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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 깨어라!—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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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1
깨71 4/22 11-14면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장면: 서양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의복점.

나오는 사람들: 현대식 유행에 따른 의상을 입은 한 점원과 새 옷을 사고자 하는 손님.

“새 옷을 원하십니까?” 하고 점원은 물으면서 이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가게에는 손님이 고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의복이 있읍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더는 기지나 ‘스타일’이나 색깔에 선택이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상의 색깔이 갈색, 회색 그리고 푸른색으로 제한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지개색과 같이 가지각색을 다 고를 수 있지요.

“우리 가게에는 ‘실루엣’ 모양의 최신 ‘스타일’이 있읍니다. 이것은 허리가 좀 잘룩한 신기한 윤각미를 가졌지요. 그리고 깃을 올려 넓게 하였으며 호주머니 뚜껑도 같은 비율로 되어 있지요. 손님은 ‘체크’ 무늬, 줄무늬, 기하학적 무늬 등 여러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읍니다. 어느 것을 좋아하십니까?”

“좀 생각해 보지요. ‘샤쓰’는 어떤 종류가 있읍니까?”

“몇가지 최신형 ‘샤쓰’를 구경하시겠읍니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담한 형 혹은 무늬없는 밝은 청색, 녹색, 붉은색 그리고 푸른색을 더 좋아하지요. 다른 사람들은 ‘파스텔’풍의 색깔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 가게에는 흰 ‘샤쓰’가 있읍니다만 요즈음 흰 ‘샤쓰’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지요.”

“‘샤쓰’에 어울리는 ‘넥타이’도 있읍니까?”

“물론 있지요. 아주 최신형으로 크고 폭이 넓고 찬란한 색의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에스코트’ 즉 ‘스카프’도 팔고 있지요. 이제 많은 사람들은 ‘넥타이’ 대신 그것을 매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튜니크’, 자라목 ‘스웨터’ 그리고 주름잡은 천이 ‘넥타이’ 대용이 되고 있읍니다. 만일 손님이 장식물을 원한다면 여기 목걸이도 있읍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점성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파는 남자용 장신구 중의 어떤 것은 여러 가지 십이궁의 형태로 되어 있지요.

“그런데 여기 있는 ‘코트’를 좀 구경하시지요. 넓은 ‘칼라’와 허리띠가 달린 백납회색 양털로 만든 ‘랩어라운드 코트’ ‘스타일’을 고를 수 있읍니다. 허리는 꼭맞고 끝은 넓은 아주 긴 ‘맥시코트’도 살 수 있읍니다. 여기 가슴에 두줄의 단추가 달렸고 ‘칼라’가 크며 넓은 깃과 띄를 가진 ‘밍크’ 가죽 ‘코트’가 있읍니다. 그리고 또한 어울리는 짧은 바지가 끼인 ‘브라질’산 호랑이 가죽 ‘코트’도 있지요.”

그렇다. 남자들이 착용할 수 있는 의상의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색깔과 무늬와 ‘디자인’이 혼합된 의상이 있는데 그것은 불과 이삼년 전에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스턴 익스프레스」지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오늘날 남성들은 지난 백년간의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종류의 의상을 입는다. ··· 단추 셋이 한줄로 달린 의상의 유행이 지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하지만 남자들이 입을 수 있으며 또 멋있는 의상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의상만이 아니다. 한개의 단추가 달린 것으로부터 여섯개의 단추(두줄로 단추가 달린 경우)가 달린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이나 입을 수 있다. 그리고 십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혼합 형태인 무늬진 ‘넥타이’와 무늬진 ‘샤쓰’를 입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것이다.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새 유행으로 인도하는 사건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음거리가 되거나 그의 정신과 남자다움에 의심을 받았던 그러한 색깔과 형태의 의상이 범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모든 유행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1970년 「‘브리타니카’ 연감」 특별 보고서는 새로운 유행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 보고서는 소위 말하는 “허영의 혁명”이 1957년 ‘런던’의 ‘카너바이’ 가(街)에서 시작하였음을 말하였다. 최초의 ‘카너바이’ 가의 고객들은 주로 극단적인 깨끗한 외모를 좋아하고 매우 훌륭하고 ‘스타일’이 좋은 옷을 대단히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모드’였다. ‘모드’가 꾀한 한가지 주된 일은 그들의 연장자들이 입은 것과 완전히 다른 의복을 입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부드럽고 연한 빛깔의 ‘샤쓰’와 ‘카프스’가 없는 ‘웰카트 투 피스 수트’와 특별히 앞부리가 둥글어 쉽게 신을 수 있는 신을 택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일반적 남자 의상 제조업체는 ‘카너바이’ 가에서 새로운 착안을 하였으며 “열띈 활동을 격발시켰다.” 보수적인 상점들까지도 새로운 유행의 “물결”을 타게 되었다. 사실상 영국의 모든 소도시에는 즉시 상점들이 생겼으며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비틀즈’와 같은 인기 연예인들이 입은 것과 같은 옷을 살 수 있었다.

그후 많은 젊은이들은 환각제 사용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이들 환각제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은 “사회와의 절대적인 투쟁을 반영하는 즉 이전의 복장과 비교가 안되는, 사실 그들의 생각처럼 거친 옷을 입기를 원하였다.”

새로운 유행을 촉진시킨 또 한가지 주요한 사건은 남자 의상 ‘디자이너’들의 주가 상승이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을 대중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새로운 유행의 ‘디자인’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들은 의복 제조업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팔았으며 많은 대중이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하였다. 그리하여 1960년대 말에 사람들은 사실상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옷은 어떤 것이든지 입었다.

‘디자이너’들은 많은 대중에게 새로운 의상을 파는 그들의 능력에 있어서 새로운 요인을 깨달았다. 그들 대부분은 「라이프」지가 다음과 같이 보도한 바와 같다. “그들은 명백히 멋없는 ‘히피’의 멋을 되살릴 수 있게 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즉 담력을 가진 자면 대중 가운데 누가 입고 있는 이상한 옷을 입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한 색깔의 만화경에 대한 원인은 젊음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색깔과 소음과 밝은 빛과 정신 미학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환경에 적합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이제 많은 중년남자들도 동일한 ‘스타일’을 채택하였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대중에게 끼치는 천연색 ‘텔레비’의 영향이며 ‘뉴스’ 보도자들까지도 매우 찬란한 의복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여성들의 예민한 영향과 애호이다. 많은 여성들은 남자 친구나 남편이 자신들처럼 화려한 옷을 입기를 원한다.

남자의 옷을 고르는데는 명백히 여러 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질문이 여전히 대두된다. 그 질문의 대답을 위하여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의상은 도덕을 반영한다

도덕 문제가 의상에 관련되어 있다. 현대식 남자 의상에 관한 일류 권위자인 ‘런던’의 ‘존 테일러’는 어떤 극단적인 의상 ‘스타일’은 그 세대의 태도와 도덕을 반영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상의 형태는 이미 잔존하는 태도에서 발단된다.” 또 한 가지 언급은 이러하다. “의상과 예의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급속히 퇴폐하고 있는 현 사물의 제도의 도덕은 명백하다. 당신은 어디서나 무례함, 방탕과 간음, 간통과 동성애의 만연과 더불어 도덕이 몰락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지역에서는 동성애를 하는 자들이 그들을 식별할 수 있는 옷을 입는다. 의상의 종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만일 당신이 그러한 옷을 입고 있다면 당신의 도덕 표준에 대한 비난은 불가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이 꼭 끼는 바지가 몸의 전 윤곽을 드러내어 육체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과 높은 도덕 표준이 조화될 수 없음을 인식한다면 당신은 여유가 있는 옷을 살 것이다. 어떤 남자 옷은 지나치게 꼭 끼므로 그러한 옷을 입는 자들은 종종 호주머니의 공간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손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러므로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질문에는 도덕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의복 선택이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 당신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인 제제를 내던진 자들과 동류로 반영되게 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되고자 한다면 실제로 부도덕한 사상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옷을 입는 자들의 본을 지침으로 삼을 수 없다.

정숙과 중용

만일 당신이 실제로 극단이나 혹은 당신을 불명예롭게 반영하는 의상을 피하고자 원한다면 성서의 지침이 되는 원칙을 고려하라.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여자들의 단정한 의상에 관하여 편지하는 가운데 여자들은 “정숙하고 신중하게” 단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디모데 전 2:9, 10, 새번역) 이 원칙은 그리스도인 남자들에게도 역시 적용된다. 이 원칙을 따르는 것은 「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지혜로운 행로이다.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1:2.

성서는 또한 그리스도인 감독자의 요구 조건을 열거하면서 절제하며 근신해야 함을 말한다. (디모데 전 3:2) 그는 그리스도인 동료들과 다른 입장을 취하려고 극단적으로 흐르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정숙함과 중용의 원칙을 옷을 살 때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한 것은 정숙함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이 세상적인 사물의 제도를 쉽게 모방하는 기질을 반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언제나 세상을 모방하는 정신의 틀을 발전시킬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옷입는 방법 뿐만 아니라 다른 인생 행로에 있어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성서의 지혜로운 충고는 이러하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로마 12:2.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특히 공식 석상에서 입을 옷을 선택하는데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 요인이 있다. 그것은 즉 당신의 그리스도인 전도봉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당신의 의복이 미치는 영향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충고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 전 10:31) 그리고 그는 또한 이렇게 편지하였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노라].”—고린도 후 6:3, 4.

그러므로 다음의 질문이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즉 ‘나의 옷입는 방법이 놀라운 논평을 초래하지 않는가?’ 만일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 놀라운 논평을 한다면 무엇인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며 의상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만일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의상 ‘스타일’에 대하여 놀라움을 나타낸다면 당신의 전도를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또 한가지 당신이 자문해 볼 것은 다음과 같다. ‘내가 고른 의상이 극단적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반역적이거나 난폭한 사회 집단으로 인식하게 하지는 않는가?’ 참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반역하지 않으며 “정사와 권세잡은 자들에게 복종”한다. (디도 3:1)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당신의 의상이 반역적인 태도를 나타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인 전도봉사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의상을 고르는데 규칙을 정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대륙과 나라마다 그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서 용납될 수 있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그리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그 나라의 어떤 지역에서는 용납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한 수가 있다. 그러나 당신이 어디에 살든지 지침이 되는 성서 원칙은 당신의 개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보기에 적절한 의상을 고르게 할 것이다.

개성에 적합한 의상

또 한 가지 기억할 점은 때로 선택되는 의상은 그것이 특히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리고 좋아하는 색깔이 섞여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과 색깔의 선택은 실제로 대단히 좋은 일이다.

당신은 머리칼과 눈의 색깔, 얼굴과 몸의 형태 그리고 피부색 등등을 의상 선택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

오늘날 남자의 의상에 있어서 색깔이 다양하므로 머리칼과 피부색에 적합한 색깔을 선택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은 기지를 얼굴에 대 볼 수 있다. 만일 어떤 색깔의 색조가 좋지 않은 것 같으면 동일한 색깔의 다른 색조가 더 적합할 것이다. 대낮 뿐만 아니라 형광등 아래서도 시험해 보라. 후자의 경우 전등은 색을 연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의상을 선택할 때 전체적인 대조의 법칙을 기억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러므로 흑발인 남자나 짙은 ‘카키’색 머리칼을 가진 사람은 보통 밝은 색깔의 의상이 보기 좋을 것이다. 한편 엷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두운 색깔의 의상이 보기 좋을 것이다.

의상은 편하고 자유스럽고 감촉이 좋아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의 지출이 많을지라도 품질이 좋은 의상을 사는 것이 이익이 됨을 안다. 품질이 좋은 의상은 질기며 잘 간수한다면 값이 싸서 품질이 나쁜 기지보다 더욱 오랫동안 계속 실용적일 것이다.

결정을 내림

새로운 유행을 제일 먼저 따르지 않는 자와 유행에 무관심하지 않는 자는 지혜롭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의 많은 지역의 유행은 완전한 일치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유행 그 자체의 견지를 볼 때도 단정하고 유쾌한 ‘스타일’이라면 자유로이 옷을 선택하여 입을 수 있다.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 뿐 아니라 경건한 표준에 일치되는가 하는 견지로 대답되어야 한다. 의상의 형태를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라. 즉 ‘그 의상들은 단정한가? 그것을 입는 것은 중용의 원칙과 모순되지 않으며 극단을 피하는 것인가? 그것은 나로 하여금 사회의 어떤 탐탁치 않는 집단으로 인식시키지는 않을 것인가?’ 만일 당신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증명하기를 원한다면 도덕적으로 퇴폐한 사회의 승인이 당신의 의상 선택을 좌우하게 해서는 안됨을 기억하라.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당신의 욕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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