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85 10/15 4-7면
  •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5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보이지 않는 분을 봄
  •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그 유익
  • 우리의 싸움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 참으로 유익한 동행
    깨어라!—1976
  • 하나님과 함께 행함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 하느님과 함께 걷는 일—처음 단계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8
  • 당신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는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5
파85 10/15 4-7면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길을 같이 간다면, 미리 약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예언자 아모스는 질문하였다. (아모스 3:3, 공동번역)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한 “약속”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 솔선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벗이 되라는 초대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강제적으로 우리가 그러한 벗관계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의 훌륭한 특성들을 통해 우리를 그분께 이끄신다. 사실, 창조물만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풍부하게 증거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말하자면 그의 영원하신 힘과 신으로서의 성품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알려져 있[읍니다.]” (로마 1:20, 새번역) 혹은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14:17에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하나님은]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에녹 및 노아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벗관계를 제의하셨을 때 열렬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를] ·⁠·⁠· 받으시는 것이 합당”함을 인식하였다. (계시 4:11)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믿음으로 그분께 가까이 나아갔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브리 11:6)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려 함으로써, 당신도 그분과 “약속”을 할 수 있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 65:4.

하나님과의 벗관계는 그분의 요구 조건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분의 말씀인 성서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마 12:2) 옛날 성서 시대에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았던 한 사람은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이사야의 예언을 이해할] 수 있느뇨?”라고 물었다. 당신도 그와 같이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빌립이라고 하는 제자가 이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 예언을 설명하게 해주셨다. (사도 8:30-35)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분을 진실하게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덜 나타내시는가? 당신이 성서에 기초한 이 잡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는 증거가 된다! 당신에게 이 잡지를 전해 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더욱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보이지 않는 분을 봄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서 자라감에 따라, 그분은 당신에게 점점 더 실재하는 분이 되실 것이다. 그분이 어떤 이름도 없는 활력의 집합체가 아니라 도리어 이름을 가진 ‘인격체’라는 사실을 곧 인식하게 될 것이다! 성서는 시편 83:18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여호와께서는 한 ‘인격체’로서, 특성들, 호불호, 심지어 감정까지도 가지고 계신 분이다!—비교 출애굽 34:6, 7; 시 78:40.

또한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표준들을 가지고 계시다. 예를 들어, 잠언 3:32은 이렇게 말한다.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느니라.]” 요셉은 “정직한 자” 중의 하나였다. 성서는 보디발이라는, 그의 애굽인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자기와 부도덕한 관계를 갖자고 반복적으로 간청하였음을 알려 준다. 그러나 그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하면서 거절하였다.—창세 39:9.

여호와는 요셉에게 실재하는 분이셨다. 그는 그분에 대한 건전한 두려움을 가졌으며 마치 그분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요셉은 이와 같이 말한 시편 필자와 같았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 16:8; 비교 잠언 3:5, 6) 모세도 그와 같은 믿음을 가졌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다.—히브리 11:27.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지식을 얻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목적에 일치하는 생활 방식을 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 전 10:31.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그 유익

“근육과 힘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걷는 일은 여러 모로 놀랄 만한 유익이 있음을 의학 및 보건 관계 권위자들은 보증한다”라고 서스맨과 구우드는 그들의 저서인 「걷는 일의 마력」(The Magic of Walking)이란 책에서 기술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유익들 가운데에는, 체중 조절, 숙면, 긴장 해소 및 심장병 예방이 있다. 그처럼 신체적으로 걷는 일이 유익하다면, 하나님과 함께 걷는 즉 그분과 동행하는 일은 한층더 유익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심오한 감정적인 경험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도하고 믿음으로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즐기게 될 것이다. (야고보 4:8; 빌립보 4:6, 7) 예를 들어, 한 여자는 끊임없는 우울증으로 인해 폭음 및 마약 사용에 빠졌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분파와 접촉해 보았다. 그러다가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시도한 다른 어떤 것도 저를 우울증에서 구해 줄 수 없었지만, 여호와의 목적을 깨달았을 때 삶에 대한 실제적인 목적을 갖게 되었지요.” 그렇다. 누구나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면, 그는 분명히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유익을 주는 길로 인도된다.—비교 이사야 30:21.

또 다른 유익은 아비가일이라는 통찰력있는 여자가 지적하였다. 그는 다윗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찌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니이다.]” 그 점을 상상해 보라! 적들의 위협을 받을 때, 다윗의 생명은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싼 귀중품처럼 여호와의 보호 관리 아래 있곤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항상 신변 보호가 따른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오늘날 그분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유익을 반드시 보호하신다!—사무엘 상 25:29; 비교 시 116:15.

그러나,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신통력으로 보호받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솔로몬은 모든 사람에게 “시기와 우연이 ·⁠·⁠· 임”한다고 말하였다. (전도 9:11)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육체에 가시”, 즉 아마도 어떤 육체의 약함으로 고생하였다. (고린도 후 12:7; 갈라디아 4:13-15) 그의 동료인 디모데 역시 “자주 나는 병”으로 고생하였다. (디모데 전 5:23)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병을 앓으며 때때로 낙담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한다.

더우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옥살이를 허락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하여 이따금 일시적인 시련을 허락하신다. (시 105:17-19) 어떤 사람은 스데반처럼 포악한 박해자의 손에 때 이른 죽음을 겪게 될지 모른다. (사도 7:57-60) 그러나 하나님의 벗들은 결코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비교 고린도 후 4:8, 9)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 ·⁠·⁠· 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히브리 6:10) 수년간의 부당한 투옥 생활을 견딘 한 그리스도인 여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봉사에서 열심히 인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저는 깊이 확신합니다. 저는 여호와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는 확신을 주는 그분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였읍니다.”—히브리 13:5.

우리의 싸움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그처럼 충실한 행로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단과 그의 악한 영의 세력들은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에베소 6:12) 게다가 매혹적인 미끼를 갖춘 현 악한 사물의 제도가 있다. 제 1세기에 데마라는 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사랑하여” 곁길로 빠져버렸다. (디모데 후 4:10) 끝으로, 악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 자신의 죄많은 육체가 있다. (로마 7:21-23) 우리가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영향력과 끊임없이 싸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강력한 도구를 이용할 수 있게 하셨다. (1) 필요한 인도를 베풀어 주는 그분의 말씀인 성서. (시 119:105) (2) 하나님의 영적 양육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그분의 보이는 조직인 그리스도인 회중. (마태 24:45-47; 에베소 4:11-16) 이 잡지의 발행소인 ‘워치 타워 협회’는 그 조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3) 기도, 성경 연구 및 하나님의 백성과의 교제를 통하여 받는 그분의 성령. 이러한 마련들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그것은 심각한 잘못이 될 것이다. 예언자 미가는 우리에게 “겸손히[겸허하게, 신세]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고 권면한다. (미가 6:8) 이것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완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심한 폭풍이 불 때 자기 아버지와 함께 걸어가는 어린 소녀에 비유될 수 있다. 만일 그 소녀가 아버지의 손을 놓거나 자기 생각대로 가려고 한다면, 그 소녀는 곧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소녀가 꼭 붙잡는다면, 자기 아버지와 함께 안전하고 자신있게 걸어갈 수 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조직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지시에 주의깊이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립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절망적으로 길을 잃게 될 뿐이다. 그러나 겸허하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우리는 다가오는 아마겟돈의 폭풍을 안전히 통과하여 약속된 새 질서로 생존하여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는 죽음과 고통이 옛일이 될 것이다. (계시 16:16; 21:3, 4; 베드로 후 3:13) 그러므로, 당신은 동행하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를 받아들이겠는가?

[6면 삽화]

하나님의 말씀, 영 및 조직은 우리가 계속 충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도울 수 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