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명된 전도인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 전 2:13.
1.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의 임명식과 예수의 임명식 사이에는 어떠한 대조적인 차이가 있읍니까?
「푸로테스탄트」(신교)나 「카돌릭」(천주교)과 같은 종교 조직에 서는 그들의 교직자들을 임명하는 일이 큰 행사가 되게 합니다. 한 회중(會衆)의 목사가 되기 위하여는 먼저 몇해동안 신학교에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가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교직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제 정중한 의식(儀式)이 화려하고 성대하게 행하여집니다. 이 의식을 사회하고 참관하기 위하여 수 많은 고귀한 인사들이 이 의식에 참석합니다. 여기에서 임명을 받는 사람은 그의 하나님께 대한 봉사와 숭배를 위하여 성직에 임명 되는 것입니다. 사제(司祭)로 부터 주교(主敎) 또는 대주교(大主敎)로 교직자로서의 그의 종교적 지위를 높이기 위하여 그는 더욱 성대한 의식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독교국의 수많은 교직자들은 이와같이 많은 낭비로써 장식된 거대한 회당에서, 교회 의식을 통하여 임명을 받음으로 그 광경을 대중에게 정중하게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참다운 기독교의 설립자는 『약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한 사람에 의하여 「요단」강 물에 자신을 잠근 후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내려옴으로 임명을 받았읍니다.—마태 3:4.
2, 3. 예수께서는 신학 교육을 받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전도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심을 어떠한 사실이 증명하여 줍니까?
2 이 임명식은 얼마나 서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임명받은 전도인이 되기 위하여 그와같이 단순한 방법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그의 봉사를 위하여 어떠한 특별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아무런 기록도 없읍니다. 물론 그는 청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히브리」어 성경을 연구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가 그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에게 특별한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읍니다. 예수께서 열두살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그의 아버지의 일에 관하여 질문하였다는 기록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가인 「누가」는 그의 부모가 유월절이 끝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부터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를 찾고 있던 광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읍니다.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누가 2:44-47.
3 열두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어린 아이는 그의 양친에게 이렇게 반문하였읍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러나 거기에서 예수는 그의 양친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읍니다. 이 역사는 다시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기록하고 있읍니다.—누가 2:49, 52.
4, 5. (ㄱ) 예수에게 어떠한 때가 도래하였으며 그의 아버지께서는 그의 이 성업의 선택을 인정하셨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ㄴ) 그의 임명식은 굉장한 낭비의 의식이었읍니까?
4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의 사업에만 전 시간 종사하여야 될 때는 왔읍니다. 그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에 그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풀고 있는 여호와의 선지자 침례 「요한」에게로 나아갔읍니다. 이 한적한 곳인 광야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있었읍니다. 그는 침례 「요한」이었읍니다. 그는 예수를 완전히 물속에 넣었다가 다시 물 밖으로 일으켰읍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한 그의 헌신(獻身)을 상징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그가 기뻐하시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인정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더라.』 (마태 3:3, 16, 17) 예수께서는 이제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셨읍니다. 그는 하나님께 임명을 받은 자가 되셨으며 임명된 봉사자로서 그의 큰 전도 사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누가 3:23.
5 예수의 임명식이 수많은 사제(司祭) 또는 교직자들의 참석리에 행하여 진 큰 행사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읍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의식도 없었으며 그는 어떠한 저명한 신학교를 졸업하시지도 않았읍니다. 그는 한 목수의 아들이었고 그 자신도 한 목수였읍니다. 그는 이제 전도하는 성직(聖職)을 수행하기 위하여 발을 내 디디신 것입니다.
6. 예수의 제자들은 어떻게 임명된 전도인들이 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중에서 몇 사람이나 임명된 전도인이 되었읍니까?
6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이와 같은 방법으로 즉 완전히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를 받았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왔다는데 관하여 교훈하신 후에 그 자신이 하시는 바와 같이 왕국의 소식을 전파하도록 내어 보냈읍니다. 그들은 모두 잘 훈련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교훈하신 대로 생활하였읍니다. 그들에게는 신학교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임명된 전도인이었음에는 틀림없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후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회중을 조직하기 위하여 그들을 사용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지배하게 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그들을 잘 기르게 하기 위하여 감독자로 임명하였읍니다.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임명된 전도인이 되었읍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모두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도록 『하나님이 [그들을] 권면하」셨기 때문입니다.—고린도 후 5:20.
7. 예수의 어떠한 명령이 그의 제자들이 전도 사업을 위하여 임명되었음을 증명해 줍니까?
7 예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되신 후에 함께 모인 그의 제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 20)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에게 침례를 베푸는데 있어서 그들이 침례를 받았던 것과 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워 놓으신 본외에 다른 방법으로 행하라는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았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명된 전도인이 되기 위하여 형식적 종교 의식을 통해서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간단한 본을 세워 놓으셨던 것입니다.
8. 사실상 하나님의 전도인을 임명하는 것은 누구이며, 침례는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8 물론 물로 침례를 받는다는 자체가 임명된 전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침례를 받은 사람에게 임명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침례를 받는 사람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을 주권 통치자로 인정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그의 구주로 인정하였으며, 또 그 자신은 죄인인 것과 그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한번 물로 침례를 받게 되면 그것은 그에게 더욱 큰 뜻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침례를 받는 사람은 여호와께 대한 봉사와 숭배를 위하여 헌신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자신이 이 목적을 위하여 행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증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침례를 받아 드리시고 그를 그의 성업을 위하여 임명하십니다.
9, 10. (ㄱ) 임명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그가 행하는 일에 대한 권위가 어디 있는가를 어떻게 증명하였읍니까?
9 임명된다는 말은 전도의 직무를 부여 받았다, 혹은 권위로부터 지명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어떠한 특별한 봉사를 하도록 지명을 받았읍니다. 그것은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었읍니다. 예수 께서는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의 두루마리로부터 그의 전도의 직무에 관한 성구를 낭독하셨읍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누가 4:18-21.
10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사업을 하실 것이라는 것은 이사야 61:1, 2에 예언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성구를 인용하여 그가 이 성구를 성취시키신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때 이 사업을 위하여 임명 즉 지명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호와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도록 인정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공개적으로 선포할 때가 왔읍니다. 예수께서는 과연 그 일을 수행하셨던 것입니다.
11.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희랍」어 성경을 읽어 볼 때에 그것은 예수의 사업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여 주며, 그리고 그 사업을 수행하는 그의 사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계되었읍니까? 그렇다면 누구에게?
11 「희랍」어 성경을 읽어 본 사람들은 모두 누구나 예수께서 그의 삼년 반 동안의 전도 기간에 얼마나 놀라운 전도와 가르치는 사업을 수행하셨는가를 알고 있읍니다. 그들은 또한 사도들이 수행한 사업에 관하여도 잘 알고 있읍니다. 사도 「바울」이 『의를 위하여는 마음으로부터 믿음을 행하여야 하고 구원을 위하여는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하여야 한다.』 고 말한 것은 바로 그 사업에 대하여 말한 것이었읍니다. (로마 10:10, 신세)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조금도 다름이 없읍니다. 예수에게 놓여져 있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과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전파하는 일과, 눈먼자를 보게 하는 일과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똑 같은 사명이 그의 충실한 그리스도인인 추종자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계실 때에 그는 우리 시대에 있을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전파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종말이 올 것이다.』 (마태 24:14, 신세) 사도들과 예수의 추종자들은 모두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을 그들의 사명으로 삼아야 하였던 것입니다.
전도 활동 범위
12. 전도 사업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이 중요성에 비추어 어떠한 적절한 질문이 생깁니까?
12 하나님께 대하여 또는 이 세상 정부에 대하여 한사람의 임명된 전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있어서나 그의 사상에 있어서나 그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워놓으신 원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발자취를 그대로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임명을 받았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까? 임명된 이 전도인은 다만 어떠한 특별한 기간에만 다른 사람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임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함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하루 24시간의 임명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자기가 선택한 성직을 잠간 동안만 이행하고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전도의 옷을 끊임없이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까? 성경은 예수께서 젊었을 때에 목수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중에 그의 직업을 바꾸었음을 알려 주고 있읍니다. 그는 그의 직업을 더 일찌기 바꾸기를 원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우선 30세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이 연령은 「레위」 자손들이 「유대」의 법률에 의하여 제사장 직에 취임할 수 있는 나이였읍니다. 그가 하나님께 임명을 받았을 때에 그는 천국이 가까왔다는 소식을 전파하는 그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그의 마음을 다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수행하신 똑 같은 사업을 하도록 똑 같은 성직을 따르도록 훈련시키섰읍니다.
13. 성직이라는 말의 신학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누가 그러한 길을 따라야 합니까?
13 성직(聖職)이라는 말의 신학적 의미는 이러합니다. 『특별한 직위 혹은 생활 상태로서 특히 그의 재능 또는 성품에 따라 제사장 직분 혹은 종교 생활로서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 하나님의 초대를 확신함으로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음. 목사 직책과 같은 특별한 교회 직분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초대받은 것.』 예수는 참으로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분이었읍니다. 그는 특별한 활동 즉 특별한 직업을 위한 초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의 성직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었읍니다. (마태 6:33)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임명된 추종자가 되기 위하여는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의 사도들도 이 세상 정부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그들을 어부 세리(稅吏) 또는 천막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들의 성직이 임명된 전도인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와같이 하였던 것입니다.
14. (ㄱ) 어떠한 때에 목수나 석공이나 기술자나 의사와 같은 직업이 부업이 되어야 합니까? (ㄴ) 한번 임명되었다면 그는 왜 결코 중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까?
14 오늘날의 헌신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그 당시와 똑 같이 결코 부분적 시간의 직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 시간의 성직인 것입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결코 일요일에 몇시간 동안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참다운 헌신한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 앞에서 임명된 전도인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기 시작한 때로부터 그의 발자취를 걷는 동안 전 생애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에 있어서는 그의 직업이 아마 목수나 석공이나 기술자나 의사일지 모르며, 그러한 직업으로 그의 생활을 영위해 나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고 물에서 침례를 받았다면, 그가 수행하고 있는 이 세상 직업은 둘째가 되고 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봉사가 첫째로 오는 중요한 것이 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그것을 이제 그의 참다운 성직으로 삼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봉사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첫째 직업 즉 그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의 요구인 것입니다. 그의 성직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임명된 전도인으로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 직업을 쉬는 경우는 있을지 언정 결코 하나님의 봉사를 위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을 중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의 봉사를 중지한다면 그는 그의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15. 사람이 그가 헌신을 결심한다는 것은 무엇을 선포하는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5 여호와의 봉사를 위하여 헌신하고 물의 침례로써 그 헌신을 상징하는 일은 어떠한 이 세상에 있는 종교 조직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와 같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일입니다. 그가 물에 잠긴다는 것은 모든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그가 앞으로 그의 생활을 전도인으로서 봉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성직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과 같이 생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 전 2:13.
16, 17. (ㄱ)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ㄴ) 「바울」은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16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 드렸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것이 우리의 먹고 마시는 것에 까지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것은 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그가 「고린도」에 무엇이라고 편지하였는가를 잠간 읽어 보기로 합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린도 전 10:31-33) 「바울」은 그의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그외에 어떠한 일을 하든지 그러한 것을 통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관계가 됩니까? 「바울」은 이에 대한 대답을 고린도 전서 8장과 10장에서 설명해 주고 있읍니다.
17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여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사도 15:29) 그러나 그는「고린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읍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 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고린도 전 10:25-30) 우상에 제사지냈던 고기를 장에서 팔았다 하더라도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읍니까? 그것을 사는 사람이 그 고기가 우상에 제사를 지냈던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가 당신을 만찬에 초대할 때에도 거기에 차려놓은 음식을 그대로 먹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을 알』고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8:4) 그러나 만일 누가 당신과 함께 먹을 때에 『이것은 제사지냈던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양심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한 사람의 양심을 위한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그대로 먹는다면 그를 너머지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18, 19. 「바울」은 왜 그렇게 형제들의 양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읍니까? (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추종자들도 그와같이 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18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나 혹은 지식이 결코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변론하였읍니다. 만일 당신이 우상에게 제사 지냈던 음식을 하나님께 감사한 후에 먹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지 모릅니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린도 전 8:9, 12, 13) 「바울」이 임명받은 것 즉 하나님의 봉사를 위하여 바친 것은 먹고 마시는 일까지 포함되어 있읍니다. 그것은 그의 매일의 모든 행동이 관련되어 있었읍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생명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 .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로마 14:15, 17; 고린도 전 10:23, 24.
19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나 「희랍」사람들이나 회중에 있는 형제들을 넘어지게 할 수 있는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그 때와 다르게 해석할 것이 아닙니까? 그럴 수 없읍니다. 우리도 「바울」과 똑 같은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기를 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33) 당신도 그와 같이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만일 당신이 「바울」과 같이 임명된 전도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말하고 일하는 것
20. (ㄱ)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먹는 식물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없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기 변호를 위하여 어떠한 주장을 합니까? (ㄴ) 그러나 우리가 마시는 습관에 대하여 어떠한 점을 생각해야 합니까?
20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이 오늘날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떤 사람은 말할지 모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우상에게 음식을 제사지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마시는 습관은 어떠합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읍니다. 또한 「바울」은 마시는 일도 주의해야 될 일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종류의 음료수를 마십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어떠한 사람의 마음에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알콜」성분이 있는 음료수입니다. 술을 마시기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아마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의 위(胃)를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 마시라고 권고한 것을 가지고 자기를 변호 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것이 술을 만드는 것이었음을 주장하므로 그렇게 할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술이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는 것을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알콜」성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 합법적으로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것이 다른 형제에게 유익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러한 음료수를 『덕을 세우기』 위하여 마십니까? 우리의 유익만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유익도 생각하도록 합시다.
21, 22. (ㄱ) 생각없는 감독자가 형제들 앞에서 어떠한 나쁜 본을 보일 수 있읍니까? (ㄴ) 형제들 외에 또 어떠한 사람을 너머지게 할 수 있읍니까?
21 가령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을 돌보는 한 감독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는 매우 유력한 사람이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친구와 함께 나가서 술을 마시는 일을 절제하지 않음으로 취하게 되었읍니다. 성경은 술 취하는 자가 왕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음을 명백히 말하였읍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 . .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 .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 전 6:9, 10) 아마 당신은 진리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러한 것을 좋아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당신이 깨끗이 씻어졌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렇다면 왜 다시 그러한 행동을 취함으로 당신의 형제를 넘어뜨리게 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이제 한 형제가 술에 취하여 비틀 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이 감독자를 보았다고 합시다. 이 감독자는 그가 회중의 임명된 전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받은 그의 임명을 술을 취하는 자가 될 정도로 소홀히 생각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크나큰 충격과 혼란과 불쾌의 대상이 되었읍니다. 마시는 일의 이와 같은 부주의는 하나님의 회중에 있는 다른 형제 하나를 넘어뜨리게 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22 「이 술취한 사람을 조금 더 따라 가 봅시다. 그가 그의 집에 가까와 옴에 따라 그와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그의 이웃 사람 그의 취한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도 또한 넘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임명방은 전도인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줄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웃 사람은 더는 이 사람과 성경을 연구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성경이 그 사람에게 그렇게 밖에 해 주지 못하였다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사귀는 사람들 중에도 그보다 나은 사람이 많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나의 생활을 변경시켜 회중에서 유력한 자라고 하는 소위 임명된 전도인이 주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말야.』
23. 「고린도」와 「로마」에의 편지에서 지적한「바울」의 말은 어떻게 타당합니까?
23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얼마나 타당한 말입니까? 즉 『그런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 전 10:31) 그러한 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었겠읍니까? 그리스도인은 틀림없이 「유대」인이나 「희랍」인이나 이웃이나 벗이나 또는 하나님의 회중에 있는 한 형제를 넘어뜨리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모든 임명받은 전도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모든 사람의 생명이 구원을 받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로마 14:19-21.
24, 25. 그리스도인들은 또 어떠한 면에 있어서 그들의 걸어가는 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24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다른 일에 있어서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울」은 「골로새」에 편지할 때에 이 사실을 명백히 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 3:16, 17.
25 「바울」은 우리가 말하는 것이나 일하는 것에 주의하라고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위하여 매일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읍니다. 어떻게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하며,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고용주를 위하여 일해야 할 것 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확실히 이 두가지 일에 있어서 행동 자체가 증명하게 합니다.
26. 임명된 전도인들은 어떠한 말을 사용하여야 하며 우리의 말을 절제하는 것이 왜 때때로 어려웁니까?
26 우리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은 고상하며 깨끗하며 도움이 되며 존경을 받을만한 말인가?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 기뻐하실만한 말인가? 「야고보」는 우리의 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 . .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몸 가운데 있는 이 조그만 지체에 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혀는 곧 불이요. . . . 혀는 능히 길드릴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 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임명받은 전도인의 입은 다른 사람을 친절히 가르치는 일과 교훈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하여 자만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 입은 항상 여호와를 찬미하여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 3:6-12, 18.
27. 임명된 전도인이 이중 인격이 될 수 있읍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7 여호와의 임명된 전도인들은 결코 한번은 깨끗하고 의로운 말을 하고, 다음에는 더럽고 악한 말을 하는 이중 인격이 될 수 없읍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사상을 명백하고 강력하게 하기 위하여 좋은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회중에서 사용하는 말이 따로 있고, 또 직장에서 사용하는 잔인하고 가혹하고 더러운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를 기억 하십시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 . .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베드로」도 또한 매우 표현력있는 말을 사용하여 이 사실을 인정하였읍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베드로 전 3:10-12.
28. (ㄱ) 임명된 그리스도인 전도인은 그의 세속적 직업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외에도 어떻게 도둑이 될 수 있읍니까?
28 그 다음에는 또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일어나는 다른 점이 있읍니다. 우리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노동하기 위하여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의 일을 함으로 그의 일용할 양식을 벌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은 보통 고용주와 계약을 합니다. 고용주가 어떠한 사람을 고용할 때에는 그에게 어떠한 일을 위하여 얼마의 삯을 줄 것을 약속합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은 그의 일에 게을리하는 일이 있거나 그가 하겠다고 약속한 것보다 덜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는 마땅히 정직하게 고용주에게 그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하루에 몇시간씩 목수일을 하고 그 기간에 얼마씩 돈을 받기로 하고 고용되었다면 그는 마땅히 그 기간에는 부지런히 그의 목수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놀기 위하여 돈을 받기로 한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하여 돈을 받기로 하였읍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한 부자가 경영하는 상점에서 일을 본다면 주인이 부자라는 이유로 그의 물건을 도둑질할 아무런 이유도 없으며, 실제 물건 값보다 더 많이 받음으로 손님의 돈을 절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용인이 그의 일을 게을리하고 놀므로써 주인으로부터 도둑질할 수도 없읍니다. 그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읍니다. 주인이 그가 지불하는 만큼 일을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29. 종 「오네시모」가 한번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사도「바울」은 그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29 「바울」은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가 그의 주인으로부터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가 종이었음을 알게 된 「바울」은 그를 주인에게로 다시 보냈읍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이 된 그 종은 「빌레몬」도 그리스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레몬」에게 속하여 있었읍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빌레몬]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함으로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바울」은 주인으로부터 도망한 「오네시모」가 그 자신에게 매우 도움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를 그의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기를 원하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며 그는 법적으로 매어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빌레몬」으로 하여금 『저를 영원히 두게』 하였읍니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빌레몬 10-12, 15, 16)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즉 그가 종이든지 혹은 자유로운 일군이든지 간에 그는 마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30.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0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정직하여야 하고 진실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다만 기쁜 소식을 전할 때 뿐만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임명받은 전도인임을 증명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에게 역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먹고 마시는데 있어서나 말하고 일하며 전도하는데 있어서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다른 사람으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일을 행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좇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눈이 임명된 전도인들인 의인들을 향하고 계심을 알고 있읍니다.—베드로 전 3: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