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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63 4/1 131-140면
  • 권세들에게 대한 양심과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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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세들에게 대한 양심과 복종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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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4/1 131-140면

권세들에게 대한 양심과 복종

1. 권세들에 대한 복종으로우터 최대의 이익이 오는 것은 언제이며, 그러므로 누가 최대의 이익을 받읍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통치하도록 허락하신 『존재하는 권세들』에게 대한 복종으로부터 오는 최대의 이익은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복종함으로 오게 되는 법입니다. 두려움이라는 동기는 사람이 악을 행한다거나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반대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모든 민족과 나라에서 복종하는데 있어서의 가장 좋은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국에 속하여 있지는 않으나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헌신하였으므로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련에 대적하지 않읍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주민으로서 그들은 질서를 잘 지킵니다. 그것은 단순히 위에 있는 권세들을 통하여 당할 수 있는 노를 피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계몽된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따라 생활하기 위한 것입니다.

2. 로마서 13:5은 복종에 대한 어떠한 이유를 말하며, 그 이유 때문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피합니까?

2 로마서 13:5에서 사도 「바울」은 이 최선의 동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켰읍니다.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악행에 대한 노는 이 땅에 있는 『권세』에 의하여 즉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권세가 올바른 방향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사자이므로 그것은 또한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노가 되기도 합니다. 이 땅 위의 『위에 있는 권세들』을 멸시하거나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련에 반대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노를 사는 것이 됩니다. 아무도 형벌을 즐기는 사람은 없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을 위하여 그것을 피함으로써 다만 밖으로부터의 재난뿐만 아니라 또한 내적인 양심의 가책의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3.권세들에게 대한 그리스도인의 복종이 양심없이 행하는 것이아니라는 것을 무엇이 표시하며, 그리하여 그들은 어떠한 고통을 받지 않게 됩니까?

3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법을 준수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하는 주요한 동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의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경우에 있어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양심없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한 애국주의가 아닙니다. 그들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하여 교훈을 받았으므로 그들로 무엇에 있어서나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게 하지는 않읍니다. 말하자면 불완진한 권세들의 생각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정면 충돌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이 때문에 아마 권세들에 의하여 부당한 형벌을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 양심 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이유인가를 그래서 알게 됩니다. 왜냐 하면 양심은 그들이 부당한 고통을 받는 한이 있다 하드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계몽된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개인적인 편의를 위하여 그러한 고통을 받는 일을 피하였을 것입니다. 가령 그들이 양심 때문에 위에 있는 권세들로부터 외부의 고통을 받고 있다 하드라도 내부의 고통은 전혀 받게 되지 않읍니다. 즉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괴롭히지 않읍니다.

4, 5. (ㄱ) 어찌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더 좋은 시민이 될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까? (ㄴ) 이에 관하여 사도 「베드로」는 무엇을 표시하며, 그리하이 어떠한 이중적인 힘이 그리스도인들로 선한 일을 하게 합니까?

4 그리스도인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의를 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일을 하므로 양심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원치 않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않은 악행을 대항하는 억제력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가담하지 않지만 더 나은 시민이 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그가 이낡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는 것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그는 정치에 가담하는 일이나 이 새상 정부를 위하여 입후보하는 일이나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속하고자 하지 않읍니다. (요한 17:14-16) 사도 「베드로」는 그의 첫째 편지에서 복종에 관하여 말하면서 여러번 양심에 주의를 환기시켰읍니다. 그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악을 행하거나 그에게 관계되지 않는 일에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제지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2:19; 3:16, 21) 그러므로, 이중적인 힘 즉 그리스도인 양심과 노의 두려움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며 국가의 선한 법률과 하나님께서 최초로 창조하신 인간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아직까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양심으로 인하여 의를 표시하는 법률에 일치해서 생활하게 합니다.

6. 이상의 모든 것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과의 복종에 관하여 무엇을 증명합니까?

6 이것은 모두 무엇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까?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하였을 때 그는 결코 그들이 양심을 버리라거나 억압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가 말한 뜻은 그들이 권세들의 법률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반대되는 점이 있을 때 그것을 무시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양심을 걱정할 필요는 없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그의 사업을 할 때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조금도 괴롭히지 않읍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은 우리를 인증해 주고 우리로 하여금 평화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조직밖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문제가 일어날 때에야 양심 문제가 간섭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거나 그의 율법을 깨뜨리는 일이 없도록 양심적인 경계를 하게 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마땅한 것을 바침

7. 로마서 13:6이 세금을 바치는 문제를 말하는 사실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관하여 무엇을 표시합니까?

7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공복들]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로마 13:6, 신세) 그러므로 우리가 세금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양심적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인 회중 밖에 있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 관하여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세금 문제를 끌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읍니까? 왜냐 하면 회중의 감독자들이나 그들의 봉사의 보조자들은 회중의 성원들이 감독자들과 그들의 보조자들을 경제적으로 돕도록 하기 위하여 세금을 바치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뿐아니라 전 세계 회중의 통치체에 서도 세금을 부과하는 일이 없을 뿐더러 「펜실바니아」 주법에 의한 「왙취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읍니다. 회중의 성원들이 헌금을 하는 것은 자원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만일 지불하지 못한다면 『위에 있는 권세들』에 의하여 형벌을 받게 되는 그러한 세금이 아닙니다.

8. 로마서 13:6에 괄호로 묶은 것이 있으며, 그것이 세금에 관하여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신 세계역 성경뿐만 아니라 고금의 기타 성경 번역도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는 말을 마치 덧붙인 사상으로서 삽입한 사상인양 팔호로 묵지 않았읍니다. 실상 이러한 말은 왜 세금을 바쳐야 하는가를 나타내기 위하여 바로 다음 문장으로 이끌려 갑니다. 우리가 세금을 바치는 것은 선을 행하도록 하며 선행자들을 칭찬하고 악행자들을 징벌하는 권세로 웃입은 『공복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9. 마태 22:21과 일치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세금을 내는 것은 어떻게 적합하며, 그 점에 관하여 무엇이 그들의 책임은 아닙니까?

9 여호와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세금을 속이는 일이나 피하는 일이 없읍니다. 그들은 양심적으로 세금을 바칩니다. 마태 22:21에서, 「유대」인의 「바리새」인들이 양심적으로 이교도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공복들 즉 사자들이 베푼 선을 위하여 세금을 바치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세금은 우리의 민중의 사자들 즉 우리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하지 않는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 『공복들』이 그 모든 공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그리스도인의 납세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복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이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이 정치적 정부에 간섭하는 것을 인증하시지 않는 것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인증하시지 않으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이 세상 정부를 운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이 세금을 바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10, 11. (ㄱ) 각자는 언제 『하나님의 공복들』로서 행하며, 언제 하지않게 됩니까? (ㄴ) 권세를 남용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공복들』은 그래도 봉사합니까?

10 그리하여 이러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러 가지 면으로 유익한 정부를 비정치적 그리스도인들이 운영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켜줍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정부 관리들은 상대적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공복들]』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한 목적을 위하여 봉사합니다. 왜냐 하면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첫째로 구하며 그것을 전적으로 전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복들』이 섬기는 대신 압제하는 경우가 있읍니다. 그들이 자화자찬하는 독재자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박해할 때, 그들은 그러한 면에서 하나님의 공복들로서는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11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아직도 그들이 대중을 위하여 섬기는 다른 봉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해를 받는 증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봉사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러한 봉사로서 우체국이라든가, 소방서, 수도국이며 학교와 운수 그리고 도로 공사 따위가 있읍니다. 그렇지 않다면 박해를 받는 증인들은 독재주의 하에서나 독재정부 하에서는 전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독재자들은 살아남지 못하지만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살아남아 있읍니다.

12.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박해자들은 그의 헌신한 백성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봉사하며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까?

12 하나님께서는 얼마 동안 그러한 독재자들과 독재적 압제자들로 그에게 헌신한 백성들의 성실함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활동하게 두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이 세상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그들의 평화스러운 복종의 시험이기도 합니다. 박해를 당하는 증인들이 충성스럽게 견디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증인들의 복종심을 알게 하고 마침내 그들의 결백함을 인식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박해를 선동한 거짓 고발자들은 악의적 거짓말장이로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13. 『위에 있는 권세들』에 관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이 정치에 가담하지 않으므로 어떠한 사실이 뒤따릅니까?

13 여호와의 증인들은 정치에 가담하거나 정치적 지위를 위하여 운동하는 일이 없으므로 그들은 인간 정부의 운영에 대하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맡겨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을 위하여, 그리고 발전적인 그리스도인의 전도 봉사를 진행시키기 위하여 그러한 위에 있는 권세들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14, 15. (ㄱ)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 전도를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이용하며, 이것은 이사야 31:1-3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까? (ㄴ)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가이사」에게 아무것도 갚을 의무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러한 권세들에 의해서 마련되어 있는 경찰의 보호를 받거나 그들의 도서관이나, 그들의 교통기관이나, 그들의 선박 시설이나, 그들의 우체국이나 그들의 학교로부터 이익을 얻읍니다. 우리는 외국에 있는 지부나 선교 사업에 관련된 도움이나 보호를 위하여 영사관이나 대사관을 이용합니다. 우리는 외무부에 가서 우리의 소유물이나 우리의 대표자들이 비난을 받고 있는 외국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의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는 결혼 문제라든가 이혼 문제 기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는 재판소나 기타 관청으로부터 이익을 받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말과 병거를 위하여 즉 군사 목적울 위하여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과는 다릅니다.—이사야 31:1-3.

15 만일 이 세상의 인간 권세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8』 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이사」에게 바쳐야 할 의무를 가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금을 바치는 문제에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 「가이사」가 하나님이 아니라, 혜택을 입고 있는 바에 따라 「가이사」에게 바칠 것을 제한하심으로써 「가이사」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있었음을 확실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 12:17)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재하게 하시는 한, 「가이사」와 그의 총독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도록 권한을 받지 못한 『이 일에 항상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바쳐야할 것을 바침

16. 로마서 13:7에서 『모든 자에게』 갚을 것을 갚으라고 말할 때 그것은 누구를 의미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베풀어진 공중 봉사에 관하여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읍니다. 『모든 자에게 (그들에게 마땅히 진것들)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로마 13:7) 「바울」이 『모든 자에게』라고 말할 때 그는 명백히 『하나님의 공복들』을 의미하였읍니다. 이들은 공세와 국세와 두려움과 존경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바쳐야 할 것에 관하여 그들을 속일 아무런 권리도 없읍니다. 그들에게 속하여 있는 것을 바치지 않는 것은 부정직한 행위이며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도적들은 하나님의 나라나 그 나라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읍니다.

17. 그리스도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는 요구조건은 왜 부당한 것이 아니며, 만일 로마서 13:1-7을 순종하였다면, 어떠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까?

17 공복이 세금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자기 일을 계속하고 그의 봉사를 하기 위하여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그가 지나친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가 불공평한 것입니다. 그러나 초과액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는 그들의 책임입니다. 심지어 『식민지 세』라 할지라도 세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1775-1783년 미국 혁명 때에 야기되었먼 문제중의 하나였읍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그 당시 미국에 있던 13개 영국 식민지는 기독교라고 주장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은 영국 교회의 머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군주 「죠지」 3세였읍니다. 만일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였고 로마 13장의 교훈을 따라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여 세금과 기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면 미국 혁명은 없었을 것입니다.

18. 시기가 도래할 때, 어떤 가능성이 13개의 식민지에 열렸겠으며, 그것은 어떠한 종교적인 팔요성을 없게 하였을 것입니까?

18 그리하였다면, 물론 오늘날의 북미 합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식민지들은 「캐나다」 자치령이 획득한 바와 같이 영연방에 연방정부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피를 흘리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많은 식민지 개척자들이 영국 교회의 머리로서 인증하는 「죠지」 3세를 반대하여 식민지로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1789년 미국에 독립 감독교회 즉 신 감독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죠지」의 정치적 권세를 반대하여 일어날 필요가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19. 같은 점을 기초로 하였다면, 현대의 「러시아」는 사실 어떠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국은 경건의 능력이 없음을 어떻게 입증하였읍니까?

19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사르 니콜라스」 2세를 「러시아」 정교회의 머리로 인증하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하여 로마서 13장에 있는 사도의 교훈에 순종하였다면 1917년에 있었던 바와 같은 「러시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 의한 공산주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국에 있는 사제들과 목사들은 로마서 13에 있는 『더 높은 세력들』 (듀웨이, 흠정)이란 이 세상의 정치적 권세들이라고 항상 가르쳐왔읍니다. 그렇지만 기독교국은 여러 나라에서 많은 피를 흘리는 여러 폭력적 혁명에 가담하였읍니다. 이러한 면에서 이들 기독교국은 다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임을 입증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3:5)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은 이러한 모든 일에 대하여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읍니다.

공세와 두려움과 존경

20. (ㄱ) 「바울」은 바쳐야 할 「공세」로서 무엇을 의미합니까? (ㄴ) 국가가 종교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면세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20 「바울」이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라 말한 것은 다만 입으로 공세(貢歳)를 바친다든가 찬사를 바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물질적이며 재정적인 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공세라는 것은 물품이나 상품에 대한 정당한 관세 즉 세금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마태 17:24-27) 이와 같은 공세 즉 이상과 갑은 세금이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는 없으나 이 세상의 『위에 있는 권세들』과 관련하여 있읍니다. 어떠한 나라에서는 그러한 권세들이 회중 즉 교회 재산에 대하여 세금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종교 교파 조직에 대하여 면세를 합니다. 모든 자원을 종교 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이러한 마련을 이용하는 것은 회중의 특권인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 세상 단체들은 교회에 대한 면세는 교회와 국가의 연합의 한 형태라고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그리스도인 회중이 상업적 물품이 아닌 종교적 재산에 대하여 세금을 물지 않는다 하드라도 그것은 사도 「바울」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되지 않읍니다. 그러나 회중의 성원들은 개인적으로 그들의 재산이나 물품에 대하여 개인적인 세금 혹은 공세를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21, 22. (ㄱ) 로마서 13:7은 공복들에 대한 『두려움』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ㄴ) 이것은 어떠한 두려움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까지 두려워합니까?

21 로마서 13:7은 이제 물질적 즉 재정적인 것으로부터 심리적인 것으로 돌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였읍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공복들을 두려워하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왜냐 하면 3절에서 『관원들은 . . . 두려움[의 대상이] . . .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하였으며, 4절은 만일 누구든지 잘못이나 악을 행하는 경우에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22 그러므로, 그러한 관원 즉 공복들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악을 행하였을 때 그들에게서 오게 되는 노 즉 보응에 대한 두려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법을 준수하는 신민 즉 시민이 되므로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만일 상전에게 두려움을 나타내야 하고 남편에게, 판사에게, 경찰에게, 그리고 검찰관들에게 두려움을 표시해야 한다면, 정치적 통치자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이겠읍니까? (베드로 전 2:18; 3:1, 2; 3:15; 에베소 5:33) 이것은 하나님의 천국을 전파하는 일을 중단케 하는 비겁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권세들이 가지고 있는 사법권에 대한 정당한 경의 즉 건전한 존경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공적 권력이 미치는 혹은 뻐치는 한도까지 그들을 두려워 합니다. 그들의 권력의 범위 밖에서까지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읍니다. 그들이 세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한도는 바로 멸망의 운명에 처해있는 이 사물의 제도에 있어서 이 생명의 한계 뿐입니다.

23. 공복들에 대한 그러한 두려움이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되지 않읍니다. (시 86: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시 동안 있게 하신 『위에 있는 권세들』을 두려워하는 것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점에 있어서 그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실상, 우리가 그들에게 상대적인 복종을 할 때, 마치 하나님께 하듯합니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련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의 신 세계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그는 현재의 위에 있는 권세들이 그곳에 존재하게 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기를 원치 않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우리의 영혼을 멸망시키고 우리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시지 않으심으로써 우리로 신 세계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태 10:28.

24. 관리들을 왜 존경하여야 하며, 「바울」은 어떻게 본을 세웠읍니까?

24 두려움 외에 또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읍니다. 로마서 13:7은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한 것입니다. 관리들에게 바치는 존경은 그들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적인 의미에서 그들이 대표하고 있는 점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왕은 한 나라 혹은 한 제국을 대표하고 있고, 지사는 한 주 혹은 한 도를 대표하고 있고, 시장은 한 시를 대표하고 있읍니다. 이러한 존경을 마땅히 바칠 곳에서 바쳐야 할 이 의무 때문에 우리가 이들 정치적 관리들을 직위에 따라 부르는 것이 허용됩니다. 이것은 젊은 「엘리후」가 욥기 32:21, 22에서 말한 것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과 「베스도」 총독 앞과 왕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 섰을 때 그는 그들의 칭호를 부르거나 그들에 의한 훌륭한 통치를 인증함으로써 그들에게 올바른 존경을 표시하였던 것이다.—사도 24:10; 26:1-3, 24-29.

25. 우리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바치는 것은 어떠한 존경이며, 존경은 두려움과 비교하여 어떠한 무게로서 나타납니까?

25 우리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바치는 존경은 단순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다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공포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이겠읍니까? 그러나 두려움은 존경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더 큰 무게를 가지고 있읍니다. 두려움과 존경의 관계가 베드로 전 2:17에서 명령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는 데에서 발견됩니다.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를 약한 그릇으로서, 여성으로서 존경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의 남편을 그의 머리로서 그리고 주인으로서 두려워하라는 사도의 명을 받고 있읍니다. (베드로 전 3:1, 5, 6; 에베소 5:33)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에베소 6:1-3) 그리스도인 회중은 구제를 받을만한 과부를 구제함으로써 그들을 존경하게 되어 있읍니다. (디모데 전 5:3)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회중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마땅히 존경을 받을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6. 기독교국의 종교 고위충에 칭호를 붙여 존경을 표시하는데 관하여는 무엇이라고 말하여야 될 것입니까?

26 그러나 기독교국이나 「유대」교의 종교적 귀인에게 아첨하는 명칭으로 부름으로써 그들을 존경하는데 관하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태 23:8-10) 우리는 종교적 고위층들에게 비기독교적 존경을 바치지 않읍니다.

사랑의 영원한 빚

27. 빚을 갚지 않는 일은 왜 피하여야 할 것입니까?

27 우리가 빚을 갚지 않는 일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정직을 의미하는 것이요 우리로 재난을 당하게 합니다. 이 세상의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로마 13:8은 이렇게 말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28. 이것은 우리가 공복들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것에 어느정도 적용됩니까?

28 그러므로, 우리는 통치자들이나 공복들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왜냐 하면 정부의 봉사에 대하여 우리는 마땅히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여러 나라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이 세상 정부를 지원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제한된 범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바치기 위하여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즉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는 것들을 빼낼 수 없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헌신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명령이나 요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으로 제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9. (ㄱ) 우리가 온전히 갖지 못하는 빚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어떠한 중대한 것을 빚지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마음 상태를 가르치거나 발전시키도록 강요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까?

29 우리는 이 세상 통치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의무를 속히 이행함으로써 빚을 지고 있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선한 그리스도인 양심을 보존하게 합니다. 우리가 결코 다 갚지 못하였다고 느껴야 할 유일한 빚은 사랑의 빚입니다.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우리의 생명에 대한 빚을 지고 있지 않읍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더욱이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하나님께 우리의 생명을 바치고 물의 침례로써 이것을 표상하였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이 세상 권세들에게 바칠 수 없읍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생명의 빚을진 일이 없읍니다. 세금을 바치고 공세를 바치며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하지만, 우리의 생명을 바칠 수는 없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것으로 그에게 바쳤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 권세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바친다면, 살아있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으니, 어떻게 계속되는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겠읍니까? 사람이 죽을 때 사랑도 증오도 없어지고 맙니다. (전도 9:4-6) 사랑만은 살아 있는 사람이 완전히 갚아 버릴 수 없는 빚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다른 사람들 즉 우리 이웃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권세들이 우리로 다른 사람들을 해할 태도를 갖게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도록 가르친다거나 강요하는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30.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은 누구의 율법을 성취시키는 것이며, 얼마나 오랫동안 성취시킬 것입니까?

30 이러한 세상의 『위에 있는 권세들』의 법률은 「아마겟돈」에서 그들의 멸망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며 우리에게 영원히 적용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 하면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즉 『위에 있는 권세들』의 법률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큰 두가지 계명 중에서 두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마태 22:35-39.

31. 이러한 사랑의 문제에 관한 토론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복종에 관하여 어떠한 사실을 표시합니까?

31 이것은 이 세상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복종이 다만 상대적인 것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과 더욱이 동시에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도록 하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러한 권세들에게 모든 일에 복종한다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사랑스러운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 양심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32. 여기 로마서 13:9에서 의미한 율법의 원천은 어떻게 표시되어 있으며, 이 사실은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복종을 어떻게 제한합니까?

32 여기에서 말한 율법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도 「바울」의 다음 말을 보아 알 수 있읍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로마 13:9) 그러므로 만일 『위에 있는 권세들』이 우리에게 살인을 명령한다거나 남의 재산을 부당하게 탐내므로 그들과 함께 침략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명령하므로 도적질을 하게 한다거나, 강제로 빼앗게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정도까지 그들에게 복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행위는 우리에게 대한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직접적으로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시에는 『위에 있는 권세들』이 시민에게, 보통 평화시에 그러한 일을 행하였다면, 권세들로부터 형벌을 받게 될 일을 하라고 명렁할 것입니다.

33. 이웃에 대한 사랑은 무엇을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권세들로부터의 무엇을 우리에게 가져오지 않게 할 것입니까?

33 우리가 만일 우리의 이웃 혹은 동료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부도덕적인 행위를 한다거나 정치적 통치자들이나, 관원이나, 더 높은 세력들이나, 위에 있는 권세들의 진노의 보응을 당하게 될 다른 율법을 범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며, 이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칼』을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34.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여기에 인용함으로써, 「바울」은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복종에 관하여 무엇을 지적합니까?

34 사도 「바울」이 위에서 이용한 법령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주신 것이었읍니다. (출애굽 20:13-15, 17; 레위 19:18; 마태 22:39, 40) 「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복종에 관하여 토론하는 가운데서 그것으로부터 인용함으로써 그러한 복종의 뜻을 제한하며 그것이 무제한 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였읍니다. 그는 그 복종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확정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35.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율법에 예시되어 있듯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하는 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며, 권세들에 대한 북종에 어며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까?

35 그리스도인들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 아래 있지 않고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 아래 있읍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 13:34) 만일 사랑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을 요약한 것이고 그 율법이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웃이나 동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다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은 결코 그리스도인들로 악을 행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게 하는 운동에 복종하게 하여 그의 제자들이 이 증오 운동에 맹렬히 가담하게 할 어떠한 권리나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았읍니다.

36. 이웃에 대한 사랑이 권세들에 대한 복종에 영향을 끼친다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에 관하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36 로마 13:10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부언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한계를 정해주는 힘으로서 안전하게 작용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 권세들에게 어느정도 복종할 수 있는가의 제한을 합니다. 만일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웃을 해롭게 하는 이 세상 권세들에게 우리가 순응할 수 없게 된다면, 더 높은 사랑인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37. 『위에 있는 권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관하여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러한 사랑은 그들과의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안전한 요인이 될 것입니까?

37 『위에 있는 권세들』은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웃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단념하도록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읍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권세들이 우리로 무신론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단념케 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우리로 하여금 우주에서 가장 큰 계명을 깨뜨리게 할 권리를 받은 일이 없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태 22:37, 38, 신세) 그리고 이웃 사랑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도 그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에게 사랑의 빚을지고 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그에게 사랑의 빚을지고 있게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사랑은 하나의 안전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불의하고 어긋난 『위에 있는 권세들』로 말미 암아 압제 아래 있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께만 속하여 있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는 경우에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결코 우리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동안의 복종?

38. 명령받은 일을 수행하여야 할 긴급성이 오늘날 왜 더욱 크며, 또한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왕국으로 말미암아 오게 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38 우리가 로마서 13장에서 명령한 것을 행하여야 할 긴급성은 사도 「바울」 시대보다 오늘날이 더욱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다음 귀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왜 그러한 것들을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의 이유를 더욱 마음에 간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로마 13:11) 다만 『칼』을 차고 있는 『권세』의 노의 보응을 피하기 위하여서라든가 다만 우리의 그리스도인 양심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시기적인 요소가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도록 격려하여줍니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인 우리를 위한 구원은 「바울」 시대보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믿게 되었을 때보다 오늘날 더욱 가까왔읍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왕국에 의하여 오게 됩니다. 하나님 께서는 1914년에 그의 왕자 예수 그리스도를 즉위시키므로 이 왕국을 하늘에 설립하셨읍니다. 그 왕국만이 장차 올 신 세계에서 다스릴 권세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왕국에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고린도 전 15:24, 25.

39. (ㄱ) 하나님의 왕국에 진 어떤 빚이 디모데 전 2:1, 2에서 말한 것들보다 큽니까? (ㄴ) 어떠한 문제에 우리는 깨게 되었으며, 어떠한 걸정을 하였읍니까?

39 하나님의 묵인으로 현존하는 『위에 있는 권세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지 않고 방해자들과 박해자들로부터 보호해줌으로, 그들은 우리로 온전히 경건한 헌신의 조용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읍니다. (디모데 전 2:1, 2)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베풀어 줄 수는 없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하여 지고 있는 빚이 그들에게 지고 있는 빚보다 더 큽니다. 따라서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 전파를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기까지 한다 하드라도 우리는 마태 24:14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전파하는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 예언의 성취로 그 이유를 알고 있읍니다. 그 성경 예언에 의하면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들』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에 다다랐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마태 24:3-33)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읍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최고 문제 즉 「사단」의 통치 대 하나님의 왕국에 의한 우주 주권에 대하여 잠자고 있지 않읍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의 왕국을 유리하게 결정하였읍니다.

40. (ㄱ) 어떠한 날이 임박하였으며, 지금 어떠한 밤이 깊어가고 있읍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는 권세들과 관련하여 어떠한 어두운 일들에 종사하지 않읍니까?

40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로마 13:12) 1914년 이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왔으며 마귀의 통치의 밤은 그의 보이는 사물의 제도와 함께 깊어가고 있읍니다. 명백한 상식은 지금이야말로 이전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어두움의 일』에 빠져 있올 시간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그러한 일들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칼』을 가지고 있는 『위에 있는 권세들』의 진노의 보응을 피하기 위하여 암흑의 포장 속에 숨어서 하고자 하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 아래서도 비밀 정치 음모라든가 자위를 위한 싸움에 종사하는 정부를 방해하는 것이라든가 반란이나 폭동을 기도하는데 가담할 수 없읍니다. 제 1차와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여러 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와 같은 음모의 이름으로 고발을 당하였읍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고발 사건들은 모두 후에 법적 절차에 따라 거짓이라는 것이 단명되었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정치에도 간섭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41. 「바울」은 우리가 지금 종사하고 있는 싸움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41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싸움이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읍니다. 그것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영적)정사와 (영적) 권세와 이 어두움의 (영적)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 6:11, 12.

42.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동안 가지고 있도록 권한을 받은 어떠한 무기를 표시하며, 이러한 무기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무엇에 대항하여 싸웁니까?

42 그러므로 우리는 공산주의 동부 독일에 있는 독일 신교와 같은 진퇴 양난의 함정에 빠지지 않읍니다. (영문, 「깨어라!」1960년 8월 8일호 12-15면 함조) 우리는 암흑과 마귀의 술책에 대항해서 싸우기 위하여 영적 『빛의 갑옷』을 입었읍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동안 가지고 있을 수 있도록 권한을 받은 무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외에 어떠한 다른 무기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허락을 받지 않았읍니다. 이러한 무기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일이 있다거나 아무도 해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로마 6:13; 고린도 후 6:7; 10:4) 이러한 무기는 부도덕과 살인과 도적질 같은 암흑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 사람들이 자기들을 축복하게 될 하나님의 왕국 편에서도록 계몽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읍니다.

43, 44. (ㄱ) 우리는 어떻게 행동 하여야 할 것이며, 그리하여 누구와 싸우게 되는 것을 피합니까? (ㄴ) 그러한 행동으로 우리가 누구를 기쁘게 하며, 무엇을 위태롭게 하지 않게 됩니까?

43 이러한 『빛의 갑옷』의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로서 명백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올 도모하지 말라.』—로마 13:13, 14.

44 이 세상의 권세들과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볼 수 있는 낮에 있는 것과 같이 단정히 행함으로써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들』과 싸우게 되지 않읍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선과 평화와 도덕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그들의 법률을 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러한 법률을 역행하였다면 결코 이 세상의 권세들을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와 같이 행함으로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낮에 있는 것과 같이 단정히 행하므로 칼을 차고 있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며 우리 하나님이나 그의 진리나 그의 회중에게 욕을 돌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의한 우리의 구원을 위태롭게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45.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다는 것』은 흑암의 일들에 대한 우리의 위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것이며, 우리는 어떠한 수단을 우리에게 사용하게 할 이유를 주지 않을 것입니까?

45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는 암흑의 일 즉 음주 소동이라든가 주연이라든가, 불의의 관계라든가, 음란한 행위라든가, 다툼과 질투라든가, 사람들이 육체의 정욕에 참다 못해 이러한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미리 계획적으로 하는 일들과 연합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고 사람들에게 그분의 참된 형상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그러한 암흑의 일로부터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위하여 『빛의 갑옷』을 입고 그러한 일들과 싸울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전파하는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장식할 것입니다. 이 특별한 점에 있어서 우리가 아직도 복종하고 있는 『위에 있는 권세들』이 그들의 『칼』을 우리에게 사용하게 할 아무런 참다운 이유도 그들에게 주지않을 것입니다.

46, 47. (ㄱ) 우리는 얼마 동안이나 『존재하는 권세들』에게 계속 복종할 것이며 어떻게 복종할 것입니까? (ㄴ) 그리하여 우리의 양심적인 복종은 에언자 「다니엘」의 경우에서와 같이 무엇을 유지하도록 우리를 돕게 될 것입니까?

46 로마서 13장에 순종하여 우리는 『존재하는 권세들』이 임박한 「아마겟돈」의 우주 전쟁에서 멸망될 때까지 계속 그들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어떠한 정당이 세력을 잡고 있든지 어떠한 정치단체가 강제적으로 그것을 갖게 되든지 간에 우리는 그들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47 이렇게 함으로써 『존재하는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양심적인 복종은 정치 운동이나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의 싸움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 중립을 유지하는데 돕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메데-바사」의 정복자 「다리오」와 「고레스」가 악한 「바벨론」을 정복한 후에도 대항하지 않고 그들에게 복종한 「다니엘」과 같읍니다.—다니엘 5:26–6:5.

48 (ㄱ)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중립주의 자로서 우리는 어띠한 일들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까? (ㄴ)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 사랑스럽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난문제가 없을 것입니까?

48 그리스도인 중립주의 자로서 우리는 어떠한 반역이나 폭동이나, 무정부 상태나 기타 어떠한 무질서에도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임박한 「아마겟돈」전쟁에 있어서도 우리는 『존재하는 권세들』의 멸망을 재촉하기 위하여 그들에 대해서 한 손이나마 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권세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권세들』로부터 지배권을 뺐으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정당한 왕국으로써 완전히 대치하시게 할 것입니다. (역대 하 20:15-17; 다니엘 2:44) 그 후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는 결코 그리스도인 양심과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문제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전 3:22)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써 왕께 복종하며 그의 완전한 마련을 지지하는 이 지상 낙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 위에 하늘로부터 영원한 축복이 비오듯 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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