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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자 자기 멋대로 살면 그만인가?
  • 깨어라!—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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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2
깨72 12/8 3-4면

각자 자기 멋대로 살면 그만인가?

“세 가지 악몽.” 이것은 지난 4월에 한 인기있는 월간지에 실린 한 기사 표제였다. 그 기사는 마약을 사용한 비참한 결과를 묘사하였다. 한 가지 악몽은 마약 중독에 빠진 한 젊은 여자가 마침내 정신병 치료를 받기 위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경험이었다. 또 하나는 마약의 영향을 받아 두 눈을 도려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한 젊은 남자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세번째 악몽은 ‘다이나마이트’로 자살한 젊은이의 경험이었다. 이 세 젊은이는 모두 같은 인생관 즉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나는 내 멋대로 살면 그만이다’라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독립 정신이 오늘날 이전 어느 때보다도 널리 풍미하고 있다. 불법이 만연되어 있으며 도덕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 허다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나 동료 인간에 대한 의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대 쾌락주의자들과 같이 그들은 쾌락 추구를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쾌락 추구는 흔히, 고대 역사와 이상의 세가지 악몽 같은 경험이 실증하듯이 끔찍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 멋대로 살면 그만인가? 다른 사람들이나 당신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든지 간에 ‘독자적인 행동’을 계속할 수 있는가? 법령집의 많은 법률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의 자유는 상대적이다. 예를 들면 두 남녀가 결혼하기를 원할지 모르나 그 나라의 법이 그것을 금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 왜냐 하면 이 두 사람이 성병에 걸려 있거나 사촌간일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의 결혼을 법률이 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제한을 두는가? 왜냐 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후손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장애를 받아 국가에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결과를 생각지 않고 경솔하게 자녀를 낳는 것이 올바른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마약 거래를 금하는 법률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마약 중독자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참견할 일인가? ‘마리화나’에 취해서 “기분이 좋은” 동안 운전을 하는 사람은 심각한 사고를 저지를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위협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전술한 바와 같은 악몽을 경험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나 마약 중독자 가운데는 마약을 사기 위하여 끔찍한 범죄나 매음 행위를 하게 되는 사람이 많다. 그 두가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또한 교통 법규를 생각해 보라. 많은 도시와 나라에서는 차도나 간선도로에서의 운전 속도를 제한 한다. ‘드릴’을 추구하는 사람은 마음껏 속력을 내고 싶을지 모르나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못하는가? 그러한 속도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당신은 당신 멋대로 살아서는 되지 않는다. 인생은 신용이다. 당신이 생활에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사실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 생활을 선용할 도덕적 의무 아래 있다. 우리가 그 신용과 의무를 어길 때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

인간이 오래 동안 절대적 자유를 갈망하여 온 것은 사실이다. 한 시인은 한 때 “장구한 세월이 지금껏 정복하지 못한, 인간 속에 있는” 소원은 “자기의 기분 외에 어떠한 상전도 갖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기분 외에 어떠한 상전도 두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기분의 노예가 된다. 사실 그는 그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알수 없는 여러 가지 모순되는 기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히틀러’ 등의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살려고 고집하다가 슬픔을 당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인간에게는 창조주가 계시다. 인간은 스스로 진화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창조주께 대한 책임이 있다. ‘에덴’ 동산에서 첫 인간 부부는 많은 자유가 있었지만 절대적인 자유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후손을 출생하고 땅을 아름답게 가꾸고 동물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다. 또한 그들은 특정한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다. 이러한 법률에 의하여 인간은 창조주께 대한 의무아래 있었다. 분명히 그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생활을 마음대로 영위할 수 없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창세 1:28; 2:16, 17.

그리고 인자가 땅에 오셨을 때에 그는 사람의 의무 혹은 본분이 기본적으로 두가지 즉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하셨다. 둘째 계명은 세째 계명 즉 자신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올바른 일인 동시에 현명한 일이기도 하다.—마가 12:29-31.

우리 첫 조상에게 온 결과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혹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고려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그들 멋대로 생활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그들 자신에게 회복할 수 없는 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께 불명예를 가져왔고 후손들에게 큰 화를 입혔다.—로마 5:12.

그러므로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르지 말라. 현명하고 보람있는 길을 택하라. 그 길은 당신 멋대로 생활하면 그만인 것처럼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창조주께 대한, 이웃에 대한 그리고 후손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은 고대의 ‘아브라함’이었다. (창세 25:8) 또 다른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으며 그는 자기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할 수 있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빌립보 4:11) 그렇다. 이들을 비롯하여 그 후의 수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는 성서 「잠언」이 참됨을 증명하였다. 당신은 위대하신 창조주와 당신의 동료 인간에 대한 당신의 책임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축복을 확신할 수 있다.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이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간행물의 목적이다.—잠언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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