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어떠한 놀이인가?
작년 여름 ‘아이슬란드’에서 개최된 세계 ‘체스’ 선수권 대회는 갑자기 ‘체스’에 대한 광범위한 일반 대중의 관심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경기에 관한 대화나 혹은 그 경기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이 사업이야말로 굉장합니다”라고 미국의 한 ‘체스’ 제조업자는 말하였다. ‘뉴욕’ 시에서 손꼽히는 한 서점의 점원은, “우리 서점의 ‘체스’ 관계 서적들은 ‘피셔’ 대 ‘스파스키’ 대국 직전까지 서가에 진열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 이후 모두 매진되어 버렸읍니다. 그 책들은 이 서점에서 가장 회전이 느린 책에서 가장 빠른 책으로 바뀌었읍니다”라고 설명하였다.
몇몇 나라에서는 ‘체스’에 대한 기왕의 관심도 대단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소련에서의 그 인기는 미국에서의 축구나 야구의 인기에 비길 만하다. 또한 중국에서도, 서양의 ‘체스’에 해당하는 동양식 ‘체스’ 즉 장기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있는 경기 중의 하나이다. 보고된 바에 의하면, ‘체스’에 관한 책은 다른 모든 놀이에 관한 책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이—거의 20,000종—집필되었다고 한다.
‘체스’에 그러한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 경기로 하여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게 하는가?
기술을 요하는 복잡한 놀이
‘체스’의 주요 매력은 그 복잡성으로서,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매혹된다. ‘체스’와 ‘체커스’는 같은 종류의 판위에서 벌리는 놀이인데, 이 판위에는 각각 8개의 칸 즉 눈을 가진 8개의 줄로 나뉘어, 전체 64칸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체스’ 놀이에는 가능한 수(手)가 훨씬 더 많이 있다. 예를들어 보고된 바에 의하면, 처음 열 수를 놓는 데 169,518,829,100,544,000,000,000,000,000,000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겨우 64개의 칸으로 되어있는 판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수의 움직임이 가능한가’ 하고 어떤 사람은 질문할지 모른다. 이것은 ‘체스’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상이한 말이 있다는 사실과 한 가지 말로서도 여러 가지 수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체스’는 두 사람이 맞 벌리는 놀이인데, 각자는 16개의 말, 즉 군사를 소유한다. 이 말에는 8개의 ‘폰’(졸), 2개의 ‘나이트’(기사), 2개의 ‘비숍’(주교), 2개의 ‘룩’(성장, 城將) 때로는 ‘캐슬’(성이라고 불리우기도 함) 그리고 ‘킹’(왕)과 ‘퀸’(왕비)이 각각 하나씩이다. 이러한 여섯 가지 종류의 말은 각 말이 움직일 수 있는 수의 다양성에 의하여 반영되는, 각각 다른 가치 즉 힘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졸은 보통 한번에 한발자욱씩 즉 한칸씩 앞으로만 똑바로 움직일 수 있다. 성장은 전후 좌우로 똑바로 길이 틔어있는한 몇 칸까지고 움직일 수 있다. 주교도 비슷하게, 똑바로 얼마던지 갈 수 있는데 그 움직임은 단지 대각선식으로만 가능하다. 기사는 다른 말들과는 다르게, ‘ㄱ’자 모양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판 위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인 왕비는 전후좌우 또는 대각선식으로 그 길이 틔어 있는 한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말들을 여러 가지로 배치하는 목적은 자기 편의 왕을 수비하고, 반대 편의 왕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상대 편 왕에 대하여 “장군을 불렀”는데, 그 상대편이 더는 성공적으로 왕을 수비할 수 없다면 이 놀이는 이긴 것이다. 장군을 받은 왕을 소유한 사람이 다른 방어 수를 쓸 수 없다면 그는 항복을 해야 하며 놀이는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굉장한 수의 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각 말들의 기동성의 상이함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놀이가 지닌 복잡성과 기술에의 의존성이 ‘체스’ 경기로 하여금 세속 일에서 지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이 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체스 라이프 앤드 리뷰’」지의 편집인인, ‘버트 호첸버그’는, “‘체스’에는 우연의 요소란 전혀 없다. 아무도 재수가 없어서 졌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설명하였다.
고도의 경쟁적인 기법
그러나, 우연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가운데, 상대를 맞아 정신을 기울여 놀이를 벌리는 것은 ‘체스’ 놀이를 하는 사람의 경쟁심을 분기 시킨다. 사실상, ‘체스’는 흔히 ‘지능화된 싸움’이라고 묘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세계 ‘체스’ 전 ‘챔피언’ ‘보리스 스파스키’는 “천성으로 말하자면 내게는 투쟁적인 기질이 없읍니다. ··· 그러나 ‘체스’에 있어서는 누구든 투사가 되지 않으면 않되며, 필요에 의하여 나도 그렇게 되고 말았읍니다”라고 술회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일급 여성 ‘체스’ 경기자가 전혀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가능케 해준다.—전세계의 80여명의 ‘체스’계의 거인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여배우 ‘실비아 마일스’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직업적 ‘체스’ 경기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살인자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미국 여성들의 경쟁심도 그렇게 강하게만 된다면, 우리들중의 누군가 대(大)여성 경기자가 생겨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체스’ 놀이에 있어서 경쟁심은 ‘체스’ 경기자들의 태도와 대화에서 반영되는 바와 같이 거의 폭발점에 이를 정도로 고조되기도 한다. “어떤 다른 운동도 상대 선수의 영혼을 부수어뜨리려는 시도에 있어서 이에 비교될 만한 것이 없읍니다”라고 ‘체스’ 경기자 ‘스튜아트 마르가일스’는 설명하였다. “나는 아무도 상대를 이겼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자기는 그를 격파하였다. 납작하게 만들었다, 살해하였다 혹은 죽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알고 있는 어떤 선수는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경기자들 사이의 경쟁심은 지난 여름 「뉴욕 타임즈」지가 보도한 바와 같이, 반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 보도 내용은 이러하였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경기 도중에 야기되는 불가피한 알력을 ‘체스’판 그 자체에만 국한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가정에서는 긴장이 경기 후에도 오랫 동안 팽팽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체스’도 다른 경쟁적인 경기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바라는 참가자들은 자기들이 참가한 경기의 종류에 관계없이,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는 성서 원칙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주의할 필요가 있다.—갈라디아 5:26.
그러나, ‘체스’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만한 다른 점들이 있다.
전쟁과의 관계
이 놀이에는 군사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 사실은 아주 뚜렷하다. 반대 세력은 “적”이라고 불리운다. 반대 세력을 “공격”하고 “나포”하며, 경기의 목적은 반대 편의 왕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호로위츠’와 ‘로첸버그’는 그들의 저서 「‘체스’ 전서」(「The Complete Book of Chess」)에서 “‘체스’는 전쟁이다”란 소제목 하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체스’의 말에] 부여된 기능, 이러한 기능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술어, 궁극적인 목표, 목적물을 획득하는데 있어서 정당화된 잔인성—모든 것이 결합하여 전쟁 바로 그것을 형성하는 것이다.”
‘체스’는 그 기원이 ‘차투랑가’ 즉 군대놀이라고 불리우는 통용 기원 600년 경의 인도의 경기로 소급한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인도의 군대의 4요소—전차(車), 코끼리(象), 기병(馬) 및 보병(兵卒)—가 말에 의하여 대표되었는데 이것이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성장, 주교, 기사 그리고 졸로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1972년 8월 31일자 「뉴욕 타임즈」지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체스’는 1,400여년 전 그것이 처음 창시된 이래, 계속 전쟁놀음이었다. ‘체스’판은 왕궁들 사이, 군대들 사이, 온갖 상충하는 이념들 사이의 투쟁의 장소이었다. 가장 흔히 이용되어온 대치전법은 중세에 창안된 것으로 왕, 왕비, 기사, 주교, 성장 그리고 졸들로 이루어진 한 벌의 말로 상대와 겨루는 것이다.
‘체스’로 묘사된 바 있는 다른 싸움으로 그리스도인 대 ‘바바리아’인, 미국 대 영국, ‘카우보이’ 대 ‘인디안’ 또는 자본주의자 대 공산주의자가 있었다. ··· 현재 미국인 도안가 한 사람은 월남전을 상징하는 한 벌의 말을 고안 중에 있다고 보고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현대 ‘체스’ 경기자들은 자기들이 전쟁에서 군대를 조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기가 전쟁과 관계가 깊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폰’(졸)이란 단어는 “보병”을 의미하는 중세의 ‘라틴’어 단어에서 나온 것이다. 기사는 ‘유럽’의 봉건 시대에 무장을 하고 말을 탄 사람들을 말한다. 주교들은 자기 편의 군사적인 노력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었다. 그리고 성장, 혹은 성은 보호의 장소로서 중세의 전쟁에 중요하였다.
그러므로 국제적인 ‘체스’ 경기자인, ‘르우벤 화인’은 자기의 저서 「‘체스’ 경기자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the Chess Player」)에서 “‘체스’가 실전을 대치한 놀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타임」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체스’는 전쟁놀이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어린 소년들의 장난감 병정들을 이용한 전쟁놀이에 해당하는 성인의, 지능화된 경기이다.”
어떤 ‘체스’ 경기자들이 그러한 비교를 하는 데 이의을 제기할런지도 모르나, 동시에 어떤 다른 사람들은 순순히 그 유사성을 인정할 것이다. 사실상, 한 전문 ‘체스’ 경기자에 관한 기사에서 「뉴욕 타임즈」지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라이맨’ 씨는 ‘체스’판 위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그 네모진 윤곽들이 때때로 언덕, 골짜기, 숲 속의 좁은 비밀 통로 또는 영국의 전장의 상처가 남겨진 땅의 환영으로 변하여 보인다고 한다.”
어떤 경기자가 ‘체스’판 위의 군대를 조정해가며 자리 다툼을 하면서 복잡한 수의 변화를 생각하노라면, 아마 ‘체스’ 경기가 군사 작전 전개의 한 요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뷔. 알. 라마찬드라 딕쉬타르’의 말에 의하면, ‘체스’ 경기는 그러하였다. 그의 저서 「고대 인도의 전쟁」(「War in Ancient India」)에서 그는 이 문제에 관하여 장문의 설명을 한 다음,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체스’의 원리는 점진적인 군대의 양식과 구성의 발달에 새로운 착상들을 공급하였다.”
조심할 필요성
어떤 ‘체스’ 경기자들은 동 경기를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다.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에 의하면 종교 개혁자 “‘존 휴스’는 ··· 감옥에 있을 때, ‘체스’ 경기를 하고 또 그로 인하여 시간을 빼앗기고, 난폭한 격정에 예속되는 위험성을 감수하던 일을 개탄하였다.”
‘체스’를 과도하게 애호하는 것은 막대한 양의 시간을 낭비하고 더 중요한 일에 바쳐야 할 주의력을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휴스’가 동 경기를 하던 것을 후회하는 이유인 것이다. 또한 ‘체스’ 경기를 하는 데는 성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피하라고 경고한 “서로 [경쟁심을] 격동하”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 적개심을 키워나가는 위험성이 있다.
그리고 또한, 성인들은 어린이들이 전쟁놀이나 혹은 군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경기를 하는 것을 합당하게 생각하지 않을런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들의 견해로는 “어린 소년들의 장난감 병정들을 이용한 전쟁놀이에 해당하는 지능화된 경기”라고 간주되는 경기를 하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 아닌가? ‘체스’ 경기를 하는 것은 사실상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그것은 건전한 영향인가?
확실히 ‘체스’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그러나 ‘체스’ 놀이에는 이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