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살펴봄
‘십자가에 다시 못박힘’
◆ 최근 한 기사에서, ‘가톨릭’ 사제 ‘에이. 그릴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께서 오늘날 그분의 추종자라고 주장하는 자들 가운데 육체로 오신다고 가정해 보라. 그분은 총을 든 ‘가톨릭’ 혁명가들과 애국주의 자들에게 영접받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자신을 ‘히피’족의 영웅으로도 생각지 않으실 것이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정통파 그리스도인들이 벌이는 ‘미국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한’ ‘키 73’ 운동을 보시고는 매우 어처구니 없게 느끼실 것이다. 그들이 모아들인 사람들을 그분께서는 원치 않으실 것이다.” 그분을 위한 현대 ‘뮤지칼’이나 ‘미사’곡은 그분에게 불쾌감을 드릴 것이다. ‘그릴리’는 이렇게 묻고 있다. “만일 예수께서 오늘날 다시 오신다면,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리라고 믿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신학이 죽음
◆ 독일은 오랫 동안 신학의 본거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현재, 독일 내에서의 학구적인 신학은 죽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한때 인기있었던 “사신론(死神論) 신학”과 성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편, 성서에 대한 신학자들의 태도를 고려해 볼 때, 학생들이 원문 성경을 꼼꼼히 파고드는 연구에 싫증을 느끼는 것이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 또 한편으로는, 현대 세계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학문적 신학을 연구한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학자들이 신학의 죽음 아니면, 적어도 고질적인 병을 초래하였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돌아오심을 생각함
◆ 세계 사건들을 살펴 보고 이것들을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예수의 예언과 깊히 연관시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리스도교 목사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라베르네’에 있는 ‘브레드린’ 교회의 한 목사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점을 연관짓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과 대화를 나눈 일에 관하여 그 목사는 최근 어느 설교 가운데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는 보통 여호와의 증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그들은 중요한 것을 인식할 줄 안다. ··· 이 점이, ‘브레드린’교인이나 장로교인, 또는 ‘가톨릭’ 교인들과 믿음을 토론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점이다. 그들은 토론 제목을 잘 다루고 나보다 더 많은 성귀를 인용한다. 나는 어떤 귀절을 찾아내려면 ‘컨코단스’를 뒤적거리는데, 반대로 그들은 장과 절을 즉시 찾아낸다. ···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생각하게 한다.”
더 많은 범죄
◆ 통계를 보면, 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네델란드’를 고려해 보라. ‘암스텔담’ 시 내의 범죄는 1972년에 비하여 1973년에 12‘퍼센트’ 증가하였다. ‘우트레흐트’에서는, 매월 평균 강도 건수가 1972년에는 200건이든 것이 지난 해에는 300건으로 상승하였다. ‘아른헴’에서는 형사 범죄 사건이 1968년 이래 60‘퍼센트’ 상승하였다. 미국의 경우 ‘마사추세츠’ 주의 ‘캠브리지’ 시는 1973년 9월까지, 1972년 같은 기간에 비하여 28.1‘퍼센트’ 증가하였다. ‘보스톤’의 상승률은 14.4‘퍼센트’였으며 ‘코네티컷’ 주 ‘스템포드’에서는 15.6‘퍼센드’였다. ‘뉴욕’ 시내의 보고된 전체 범죄율은 공식적으로는 1973년도에 “감소”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시민들은 범죄를 그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최악의 문제거리라고 말하였다.
성공이냐 실패냐?
◆ 사업에서 앞서기를 원하는가? 최근 “성공의 비결”—적어도 미국 경영 협회 조사에 따른—중 하나를 고려해 보라. 근 3,000명의 미국 실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준다. “응답자 중 88‘퍼센트’가 ‘당신 자신과 당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박력있는 개성과 능력’이 현 추세로는 ‘정직하다는 평판이나 원칙에 고착하는 것’보다 경영자에게 더욱 중요한 점이다.” 이전에 비해 더욱 많은 심장병, 소화기 질환, 직업에 대한 불만, 가족 파탄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그러한 “성공” 법칙을 따르는 데 기인되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