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2 10/1 365-380면
  • “‘유다’ 지파의 사자”와 함께한 동료 통치자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유다’ 지파의 사자”와 함께한 동료 통치자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실로」
  • 「스불론」
  • 「잇사갈」
  • 「단」
  • 「갓」
  • 「아셀」
  • 「납달리」
  • 「요셉」
  • 「베냐민」
  •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
  • 야곱이 죽기 전에 한 예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2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연구용)—2025
  • 모든 백성의 순종이 속하는 분에 관하여 예언함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 “영원한 목적”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 잇사갈
    성경 통찰, 제2권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10/1 365-380면

“‘유다’ 지파의 사자”와 함께한 동료 통치자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백성의 순종이 속할 것이다.]”—창세 49:10, 신세.

1. 법황 「레오」 13세가 그 칭호를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순종이 왜 그에게 오지 않았으며, 성경은 그 칭호를 누구에게 드립니까?

1878년 3월 3일에 「이탈리아」인 「요아킴 페치」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교 대학에서 법황으로 선출되어 법황좌에 올랐을때 그는 「레오」(Leo) 13세라는 칭호를 취하였읍니다. 「레오」라는 말은 『사자』라는 뜻입니다. 법황으로 제관한 직후에 그는 나전어로 『레오데 트리버스 쥬다』 즉 『「유다」지파의 사자』를 자신에게 적용하였읍니다. 종교적인 면이나마 백성의 순종이 법황 「레오」13세에게로 왔읍니까? 역사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단지 기대에 불과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법황은 「유대」인도 아니요 「유다」지파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살고 있는 온 백성의 그러한 순종은 그에게 속하지 않았읍니다. 사도 「요한」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성경의 가장 마지막 권은 한 「유대」인으로서 실제로 「유다」지파에 탄생되었으며 「다윗」왕의 왕족으로 탄생된 분 즉 영광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칭호를 드립니다.

2. 어떠한 환경 아래서 이 칭호를 말하였으며 이에 합당한 분이 나타나게 되었읍니까?

2 사도 「요한」은 그의 영감받은 환상 중에서 예언적 두루마리를 하나님의 오른 손으로부터 받았을 때 그것을 읽어서 그 내용이 이루어 지도록 만들 수 있을 만한 분이 천지에 없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울었는가를 말합니다. 「요한」은 그런 후에 말합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되었을 때, 위안을 받았읍니다. 「요한」은 그를 60년 이전에 땅에서 알았었읍니다. 이제 그가 나타나시어 예언의 두루마리를 취하시고 그 내용이 이루어지도록 하시게 된 것입니다.—계시 5:1-10.

3. 지상의 어떤 인간이 그 칭호를 취한다고 왜 어떤 좋은 일이 없을 것입니까?

3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종교나 혹은 정치적 지위의 여하를 막론하고 지상의 어떠한 인간도 『「유다」지파의 사자』라는 칭호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읍니다.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그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온 백성의 순종은 그에계 속하거나 그에게 오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것은 단지 하늘에서 영광받으시고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는 것만이 당연합니다.

4. (ㄱ) 예수 그리스도를 이 칭호로 부르는 것은 왜 적당합니까? (ㄴ) 그렇다면 「유다」지파가 적당하게 영적 「이스라엘」 중에서 발견되며 뛰어난 지위가 주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4 고대 족장 「야곱」은 그의 임종의 예언 중에서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와 「다윗」의 왕계에서 탄생된 예수께서 『「유다」지파의 사자』라고 불리운다는 것은 매우 적당하였읍니다. 그는 비록 자기의 지적 생명을 치루셨지만 「사단」 마귀의 악한 세상을 정복하셨읍니다. (요한 16:33)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로 된 144,000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한 지파가 『「유다」 지파』라고 불리운다는 것은 또한 적당한 일입니다. 「유다」는 족장 「야곱」의 네째 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야곱」의 임종의 예언 중에서 그에게 지휘권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유다」지파는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에서 첫째로 등급이 매겨집니다.—계시 7:4, 5.

5. 이 지파가 그 이름을 지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나 영적 「이스라엘」이 그 이름을 가진 지파ㄹ,ㄹ 갖는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5 이것은 영적 「유다」지파가 열 하나의 다른 영적 지파들을 다스리도록 임명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영적 「유다」지파의 12,000만이 천국에서 『「유다」지파의 사자』와 함께 통치하도록 임명되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의 모든 십이 지파의 모든 144,000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후사들입니다. 모든 144,000에 관하여 계시록 20:4, 6은 말합니다.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그러므로 「유다」라고 이름한 지파는 영적 「이스라엘」에 포함 되었읍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대 육적 「이스라엘」에 비한 영적 「이스라엘」의 형상은 매우 중요한 것이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유다」는 마치 사자와 같이 어떻게 먹이로부터 올라갔읍니까?

6 주전 1712년, 이제 죽어가는 족장 「야곱」이 이 상징적인 『「유다」지파의 사자』의 오시는 장래를 어떻게 지적하였는가에 유의하십시오. 자기 아들 「유다」를 사자 새끼에 비긴 후 「야곱」은 말하였읍니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창세 49:9) 여호와의 전쟁에 참예하는 데 있어서 「유다」지파는 사자와 같이 먹이를 잡았으며, 여호와의 대적을 패배시키고 그들로부터 전리품을 노획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이 마침내 「다윗」왕으로 말미암아 점령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유다」의 대부분의 구역이 산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지파가 그들의 집으로 돌아갈 때에, 먹이로부터 올라갔다고 잘 말할 수 있었읍니다.

7, 8. (ㄱ) 사자와 같은 「유다」는 어떻게 기지개를 하였으며, 그를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입니까? 이것은 어떻게 잘 예시되었읍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는 주후 1914년 이래로 열국들이 하는 무엇을 본받아서는 안될 것입니까?

7 전쟁만이 이 「유다」지파의 직업과 경험은 아니었읍니다. 「알예」(『사자』라는 「아프리카」이름)와 같이 한가로운 때와 쉬는 때가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가 평화를 즐기며 그 사업의 소산물을 즐기고 있었을 때, 그 지파가 마치 맹렬한 「레비」(『사자』라는「아시아」의 이름)와 같으니 누가 감히 그 지파를 일으키어 전쟁을 하겠읍니까?

8 한가롭고 만족하게 기지개하는 사자는 아버지 「다윗」의 사망 후 40년 간에 걸친 지혜로운 「솔로몬」왕의 평화로운 통치에서 잘 예시되었읍니다. 「솔로몬」왕보다 더 큰 분 즉 『「유다」지파의 사자』께서는 1,000년에 걸친 평화스러운 통치를 가져올 것입니다. 주후 1914년의 그의 천적 통치의 시작 이래로 「사단」이 지배하는 악한 세상의 열국들은 오래 전의「야곱」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땅의 모든 백성들을 통치하실 그의 권리룰 무시함으로써 감히 그를 일 으킵니다. 현재 너무나도 임박한 「아마겟돈」전쟁에서 『「유다」지파의 사자』께서는 열국을 갈기갈기 찢으시어 승리하시고 먹이로부터 올라오실 것입니다. 그리므로 우리 각자는 그를 일으키지 말도록 합시다.

9. 「야곱」은 다른 지파들에게 「유다」지파에 충성하며 복종하여야 할 어떠한 영감받은 이유를 주었으며 그러나 처음에 「유다」는 왜 참았어야만 하였읍니까?

9 「이스라엘」의 다른 열한 지파들이 「유다」지파에 충성하며 복종하여야 할 영감받은 이유를 말하였을 때 「야곱」은 「유다」에 관한 자기의 예언을 확장하여 말하였읍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틀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백성의 순종이 속하게 될 것이다.]』 (창세 49:10, 신세) 그러나 「베나민」지파 사람 즉 「기스」의 아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인간 왕이 되도록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택되었을 때, 특히 「유다」지파는 이상하게 생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다」지파는 「베냐민」사람 「사울」왕의 편에 서서 충성스럽게 싸웠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가 「유다」지파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일단 그들의 것이 된 다음에는 그들의 지파로부터 영원한 통치자가 오실 때까지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며 그런 후에는 그것이 항상 그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참았읍니다.

「실로」

10. 이 영원한 통치자께서는 왜 예언적으로 「실로」라고 불리우셨읍니까?

10 이 영원한 통치자께서는 왜 「실로」라고 불리우셨읍니까? 왜냐 하면 이름이 『그것을 가지신 분』혹은 『그것이 속한 분』을 의미하듯이 이 이름은 그의 권리를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단체역』은 그 귀절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그것이 속하는 분이 오실 때까지』 백성의 순종이 정당하게 속하는 다른 자가 확실히 없을 것입니다.

11. 약속된 「실로」의 정말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그의 권리는 어떻게 얻으셨으며 다짐을 받으셨읍니까?

11 이 약속된 「실로」이심을 증명하신 분의 이름은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이십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셨으며 「다윗」왕 계의 후예의 한 「유대」인으로 탄생되셨읍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로 말미암아 그는 「다윗」의 왕권에 대한 당연한 권리를 가졌었으며, 그의 양 아버지인 「요셉」으로 말미암아 그는 「다윗」의 홀과 치리자의 지팡 이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졌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예수를 성령으로 기름부으셨을 때 이것은 예수의 권리를 다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다윗」의 나라보다도 더 큰 즉 천국에 임명하였던 것입니다.

12.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가 언제 「유다」로부터 떠난것 같이 보였으며, 그러나 에스겔 21:26, 27은 무엇을 표시합니까?

12 「유다」지파는 「다윗」으로부터 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리고 거의 500년간 치리자의 지팡이는 그와 그의 후손들이 보좌에 앉음에 따라 그들의 무릎 사이에서 머물러 있었읍니다. 주전 607년에, 「다윗」가계는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를 잡는데 방해를 받았읍니다. 이것은 세계 열강인 「바벨론」이 나라를 뒤엎고 수도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여호와의 숭배를 위하여 「솔로몬」왕이 건축한 성전을 넘어뜨리고 「이스라엘」이 국가적 주권을 상실하였을 때 야기되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가 「유다」로부터 떠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읍니다. 이에 대한 권리는 아직 「다윗」의 왕가인 「유다」내에 그대로 있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에게 영감을 주시어 「예루살렘」에서 최후로 통치한「시드기아」에게 말씀하셨을 때 이것을 표시하셨읍니다.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찌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에스겔 21:26, 27.

13, 14. (ㄱ)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다윗」의 나라를 주시겠다고 말하였읍니까? (ㄴ) 침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께서는 나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으며, 다니엘 7:13,14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언제 그는 나라에 오셨읍니까?

13 천사 「가브리엘」이 탄생하게 될 예수에 관하여 「유대」인 처녀 「마리아」에게 발표하였을 때, 「가브리엘」은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라고 언명하였읍니다.(누가 1:31-33) 30세가 되셨을 때 예수께서는 물의 침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으며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유대」인 대적들에게까지 『하나님의 나라는 너회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누가 17:21, 신세) 한 순교자의 죽음으로부터 부활되신 후에 그는 하늘로 높임을 받으셨으며,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께서 그를 천적 왕으로 제관하시고 그에게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실 때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14 성경 시간표에 의하면 천지의 그의 대적이 원한 것과는 반대로 1914년에 그는 천국에 오셨으며 통치를 시작하셨읍니다. (히브리 10:12, 13; 시 110:1, 2) 다니엘 7:13, 14은 이러한 말로써 이 임하심을 예언하였읍니다.

『인자 같은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5. (ㄱ) 그러므로 누구에게 우리의 순종이 속하며, 오늘날 지상에 사는 누가 그분에게 순종을 바치고 있읍니까? (ㄴ) 순종을 바치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1914년에 그가 하늘에서 보좌에 앉히신 것을 볼때 그분이야 말로 우리의 순종이 속하는 통치자로서 우리가 인정하여야 할 분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144,000의 성원 중 만명이 약간 넘는 땅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충성스럽게 그들의 순종을 그에게 바치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전파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종말이 올 것이다.』라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마태 24:14, 신세) 천국의 기쁜 소식을 들은 수십만의 사람들은 이 「실로」 를 그들의 순종이 속하는 분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설립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데 순종하여 가담합니다. 그에게 지금 순종을 바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아마겟돈」 재난에서 이 악한 낡은 세상에 종말이 올 때 멸망될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이 「실로」께서는 모든 대적들을 그의 발밑에 둘 때까지 통치하셔야 합니다.—고린도 전 15:25.

16. 나귀에 관한 「야곱」의 예언은 예수의 지적 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실제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어떠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었읍니까?

16 죽어가는 족장 「야곱」이 예언하였듯이 나귀와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적 생활을 현저하게 예표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천국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기 수일 전에 예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읍니다. 그때 「유대」인들의 큰 무리가 그를 왕으로 찬양하였읍니다. 고대에 「이스라엘」의 유력자들과 사사들과 예언자들은 나귀를 탔었읍니다. (사사 5:10; 10:3, 4; 민수 22:22-33) 왕으로 선출된 「다윗」의 아들 「솔로몬」왕은 자기 아버지의 암 나귀를 타고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름부음을 받기 위하여 갔읍니다. (열왕 상 1:33-40)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스가랴 9:9의 예언을 말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으로써 성취하셨읍니다. 그러나 정치에 정신팔린 「유대」인 대 제사장은 그를 약속된 「실로」로 성전에서 기름 붓기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리고서 그는 예수의 죽음을 절규하였던 것입니다.

17. (ㄱ) 예수께서는 자기 나귀를 우량한 포도나무에 어떻게 매셨읍니까? (ㄴ) 그는 어떻게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울 포도즙에 빨』것입니까?

17 예수께서는 자기 나귀를 실제 포도나무에 매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자기의 왕으로서의 요구틀 상징적 포도나무인 영적 포도 나무 즉 하나님의 나라에 매셨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영적 포도 나무에 비기셨으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추종자들을 왕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 비기셨읍니다. 요한 15:1-8 그는 자기를 배척한 「유대」인들에게 포도원에 관한 비유 혹은 예를 들어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그 교훈을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그들에게 적용시키셨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태 21:33-43) 그러나 이 천국의 충성스러운 후사들은 마치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많은 포도즙을 내는 가장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는 천국의 열매로서 풍족한 이 상징적 포도나무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포도를 산출한 거짓 종교적 포도나무를 멸하실 것입니다. 그가 거짓 포도 나무와 그 풍부한 나쁜 열매를 밟을 때 이 거짓 포도나무의 포도의 피는 너무 많아서 사실상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리고 그의 옷에 묻은 흔적은 승리를 표시할 것입니다.—계시 14:19, 20; 이사야 63:1-6.

18. 그의 눈이 포도주로 검붉다는 것과 그의 이가 우유로 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8 희랍어 칠십인역과 나전어 「벌게이트」역과 「시리아」성경 번역들에 있는 표현에 의하면 「유다」의 눈은 반짝이는 포도주보다도 더 질은 붉은 색이 될 것이었고 그의 이는 우유보다 희게 될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이사야 55:1-4은 포도주와 우유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왕과 맺으신 왕국 언약에 연결시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예언은 『「유다」지파의 사자』와 함께 통치할 이 왕국 언약으로 들어오게 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풍부와 즐거움에 적용된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주로 눈이 검붉다는 예언은 술취한다는 것을 조금도 의미하지 않으며 이가 우유보다 더 희다는 예언은 비장성이 나 유치함을 의미하지 않읍니다. 포도주가 기쁨을 표시하며 우유가 풍족과 풍만을 의미하는 이상, 『「유다」지파의 사자』의 나라도 경건한 즐거움과 영적 번영의 나라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순종적인 자들에게 옵니다.

「스불론」

19. (ㄱ) 「야곱」의 아들들의 탄생 중에서 「스불론」은 어디에 들어오게 되었읍니까? (ㄴ)「스불론」에 관한 「야곱」의 예언은 그의 이름의 뜻과 어떻게 일치하였읍니까?

19 「야곱」의 두 아내와 두 첩이 낳은 그의 모든 아들들의 순서 중에서 「잇사갈」은 그의 아홉째 아들이며「스불론」은 그의 열째 아들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지파들 즉 천국 반열 중에서 「스불론」지파는 열번째로 등급이 매겨지게 되었읍니다. (계시 7:8) 족장 「야곱」이 마지막 예언을 하였을 때, 비록 「잇사갈」이 그의 첫째 아내인 「레아」로 인한 「야곱」의 다섯째 아들이었고 마찬가지로 「스불론」 은 「레아」로 인한 여섯째 아들이 었으나 그는 「스불론」을 「잇사갈」 보다 앞서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신 세계의 정부 아래서 있을 토지 분할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 중에서, 「잇사갈」은 적합하게 자기 동생 「스불론」보다 앞에 놓였읍니다. 만찬가지로 상징적 성읍인 여호와 「삼마」 (『여호와 자신이 그곳에 계시다』라는 의미)의 문들에 있었서도 그러합니다. (에스겔 48:25, 26, 33) 「스불론」이라는 이름은 『거주, 거함』을 의미합니다. 임종의 예언 중「야곱」은 약속의 땅에서의 「스불론」의 위치를 예언하여 말하였읍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창세 49:13.

20. 「야곱」의 예언은 「이스라엘」 땅의 「스불론」의 위치에 있어서 어떻게 실현되었읍니까?

20 여기에서 「야곱」은 「스불론」 지파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말합니다. 6년에 걸친 전쟁 후에 땅이 부분적으로 정복되었을 때 사사 「여호수아」는 「스불론」을 위한 세째번 제비를 뽑았으나 「스불론」에게 맡겨진 성읍들과 마을들은 직접 바다를 경계로 하지 않았었읍니다. 그의 구역은 동으로는 「갈리리」 바다와 서로는 지중해 사이에 놓여 있었읍니다. 그는 이들 바닷가에 쉽게 접근 하였읍니다. (여호수아 19:10-16) 「포네키아」 사람의 「시돈」 항구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었고 「스불론」의 한적한 쪽은 「시돈」쪽으로 있었기 때문에 「스불론」 구역의 위치는 북쪽에 있는 구역이었읍니다. 그의 구역은 바다로부터 다른 지파들의 구역들로 말미암아 끊기어져 있기는 하였지만 「스불론」의 땅은 『해변 길』로 알려진 국제적 공로로 말미암아 양단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그 지역은 『이방의 「갈리리」라고 불리우는 지방에 위치하였었읍니다.—이사야 9:1; 열왕 상 9:11; 여호수아 20:7.

21. 이사야 9:1, 2에 의하면 「스불론」 땅에 무엇이 임하게 되어 있었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실제로 임하였읍니까?

21 예언자 「이사야」가 왕자로서의 통치를 어깨에 멜 약속된 「실로」의 탄생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었을 때, 그는 죽음과도 같은 짙은 그늘을 흩으기 위하여 큰 빛이 올 구역으로서 「스불론」을 확정적으로 말하였읍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출하여 낼 이 빛은 약속된 「실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의 「갈리리」에서 다음과 같이 전파하셨을 때 임하였읍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이사야 9:1, 2, 6, 7; 마태 4:12-23) 예수께서는 「스불론」 북쪽까지 가셨으며,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읍니다. 그곳에서 그는 「포네키아」 여인을 위하여 한 기적을 행하셨읍니다. (마태 15:21-29) 그리하여 「스불론」은 「이스라엘」땅의 매우 좋은 위치에 거하였읍니다.

22, 23. 성경사상 「스불론」은 어떠한 좋은 말씀을 (ㄱ) 「바락」 시대에 (ㄴ) 「기드온」 시대에 (ㄷ)「다윗」왕 시대에 받았읍니까?

22 성경 사상 「스불론」은 여러번 좋은 말씀을 받았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사 「바락」과 여 예언자 「드보라」 시대에 억압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므깃도」 물가』에서 싸우셨을 때, 「스불론」 사람들은 해방군에 자진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바락」과 「드보라」는 그들에 관하여 감사의 노래를 불러 말하였읍니다.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서기관의 기구(군대를 계수하며 녹명하기 위함)](신세)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사사 5:14, 18, 19; 4:16) 여러 해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사 「기드온」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셨읍니다. 「기드온」은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기드온」이 지휘하여 「미디안」의 침략자들을 패주케 한 300명의 선출된 군인들 중에는 「스불론」지파로부터 온 사람들이 얼마간 있었을 것입니다.—사사 6:34, 35; 7:1-7.

23 모든 지파들이 「다윗」에게 전 「이스라엘」의 왕권을 넘겨 줄 때가 되었을 때 「스불론」지파는 그에게 상당한 수의 군대를 제공하였읍니다. 그들에 관하여 역대 상 12:33은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한 자들이 「다윗」에게로 모였다고 하였읍니다.

24. 「스불론」사람들은 무엇이 될 가망성이 있게 되었읍니까? 그리고 어떻게?

24 예수께서 우리의 제 일세기에, 「스불론」에 속하였던 구역에서 전파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왔으며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의 성원이 될 가망성이 있게 되었읍니다.

「잇사갈」

25. 「잇사갈」이 갖게 될 땅의 임명을 「야곱」이 미리 지적한 것은 왜 적절하였읍니까?

25 「이스라엘」땅에 있어서 「잇사갈」의 구역은 부분적으로 「스불론」의 동부 경계와 접하였으며 더 뻗어 「요단」강에 이르렀읍니다. 구역은 「에스드럴론」이라고 불리우는 비옥한 평야에 놓여 있었으며 국제적 공로 「비아 마리스」 즉 『바다의 길』은 「스불론」에 이르기 전에 그 구역을 통과하였읍니다. 사사 「여호수아」시대에 구역을 위하여 제비를 뽑았을 때, 첫째로 「잇사갈」이 뽑혔으며 그의 구역 내에는 열 성읍이 임명되었읍니다 .(여호수아 19:17-23) 죽어가는 족장 「야곱」이 창세기 49: 14, 15에서 말하였을 때 토지에 관한 이 훌륭한 임명을 예언적으로 미리 지적하였읍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26. 그러므로 「잇사갈」은 무엇에 관하여 불평하지 않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를 무엇에 비겼읍니까?

26 이름 「잇사갈」은 『그는 값이다』 혹은 『그는 값을 가져온다』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 「레아」가 어떻게 「야곱」에게로 그를 잉태하는 특권을 갖게 되었는 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 30:14-18) 그는 「야곱」의 아홉째 아들이었읍니다. 그리고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를 이름하는 데 있어서 「잇사갈」은 아홉째로 등급이 매겨졌읍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은 그를 강력하고 열심히 일하는 짐지는 짐승 즉 자기 짐에 고착하며 양쪽의 자기짐을 내리지 않고 쉴 수 있는 짐승으로 비겼읍니다. 두 구럭은 「이스라엘」 사상 「잇사갈」이 나른 평화와 전쟁의 짐을 예표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일하기를 자진 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이스라엘」에 있어서의 자기 위치가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약속의 땅의 구역 임명에 관하여 불평을 가지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의 쉬는 곳이 좋으며 자기 땅이 즐겁다는 것을 인식하였읍니다.

27. (ㄱ) 「잇사갈」의 이름은 무엇을 암시합니까? (ㄴ) 사사「바락」은 어떻게 「잇사갈」사람들과 같이 되었읍니까?

27 「잇사갈」의 이름은 그가 일하여 값을 받는 다는 것을 암시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어떠한 가격을 받고도 책임의 짐을 지고자 자기 어깨를 스스로 낮추었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눈에 보이는 통치자로서 사사를 가지고 있었을 동안에, 「잇사갈」 지파는 「돌라」라고 이름한 사사를 내놓았읍니다. 그는 23년 간을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봉사 하였읍니다. (사사 10:1, 2)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 사사 「바락」과 여 예언자 「드보라」는 「잇사갈」 사람들을 위한 찬양의 말을 하였읍니다. 그들은 승리의 노래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사사 5:13, 15) 여호와의 백성의 해방을 위한 병역 응소가 있었을 때, 방백들은 「잇사갈」지파를 지휘하였던 것입니다. 「잇사갈」의 모든 남자들은 용기와 열의에 있어서 좋은 본을 세웠으므로 사자 「바락」도 전쟁에서 그들과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28. (ㄱ) 「잇사갈」은 전쟁에 어떠한 군대를 내보냈읍니까? (ㄴ) 「잇사갈」 사람들은 시기를 분별하는데 있어서 예리하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28 그들의 용감성은 「다윗」 당시에 다시 한번 표시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상에서 말한 사사 「돌라」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 아비 「돌라」의 집 족장이라 대대로 용사더니 「다윗」 때에 이르러는 그 수효가 이만 이천 육백명이었더라 . . . 능히 출전할 만한 군대 . . . 그 형제 「잇사갈」의 모든 종족은 다 큰 용사라 그 보계대로 계수하면 팔만 칠천인이었더라.』 (역대 상 7:1-5) 「잇사갈」 사람들은 어떤 때에 하나님께서 수행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표시하시는 것을 주의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손에 「이스라엘」를 다스릴 왕권이 놓이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다윗」에게 호위대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합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명이니 저희는 그 모든 형제를 관할 하는 자며.』—역대 상 12:23, 32.

29. 「잇사갈」이 꾸부리어 어깨에 진다는 것은 어떠한 표현이며, 그는 어떠한 면으로 자진성을 표시하였읍니까?

29 그리하여 「잇사갈」이 짐을지기 위하여 자기 어깨를 구부렸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다윗」과 같은 지휘자들에게 대한 한가지 충성의 표현이었읍니다. 이와 평행하는 것은 국가 조직의 모든 성원들이 일반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일에 스스로 복종하는 「잇사갈」의 자진성인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 가는 족장 「야곱」이 예언한 것과 똑같았읍니다.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30. 그렇다면 그가 노예적인 강제적 노동에 복종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30 이것은 「잇사갈」의 어떤 포로로 잡혀가서 외국의 정치 조직의 노예가 되는 것을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에 있어서 모두가 특별한 봉사를 드려야 할 경우나, 예정한 확정적인 기간 즉 비상 시국을 직면하거나, 무한정 연기하거나 질질 끌지 못할 특별한 계획을 돌보기 위한 기간 내에 수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특별한 일을 위하여 일군들을 징발하여야 할 경우를 언급한 것입니다. 노동은 징발되어야 하였읍니다. 그것은 혼히 노예적인 강제적 일이었읍니다. 그는 그 필요성을 인식하곤 하였읍니다. 그는 정당한 것 이상으로 그에게 요구되거나 혹은 강제를 당하드라도 반역적으로 되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의 할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옴추리지 않는 것이 일수였읍니다. 그는 자기의 마땅한 공헌을 하곤 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때의 필요성을 이해하였고 자기의 모든 형제들의 선을 위한 이러한 일들을 돌보는데 기뻐 참예하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31, 32 (ㄱ)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왜 「잇사갈」은 노예가 되었읍니까? (ㄴ) 어디에 「잇사갈」과 같은 백성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며, 그들에 관하여 무엇이 예언되어 있읍니까?

31 「잇사갈」은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노예가 되었다는 것과 때가 되면 그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을 알았읍니다. 「잇사갈」은 그의 형제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하나님의 조직은 그를 억압하고 있지 않았읍니다. 단지 특별한 환경 때문에 「잇사갈」과 모두에게 특별한 노동이 강요된 것입니다.

32 그리하여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 중에 「잇사갈」 같은 백성인 『「잇사갈」 지파』를 갖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읍니다. (계시 7:7) 「잇사갈」의 장막에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 예언되었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거처에 왜 기쁨이 가득찰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읍니다.—신명 33:18.

「단」

33 (ㄱ) 「단」에 관한 예언 중에서 「야곱」은 어떻게 그의 이름을 가지고 놀았읍니까? (ㄴ) 「이스라엘」에 있어서의 그의 위치에 관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읍니까?

33 족장 「야곱」이 자기 다섯째 아들에 관하여 예언하였을 때, 그는 그의 이름을 가지고 놀았읍니다. 『단』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히브리」말로 「단 야딘」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은 심판한다』 혹은 『재판장은 재판한다』을 의미합니다. 「단」은 「야곱」의 사랑한 아내 「라헬」의 여종인 그의 첩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첫째 아들이었읍니다. 제비로써 「팔레스타인」에 일곱번째로 뽑혔읍니다. 「단」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작은 토지분배를 받았읍니다. 그 서쪽 경계는 지중해였으나 그 다른 면들은 다른 세지파들과 접경되었읍니다. (여호수아 19:40-49) 후에 「단」지파의 성원들은 경계선을 저 북쪽으로 옮겨 「요단」강의 발원지인 「헤르몬」산 기슭에 만들었읍니다. 그리하여 「에스겔」의 예언적 환상 중에서 「단」의 구역이 최북단 정상의 제 일 구역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흥미있는 일입니다.(에스겔 48:1, 2) 「이스라엘」에 있어서의 「단」의 역할에 관하여 족장 「야곱」은 창세기 49:16-18에서 예언하였읍니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34.「단」지파는 그의 백성을 심판 하는데 어떠한 경험을 가졌읍니까?

34 마침내 거짓 신 「다곤」의 신전을 뽑아 무너뜨리고 3,000 명 그 이상이나 되는 대적 「불레셋」 사람들을 급살시킨 지상 최강의 역사였던 「삼손」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겠읍니까? 이 「삼손」은 「단」지파로부터 나왔읍니다. 20년간 그는 「이스라엘」의 백성을 심판하였읍니다. 그가 적의 수중에 떨어진 「이스라엘」의 단 하나의 사사이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는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읍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특별히 일으키신 「이스라엘」의 최후의 사사였읍니다. 그후로 「이스라엘」에서 저명한 사람은 예언자 「사무엘」이었읍니다.—사사 13장–16장; 사도 3:24.

35. 「야곱」의 「단」을 뿔 뱀으로 비긴 것은 「단」을 낮춘 것입니까? 어떤 면으로 예언적인 형상은 사실이었읍니까?

35 「야곱」은 「단」을 뿔돋친 뱀으로 비겼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풀숲에 있어 발꿈치로 밟히기에 꼭 알맞는 독사와 같다고 하여 「단」을 낮추는 것은 아니었읍니다. 도리어 뱀과 같은 능력으로 「단」은 하나의 위대한 국가적 목적을 섬길 것입니다. 군마보다는 비록 다소 작다고 하지만 그는 말탄 전사를 떨어뜨릴 수 있었읍니다. 누어 기다리다가 그는 말 발꿈치를 물어 말이 펄쩍 뛰어 기수를 뒤로 내동댕이 치게 만들 수 있었읍니다. 기수를 낙마하게 함으로써 「단」은 기수에게 큰 몰락을 가져오게 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비록 작기는 하였으나 「단」은 방해자에 대한 뿔 뱀 같이 위험한 것이 될 것입니다. 십이 지파가 「가나안」의 약속된 땅을 행하여 행진 하였을 때, 사물들의 뒤꿈치와도 같이 「단」지파는 후진을 맡았읍니다. 그러므로 이 지파는 뒤꿈치 즉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이 군대는 모든 진(이스라엘)의 후진』이 되었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읍니다.—민수 10:25.

36. 「야곱」이 표시하듯이 「단」의 심판의 모든 유익을 가지고도 완전한 구원은 누구로부터 오지 않으면 안되었었읍니까?

36 「단」은 자기 백성들을 눈에 뜨일 정도의 유익을 가지고 심판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완전한 구출은 「단」으로 말미암아 오게 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모든 대적들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으면 안되었었읍니다. 그 점을 되풀이 해서 말하기 위하여 「야곱」은 그의 주의를 「단」으로부터 하나님께 돌리어 말하였읍니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사사 「삼손」의 부모에게 말한바에 의하면 그가 이교도 「불레셋」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하는데 있어서 인도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사사 13:5) 그러나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과 모든 다른 백성들은 더 큰 「단」, 더 큰 사사 즉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어야 하였읍니다.—사도 10:38-42.

37. 우리는 「단」에 관하여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로무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으며, 무엇이 대신 그 자리를 취하였을 것임에 를림이 없읍니까?

37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영수이십니다. 계시록 7:4-8에 이름한 바와 같이 그 지파들 중에 「단」지파는 포함되어 있지 않읍니다. 대신 우리는 「므낫세」지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원래의 「므낫세」는 「단」의 한 조카였으며 「요셉」의 아들로 「애굽」에서 탄생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야곱」의 손자였읍니다. 그러나 「야곱」은 「므낫세」가 「야곱」의 직계 아들과도 같이 「이스라엘」 땅에서 따로 구역을 갖게 될 것을 말하였읍니다. (창세 48:13-20)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 중에 「요셉」지파는 녹명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지파가 「단」 지파의 자리를 취하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38, 39. (ㄱ) 이와 같이 대치된 것은 왜 「단」지파에 거슬리는 일의 반사 작용이 아닙니까? (ㄴ) 영적 「이스라엘」로부터 「단」의 이름이 삭제된 것은 왜 그가 뱀으로 비교되었기 때문이 아니며, 우리가 「단」의 무엇에 주의하는 것은 당연 지사입니까?

38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단」 지파를 거슬리는 어떠한 일의 반사 작용으로 해석하여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마련과 조화할 뿐입니다.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권리를 상실하였으며 장자의 특권은 「요셉」의 것이 되었읍니다. (역대 상 5:1, 2) 「요셉」은 장자로서 「이스라엘」에 두 몫을 가질 자격을 받았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 「야곱」은 그에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던 것입니다. (창세 48:21, 22.) 이와 일치하여 「요셉」은 심지어 영적 「이스라엘」에서 까지 장자의 권리인 두 몫을 갖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읍니다.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도 더 뛰어나게 되었기 때문에 「요셉」은 그의 더 뛰어난 아들 「에브라임」을 잘 대표 즉 나타냈읍니다. 여기에서 큰 아들인 장자 「므낫세」는 영적 「이스라엘」의 두번째 몫을 나타냈읍니다. 「단」은 영적 「이스라엘」에 있어서 표시되어야 할 그 사실을 위하여 길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39 그리하여 「단」 지파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이스라엘」 지파들의 수는 육적 「이스라엘」 지파들의 원래 수 즉 십이와 일치하였읍니다. 「단」은 「야곱」이 그를 뿔 뱀으로 비겼기 때문에 제하여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단」에 대하여 비난할 비교가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단」을 사자에 잘 비길 수가 없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유다」를 사자에 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단」을 적에게 다른 위험한 대적이되는 것 즉 큰 군마와 담대하게 싸울 수 있는 뱀에 비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 「모세」가 「이스라엘」 지파들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별의 축복을 하였을 때 그는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신명 33:22) 그리하여 「단」은 「이스라엘」의 역할하여야 할 고귀하고 담대한 부분을 가졌다는 것이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 받아야 할 「단」의 가치 있는 성품과 역사적 행위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지사 입니다.

「갓」

40. (ㄱ) 「야곱」의 일곱째 아들을 「갓」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마지막 말에서 「야곱」은 「갓」에 관한 무엇을 말한 것 같읍니까?

40 「야곱」외 일곱째 아들을 「갓」이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나 그는 「야곱」의 첩 「실바」가 낳은 첫째 아들이었읍니다. 그의 이름은 『행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읍니다. 「레아」의 여종 「실바」가 자기 남편 「야곱」에 대하여 자기 식구편으로 이바지할 이 아들을 낳았을 때 「레아」는 그렇게 보았읍니다. 그것은 「레아」가 자기 남편의 사랑을 열망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창세 30:9-11) 죽어가는 「야곱」이 「갓」에 관하여 그의 마지막 말을 하였을 때, 그는 「갓」지파가 「이스라엘」 땅에서 찾이하게 될 노출된 위치에 관하여 말한 것 같읍니다. 그것은 「요단」강의 동쪽 기슭에 연하였고 그러므로 동쪽은 친밀하지 않은 「암몬」 사람들의 침입에 노출되어 있었읍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목축하는 자신들이 부탁한 「갓」 지파의 구역이었읍니다. (민수 32:1-5; 34:13-15) 「야곱」은 아주 적절하게 예언하였읍니다.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창세 49:19.

41, 42. 그들의 소유를 찾이 하게 되었을 때 「갓」 지파는 그들이 비겁한 지파가 아님을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41 「갓」은 자기 경계의 한 면이 약탈 군대에게 열여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의 지파가 아니라는 것을 표시할 것이었읍니다. 이 지파는 「가나안」 땅을 위한 싸움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동쪽 고원 지대에서 사는 것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들은 동료 지파들의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소유하도록 돕고자 그들의 무사의 목표 인원을 「요단」강 건너로 보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하지 않음으로 죄가 뒤따르는 일이 없었읍니다. (민수 32:6-36; 여호수아 4:12, 13; 13:24-28; 22:1-9) 끝까지 그들은 좋은 전투 태세를 유지하였으며 그들의 형제들과 협동하여 잘 싸웠읍니다.

42 「야곱」의 「갓」에게 한 석별의 말은 그에게 약탈하는 자들과 그의 경계를 침범하는 자들에게 확신있게 반격할 것을 명령한 것이었읍니다. 사사 「입다」 당시에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은 침략적인 「암몬」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그의 지휘 하에서 싸웠읍니다. 「암몬」이 그들의 땅의 소유권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들은 변방의 대적을 패배시킨 사사 「입다」로부터 유익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사실상 습격자들을 습격하여 패주케 하였으며 그들의 극한 후방까지 추격 하였읍니다. (사사 11:1-33) 반역하여 싸움을 선동하고 자기 형제들에게 대항하여 싸운 자들의 도망하는 남은 자들을 집행하는 시험 때가 임하였을 때, 「갓」 지파의 무사들은 「십볼렛」이라는 암호를 올바로 발음할 수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집행의 칼에 쓸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사사 12:1-6.

43. 「갓」은 『에스겔」의 토지 분할과 「요한」의 영적 「이스라엘」의 환상 중에서 어떠한 곳을 발견하였읍니까?

43 토지 분할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갓」 구역은 재차 남쪽이 트인 구역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지파들에 대한 임명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갓」은 순서로 열두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삼마」 성읍의 문의 순서에 있어서 「갓」의 문은 열번째였읍니다. (에스겔 48:27, 28, 34) 또한 「갓」지파는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의 명단 중에서 세째로 언급되어 존귀를 받았읍니다. 왜냐 하면 「갓」에게는 선한 성품이 있었고 또한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성품이었기 때문이었읍니다.—계시 7:5.

「아셀」

44. 「야곱」의 여덟째 아들을 「아셀」이라고 이름한 이유는 무엇이며, 「야곱」은 「아셀」을 위하여 어떠한 마지막 말을 하였읍니까?

44 「야곱」의 여덟째 아들의 탄생은 특히 그의 어머니인 「실바」와 여주인인 「레아」에게 행복을 가져왔읍니다. 「아셀」보다 더 좋은 이름이 무엇이겠읍니까? 그 이름은 『행복한, 행복함』을 의미합니다. (창세 30:12, 13) 임종에서 「야곱」은 이 아들을 위하여 행복한 말을 하였읍니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창세 49:20.

45. 「아셀」의 떡이 「모세」도 표시하였듯이 기름진 것임이 어떻게 증명되었읍니까?

45 예언자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그 땅에 있어서의 『「아셀」의 몫의 기름진데 관한 이 예언에 더하였읍니다.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 찌로다.』 (신명 33:24) 그의 인구가 얼마나 커지든지 간에 「아셀」의 몫은 비옥 즉 풍부할 것이었읍니다. 「이스라엘」 땅에 있어서 「아셀」 구역은 지중해 해안에 연하여 서쪽으로는 「포네키아」의 항구 「두로」까지에 놓여 있었읍니다. 「아셀」의 동쪽 경계는 「스불론」과 「납달리」 구역과 접경하였읍니다. 그 땅은 양식을 풍족하게 생산하였읍니다.—여호수아 19:24-31.

46. (ㄱ) 「아셀」은 어떻게 『왕의 진수』를 마련할 수 있었읍니까? (ㄴ) 「아셀」 은 「바락」과 「드보라」시대에 무엇에 빠져 재물이 되었읍니까?

46 「아셀」은 그 위치 때문에 수출업을 즐길 수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왕을 위하여 진수들을 마련할 수 있었읍니다. 이 때문에 물질 주의의 악독에 빠져 자기 중심이 되며 그것으로 안위를 누리고 자기 형제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게 하는 악독에 제물이 될 위험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물질 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힘은 사사 「바락」과 여 예언자 「드보라」 시대에 저절로 나타났읍니다. 지파들의 의용군을 불렀을 때 「아셀」은 응답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므깃도」 물가』의 전쟁에서 여호와의 승리에 참여할 큰 특권을 상실하였던 것입니다. 「바락」과 「드보라」가 그들의 승리의 노래를 노래하여 『「아셀」은 해변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라고 말하였을 때, 창피하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사사 5:17) 「아셀」은 물질주의적 추구에 있어서가 아니고 여호와의 직접적인 봉사에 있어서 게을렀던 것입니다.

47. (ㄱ) 우리는 누구에게 『왕의 진수』를 바칠 것이며, 어떻게 바칠 것입니까? (ㄴ) 그와 관련하여, 「아셀」의 이름의 의미와 일치하여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까?

47 사람이 하나님께로서 받는 『음식』 즉 덕에 기름진 것을 감사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에 『왕의 진수』를 되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는 현재 『「유다」지파의 사자』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통치하십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경우에 있어서 순서의 네째로 「아셀」 지파를 명단에 올린 것은 영적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기름진 몫을 가지게 될 것과 매우 열매가 많을 것을 예약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왕 예수 그리스도께 언제나 보통있는 것들이 아닌 영적 『진수』를 가져올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에서 묘사하신 지복 즉 『행복』을 경험할 것입니다.—마태 5:1-12.

「납달리」

48. (ㄱ) 「야곱」의 여섯째 아들을 왜 「납달리」라고 이름하였읍니까? (ㄴ) 「야곱」은 「납달리」를 무엇에다 비겼읍니까?

48 「말일」에 가서 자기 아들들에게 일어날 일에 관하여 말할 때 예언자 「야곱」은 열번째로 「납달리」에게 자기 주의를 돌렸읍니다. 그러나 「납달리」는 사실상 「야곱」의 여섯째 아들이었읍니다. 그는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여종이자 아버지의 첩인 「빌하」의 소생이었읍니다. 그 때까지 「라헬」은 아기를 낳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자기 여종이 이 둘째 아들 「납달리」를 낳았을 때 이것은 남편 「야곱」에게 얼마간 결혼의 열매를 드리고자 애쓰는 「라헬」로 말한다면 상당한 성취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표현하여 「라헬」은 이 소년의 이름을 「납달리」라고 불렀읍니다. 그것은 『나의 씨름함』을 의미합니다. (창세 30:7, 8) 「납달리」의 경우에 있어서 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형상을 말하였읍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창세 49:21.

49. (ㄱ) 「납달리」는 어떻게 「암사슴」과 같았읍니까? (ㄴ) 그들은 이 「바락」 시대에 무엇보다도 첫째로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49 「야곱」은 그를 빠를 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있어 우아한 동물에 비하였읍니다. 「납달리」 지파가 배출한 투사들에 관하여 말한다면, 전쟁에서 가질만한 질적으로 양호한 투사들이었읍니다. 그들은 전쟁에 있어서 기술적이고 적을 추격하는데 재빨랐읍니다. 사사 「바락」은 이 지파로부터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 예언자 「드보라」는 그를 적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봉사를 수행하여야 할 북방 「납달리 게데스」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불렀읍니다. 「납달리」 지파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이 전쟁에서 바로 「바락」과 함께하였읍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생명에 관한 것을 무엇보다 첫째로 두지는 않았읍니다. 사사 「바락」과 「드보라」의 승리의 노래는 이 칭찬할 만한 성질를 인정합니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사사 5:18-20) 이 전쟁에서 「납달리」 지파 사람들은 의심할 바 없이 암사슴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50, 51. (ㄱ) 1900년전 『「납달리」 땅』에 『아름다운 소리』가 어떻게 주어졌읍니까? (ㄴ) 어떤 지파 사람들을 영적 「이스라엘」에 갖는 것이 합당합니까?

50 「납달리」는 놓인 사슴과 같이 가는데 뿐만 아니라 『소리를 발하는』데 있어서도 아름다웠읍니다. 하나님의 봉사에 있어서 『아름다운 소리』는 매우 바랄 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납달리」 구역에서 19세기 전에 특별히 아름다웠던 말씀이 나왔읍니다. 「납달리」 구역의 부분은 「긴네롯」 즉 후일 「갈리리」 바다라고 불리우게 된 바다의 서해안에 연하여 있었읍니다. 이곳에서 이사야 9장 일절과 이절의 예언은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읍니다. 사도 「마태」는 이의 성취를 말합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리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빚이 비취었도다」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태 4:13-17.

51 『아름 다운 소리를 발』하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을 때의 그를 아무도 당할수 없었읍니다. 그는 그 구역의 원주민과 같이 되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비록 「나사렛」에 옴기셨으나 「납달리」 구역의 「가버나」움을 『본 동네』로 삼으셨기 때문이었읍니다. (마태 9:1) 그를 체포 하라고 파송된 친구들이 아니라 관리들은 예수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요한 7:46) 그의 아름다운 말씀은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싫어하심의 구름과 그의 죽음의 선고의 흑암으로부터 나오는 길을 표시하는데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발하였읍니까! 그렇다면 영적 「이스라엘」 지파가 다섯번째로 불리움을 받은 「납달리」 지파를 포함하는 것은 매우 적합한 일입니다. (계시 7:6) 이것은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납달리」 사람들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전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천국의 소식으로 빛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들로 생각나게 합니다.

「요셉」

52. (ㄱ) 「요셉」은 「야곱」의 아들로서 몇번째로 평가되었읍니까? (ㄴ) 「요셉」은 어떠한 생애의 기록을 가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마지막 말은 무엇에 유의하였읍니까?

52 족장 「야곱」의 열한째 아들은 「야곱」의 노년에 얻은 아들이며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던 「요셉」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열한번째가 올 때까지 「요셉」에 관하여 예언하기를 기다렸읍니다. 그리하여 감정에 흐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의 이름은 『증가시키는 자, 더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야곱」의 총애하는 아내 「라헬」의 첫 아들이었읍니다. (창세 30:22-24) 「요셉」의 생애의 기록은 훌륭합니다. 그가 이제 「애굽」의 국무총리었었고 기근이 엄습한 그곳의 식량 행정관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 뿐 아니라 그의 열한 형제들도 그에게 은혜를 입었읍니다. 「요셉」에 관한 예언 중에서 죽어가는 「야곱」은 어떻게 「요셉」이 곤란을 극복하였는 가에 유의 하였읍니다.

『「요셉」은 무성한 [나무] (신세)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강력한] (신세)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창세 49:22-26.

53. (ㄱ) 이 『샘 곁의 무성한 [나무]』는 누구였읍니까? (ㄴ) 「요셉」은 어떻게 담을 넘어 뻗은 나무 가지 중의 하나가 되었읍니까?

53 열두 아들들과 한 딸의 아버지인 「야곱」은 「요셉」이 가지가 되는 상직적 『무성한 나무』입니다. 샘 곁에서 잘 빨아올린 이 『나무』는 둘려있는 담을 넘어 가지를 뻗었읍니다. 「요셉」은 「유다」와 같이 뛰어나게 굵은 가지 중 하나가 되었읍니다. 「유다」는 「이스라엘」 나라의 왕권을 받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복 맡형 「르우벤」의 심각한 도덕적인 실패 때문에 「야곱」으로부터 장자의 권리를 받았읍니다. 자기 아버지의 유업 중에서 두 부분을 상속하기 위하여 「요셉」은 자기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서 특권을 받았읍니다. 족장 「야곱」은 그 둘을 「야곱」의 직접적인 아들들과 동일한 「이스라엘」의 두 지파가 되도록 임명하였읍니다. 그들의 구역은 「요단」강의 서쪽에 서로 나란히 놓여 있었읍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구역은 「요단」강 동쪽으로 건너가 「길르앗」까지 널려있었읍니다.—여호수아 16:1-17:11.

54. 「이스라엘」중에서 뛰어남에 관하여 「에스겔」의 (ㄱ) 토지 분할 환상 중에서 (ㄴ) 여호와 「삼마」 성읍의 환상 중에서 (ㄷ) 「이스라엘」의 재연합의 환상 중에서 그리고 (ㄹ) 「스가랴」의 예언 중에서 어떻게 표시되었읍니까?

54 토지 분할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 중에서 「요셉」의 이름은 없읍니다. 그러나 그는 네째와 다섯째의 배당을 차지한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아들로써 대표되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 「삼마」 성읍에 있는 문은 그 아들들을 따라서가 아니라 「요셉」을 따라 이름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백성의 재연합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 중에서는 「요셉」을 나라의 한 부분의 머리로서 말하고 다른 부분의 머리로서 「유다」를 말합니다. (에스겔 46:4-6, 32; 37:15-26) 그리고 우리 시대를 내다보신 「스가랴」의 예언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찌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라. (스가랴 10:6) 그리하여 「이스라엘」 나라 중에서 「요셉」은 높은 가지와도 같이 항상 뛰어났었읍니다.

55. (ㄱ) 『활쏘는 자』들은 어떻게 「요셉」에게 쏘았읍니까? (ㄴ) 「요셉」의 팔의 힘은 어떻게 유순하게 되어 『자기 활』을 당기게 되었읍니까?

55 젊은 사람으로서 「요셉」은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그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그를 쓴 사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읍니다. 이것은 특히 그의 이복 형제들의 경우에 그러하였읍니다. 그들이 비록 그에게 대적하여 적의를 품었었으나 「요셉」은 그들에게 같은 것으로 갚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자비와 인애로 되갚았으며, 이것들을 마치 그들의 적의를 죽인 화살과도 같았읍니다. 그의 힘센 팔은 강력하여 활을 잡고 그러한 자비와 인애와 용서 같은 화살을 쏘았읍니다. 그러한 화살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구원으로 이끌었읍니다. 그리하여 적의 활쏘는 자들은 「요셉」을 죽이는데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의와 형제의 친절에 헌신한 그를 약화시킬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즉 그는 선으로 악을 극복 하였읍니다.—로마 12:21.

56. (ㄱ) 목자가 어떻게 「야곱」의 『강력한 자』의 손으로부터 오셨읍니까? (ㄴ) 어떻게 『「이스라엘」의 반석』도 그곳에서 오셨읍니까?

5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 『강력한 자』이셨읍니다. 그의 강력한 손은 「요셉」에게 힘주었읍니다. 그 손으로부터 백성들의 목자가 오십니다. 「요셉」은 「이스라엘」백성의 목자 혹은 감독자가 되었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 놓으시는 훌륭한 목자가 되십니다. (요한 10:11-16) 가장 강력하신 여호와께로부터 또한 『「이스라엘」의 반석』이 오셨읍니다. 기근 중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에 복수하지 않고, 돌보는 자와 먹이는 자와 보호자로서 행동 하였을 때 「요셉」은 바로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또한 「야곱」의 강력한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이스라엘」의 상징적 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십니다. 그는 모든 생명을 구하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숭배하여야 할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 놓여있는 모퉁이 돌이십니다. (에베소 2:20-22; 베드로 전 2:4-6) 그러므로 목자와 「이스라엘」의 반석은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께로서 오는 한 선물입니다. 이 목자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편에 계시며 그와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목자에게 안전히 맡낄 수 있읍니다.

57. (ㄱ) 「요셉」은 「이스라엘」 땅에서 무엇으로 축복을 받았읍니까? (ㄴ) 「요셉」의 머리 위에 임할 이들 축복은 어떻게 뛰어난 축복이었으며 어떻게 계속적인 것이었읍니까?

57 족장 「야곱」은 「요셉」에게 「이스라엘」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축복하시어 음료와 농사를 위하여 필요한 물을 하늘과 지하에서 공급하실 것을 보장하셨읍니다. 전능자께서는 그들의 아내들의 태에 많은 열매가 있게 하며 많은 아기들이 젖먹게 하여 큰 인구로써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었읍니다.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이 즐긴 것과 같은 축복과 「야곱」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 선언한 축복은 「요셉」으로부터 파생한 지파에게는 빛을 더 해주는 장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은 영원한 산과 무한히 영속적인 언덕을 곱게 단장하는 삼림과 샘의 축복보다 월등한 장식이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산들과 언덕들이 계속 하는 한 「요셉」과 그로부터 나오는 머리 위에 계속 임하는 축복이 될 것이었읍니다.

58, 59. (ㄱ) 「요셉」은 자기 형제들보다 어떻게 뛰어났었으며, 무엇이 될만한 가치가 있었읍니까? (ㄴ) 영적 「이스라엘」 중에서 그는 어떻게 은총을 받았읍니까?

58 「요셉」의 행동에 의하면 그는 그러한 축복을 받을만 하였읍니다. 이것은 그에 대한 편애의 경우가 아니었읍니다. 그는 『형제 중 뛰어난 자』였읍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그의 노년에 얻은 아들이어서 특히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훌륭한 예언적 역할을 하도록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이었읍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지 않았으나, 바로 그들이 얼마간, 그를 쫓아버렸읍니다. 접근하지 못하도록 행동함으로써가 아니라 정신의 우월함과 지배하며 감독하며 조직하는 능력을 표시함으로써 「요셉」은 자기 형제들보다 특색을 나타내었읍니다. 특별한 축복이 그의 머리의 관에 임한다는 것은 참으로 올바른 일이었읍니다.

59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 중 한 지파는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보다도 확실히 「요셉」에 대한 적절한 존경으로부터 그의 이름을 따라 불리웠읍니다.—계시 7:8.

「베냐민」

60. 「베냐민」은 사랑의 문제와 「이스라엘」의 위치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요셉」과 함께 하였었읍니까?

60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은 족장 「야곱」의 열두째 아들 즉 마지막 아들이었읍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또한 「베냐민」의 어머니었읍니다. 이것은 「요셉」으로 자기동생 「베냐민」에 대하여 강한 육신의 사랑을 자아냈읍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은 그에게 『나의 오른손의 아들』을 의미하는 이 이름을 주었읍니다. (창세 35:16-18)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의 배열에 있어서, 이들 친 형제들인 「요셉」과 「베냐민」은 일반적으로 옆에 나란히 붙여 놓았읍니다. (신명 33:12, 13; 에스겔 48:32; 계시 7:8 참조) 약속의 땅에서 「베냐민」의 구역은 그의 조카 즉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것과 접경되었읍니다. 그리고 바로 「에브라임」구역 다음에는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의 구역이 있었읍니다.

61. (ㄱ) 「이스라엘」나라의 분열시에 「베냐민」은 어느쪽을 편들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에스겔」의 토지에 관한 환상과 실제 「이스라엘」 땅에서의 「베냐민」의 위치는 어떠하였읍니까?

61 그러나 「솔로몬」 왕이 사망한 후 「이스라엘」 나라의 큰 분열이 있게 되었을 때 「베냐민」 지파는 반역한 「에브라임」과 「므낫세」 보다도 「유다」 지파에 충성스럽게 고착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유다」로부터 『「유다」 지파의 사자』인 약속된 「실로」가 오시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 49:9, 10) 그러므로 하나님의 천국 아래 있을 토지 분할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베냐민」 지파가 성전과 여호와 「삼마」 성읍이 있는 거툭히 구별한 땅 바로 남쪽 경계를 접경으로 하여 위치한다는 것은 「베냐민」의 충성스러운 행동과 정말 일치 조화한 것이었읍니다. 그곳에서 「유다」 지파는 정 반대쪽인 거룩히 구별한 땅의 북쪽 경계를 접경하여 있었읍니다. (에스겔 48:8, 22, 23) 「팔레스타인」의 약속의 땅에서도 흡사하게 궁전과 성전이 있는 수도 「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놓여 있었읍니다.—사사 1:21; 사무엘 상 17:54; 사무엘 하 5:4-9.

62. 「베냐민」에 관한 「야곱」의 예언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2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이름은 총애받은 아들을 표시하였을 것입니다. 후일 「야곱」의 임종 예언에서 「베냐민」은 바로 많은 사랑받은 아들이었읍니다. 그 때까지 「베냐민」에 불리한 기록은 하나도 없읍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우리의 예산보다도 낮추어 「베냐민」에게 불리한 어떤 예언하였을 것을 기대할 필요가 없었읍니다. 「야곱」은 일렀읍니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응킨 것을 나누리로다.』—창세 49:27.

63, 64 (ㄱ) 「베냐민」은 어떻게 그리고 누구 사이에 이리로 비유되었읍니까? (ㄴ)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에 「베냐민」은 어떻게 그러한 이리와 같았읍니까?

63 「야곱」은 「유다」를 사자에 비겼고 「단」을 뱀에 혹은 뿔 뱀에 비겼읍니다. 이제 그는 자기의 사랑한 아들 「베냐민」을 이리에 비하였든 것입니다. 이것은 「베냐민」 혹은 그의 지파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 백성 중에서 이리와 같게 될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베냐민」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숭배와 정부를 위하여 투사가 될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적을 향하여 저녁의 이리들과 같이 맹렬할 것이었으며 이리와 같이 갈기갈기 찢을 것이었읍니다. (하박국 1:8) 「베냐민」 사람들의 싸우는 재간 중에는 오른 손이나 왼손으로 어김이없이 돌을 물매로 던질 수 있는 재간이 있었읍니다. (사사 20:14-16; 역대 상 12:1, 2) 왼손 잡이 사사 「예훗」은 「베냐민」 사람이었읍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왼손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비대한 억압자를 죽였읍니다.—사사 3:15-21.

64 『「므깃도」 물가』에서의 해방 전쟁을 한 후 사사 「바락」과 여 예언자 「드보라」는 전쟁에서 그들을 도울 자들의 원천에 관한 이러한 말을 포함하여 그들의 승리의 노래를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이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려고 [내려왔]도다. 「에브라임」 [「베냐민」의 조카]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자요 그 다음에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사사 5:13, 14.

65. 「베냐민」은 어떻게 아침과 저녁의 그러한 이리와 같았었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65 먹이를 사냥하는 이리와 같이 「베냐민」은 성공적인 사냥군이 되었읍니다. 잡은 동물을 아침에 먹는 이리와도 같이 「베냐민」지파는 「이스라엘」 나라의 아침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초대 왕을 낳았읍니다. 이 왕은 「기스」의 아들 「사울」이었으며, 「불레셋」에 적대하는 맹렬한 투사였읍니다. (사무엘 상 9:15-17) 더 나아가서 사냥한 먹이를 저녁에 찢는 이리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의 저녁에 「베냐민」 지파는 「파사」 제국의 「아하스에로」왕 당시에 왕후 「에스더」와 국무 총리 「모르드게」를 마련하였읍니다. 이 두「베냐민」사람은 그 제국 전역에 걸치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멸망시키고자 한 대적 「아말렉」 사람의 최후의 멸망으로부터 구출하는데 사용되었읍니다.—에스더 2:5-7.

66. 「베냐민」은 누가 『「유다」 지파의 사자』롤 위한 뛰어난 투사가 되었으며, 「베냐민」지파는 어디에 합당한 자리를 가지고 있읍니까?

66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많은 「베냐민」사람들은 그의 추종자들이 되었읍니다. 이들 중에 「다소」의 「사울」이 있었으며, 그는 사도 「바울」이 되었읍니다. (로마 11:1; 빌립보 3:5) 한 때 그리스도교에 대적하는 맹렬한 투사였던 그는 기독교의 가장 유능한 투사 중의 하나가 되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뒤흔들었읍니다. (에베소 6:11-17) 마치 이리와 같이 「베냐민」사람 「바울」은 기독교의 대적들의 거짓 교리와 인간 전릉올 갈기갈기 찢었던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영적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합당한 자리를 가지고 있읍니다. (계시 7:8) 「베냐민」은 여러 면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본입니다.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

67. (ㄱ)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야곱」이 어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읍니까? (ㄴ) 자기 아들에게 이상한 말을 한 후에 드디어 「야곱」은 무엇을 하셨읍니까?

67 이와 같이 얼마간 보잘것 없는 역사적 참조로서 시작된 「야곱」의 예언은 여호와의 백성들의 영광스러운 승리틀 예언한 모양으로 끝을 맺었읍니다. 「야곱」이 사망한지 삼천 여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그가 참된 예언자였으며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이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는 「야곱」보다 더 큰 어떤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설립된 영적 「이스라엘」중에서 가장 온전한 실현을 본 진리 즉 예언적 진리를 말하며 그의 생애를 끝맺었읍니다. 자기 아들들에 관하여 예언한 후 그는 석별의 축복을 하여 주었읍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 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그리고 그는 약속의 땅에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자기를 묻으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였읍니다.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창세 49:28-33)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의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읍니다.

68. (ㄱ) 그들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는 모형적인 면에 있어서 무엇이 되었읍니까? (ㄴ) 그들은 『「유다」지파의 사자』의 동료 통치자들로서 어떻게 예표 하였읍니까?

68 「야곱」이 남기고 간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는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의 예언적인 모형이 되었읍니다. 이들은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그들의 천적인 지휘자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 아래 144,000명의 성원으로 형성되었읍니다. 오래전 십 계명을 주신 산에서 하나님은 지적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 대한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읍니다. (출애굽 19:1-6) 그러나 이제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그들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을 만 하다는 것을 증명하였읍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사도적인 기초 중의 하나였던 사도 「요한」은 영적인 십이지파의 144,000의 성원이 어린 양과 함께 천척 정부의 자리 즉 「시온」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다」지파의 사자』의 동료 통치자들로서 표상됩니다. 144,000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계시 14:1-4.

69. 그 사자의 동료 통치차들 중 땅 위의 남은 자들은 「야곱」의 예언을 지켜 무엇을 행하고 있읍니까?

69 오늘날은 단지 144,000의 남은 자들만이 아직도 땅 위에 살고 있으며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읍니다. 그들은 『「유다」 지파의 사자』의 천년 왕국이 심히 가깝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께서 마태 24:14에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온 땅의 거민들에게 전파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순종이 속하는 예언된 「실로」로서 그를 지적하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천국의 권리가 그에게 속하며 그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열방은 좋건 싫건 간에 그는 지상에 사는 모든 백성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70. 땅의 백성들은 어떻게 현명하여야 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0 그렇다면 여러분 백성들이시어, 현명하시라.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온전한 순종을 정당히 속하는 분께 들이시라. 여러분이 이렇게 한다는 것은 『「유다」 지파의 사자』와 그의 동료 통치자의 천년 통치로 말미암아 이 땅이 낙원으로 바뀌어질 때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과 평화와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366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지도

지중해

아셀

납달리

스불론

므낫세

잇사갈

므낫세

갓

에브라임

요단강

단

베냐민

예루살렘 염해

르우벤

시므온

유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