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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교참18 10월호 1-6면
  • 「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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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2018년 10월
  • 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2018
  • 소제목
  •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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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22-28일
  • 10월 29일–11월 4일
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2018
집교참18 10월호 1-6면

「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

10월 1-7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9-10장

“예수께서는 자신의 양들을 돌보신다”

「신세연」 미디어

양 우리

양 우리는 울타리나 담을 둘러서 양들을 넣어 두는 곳이었다. 목자들은 자신의 양 떼를 도둑이나 포식 동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밤에 우리에 넣어 두었다. 성경 시대에 양 우리는 형태와 크기가 다양했으며 지붕이 없었다. 많은 경우 돌담으로 되어 있고 입구가 하나뿐이었다. (민 32:16; 삼상 24:3; 습 2:6) 요한은 “문으로” 양 우리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기록하면서, 양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를 언급했다. (요 10:1, 3) 공동으로 사용하는 양 우리에서는, 여러 양 무리가 함께 밤을 보낼 수도 있었으며 문지기가 양들을 지키곤 했다. 아침이 되면 문지기가 목자들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각 목자가 자기 양들을 부르면 양들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에게 모여들었다. (요 10:3-5) 예수께서는 이것을 비유로 들어, 자신이 제자들을 어떻게 돌보는지 설명하셨다.—요 10:7-14.

요 10:16 「신세연」 연구 노트

인도해야: 또는 “모아들여야”.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아고는 문맥에 따라 “데려오다”, “모아들이다” 또는 “인도하다”를 의미할 수 있다. 기원 200년경에 만들어진 한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단어 시나고가 사용되었는데, 시나고는 흔히 “모으다”로 번역된다. 훌륭한 목자인 예수께서는 이 우리에 속한 양들(눅 12:32에 언급된 “적은 무리”)과 다른 양들을 모으고 인도하고 보호하고 먹이신다. 이들은 한 목자 아래 한 무리가 된다. 이 비유적인 표현은 예수의 제자들이 누리게 될 연합을 강조한다.

영적 보물 찾기

요 9:38 「신세연」 연구 노트

그분에게 경배했다: 또는 “그분에게 몸을 굽혔다; 그분 앞에 엎드렸다; 그분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스어 동사 프로스키네오가 하느님이나 신에 대한 숭배를 가리킬 경우에는 “숭배하다”로 번역된다. (마 4:10; 눅 4:8) 하지만 이 문맥에서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어 있다가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가 하느님의 대표자임을 알아보고 그분에게 경배한 것이었다. 그는 예수를 하느님이나 신이 아니라, 예언된 “사람의 아들” 즉 하느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메시아로 여겼다. (요 9:35) 그는 예수에게 몸을 굽힐 때 히브리어 성경에 언급된 사람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나 왕과 같은 하느님의 대표자들을 만날 때 몸을 굽혔다. (삼상 25:23, 24; 삼하 14:4-7; 왕상 1:16; 왕하 4:36, 37)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예수에게 한 경배는, 하느님께서 예수의 신분을 밝혀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거나 예수가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 분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마 2:2; 8:2; 14:33; 15:25 연구 노트 참조.

요 10:22 「신세연」 연구 노트

봉헌 축제: 이 축제의 히브리어 이름은 하누카(하눅카)로 “낙성식; 봉헌식”을 의미한다. 봉헌 축제는 기원전 165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봉헌한 일을 기념하는 행사로서, 동지 무렵인 기슬레우월 25일부터 8일 동안 열렸다. (이 구절에 나오는 겨울에 대한 연구 노트 및 부록 나15 참조)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의 하느님 여호와를 경멸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혔다. 예를 들어, 그는 날마다 번제물이 바쳐지던 큰 제단 위에 별도의 제단을 세웠다. 기원전 168년 기슬레우월 25일에 안티오코스는 여호와의 성전을 완전히 더럽혀 놓으려고 그 제단에 돼지를 바치고 그 고기로 만든 국물을 성전 전체에 뿌렸다. 또한 성전 문들을 불태우고, 제사장 방들을 허물어뜨렸으며, 금제단과 진설병 상과 금등잔대를 가져갔다. 그런 다음 여호와의 성전을 이교 신인 올림포스의 제우스에게 바쳤다. 2년 뒤에 유다 마카베오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탈환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끝난 후, 기원전 165년 기슬레우월 25일에 성전이 다시 봉헌되었다. 이 날은 안티오코스가 제단에서 혐오스러운 희생 제물을 제우스에게 바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께 날마다 번제물을 바치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영감받은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유다 마카베오가 승리하게 해 주시고 그에게 성전을 회복하도록 지시하셨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이행하기 위해 페르시아의 키루스와 같은 이방 나라 사람을 사용하신 적이 있다. (사 45:1) 따라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헌신한 백성에 속한 사람도 충분히 사용하실 수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이치적이다. 성경에 따르면, 메시아와 그의 봉사와 희생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하고 기능을 발휘하고 있어야 했다. 또한 레위 제사장들이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일은 메시아가 더 큰 희생, 즉 인류를 위한 자신의 생명을 바칠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단 9:27; 요 2:17; 히 9:11-14)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봉헌 축제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다. (골 2:16, 17) 하지만 이 축제를 지키는 것을 예수나 그분의 제자들이 정죄했다는 기록은 없다.

10월 8-14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11-12장

“예수의 동정심을 본받으라”

요 11:24, 25 「신세연」 연구 노트

오라비가 살아나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요 6:39 연구 노트 참조) 마르다가 부활이라는 가르침에 믿음을 나타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두개인이라고 하는 당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부활이 영감받은 성경에 분명히 나오는 가르침인데도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단 12:13; 막 12:18) 그런가 하면 바리새인들은 영혼불멸을 믿었다. 하지만 마르다는 예수께서 부활 희망에 대해 가르치셨으며 죽은 사람을 실제로 부활시키기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예수께서 그때까지 부활시킨 사람들 중 나사로처럼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은 없었다.

나는 부활이며 생명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길을 열어 주었다. 예수께서 부활되신 뒤에 여호와께서는 예수에게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능력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줄 능력도 주셨다. (요 5:26 연구 노트 참조) 계 1:18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음과 무덤의 열쇠들”을 가진 “살아 있는 자”라고 부르신다. 따라서 예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은 무덤을 열어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은 부활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공동 통치자로 다스리거나, 새 땅에서 그분의 하늘 정부의 통치를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요 5:28, 29; 벧후 3:13.

요 11:33-35 「신세연」 연구 노트

울고 ··· 우는: “울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흔히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가리킨다. 이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멸망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우셨다는 기록에서도 사용되었다.—눅 19:41.

속으로: 직역하면 “영으로”.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그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의미하는 것 같다.—용어 설명 “영” 참조.

신음하고 괴로워하셨다: 여기에서 이 두 가지 그리스어 단어가 함께 사용된 것을 볼 때 당시에 예수께서 얼마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셨는지 알 수 있다. “신음하고”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엠브리마오마이)는 일반적으로 강한 감정을 속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예수께서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신음하셨다는, 다시 말해 그분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났다는 뜻을 전달한다. “괴로워하셨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타라소)는 문자적으로 마음의 동요를 가리킨다. 한 학자에 따르면, 이 단어는 이 문맥에서 “내적 동요를 일으키다; 큰 고통이나 슬픔으로 영향을 주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요 13:21에서 이 동사는 예수께서 자신이 유다에게 배반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보이신 반응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요 11:35 연구 노트 참조.

눈물을 흘리셨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다크리오)는 눅 7:38; 행 20:19, 31; 히 5:7; 계 7:17; 21:4과 같은 성구에 사용된 “눈물”이라는 그리스어 명사의 동사형이다. 이것은 소리 내어 우는 것보다 눈물을 흘리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표현인 것 같다. 이 그리스어 동사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되며, 요 11:33(연구 노트 참조)에서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동사와는 다른 동사이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곧 부활시키실 것이었지만 사랑하는 벗들이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슬픔을 느끼셨다. 그분은 벗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동정심에서 우러나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이 기록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한 이들에게 예수께서 동정심을 느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영적 보물 찾기

요 11:49 「신세연」 연구 노트

대제사장: 이스라엘이 독립된 국가였을 때에는 대제사장이 종신직이었다. (민 35:25) 하지만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동안에는 로마의 지역 통치자가 대제사장을 임명하고 해임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용어 설명 “대제사장” 참조) 로마가 임명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는 외교술에 능숙해 그의 전임자들보다 오랫동안 이 직책을 유지했다. 그는 기원 18년경에 임명되어 기원 36년경까지 대제사장으로 일했다. 요한이 여기서 가야바가 그해에 즉 기원 33년에 대제사장이었다고 기록한 것은, 예수가 처형되는 일이 있었던 중요한 해에 대제사장으로 일한 사람이 가야바였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가야바의 집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장소를 보려면, 부록 나12 참조.

요 12:42 「신세연」 연구 노트

지도자들: 여기서 “지도자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유대인의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단어는 요 3:1에서 니고데모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는데, 그도 산헤드린 성원이었다.—요 3:1 연구 노트 참조.

회당에서 추방당할까 봐: 또는 “회당에서 파문당할까 봐; 회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까 봐”. 그리스어 형용사 아포시나고고스는 이 구절과 요 9:22과 16:2에만 나온다. 회당에서 추방된 사람은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배척과 멸시를 당했다. 그처럼 다른 유대인들과 관계가 끊어지면 그 가족은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회당은 주로 교육을 위해 사용되었지만, 지방 법정이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법정은 채찍질과 파문의 형벌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마 10:17 연구 노트 참조.

10월 15-21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13-14장

“내가 여러분을 위해 본을 보인 것입니다”

요 13:5 「신세연」 연구 노트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던 신발은 대부분 샌들이었다. 이것은 단지 바닥에 끈을 달아 발이나 발목에 매는 단순한 형태였다. 샌들을 신고 다니다 보면, 길이나 들판의 흙먼지나 진흙 때문에 발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집에 들어갈 때는 샌들을 벗는 것이 관습이었으며, 집주인은 후대를 나타내어 자신이 직접 또는 종을 시켜 손님의 발을 씻겨 주거나, 발을 씻을 물을 손님에게 마련해 주었다. 성경은 이 관습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창 18:4, 5; 24:32; 삼상 25:41; 눅 7:37, 38, 44) 예수께서는 이 관습에 따라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겸손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실제 모범을 통해 가르치셨다.

요 13:12-14 「신세연」 연구 노트

~어야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금전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데,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빚을 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를 의미한다. (마 18:28, 30, 34; 눅 16:5, 7) 이 단어는 이 구절과 다른 여러 문맥에서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무언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을 전달한다.—요1 3:16; 4:11; 요3 8.

영적 보물 찾기

요 14:6 「신세연」 연구 노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길이신 이유는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기도로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인간이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길”이시기도 하다. (요 16:23; 롬 5:8) 예수께서 진리이신 이유는 그분이 진리를 말씀하셨고 진리와 일치하게 생활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많은 예언을 성취시키셨는데, 그러한 예언들은 하느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서 그분이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보여 준다. (요 1:14; 계 19:10) 그 예언들은 “그분에 의해 ‘예’가 되었다[또는 성취되었다].” (고후 1:20) 예수께서 생명이신 이유는 그분이 대속을 통해 인류가 “참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딤전 6:12, 19; 엡 1:7; 요1 1:7) 또한 그분은 낙원에서 부활되어 영원히 살 전망을 갖게 될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생명”이 되실 것이다.—요 5:28, 29.

요 14:12 「신세연」 연구 노트

그보다 더 큰 일: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큰 기적을 행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큰 규모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할 것임을 겸손하게 인정하신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랜 기간 동안 전파할 것이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이 하던 일을 제자들이 계속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10월 22-28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15-17장

“여러분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요 15:19 「신세연」 연구 노트

세상: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하느님의 종들을 제외한 인류 세상, 즉 하느님과 멀어진 불의한 인간 사회를 가리킨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제자들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 사람은 요한뿐이다. 예수께서 충실한 사도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기도에 동일한 내용이 두 번 더 나온다.—요 17:14, 16.

요 15:21 「신세연」 연구 노트

내 이름 때문에: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그 이름을 지닌 사람 자신이나 그의 평판,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예수의 경우, 그분의 이름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한과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마 28:18; 빌 2:9, 10; 히 1:3, 4)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을 대적하는 이유가 그들이 예수를 보내신 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인정할 것이다. (행 4:12) 예수의 이름이 상징하는 것에는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통치자, 즉 왕들의 왕으로서의 지위가 포함되며, 모든 사람은 생명을 얻기 위해 그분께 몸을 굽혀 복종해야 한다.—요 17:3; 계 19:11-16. 시 2:7-12 비교.

영적 보물 찾기

요 17:21-23 「신세연」 연구 노트

하나가 되어: 또는 “연합되어”.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협력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참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다시 말해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연합하여 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요 17:22) 고전 3:6-9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일하면서 누리는 그러한 연합을 묘사한다.—고전 3:8 및 요 10:30; 17:11 연구 노트 참조.

완전히 하나가 되게: 또는 “온전히 일치 연합하게”.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완전한 연합을 아버지께 사랑받는 것과 연관 지으신다. 이러한 말씀은 골 3:14에 나오는 “사랑은 완전한 연합의 띠”라는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한 완전한 연합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능력, 습관, 양심과 같은 부면에서 개인 간의 차이가 모두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행동과 신앙과 가르침에 있어서 일치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롬 15:5, 6; 고전 1:10; 엡 4:3; 빌 1:27.

요 17:24 「신세연」 연구 노트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기초를 놓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히 11:11에서 “자손”과 함께 쓰였으며 “수태하다”라고 번역되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라는 표현에서 이 그리스어 단어는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를 아벨과 연관 지으셨다. 아벨은 하느님께서 구원받을 만하다고 여기신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며,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생명의 두루마리에 이름이 기록된”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눅 11:50, 51; 계 17:8) 또한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드리면서 하신 이 말씀은 오래전 아담과 하와가 자손을 수태하기 전부터 하느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사랑하셨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10월 29일–11월 4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18-19장

“예수께서는 진리를 증거하셨다”

요 18:37 「신세연」 연구 노트

진리: 예수께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진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목적과 관련된 진리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하느님의 목적에서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다윗의 자손”인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자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마 1:1) 예수께서는 자신이 인류 세상에 와서 땅에서 살면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주된 이유가 왕국에 관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사들은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그리고 그분이 다윗이 태어난 도시인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그와 비슷한 소식을 선포했다.—눅 1:32, 33; 2:10-14.

증거하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증거하다; 증언하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마르티레오)와 “증언; 증인”(마르티리아; 마르티스)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는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두 단어 모두 직접 경험한 일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증언한다는 기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선포하다; 확증하다; 호의적으로 말하다”라는 의미도 전달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를 증언하고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예언과 약속이 진리임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사셨다. (고후 1:20) 왕국과 그 통치자인 메시아와 관련된 하느님의 목적은 세세한 점까지 예언되어 있었다. 희생적인 죽음으로 끝난 예수의 지상 행로 전체는 율법 계약에 들어 있는 그림자 즉 모형을 포함하여 그분에 관한 모든 예언을 성취시켰다. (골 2:16, 17; 히 10:1) 따라서 예수께서는 말과 행동으로 ‘진리를 증거하셨다’고 할 수 있다.

요 18:38ㄱ 「신세연」 연구 노트

진리가 무엇이오?: 빌라도는 예수께서 방금 전에 말씀하신 “진리”가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진리에 대해 말한 것 같다. (요 18:37) 그가 진정으로 알고 싶은 마음에서 질문한 것이었다면 예수께서 분명 대답해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이 아니라,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불신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진리라고? 그게 무엇이오? 그런 건 없소!”라는 뜻으로 말한 것 같다. 빌라도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유대인들이 있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영적 보물 찾기

요 19:30 「신세연」 연구 노트

자신의 영을 내주셨다: 또는 “숨을 거두셨다”. 이 표현에서 “영”(그리스어 프뉴마)이라는 말은 “호흡”이나 “생명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평행 기록인 막 15:37과 눅 23:46에서 그리스어 동사 엑프네오(직역하면 “숨을 내쉬다”. 이 구절들에서는 “숨을 거두다”로 번역되었다.)가 사용된 것을 보면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내주셨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으므로 살아 있으려는 노력을 스스로 중단하셨음을 시사한다. 그분은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주어 죽음에 이르”셨다.—사 53:12; 요 10:11.

요 19:31 「신세연」 연구 노트

그 안식일은 큰 날이었기 때문에: 유월절 다음 날인 니산월 15일은 무슨 요일이 되든 상관없이 언제나 안식일이었다. (레 23:5-7) 이 특별 안식일이 정규 안식일(유대인의 주 중 일곱째 날, 금요일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과 겹칠 때는 “큰” 안식일이 되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다음 날이 큰 안식일이었으므로 예수께서는 금요일에 돌아가신 것이다. 기원 29년에서 35년 사이에 니산월 14일이 금요일이었던 해는 기원 33년뿐이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때가 기원 33년 니산월 14일이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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