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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3 3/8 8-10면

‘우루구아이’의 선거와 ‘가톨릭’ 교회

‘우루구아이’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여러해 동안 ‘우루구아이’는 남‘아메리카’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여 왔다. 이 나라는 경제적인 번영과 사회적인 법률 제정에 있어서 남미 대륙에서 가장 진보한 나라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이미지’는 최근에 급속도로 흐려지고 있다. “궁핍과 통화 팽창을 억제하라!”는 것이 지난 몇년 동안의 일반의 외침이었다. “세금에 눌려 우리는 질식사하고 있다!”고 사업가들은 불평하고 있다. “식료품이 왜 이렇게도 부족한가?” 하고 주부들은 질문한다. “우리는 기아 임금을 받고 있다!”고 노동자들은 항의한다.

‘우루구아이’에서의 전통적인 평화로운 생활 방식은 이제 ‘스트라이크’와 노동자-학생 ‘데모’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폭력주의자들에 의하여 폭격, 강도, 납치 등 주로 경찰관과 정부에 반기를 드는 행동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무장 군대를 동원하여 ‘투파마로스’라는 폭력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다. 이러한 대혼란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공포와 염려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많은 사람들은 1971년 말께 있었던 국민 선거를 계기로 이러한 압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것을 희망하였다.

선거 일자가 다가 옴에 따라 정세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양 정당에게 불리해 보였다. 하나는 ‘블랑코스’라고도 알려진 국민당이다. 다른 하나는 ‘콜로라도스’라고도 불리우는 ‘콜로라도’당이다.

1830년 이래 이 두 당은 교대로 이 나라를 집정하여 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역사 깊은 정권으로부터의 전면적인 변화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이 나라를 경제적 재난에서 건지고 사회 평화와 질서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고 있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개혁을 원하기는 하지만 과격한 변화를 두려워 한다. 그들은 좌익 분자들이 투표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우루구아이’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을 염려한다. 하여튼, 선거전에서 ‘블랑코스’와 ‘콜로라도스’를 이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였다. 이전 선거에서 이 두 당이 80‘퍼센트’ 이상의 표를 획득하였던 것이다.

좌익계 정당들이 내건 ‘슬로건’은 “한데 뭉쳐 승리하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였는가? 몇년 전에 군소 정당의 그러한 연합을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루구아이’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엄청난 일에 ‘가톨릭’ 교회가 관련되어 있었다.

교회의 위기

‘우루구아이’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남미에서 지금까지 예외에 속하였었다. 1919년에 ‘우루구아이’ 당국자들은 교회와 국가를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 후로 교직자들의 권력과 영향력은 감소되었다. 헌법은 종교와 정치의 야합을 막았으며 모든 종교에게 동등한 권리를 수여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더욱 더 많은 사제들이 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이 전통적인 정당들과만 관련을 맺는 것이 아니라 ‘테러’ 운동에도 관련을 맺고 있어 경악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한 ‘텔레비전’ 회견 석상에서 놀랍게도, 예수회 사제 ‘잔 C. 자파로니’는 폭력주의자들의 행동을 공식 승인하여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폭력이 그리스도인 도덕과 조화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그는 “그리스도가 지금 살아 계시다면 그 분도 기관총을 잡을 것입니다.” 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대답을 하였다.

곧 경관들은 선동적인 운동에 ‘가톨릭’ 사제들을 관련시키기 시작하였다. 저명한 은행가 납치 사건 후에 ‘투파마로스’단을 일망타진하였을 때 그중의 한 사람은 ‘인달레치오 올리베라’라는 사제였음이 밝혀졌다. ‘우베르필 몬존’이라는 또 다른 ‘우루구아이’ 사제가 ‘파라구아이’에서 체포되었는데 그는 ‘우루구아이’에 본부를 둔 국제 폭력 선동단의 일원이라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엘 파이스’ 신문과 ‘라 마나나’ 신문은 군경이 합동하여 ‘몬테비데오’ 시와 기타 도시에 있는 교회를 수색한 결과 다량의 혁명적 서적을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무기와 군수품과 폭발 장치를 위한 장비들이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한 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잡으려던 한 폭동 분자가 체포되었다.

더욱 놀라운 일들

그러나 성실한 ‘가톨릭’ 교인들 앞에는 더욱 놀라운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톨릭 기독교 민주당’이 공산주의 FIDEL(Frente Izquierda de Liberación) 사회당, 혁명 사업당, ‘카스트로 지지 26 드 마르조’ 운동, 그리고 기타 좌익 정치 집단에 가담하리라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그들이 합동하여 ‘프렌테 암플리오’(넓은 전선)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좌익계 연합 정당을 조직할 예정이었다.

일부 교회 간부들은 “그리스도인과 공산주의자”의 결합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다른 일부에서는 이 새로운 연합을 찬성하고 심지어는 갈채를 보냈다. 그리하여 ‘가톨릭’ 교계에 깊은 금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하롤드 폰체 드 레옹’의 ‘몬테비데오’ 시의 대주교 관구의 부사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대표하는 어느 정당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지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회의 한 출판물(Perspectiva de Diálogo)은 ‘프렌테 암플리오’당의 결당을 지지하였다. 동 출판물은 정부가 “국가의 소수 독재자와 대외적인 식민 정책의 유익을 위하여 일반 계급을 억압”한다고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비교적 보수적인 교인들은 일부 교직자들이 좌익분자들의 연합 행위를 찬성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환멸을 느꼈다. 저명한 ‘멘테비데오’의 한 신문의 ‘가톨릭’ 교도 독자 한 사람은 이러한 글을 썼다. “마르크스 전선의 지도자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제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것은 거의 참을 수 없는 일이다. ··· 그들은 제사직을 이용하여 ‘레닌’, 모택동, ‘카스트로’ 그리고 기타 ‘성인’들의 떼거리를 지지하고 있다.”

“불꽃 튀는 선거 운동”

선거전에 불이 붙었다. 선거 운동은 가열되어갔다. 때로는 “폭발적”이기까지 하였다. 적수 정당 본부에 실제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정치 운동이 유혈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선거를 앞둔 몇 달 동안 정치적 주도권 다툼에서 불행하게도 피해를 입은 부상자와 사망자들이 나왔다. 그후 심지어 선거 연설 중에 행한 발언을 둘러싸고 낙선한 두 대통령 후보간에 권총 결투까지 있었다.

새로운 좌익계 합당 ‘프렌테 암플리오’당은 대규모 선전 전시로 선거전을 펴 나갔다. 거의 모든 나무와 전주와 ‘몬테비데오’ 시의 주요 도로와 기타 많은 도시의 포장 도로의 일부를 새로운 정당의 색깔로 즉 붉은 색과 청색과 백색으로 칠하였다.

여러 조로 편성된 학생들이 동원되어 도로와 광장을 수리하고 청소하였다. 도시의 이곳 저곳에서 매일 미술 전람회가 열렸다. 이동 구급반은 무료로 치료를 하여 주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혈압을 재어 주었다. ‘프렌테’의 후보자들을 지지하는 대규모 노변 집회가 열렸다. ‘프렌테’당의 광고판과 선전 방송차, 수많은 ‘삐라’, 집회 그리고 기타 선전 수단은 다른 정당보다 우세를 보이는 것 같았다.

외부 관측자들은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근년에 와서 곤경에 시달린 ‘우루구아이’ 사람들은 ‘가톨릭’-좌익계 전선을 지지하는 편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겠는가? 폭력주의 자들이 ‘프렌테 암플리오’당을 지지하면서 필요하다면 폭력으로라도 승리를 거두고야 말겠다고 선언하였는데 선거가 평화롭게 이루어질 것인가?

선거일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었는가?

마침내 선거일이 되었다. 11월 28일 일요일 아침은 밝았다. 분위기는 긴장에 싸여 있었다. 처음으로 법의 강제력에 의하여 의무제 투표가 실시되었다. 기록적인 투표율이 예상되었다.

개표가 시작되자 두개의 전통적인 양당이 다수 표를 획득하고 있었다. 최종 집계 결과 ‘콜로라도’당이 근소한 차이로 ‘블랑코스’당을 누르고 승리하였다. 집계표는 다음과 같았다.

‘콜로라도’당 680,440표

‘블랑코’당 667,860표

‘프렌테 암플리오’당 303,178표

새로운 대통령 ‘잔 M. 보르다베리’는 1972년 3월 1일에 취임하였다.

취임식 며칠 후 연료비는 두배로 뛰어 올랐다. 그에 이어서 일반 물가가 각처에서 올라 갔으며 200‘퍼센트’가 증가한 물품도 있다. 노동자 파업을 비롯하여 불안정의 표현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4월 12일 수요일에 열 다섯 명의 폭력주의자들은 ‘푼타 카레타스’ 교도소에서 극적으로 탈옥하는데 성공하였다. 죄수들은 하수구를 통하여 탈주하였다. 4월 14일 금요일에는 폭력주의자들과 경찰관이 일련의 충돌을 가져 그 결과 열두명이 사망하였다.

이튿날 ‘우루구아이’ 의회는 그 나라의 사태가 “내란 상태”라고 규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기로 결정하였다. 파괴적인 활동을 억누르고 선동적인 죄수들을 지키도록 더 큰 권위를 군대에 부여하였다. 폭력주의자들과 무장 군인들 사이에 총격전이 아직도 계속되어 재산과 인명의 파괴 등 피해를 내고 있다. ‘우루구아이’의 문제들이 선거로 말미암아 해결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또한 ‘가톨릭’ 교회도 큰 타격을 받았다. 정치 문제를 둘러싸고 교회내의 고위층 간에 매우 뚜렷한 분열이 생겼다. 이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성실한 교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우루구아이’뿐 아니라 불안과 불안정 상태에 있는 모든 곳에서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이 변화가 어떻게 올 것인가에 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절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 곧 성서는 그 변화가 ‘우루구아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하여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임을 알려 준다. 이러한 전면적인 변화의 때는 매우 가까왔다. 당신은 그 변화가 있을 때에 누구의 편에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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