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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0 11/22 14-18면

‘페루’를 강타한 격변!

‘페루’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지진으로 ‘카자카이’에서 100명 사망.” “‘사얀’: 사태로 18명 매몰.” “‘카자탐보’에서 지진으로 40명 매몰사.” “‘윤개이’ 완전 파멸.”

이러한 표제들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일련의 사태의 전모가 아니었으며, 이 서반구에서 일어난 역사상 최악의 천재지변에 관한 계속적인 소식은 믿어지지 않는다. 최종 집계가 알려졌을 때, 그것이 정확한 것이라고 본다면 5월 31일 일요일 현재로 ‘페루’를 뒤흔든 강진으로 인하여 생긴 희생은 사망자가 60,000명이 훨씬 넘을 것이다!

전세계 ‘텔레비전’ 화면이나 신문 제목에 비쳐진 지진의 결과는 상상을 불허하였다. 100,000인구에 어물성시를 이루고 있는 산업 항구인 ‘침보테’는 시가의 85%가 파괴되었다. 아름다운 ‘후아이라스’ 계곡의 정경을 담은 ‘포스터’ 속에서 보이는 ‘후아라즈’, ‘카라즈’, 그리고 ‘윤개이’ 시도 폐허로 변하였는데 그중 ‘윤개이’ 시는 전폐되고 그나마 유물들은 바닥 밑 진흙 속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수도인 ‘리마’ 역시 일요일 오후 3시 24분에 진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 도시의 각 구역을 재빨리 조사하여 보았을 때, 피해는 경미하였으며 단지 3명이 사망하였고, 시민들은 다시 한번 놀램을 당한 것으로 끝났음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다시 들어 앉아 인공 위성을 통하여 전세계에 중계되고 있는 ‘멕시코’에서의 세계 축구 선수권대회의 ‘오픈 게임’을 구경하였다. ‘리마’ 시민들은 그 도시 북쪽의 인근 도시에서 그날밤에 일어난 참상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채 깊은 잠에 떨어졌다.

‘침보테’와 ‘카스마’

월요일 아침이 되기도 전에 첫 보도가 ‘리마’에 들어옴과 동시에 ‘팬-아메리카’ 고속 도로를 따라서 달구지 행렬이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왙취 타워 협회’의 한 임원부부는 짧은 휴가를 마치고 ‘트루히요’에 있는 그의 동료와 함께 ‘리마’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들은 일어난 사건을 알리는 소식을 가지고 수도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그로부터 경험을 들어보기로 하자.

“‘트루히요’에서 ‘침보테’로 차를 몰고 가는 일은 즐거웠읍니다. 그러나 ‘리마’까지 가려면 아직도 다섯 시간을 더 운전해야 하므로 우리는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잠시 휴식을 갖기로 하였읍니다. 우리는 잔잔한 ‘침보테’ 만을 구경하면서 ‘치무 호텔’로 차를 몰았읍니다. ‘엔진’이 채꺼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심한 혼란의 와중으로 말려들어 갔읍니다. 차동차는 상하 좌우로 미친듯이 흔들렸읍니다. 당당하게 서 있던 삼층 건물인 ‘호텔’이 오르내리고 비틀거렸읍니다. 유리 창문들은 깨져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렸읍니다. 우리는 차를 주차장 가운데로 돌려서 즉시 빠져나왔읍니다.

“이제까지 잔잔하던 만은 거대한 거친 파도로 뒤덮였읍니다. 해안은 대양 속으로 가라앉아버렸읍니다. 거리가 마구 갈라졌읍니다. 어떤 차는 앞 바퀴가 크게 갈라진 틈에 빠져 그 밑으로 빠져버렸읍니다. 도시 중앙부로 눈길을 돌리니 온통 시가를 덮은 100‘피트’ 높이의 칙칙한 먼지 구름이 솟아 오르고 있었읍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도시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읍니다. 미친듯한 아우성과 신음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어 놓았읍니다.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부스러기 속을 뒤지며 이름을 부르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려 하고 있읍니다. 어느 아버지는 무작정 길을 달려 가고 있었는데, 그의 떨리는 팔에는 죽은 자식의 시체가 늘어져 있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너무나 넋을 잃어버려서 자기 주위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며 길거리에서 있는 것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읍니다.

“진동은 단 45초 동안, 다른 경우라면 한 순간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진에는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이었읍니다. 눈깜작할 사이이면서도 길고도 지루했던 45초 동안에 수십만의 생활에 너무나도 심한 변화를 가져왔읍니다.

“발등에 불이 꺼지자 우리는 ‘침보테’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인 여호와의 증인들이 별일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때 일요일 집회를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왕국회관으로 가기로 하였읍니다. ‘침보테’에는 세개의 왕국회관이 있었읍니다.

“단지 5분이 걸려서 우리는 왕국회관에 도착하였읍니다. 회관은 무너졌으나 회중 전체는 무사하였읍니다. 한개의 강철 들보가 보강해 놓은 ‘시멘트’ 기둥 끝에 걸려 있었읍니다. 지붕 양쪽이 함몰되었지만 모두가 안전히 기어서 빠져나오기에 충분한 높이에서 걸려 있었읍니다. 단지 수명이 경상을 입었을 뿐이었읍니다.

“잠시 후, 누가 와서 그들의 왕국회관의 지붕은 이상이 없었다고 알려 주었읍니다. 얼마의 사람들이 다쳤지만, 단지 한 명의 소녀만이 심한 상처를 입은 것 같다는 보고였읍니다. 세번째 회중은 집회가 열리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상태에 관하여 그 즉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 모두는 집과 재산을 잃었으며 남은 것이라고는 몸에 걸치고 있는 것 뿐이었읍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침보테’에서는 한 여호와의 증인 부부만 사망하였읍니다.

“전화는 불통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트루히요’로 돌아가서 거기서 ‘페루’ ‘왙취타워’ 사무실에 전화하기로 하였읍니다. 그 때까지도 우리는 ‘트루히요’ 역시 심하게 강타당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읍니다. 우리가 ‘침보테’ 북쪽을 지나는 산에 도착하였을 때 커다란 바위들이 막고 있어서 통행이 불가능함을 알았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서 ‘리마’로 향하였읍니다.

“‘침보테’ 남쪽에 위치한 첫 도시는 ‘카스마’였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회를 보고 있었던 왕국회관을 찾아내는 데 30분이 걸렸읍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관의 벽이 무너질 때 한 사람이 치명상을 당했음을 알아냈읍니다. 그는 그날 밤에 사망하였읍니다.

“이미 어두어졌으므로 우리는 다시 ‘리마’로 향하여 속력을 놓았읍니다. 얼마 안가서 우리는 큼직한 돌들로 길이 막혀진 곳에 다달았읍니다. 마침 우리 차는 작았기 때문에 막힌 길을 빠져나갈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카스마’ 다리까지 왔을 때, 쇄석 입구가 침수됨으로 인하여 두발로 넘기도 불가능하였읍니다. 우리는 떨어지는 바윗돌을 피할 수 있는 빈터 안전한 지점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리고 밤새 기다렸읍니다. 우리는 잠들 수가 없었읍니다. 밤새도록 진동이 있었고 이상스러운 소란이 더하여 우리가 타고 있는 차는 계속 흔들어댔읍니다.

“월요일 아침 새벽이 되었을 때, 마침내 다리는 통행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리마’까지의 4시간의 거리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읍니다.”

구호를 위하여 조직됨

즉시 전화가 있는 ‘리마’의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품과 의류, 담요, 약품을 모으도록 지시가 전해졌고, 같은 일을 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라고 알렸다. 즉각적으로 사랑에 찬 응답이 있었다. 그날 밤 ‘리마’에 있는 ‘왙취타워’ 사무실 ‘로비’에는 의류 보따리와 식품 상자가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다소액의 헌금도 들어왔다.

수요일 밤까지는 상당히 많은 구호품이 답지하여 그 말이 전해진 후 36시간 만에 10‘톤’짜리 ‘트럭’을 포함하여 5대의 차량이 구호품을 싣고 ‘카스마’와 ‘침보테’를 향하여 ‘리마’를 떠났다! 그들은 담요와 의류, 식품, 그리고 275‘갤런’의 식수와 취사도구 및 천막용 비품들을 운반하였다. ‘왙취타워’ 수송대는 피해지구에 도움을 베풀기 위하여 가장 먼저 도착하였다.

준비해 온 ‘트럭’짐이 ‘카스마’에 내려졌다. 그곳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모두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교외에 살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소유물들을 거두어 놓았다.

‘침보테’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상당히 손실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정신을 보였다. 지진이 있었던 다음 이틀 동안 그들은 왕국회관에 있는 부스러기 등을 말끔히 치우고 그 주위에 돗자리로 벽을 둘렀다. 이것은 그들이 분배할 수 있을 때까지 물건들을 두기 위한 장소로 만들어졌다.

‘침보테’에 있는 다른 두 회중은 그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캠프’를 쳤다. 원정대가 도착하였을 때 그들은 이미 소도시를 세워놓고 있었다. 그것은 질서정연하고 조화롭게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일들이 맡겨졌다. 아침나절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무너진 자기들의 집 주변에 있는 부스러기들을 깨끗이 치웠다. 그리고 오후에 그들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성서로부터 위안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학교 하나가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마련되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삼일만에 처음으로 따듯한 음식을 즐겼다. 그날밤 그들은 지급된 담요와 두둑한 옷으로 따뜻하게 잠들 수 있었다. 왕국회관의 자리는 말끔히 청소되었기 때문에 회중은 중단 없이 집회 순서를 계속 가질 수 있었다. 증인들은 자기들의 집은 나중으로 미루고 그들의 왕국회관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았다.

‘와이야스’ 계곡

그러나 ‘와이야스’ 시에 대하여는 매우 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 회중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였다. ‘와이야스’ 북쪽에 위치한 ‘카라즈’로부터는 전혀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거기에는 여호와의 증인의 격지 집단이 있는 곳이다. 8일이 지나도록 ‘와이야스’ 계곡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관한 소식이 없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극심한 재난에 대한 보도 때문에 우리는 정말로 그곳에 있는 우리 동료 증인들의 상태에 대하여 걱정하였다.

‘안데스’ 산맥의 “고원”으로 꾸부러져 올라가는, ‘와이야스’와 ‘카라즈’ 사이의 꾸불꾸불한 도로는 험한 길이었다. 지금은 그 길이 흔적조차도 없어져버렸다. 엄청난 일거리가 공병대에 위임되어 가능한 한 즉시 그 길을 뚫도록 하였다.

비행기가 공급품들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생명의 위험이 따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과 동시에 제한된 유임 하중(有賃荷重) 관계로 그 지역으로 들어가는 육상 수송로가 열려야 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였다. 이미 4대의 ‘헬리곱터’와 한대의 비행기가 추락하였고, 8명이 사망하였다. 수백 ‘톤’의 구호물자가 도로가 개통되는 대로 즉시 피해지구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도로 인부들은 거의 초인적인 노력을 다하여 시간을 다투며 일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보낸 수송대는 아직도 차단된 도로 상태로 말미암아 공급품들을 ‘카스마’와 ‘침보테’로 보냈다. 드디어 6월 8일 월요일 도로가 개통되었다는 공신적인 소식을 들었다. 또 다른 수송대가 조직되었는 데, 처음 15대의 차량은 2‘킬로미터’ 혹은 그 이상을 기다리면서 도로 인부들이 새로 길을 뚫으면 따라 전진하는 그런 여정이었다.

수송 대원 한 사람은 이렇게 피력하였다. “우리가 도로가 개통되기를 기다리면서 얼어오는 추위 속에서 얼마의 잠이라도 자려고 애를 쓸 때는, 우리 동료 증인들과 그들의 어린 것들도 또한 이렇게 자보려고 애쓰겠지 하는 생각이 났읍니다. 그런데 그들의 머리 위에는 노천일 것이고 이 영하의 기온 속에서 몇 닢의 담요와 얇팍한 옷가지 밖에는 없었을 것이었읍니다.”

마침내 길이 열리고 행렬은 싸늘하고 공기가 희박한 고지를 향하여 계속 올라갔다.

찾아냄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행렬은 꾸불꾸불 ‘와이야스’가 있던 골짜기에 드디어 당도했다. 길을 따라가면서 보는 이 도시의 완전한 파괴는 여행자들의 심경에 침통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도 남김없는 황폐는 증인들의 전부는 아닐찌라도 얼마를 앗아갔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수송대는 다른 ‘트럭’들과 떨어져 증인들이 있던 곳을 찾아내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 도시는 폐허가 된 채 있었다. 그 도시 주변에 피난민 수용소가 세워졌다. 풍문과 얘기들이 죽은 자의 끝말에 대하여 유감스럽게도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수송대의 두 대원이 ‘워키-토키’를 사용하여 서로 연락하면서 수용소 사이를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찾아다녔다. 황혼결에 두가지 중요한 단서를 듣고 그들은 거의 동시에 여호와의 증인의 ‘캠프’를 찾아 냈다. 환희의 눈물이 두 뺨에 흘러내렸고 그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여호와의 증인들과 그들의 가까운 친척들 모두 즉 도합 60여명이 안전하게 생존해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생존한 얘기들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공터로 나갈 수 있었고,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현관으로 피난하였는데, 흔히 건물의 현관 부분은 남아있었다.

한 증인은 그의 어린 아들이 두개의 육중한 벽돌담 아래 깔린 것을 제치기 위하여 미친듯이 파냈다. 먼지와 진흙을 뒤집어 쓰고 질식상태를 겪으면서, 한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자기 얼굴과 머리에서 부스러기들을 치울 수 있을 때까지 맑은 정신으로 참고 견디고 있었다. 그는 턱뼈를 다친 정도로 구출되었다.

한 증인의 11세난 소녀는 저녁 식사용 빵을 사러 자전거를 타고 나갔었다. 가장 황폐가 심하였던 지역의 중심부에 있었던 그 집 2층에 있었던 그의 어머니는 자기 주위에 있는 그의 집의 일부가 무너져내릴 때 현관 밑의 요동을 이겨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어린 딸을 볼 수가 있었다. 진동이 있은지 2시간 후 그의 아저씨가 길거리 자갈들 가운데 흩어진 몇개의 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엉망이 된 자전차 부분품들과 얼마 떨어져 커다란 벽돌과 지붕용 타일 아래 깔려있는 실종된 소녀를 보게 되었다. 그는 지금 팔과 다리, 골반에 입은 심한 골절상을 ‘리마’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회복 중이다.

극심한 황폐

다른 만명의 사람들은 불운하였다. 공식적인 추산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뒤덮은 흙더미 밑에 ‘와라스’ 좁은 거리에 파묻혀 있다는 것이다.

첫 진동이 있었을 때 수천명의 사람들은 빈터로 피신해 나오느라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이미 그들의 집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길거리에 있는 자갈들이 지금은 이전에 2층이 있던 곳까지 높이 올라와서 어디가 길거리였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더 아래 골짜기에서 들어온 소식은 이제까지보다 더 광범위하고 철저한 파괴였음을 알려주었다. ‘와스카란’ 산 북편에서 거대한 산동강이 떨어져나가 ‘얀가누코’ 호수에 떨어져 들어가 호수물이 골짜기를 지나 ‘와이야스’ 계곡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로 말미암아 물과 진흙과 바위와 얼음이 범벅이 된 격류는 ‘윤개이’ 시와 인접한 ‘탄라히르카’ 시에 이르러 두 도시를 파묻어버리고 20,000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윤개이’ 시의 보이는 잔유물이라고는 “플라자 데 아마스”의 중앙 지점을 표시했던 네개의 커다란 소나무 꼭대기 뿐이었다. 무시무시한 지진을 살아남았을 어떤 사람들도 이 격류로 말미암아 단 10분 후에 목숨을 잃었다.

‘카라즈’ 시는 이 무시무시한 사태가 그 도시의 접경에 와서 멈췄으므로 그로부터 겨우 전멸을 면하였다. 도로가 아직도 막혀있었지만 마침내 ‘카라즈’에 있는 증인들로부터 소식이 들어왔다. 그들 모두는 안전하였다!

격변으로 뒤흔들린 22,000평방 ‘마일’ 전역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왔다. 250개의 도시와 촌락들이 자갈더미로 변했고, 800,000 내지 1,000,000채의 가옥이 없어졌다. 강타 당한 지역에 살고있는 근 400명의 증인들 중 단지 3명의 사망자와 수명의 부상자만 있음을 알아 내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정말로 기뻐하였다.

복구

지금 남아있는 막중한 일은 부상자와 매몰자들을 돌보고 수백명의 고아들에게 집을 찾아주고 황폐한채 있는 도시를 재건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왜냐하면 ‘페루’인들은 지진과 사태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느끼며 살아오면서 부흥의 힘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금세기에 들어와서 12번의 큰 지진이 ‘폐루’를 흔들었다. 지구 도처에서 1914년 이래 여러 차례의 커다란 지진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진동을 받아 왔고 이 각 재난에서 수백명으로부터 200,0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기록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격변이 우리가 지금 이 사물의 제도의 마직막 날에 살고 있다는 더 확실한 증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말씀하시기를 “처처에 ··· 지진”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을 의미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태 24:3, 7, 신세.

전세계에서 이번 재난으로부터 회복하도록 지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도움이 베풀어졌다. ‘뉴욕’ 시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10‘톤’이 넘는 의류를 기부하였고, 그것을 나눠주기 쉽게 수천개의 꾸러미로 포장하여 6월 초순경 ‘페루’로 보냈다. 그러한 노력은 역사상 서반구에서 일어난 최악의 천재지변으로부터 복구하도록 ‘페루’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17면 삽화]

증인들이 지진이 지난 후 세운 소도시를 대회를 할 때와 같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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