치 그 넓은 대지가 ·⁠·⁠· 소생하는 것 같다”고 네덜란드 관광국은 말합니다. 갑자기, 찬란한 온갖 색상으로, 피어나는 튤립 꽃송이들이 화려하게 줄줄이 들판을 뒤덮고, 꽃들의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이끌려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듭니다. 방문객 대부분에게, 우아하고 인기 있는 이 원예 화초는 풍차와 치즈와 나막신만큼이나 네덜란드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튤립의 원산지가 실은 터키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동양에 뿌리를 둔 네덜란드 튤립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터키의 장신구들에 튤립이 그려져 있지만, 유럽의 문헌에는 1550년대에 처음으로 튤립이 언급되었다고, 식물학자인 아델라이드 L. 스토르크는 지적합니다. 1553년에 프랑스의 한 여행자는 “경탄한 외국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시장에서 생소해 보이는 “커다란 양파가 달린 빨간 백합”을 사고 있더라고 썼습니다. 그 곳 주민들은 그 꽃을 터키어로 “터번”이라는 뜻인 뒬벤드라고 불렀는데, 스토르크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 단어가 “‘튤립’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터번처럼 생긴 이 꽃에 매료된 사람들 가운데, 터키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1555-62년)였던 오키르 길랭 데 부즈베크가 있었습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알뿌리(비늘줄기) 몇 개를 가지고 빈으로 가서, 합스부르크가(家)의 황제인 페르디낭 1세의 정원에 심었습니다. 거기서 튤립의 알뿌리는 프랑스인 식물학자, 샤를 드 레클뤼즈의 노련한 보살핌을 받으며 잘 자랐습니다. 이 식물학자는 카롤루스 클루시우스라는 라틴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얼마 안 있어, 네덜란드에 있는 레이덴 대학교는 클루시우스의 명성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 대학교의 식물원 원장이 되어 달라고 그를 설득하였습니다. 1593년 10월에, 클루시우스는—“소중히 간직한 튤립의 알뿌리들”과 함께—레이덴에 도착하였습니다. 몇 달 뒤인 1594년 봄, 클루시우스가 새로 맡은 식물원은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튤립 꽃이 핀 장소가 되었습니다.

튤립 열풍—풍파가 일어난 시기

튤립의 선명한 색상과 이국적인 모양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터키의 황제들이 이 알뿌리에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매겼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나돌면서, 이 알뿌리는 신분을 강하게 의식하는 국민에게는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튤립의 알뿌리를 기르는 일이 수지맞는 돈벌이가 되었고,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기 시작하자 알뿌리 가격이 치솟으면서 풍파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시기를 툴펜뵈데 즉 튤립 열풍이라고 부릅니다.

튤립 알뿌리가 최고 인기 상품이 된 1630년대에 튤립 열풍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미술사가인 올리버 임피는, 그 당시에 얀 D. 드 헴(17세기 네덜란드의 위대한 정물화가)이 그린 튤립 그림을 사는 것이 희귀한 튤립 알뿌리를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알뿌리 한 개가 신부의 지참금으로 받아들여졌고, 알뿌리 세 개는 운하 옆에 지은 주택의 가격이었으며, 튈리프 브라스리라는 변종의 알뿌리 단 한 개는 번창하는 양조장과 맞바꿀 수도 있었습니다. 알뿌리 상인들은 한 달에 약 4만 4000달러(오늘날 미화 시세, 한화로는 35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었습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네덜란드 도처의 여관이나 선술집들에서는 대화와 거래가 오로지 한 가지 상품, 바로 알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이렇게 부언합니다. “가격이 꾸준히 오르자, 많은 평범한 중산층 및 가난한 가정들이 튤립 시장에 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알뿌리를 사서 더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 집과 부동산과 사업체들을 저당잡혔다. 땅에 묻혀 있는 알뿌리를 옮기는 일도 없이, 팔고 되파는 일이 여러 차례 거듭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재산이 배로 늘어났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는 백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알뿌리 매매는 계속 열광적인 투기꾼들의 시장이 되어 오다가, 갑자기 1637년에, 사려는 사람보다는 팔려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서 시장이 붕괴되었습니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부유하던 수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파산하였습니다.

애정은 지속되다

하지만 튤립에 대한 애정은 튤립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튤립 알뿌리 산업은 다시 번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상, 18세기 무렵에는 네덜란드 튤립이 대단히 유명해져서, 터키의 황제인 아메트 3세가 수천 개의 튤립을 네덜란드에서 수입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랜 여행 끝에, 터키 튤립의 후손인 그 네덜란드 튤립은 원산지에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튤립 재배가 네덜란드에서 주요 산업이, 아니 일부 사람들의 말대로 멋진 사업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3만 4000제곱 킬로미터의 땅 가운데 약 7700헥타르가 튤립 재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 나라 3300명의 재배자들은 거의 20억 개에 달하는 튤립 알뿌리를 80여 개 나라에 수출합니다.

튤립 때문에 한때 심한 풍파가 일어나긴 했지만, 이 인기 있는 원예용 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지속되어 왔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이 아름다운 꽃은 미술가와 시인과 과학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 우아한 자태와 강렬한 색채를 화폭과 지면에 담게 하였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인 18세기 과학자 요한 크리스티얀 베네만은 독일어로 튤립에 관한 학술 논문을 쓴 뒤에, 그 논문의 제목을 「창조주의 영광과 고결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한 튤립」(Die Tulpe zum Ruhm ihres Schöpffers, und Vergnügung edler Gemüther)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를 비롯한 많은 저작자들에게, 튤립은 “단순히 정원사의 손에 맡겨진 재배 대상이 아니며, 그 꽃은 창조주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반영한다”고 아델라이드 스토르크는 말합니다. 이 섬세한 꽃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8면 네모]

튤립 재배법

물이 충분히 공급되기만 한다면, 거의 모든 종류의 토양에서 기를 수 있다. 하지만 표토에 모래나 토탄이나 퇴비를 섞으면, 더 쉽게 심을 수 있다.

가을에 튤립 알뿌리(비늘줄기)를 심는다. 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알뿌리마다 하나씩 구멍을 파거나, 모든 알뿌리를 한꺼번에 심을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튤립 알뿌리를 심을 때 한 가지 요령이 있다. 심는 깊이가 알뿌리의 두 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알뿌리의 밑바닥(평평한 쪽)이 지면에서 20센티미터가량 내려간 곳에 있어야 한다. 약 12센티미터 간격으로 알뿌리를 심는다.

파놓은 흙으로 알뿌리 위를 덮고 나서, 자라기 시작하도록 즉시 물을 준다. 토탄이나 부엽토로 덮어 주면, 된서리가 내릴 때 알뿌리를 보호하게 되고 흙이 마르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봄에 첫 새싹이 나올 때 부엽토를 제거한다.

꽃잎이 시들기 시작할 때 꽃송이를 따 준다. 그렇게 따 주지 않으면, 씨를 맺게 되므로 알뿌리에서 이듬해의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빼앗기게 된다. 잎은 자연히 시들게 내버려 두었다가 누렇게 되면 제거한다.

알뿌리는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심지 말고, 종류와 색상별로 함께 모아 심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선명하게 돋보이는 색상들이 나타나, 집의 정원에서 이 꽃으로 된 걸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네덜란드 국제 화초 알뿌리 센터/National Geographic.

[17면 사진 자료 제공]

16면 아래: Nederlands Bureau voor Toerisme; 왼쪽 위, 중앙, 오른쪽 위: Internationaal Bloembollen Centrum, Holland; 17면 아래: Nederlands Bureau voor Toerisme/Capital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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