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를 만나봄
‘볼리비아’ 주재 「깨어라!」통신원 기
나무늘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산다. ‘스페인’어로는 그것을 ‘페레죠소’라고 부른다.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즈’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도시 중앙 광장에서 그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마치 땅위를 느리게 헤엄쳐서 자기에게 접근해 오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할 것은 없다. 어느모로 보나 나무늘보는 신사답기 때문이다.
나무늘보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행동이 느리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느리다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도 느리게 돌리는 영화를 구경하는 것같다.
나무늘보는 사실 땅에서는 행동을 잘 못한다. 그가 사는 곳은 나뭇 가지이다. 사실상 나뭇 가지에서 살도록 그의 신체 구조는 놀랍게 되어 있다.
그의 네 다리에는 각각 세개의 발톱 곧 갈고리가 있어서 나무에 훌륭하게 매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는 발톱으로 위에 있는 나뭇 가지를 단단히 붙잡고 아래로 매달린다. 그러므로 그는 ‘타잔’과도 같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거꾸로 매달려서 천천히 이동한다.
나무늘보는 거의 전 생애를 꺼꾸로 매달려 살아간다. 그는 잠잘 때에도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나뭇 가지에 매달려서 잔다. 교미할 때나 새끼를 나을 때에도 그러한 자세를 유지한다. 나뭇 가지에 하도 단단히 매달리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도 얼마 동안은 그러한 자세를 계속 유지한다!
사람들은 나무늘보가 하도 느리기 때문에 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발톱을 가지고 있어서 화가 나면 이것을 사용한다. 뒷다리 하나로 매달리면 몸을 거의 360도로 움직인다. 이러한 자세를 취하면 두개의 앞 다리로 적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으로 성질이 유순하다. 그의 외양은 원수가 될 만한 것들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최상의 보호책이 된다.
첫째, 그는 황인종과 같이 웃음을 싱긋 웃는데 이것이 매우 매력적이다. 그가 나무에 오를 때면, 쉬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서 아래에 있는 구경꾼들에게 양쪽 어깨 넘어로 순진한 웃음을 보여 준다.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식의 순진한 표정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인간 원수들로 악의를 버리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그러나 그는 보호색을 가지고 있어 커다란 보호책이 된다. 그는 텁수룩한 회색 털로 덮여 있는데, 만져보면 부드럽지만, 보기에는 억세게 보인다. 연한 회색 반점, 검은 줄, 그리고 얼굴과 눈 근처에 있는 작은 검정 줄무늬 등 색깔이 다양하다. 이러한 색깔은 회색 나무 둥치나 나무 가지 색깔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그의 느린 행동도 이러한 조화에 도움을 준다.
그 결과 나무늘보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에 사실상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관찰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입사귀가 거의 완전히 떨어져버린 어느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나무늘보를 찾아볼 생각으로 몇분 동안 위를 쳐다보았다. 완전히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려하던 찰라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그러자 한 마리, 또 한 마리가 보였다. 드디어 내 머리 바로 위에 다섯 마리나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추운 날이라서 모두 몸을 둥그렇게 움추리고 있었으며, 한 발로 나무에 매달려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 모양을 나무 줄기의 뭉툭한 부분으로 생각했었던 것이다.”
어미 나무늘보가 새끼를 태우고 나뭇 가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구경할 만하다. 새끼를 업고 다니는데, 나무늘보 새끼는 어미의 배위에 올라 앉아 있기 때문에 다른 짐승과는 반대 방향이다. 어미의 강한 팔이 나뭇 가지를 이리 저리 이동할 때에도 새끼는 어미 배에 단단히 붙어 있다. 새끼는 무서워하지 않고 그러한 생활을 좋아한다. 그가 어미의 강한 다리 사이로 고개를 쑥 내밀고 아래 구경군들을 향해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그의 기분을 알 수 있다.
‘산타크루즈’에 사는 부모들 중에 아이들을 도시 광장으로 데리고 와서 나무늘보를 구경시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실로 경탄할 만한 하나님의 피조물을 만나는 일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다 즐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