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헌신한 모든 종들에게
1974년 9월 15일
친애하는 형제들:
지난 주 우리는 새로 연합한 사람들과의 특별 집회를 가졌읍니다. 실로 인상적이 아니었읍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웅대한 목적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창조주께 대한 그들의 신분에 관해 신중하게 그리고 기도하는 태도로 생각해 보도록 격려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시대의 긴급성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여호와께 대한 사랑에 입각하여 “큰 환난”이 닥치기 전에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함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읍니다.
시대의 중요성으로 보아, 우리 역시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기도하는 태도로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그것은 단순히 “큰 환난”과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생명을 열렬히 기대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여호와의 독실한 종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고하였읍니다.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베드로 후 3:14.
전체적으로 볼 때에, 우리는 그 사도의 영감받은 충고를 따르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계속 진보할 필요성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받은 제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개개인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로, “마지막 날”의 결말 부분에 우리 생명으로 무엇을 하는가에 대하여 신중하게 그리고 기도하는 태도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일 “큰 환난”이 내일 시작된다면,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신분은 어떠할 것입니까?
인류 세상에 대한 책임을 수행함
아직 여호와의 승인받은 종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생명은 급속히 다가오고 있는 “큰 환난”에서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읍니다. 도움이 크게 필요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읍니까? 여러분은 일상 생활을 약간 조절하여 조만간 끝나게 될 중대한 경고와 구출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입장에 있읍니까?
이 말은, 여러분이 극단적으로 행동하여 휴식시간이 전혀 없을 정도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해 주셨읍니다. (마가 6:31, 32) 그러나, 여러분은 시간의 사용 방법에서, 마음의 주된 욕망이 여호와 하나님의 충실한 ‘동료 일군’임을 증명하고, 동료 인간의 마음을 열어 진리를 넣어 주는 일에 하나님에 의해 온전히 사용될 수 있는 입장을 가지려는 것임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고린도 전 3:9; 사도 16:14.
어떤 경우, 가족이 함께 상의를 하여 가족 중 어떤 사람이 이 최종적인 전도 활동에서 더 온전히 참여하도록 할 수 있읍니까? 아마 가족 성원들이 정력과 노력을 한데 합침으로써 그 중 한 사람이 정규 혹은 임시 파이오니아로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 책임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렇게 노력을 합침으로써 가족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더 증가시킬 수 있읍니까? “마지막 날”의 이 결말 부분은 활동을 강화해야 할 적절한 때가 아닙니까?
우리 구역 내의 위험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하였기 때문에 피흘린 죄를 짓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습니다. (에스겔 3:17-19 비교) 전체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료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염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형식적인 봉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생활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정신을 헷갈리게 할 때가 아닙니다. (마태 13:22; 누가 21:34, 35; 디모데 전 6:9, 10; 요한 1서 2:15-17) 참 그리스도인들은 전파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세속적인 일을 둘째 자리에 두고, 물질적인 것을 위해 바칠 만한 시간과 노력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바쳐왔읍니다. (마태 28:19, 20) 하물며, “마지막 때”의 결말 부분인 이 때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세속적인 일을 본래의 위치, 곧 하나님의 봉사에서 우리 자신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신체적 필요를 위해 도움을 주는 정도의 위치에 놓아둔다면,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틀림없이 당하게 될 곤란한 시기에 우리 자신에게 보호가 될 것입니다. (에베소 4:28; 디모데 전 6:6-8, 17-19)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보다 더욱 궁핍한 처지에 있는 형제들과 나누어 가지라는 요청을 받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기꺼이, 열렬히 그렇게 할 것입니까?
그리고 또한 우리에게는 물질적 재산이 “큰 환난”을 통과하게 하고 보존되게 하리라는 보장이 없읍니다. ‘롯’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집과 재산을 다 상실하고, 그 후에 두 딸과 함께 동굴에서 불편한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읍니다. (창세 19:2, 16, 24, 25, 30) 우리 역시 이 경건치 못한 제도의 멸망 동안이나 멸망 후에 얼마 동안은 매우 불편을 당할지 모릅니다. 현재 우리가 물질적인 것을 지나치게 중요시한 나머지 그 때에 가서 불평을 하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불편을 야기할 것입니까? (민수 11:4-6, 10; 20:3-5 비교) 그리고, 현재 물질적 재산을 지나치게 염려하게 되어 여호와와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사라져 ‘롯’의 아내와 같이 생명을 상실하게 된다면 더욱 더 큰 비극일 것입니다.—창세 19:26.
훌륭한 행실을 유지함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전파의 책임을 이행하는 일에 시간과 자산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 20:26, 27) 우리의 개인적인 행실 역시 관련이 있읍니다. (마태 5:14-16)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의 경향을 억제하기 위하여 노력합니까? (고린도 전 9:27)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배양하는 점에서 발전합니까? (갈라디아 5:16-18, 22-24) 적개심, 다툼, 분열, 시기심 등은 여호와 보시기에, 음행, 술취함, 우상 숭배만큼이나 나쁘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읍니까?—갈라디아 5:19-21.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급속히 타락해가는 세상에서 훌륭한 그리스도인 행실을 유지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약점을 매우 잘 알고 있으므로 매일 여호와 하나님께 죄사함을 간청하고 개선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합니다.—요한 1:8-10.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미움이 자라도록 방임하였읍니다. 그런 사람들은, 실제적 혹은 상상적인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감정을 품고 어떤 형제와 자매들에게 말을 하기를 거절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아마 동료 신자들이 악한 동기가 있다고 단정하고, 그릇되게 그들을 판단하고 단죄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심지어 비방하는 말을 하고 다닐지도 모릅니다.—갈라디아 5:13-15, 25, 26; 야고보 3:5-16; 4:11, 12.
또 어떤 사람들은 가능한 한 세상의 길에 가까이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역시 “오락”을 즐길 수 있음을 보이기를 원할 것입니다. 아마 그러한 행동은 온당치 못한 ‘댄스’, 과음 등등으로 나타날 것입니다.—베드로 전 4:1-5.
여러분의 행실을 검토해 보면 어떠합니까? 만일 여러분이 개선할 수 있는 분야를 인식하고 참으로 개선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기뻐할 이유가 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올바로 반응을 보이고, 여러분을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의 마음이 영적 관심사 이외의 일에 애착을 느끼고 있을지 모릅니다. 혹은,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기가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한 경우라면, 부지런히 노력하여 자신의 사고방식을 조정함으로써 여러분의 입장이 악화되어 “큰 환난” 때에 흠이 있고 점이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과 불화한 입장을 갖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종으로서 가지고 있는 것은 고귀합니다. 우리의 희망—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의 생명—이 실현되기 직전인 이 시기에 그것을 희생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깝습니다. 우리가 유혹에 넘어가서 습관적으로 죄를 짓게 된다면 어리석지 않겠읍니까? 일시적인 재물을 추구하다가 생명을 상실하거나, 세상의 압력 때문에 타협을 하거나, 전파하고 제자를 삼는 중대한 일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갖게 된다면, 실로 비극이 아니겠읍니까?
우리는 심지어 지금도 여호와를 섬기는 일로부터 풍부한 보상을 받고 있읍니다. 참으로 우리를 염려해 주는 참다운 벗들을 가지고 있읍니다. 지금도 문제거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진리를 알기 전보다는 입장이 훨씬 더 좋습니다. 성서에 들어 있는 지혜의 도움으로 인생의 여러 문제들을 훨씬 더 잘 극복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가정 내에서 그리고 매일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데 있어서 더 원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읍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을 더욱 유쾌하게 하지 않았읍니까? 사실이지, 여호와 하나님의 헌신한 종으로서의 생활보다 더 나은 생활이 무엇이겠읍니까? 이러한 생활과 급속히 다가오는 새 질서에서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전망은 철저하게 간직해야 할 중요한 것입니다.—마가 10:29, 30.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가지십시오.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도 구원을 얻도록 돕는 일에 힘을 다하십시오. 여러분의 전체 생활 행로를 통하여, 여호와와 여러분의 관계가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여러분이 확신하고 있다는 증거를 나타내십시오. 하루 하루를 마지막 시간인 것처럼 살아가십시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큰 환난”이 언제 닥치더라도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당하지 않고 계속하여 여호와의 승인 받은 종으로서 굳게 설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계시 7:14-17.
동료 종들인,
한국 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