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로서의 나의 생활
내가 선택한 외과의사의 일은 매우 역사깊은 전문직이다. 고대 애굽과 ‘바벨론’의 기록에 의하면 4,000년 전에도 수술이 행해졌다. 그리고 어떤 고고학적 발견물들을 보면, 그 이전에도 수술이 행해졌던 것같다.
사실, 나는 수술의 역사가 사람의 역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성서 창세기 2:21, 22에서 이렇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수술하시기 전에 그를 마취시키고, 그후에 절재부를 ‘꿰매셨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인간이 행한 작은 수술은 적어도 ‘아브라함’ 시대에까지 소급한다. 하나님의 명령를 받고, 그는 자신과 그의 모든 남자 가족들에게 할례를 행하였던 것이다.—창세 17:10-14, 22-27.
미국의 한 저명한 외과 교수는 언젠가 이렇게 말하였다. “외과의사 교육은 모든 전문직이나 직업 중에서 가장 엄격하고 힘드는 것이며, 그의 책임은 가장 무거운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전문직을 택하였는가?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과도 관련이 있으며, 일이 도전적이면서도 만족을 주리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시골 의사였다. 그는 ‘오클라호마’의 한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수 ‘마일’ 주변에 있는 농부들과 기타 사람을 치료해 주셨다. 나는 5명의 아들 중 장남이었다.
초기에 나의 아버지는 시골에 왕진다니실 때, 마차를 타고 다니셨다. 그가 ‘티’(T)형 ‘포드’ 자동차로 환자를 방문하실 때쯤에, 나는 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사실 12살이 되기 전부터 나는 말하자면 그의 의료 보조원 겸 시간제 운전사 노릇을 하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는 식탁 위에서 수술을 하던 그 시대에 더욱 더 아버지를 도와 드릴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할 만한 사건은, 노새발에 머리를 채여 머리 가죽이 거의 벗겨진 한 농부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나무 밑에서 수술을 하셨고, 나는 조수 노릇을 하면서 수술에 매혹되어 있었다. 때때로 환자가 마취가 필요할 때, 아버지께서 수술을 하시는 동안, 나는 소량의 ‘클로로포름’을 환자에게 주었다. 오늘날은 물론 더 나은 여러 마취제가 사용되고 있으며, 수술을 나무 밑에서 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외과의사가 되다
고등학교를 마치자 나는 대학에 진학하였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였기에 의사가 되는 길을 택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 직업을 갖도록 권하지 않으셨고, 또 그렇게 하실 필요도 없었다. 그가 받은 커다란 존경, 그의 본, 그의 친절함, 동정적인 선행, 도움을 주려는 태도 등이 나에게 의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넣어 주었다.
나는 ‘오클라호마’ 대학교에서 2년제 의예과를 나온 후 의학부에서 4년제 정규 과목을 이수하였다.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생물 조직학과 같은 여러 의학 과목은 어려웠으나 재미가 있었다. 이 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나는 이학사 학위를 받았고, 그 후에는 병원환자들에 대한 임상 경험과, 가난하여 입원할 수 없는 부인들의 가정분만을 도와 주는 일 등이 교과에 포함되었었다.
의학 교육이 신중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젊은이의 경솔한 행동이 나타나곤 하였다. 어느 산모는 가정에서 아기를 낳은 후, 다른 학생과 내가 “태반”(胎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멋있게 들렸던지, 그 말을 자기 딸의 이름으로 짖자고 제의하였다.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고, 우리는 그에 따라 출생 신고서를 작성하였다. 교수들과 학교 당국에서는 곧 우리를 불러 꾸중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산모에게 사과하고 “태반”보다 더 점잖은 이름을 짓도록 도와 주어야 하였다.
졸업 후 나는 ‘메리랜드’의 ‘발티모어’ 시립병원에서 1년간의 ‘인턴’ 생활을 하였다. 일년을 보내면서 나는 일반의학,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정신과 등 여러 전문 분야를 골고루 공부하였다. 이러한 실제 경험을 통하여, 나는 이 여러 분야가 어떠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해 끝에 나는 외과를 택하였다. 그것이 가장 흥미롭고 도전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나는 ‘테네시’의 작은 도시의 병원으로 가서 외과 훈련을 계속 받았으나, 곧 폐결핵에 걸렸다. 이 병은 아마도 ‘발티모어’에서 내가 돌보던 결핵 환자에게서 전염된 것같았다. 이 때문에 몇개월 동안 요양소에 있다가 고향인 ‘오클라호마’로 돌아왔다. 일년 쯤 후에 완쾌되었다.
그후 나는 외과 ‘레지던트’로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 공립병원에 들어갔다. 약 1년 후 개업하고 있는 24명의 내과의사와 손을 잡고 외과의사의 일을 하였다. 후에 나는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미국에서 손꼽히는 외과의사인 ‘오웬 에이치. 웬건스틴’ 교수로부터 훈련을 더 받기 위하여 2년간의 휴가를 얻었다. 의예과와 본과에서, 실제적인 경험과 병원에서의 전문 훈련 등 14년간의 공부와 훈련을 쌓은 후 마침내 성숙한 일반 외과의사가 되려는 나의 야망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때 내 인생관과 외과의사로서의 장래를 변화시킨 일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수혈 문제와 관련이 있었으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의해 제기된 일과 관련이 있었다.
수혈 논쟁
나는 어린 시절에 의사로서의 아버지로부터만 감화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나의 양친은 또한 여호와의 증인이었으며, 그 근방에서는 증인이 그분들뿐이었다. 나는 자라면서 성서에 대해 깊은 존경을 갖게 되었으나 성서 지식은 없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아버지께서 의료업무에 너무나 바쁘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이 행하고 있는 가족 성서 연구의 마련이 그 당시는 오늘날처럼 강조되지 않았었다. 나는 집을 떠나 의사가 될 결심을 가진 시골 소년으로서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한동안은 깊이 느끼지 못하였지만, 나는 성서 원칙에 깊이 감화를 받아 있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때, 나는 처음으로 수혈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에는 공혈자에게서 직접 환자에게로 옮기는 조잡한 방법이었다. 상당히 위험성이 있었으며, 성공률이 낮았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굉장히 피를 흘리게 되자, 수혈이 성행하게 되었다. 또한 전시에 내 또래의 의사들은 대부분 군대에서 복무하였다. 나는 외과의사로 군에 자원하였으나 폐결핵을 않았었기 때문에 거절당하였다. 후에 나는 나의 병력(病歷)을 밝히지 않고 해군에 들어가려 했었으나, 거기서도 어떻게 알아내고 역시 거절하였다. 그래서 나는 민간인 의사로서 일을 계속하였다.
1950년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 생애에서 큰 일은 외과의사 생활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과 그때 들은 장례 연설은 나를 뒤흔들어 종교에 대해 심각히 생각하게 하였다.
부모님들은 종교 때문에 항상 조롱을 받았었다. 그 때문에 나는 당황한 적도 있었다. 믿음에 대한 그분들의 굳굳한 입장을 나는 항상 존경하였었으나, 집을 떠난 후엔 거의 잊어버렸다. 이제 생명과 죽음 그리고 미래의 희망인 하나님의 왕국 등에 대한 성서 진리를 듣자 옛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에 대한 믿음 때문에, 옛 친구분들로부터 광신자라고 불리웠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정신이 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분이 지성이 있고, 유식한 사람이며, 남을 잘 도와 주고 솜씨가 있으셨다. 그분은 연구와 조사를 해보지도 않고 사상을 받아들일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심사숙고해서 판단을 내리곤 하였다. 그분는 매우 정직하였다. 그분을 무가치한 것에 생명을 걸 분으로 나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분는 종교적 위선자가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을 깊이 느꼈다.
평생 처음으로 성서를 신중히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주로 아버지께서 그것을 무척 신뢰하셨었기 때문이었다. 성서를 한달 동안에 통독하였으며, 입수할 수 있는 「왙취 타워 협회」 간행물들도 함께 읽었다. 이로써 성서는 하나님의 진리이고 여호와의 증인인 아버지께서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셨다고 나는 확신케 되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1950년 ‘양키스태디움’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물의 침례로 헌신을 상징하였다. 내 동생 두 사람도 같은 장례 연설에서 성서를 신중히 살펴보도록 감동을 받고, 함께 침례를 받았다.
나는 수백번이나 직접 수혈을 행하였었고, 수혈 기술도 발달하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성서가 참되다는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피의 신성함에 대한 성서의 말을 즉각 받아들였다. 이제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 나에게 큰 문제가 되었다. (사도 15:20, 29) 나는 ‘산타 바바라’ 의사회에서 좋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는 외과 과장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좋은” 의술이나 수술은 피를 사용하도록 처방되었었으나, 성서는 피의 사용은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으로 정죄하였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한 나의 헌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사임하는 길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부양해야 하였다. 그뿐 아니라, 나는 외과 수련 중 짊어진 빚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를 크게 필요로 하는 지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혈을 반대하기 때문에 수술을 거절 당한 증인들을 돕는 데 외과의사로서 나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곧 북부 ‘캘리포니아’의 ‘로얄튼’이라는 작은 지방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거기에 연방 정부가 새로 지은 침대 15개 정도의 병원이 있었는데, 설비는 좋았으나 의사가 없었다. 그 행정 구역 전체를 통하여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형편이 아주 딱하였다. 그 당시 나는 종교-의학상의 괴짜로 인정받고 있었으나 그처럼 궁한 지방에서는 나를 받아들일 것으로 추리했다. 과연 그러하였다.
약 4년간 그곳에서 일반의술과 수술을 행하였고, 동시에 호별전도인으로서 실제 경험을 많이 얻었다. 마을에 사는 이웃 사람들은 내가 들고 가는 가방 형태에 따라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가족과 나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즐겼으며, 우리와 함께 정규적으로 성서를 연구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을 많이 발견하였다. 한번은 7명이 침례를 받았다.
그처럼 격리된 작은 고을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하는 소식이 생소한 것이어서, 우리는 전도에서 흥미있는 경험을 많이 하였다. 어느 부인은 수술한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크게 소리치기를,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므로” 자기는 죽지 않았으며, 비록 자기가 죽는다 하더라도 지옥은 단지 무덤이므로 몹시 뜨거운 지옥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반의식 상태에서 그 여자는 질문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나에게 보내었다. 회복된지 얼마 후 그 여자도 역시 침례를 받았다.
의사들의 편견
내가 그렇게도 편하게 자리잡은 ‘로얄튼’을 왜 떠났는가? ‘왙취타워’ 협회의 여행하는 대표자는 나에게 이곳 ‘로얄튼’보다 여호와의 증인 회중의 주임 감독을 더 크게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이사할 의향이 있는지 문의하였다. 나는 그에게 기쁘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였으며, 따라서 ‘캘리포니아’의 ‘로디’로 이사하였다.
그러나 6개월도 안되어 나는 수혈문제로 그 도시의 의사들과 충돌하였다. 시골에서 온 한 연로한 증인이 나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2단계의 수술을 필요로 하는 복부 종양으로 그는 위독한 상태였다. 그러나 내가 간단한 일단계 수술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마취부서와 병원 간부진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환자가 피를 받지 않는다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그들은 나에게 통지한 것이다. 그에게는 수술이 꼭 필요하였다. 그가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말아 달라고 명백히 요구하였다는 내 주장은 묵살되었다. 큰 위험없이 곧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가 취한 입장에 대해 그가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그의 의사도 무시되었다. 그는 퇴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회의와 청문회가 열리어 의료 간부들, 병원 이사들과 관리인들의 분노가 내게 쏟아졌다. 어떤 설명도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당장 병원 외과 간부진에서 해임되었다. 군(群), 주(州) 그리고 국립 의사회는 나의 회원 자격을 모두 취소했다. 이제 나는 미국의 어느 공인된 병원에서도 일할 자격이 없게 되었다.a
이러한 일은 의료행위를 인정많은 인도주의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아마도 나의 이전 경험이나 관계들은 너무도 이상적인 것이었다. 이제 나는 바보이고, 살인자로 저주를 받고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나를 가장 혹독하게 비평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른바 “의료 선교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인간으로서 의사들에 대한 나의 특별한 존경심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에게 그들이 보내온 마지막 통보는 여호와의 증인이든 누구든 의사의 지시를 받고도 수혈을 거절하는 자는 병원을 이용할 수 없다고 이사회에서 규정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엄격하게 이 규칙을 그들이 적용하는지 나는 수주일이 못되어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가 우리를 방문하셨는데, 우리 집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키셨다. 병원은, 수혈이나 수술이 관계되지도 않는데 입원을 거절하였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다른 도시의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 다음날 어머니는 사망하셨다.
환자로서의 증인들
다시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라는 질문에 직면하였다. 곧 나는 ‘로디’에서 약 12‘마일’ 떨어진 ‘스톡튼’에 정골 요법사들로 이루어진 한 작은 개인 병원에 대하여 들었다. 나는 그들과 상의하고 나의 자격증을 제시한 후 수혈에 대한 나의 입장을 말하였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정골요법사들이므로 의사회의 결정에 구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병원 시설들은 수년간 크게 개선되고 확장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14년간 외과수술을 하였다. 그때부터 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 때문에 다른 의사나 병원으로부터 거절당한 증인들이 더욱 더 많이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그리고 그 이후 나는 단 한번도 수혈을 실시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어느 환자도 심지어 대수술을 한 사람도 이 때문에 생명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피에 대한 성서의 지시가 참되다는 증거를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참으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의사들도 피가 무해한 생명 구조제가 아니라는 것을 점차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수혈은 다른 기관이식만큼이나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오늘날 의학잡지들은 수혈의 유익보다도 수혈의 위험성을 더 많이 말하고 있다. 내가 지난 23년간 수술하면서 습관적으로 수혈을 하였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널리 알려진 수혈의 부작용 때문에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스톡튼’에 수술을 받으러 온 증인들은 대체로 나의 최대의 존경과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인 양심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생명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병원 간부들도 그들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들은 항상 예의바르고 협조적이며, 간호원이나 사람들에게 사려깊은 사람들로 인정받았다. 사실상 그들은 매우 좋은 평판을 받았기 때문에 병원 당국에서는 그들을 입원시키기 전에 그들이 입원비 지불능력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 수술받으러 온 사람들만 그들의 모범적인 행실로써 증거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지방의 가정주부인 증인 한 사람은 매일 병원을 방문하여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기재된 환자들을 방문하였다. 그 부인의 방문은 특히 고마운 일이었다. 그것은 환자들 중에 아주 먼 곳에서 왔기 때문에 방문객이 전연 없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환자들의 소원이나 필요한 점을 보살펴 주는 그 부인의 우정적인 행동과 사려깊은 행동은 병원 근무자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 부인이 환자들과 개인적 친분이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한 증인이 어떤 대수술을 받기 위해 1,000‘마일’도 더 되는 곳에서 나를 찾아왔다. 간호원은 왜 그가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하였다. 그가 의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는가? 아니다. 그는 그의 평판을 들었는가?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가 온 진정한 이유는 이 의사가 자기와 같이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고 섬겼기 때문이었다. 이점을 나에게 말하면서 그 간호원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다같이 여호와를 숭배하고 섬기기 때문에 밀접히 연합되어 있음을 알겠다고 말하였다.
사람은 계속 배운다
미국 외과의사회는 외과의사의 자격에 대해 14세기의 다음과 같은 명언을 특별히 즐겨 쓴다.
“외과의사에게 필요한 조건이 넷이다. 첫째, 그는 학식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는 숙련자가 되어야 한다. 세째, 그는 재치가 있어야 한다. 네째, 그는 자신을 적응시킬 줄 알아야 한다.
“외과의사는 확실한 모든 일에는 담대하고, 위험한 일은 두려워해야 한다. 그는 잘못된 치료나 수술을 않아야 한다. 그는 병자에게 자비롭고, 동료에게 사려깊고, 예측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는 아담하고, 위엄있고, 신사적이고, 동정적이고, 또 자비로와야 한다. 그는 돈을 탐내거나 갈취하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의 보수는 그의 일에 따라 환자의 재력(財力)에 따라, 문제의 성질에 따라 그리고 그 자신의 위엄에 따라 주어지도록 하라.”
그러한 높은 표준을 목표로 하면, 항상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배울 필요가 있다. 의학의 발달과 보조를 맞추려면 수많은 의학 서적들을 읽어야 하고, 그중 얼마는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의사들의 모임과 ‘세미나’도 계속적인 교육을 위해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이 경험과 실습에 의해 기술도 익숙해진다. 바쁜 때는 의사 한 사람이 매일 여러 번의 수술을 행하기도 한다.
어느 일에서나 성공을 하면 보람을 느끼지만, 의사의 경우엔 특히 그러하다. 환자가 중병에서 회복될 때는 매우 만족스럽다. 사람은 성공을 통하여서도 배우지만 실패와 실수를 통하여 배우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외과 의사의 실수는 물론 매우 심중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훌륭한 외과의사라면 조심성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솔직하게 실수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의 환자는 물론이려니와 의사 자신도 이러한 엄숙한 경험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에는 ‘하무라비’ 법전이 적용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법전이 적용되면, 어떤 의사도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없다. 왜냐하면, 실수를 하면 벌로 손을 절단당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판단력은 훌륭한 외과의사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베스트 셀러’가 된 어느 외과의사의 자서전에 보면, 결정이나 판단하는 일이 외과의사의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였다. 연구를 하고 경험과 기술을 쌓아가면서 외과의사는 이 분야에서 발전하기를 원한다. 많은 의사들은 병든 부분에만 관심을 국한시킬게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공적인 외과의사란 필연적으로 그의 환자를 전체로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마도 진리일 것이다. 그는 환자의 병든 부분만 아니라 환자의 느낌, 두려움, 희망 그리고 양심도 고려하는 사람일 것이다. 어떤 의사는, 수술로 또는 다른 방법으로 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할지 모르지만, 동시에 환자의 양심을 무시함으로써 개개인을 함부로 파괴한다. 환자에게 원치 않는 치료를 강요하는 외과의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질병에 대한 지식이 더 있다는 우월감 때문에 그렇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환자의 양심을 고려할줄 모르는 그러한 태도는 그의 판단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한 가지 결함인 것이다. 그는 “그 사람 전체”를 치료하지 못할 것이다.
현대 의술의 공적
현대 외과의술의 발달은 진실로 주목할 만한 것이다. 병든 신체부분을 제거하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고 인체를 복원하고 교정하는 분야에 있어 장족의 발전을 보았다. 절단된 사지를 다시 접합시키고, 관절을 만들어 놓고, 선천적으로 결함있는 심장이나 발을 정상화시키는 것까지도 가능해졌다. 새롭고도 개량된 기술로 출혈을 억제할 수 있다. ‘레이저’ 광선을 사용하는 정밀하고 복잡한 수술 방법도 여러 가지 있다. 또한 외과의사들은 마취사와 동료들의 기술도 환자 치료에 공로가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새로운 기구와 장비를 개발함에 있어 유능한 공학기술자들도 많이 관여하였다.
오늘날 신장(腎藏), 심장, 폐 그리고 간장(肝藏) 같은 여러 기관을 많이 이식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나는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의과 대학을 나와 집에 있을 때 아버지의 환자 중 불임수술을 요청한 환자에게 정관 절제 수술을 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새로 배운 기술을 자랑하면서 아버지께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물론 환자는 기뻐하겠지만 창조주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문제지” 하고 대답하셨다. 기관 이식에 대한 창조주의 견해를 나는 확신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성경적으로 타당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외과의술에서 창조주를 도외시할 수 없다. ‘알릭시스 카렐’ 박사가 「미지의 인간」이라는 저서에서 잘 묘사하듯이 “[현대 외과 의술]은 극도의 기술과 대담한 방법으로 이전 의약계의 모든 염원을 초월하였으나 가장 좋은 병원에서도 상처의 치료는 무엇보다도 신체의 적응 능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직도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창조주께서 인체 내에 넣으신 치료 능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봉사자로서의 활동
현대 외과의술의 공적이 놀라운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외과의사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 봉사자로서, 영적인 가치가 물질적 또는 육체적 가치보다 앞선다는 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동의한다. (마태 16:26)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제시해 주는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기껏해야 수년간의 짧은 생명을 더 살도록 도와 주는 현대의 어떤 외과의사보다 더 유익한 일을 해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여러 해 전, 나는 ‘산타 바바라’에서의 매우 좋은 직장을 그만 두었다. 또한 나는 외과 의사가 필요없는 날이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일 지금부터 새로 출발한다면 나는 외과의사가 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받는 대신 나의 시간을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에 전적으로 바치고 싶다.
현재 나는 풍요하고도 가치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장성하여 결혼한 나의 두 자녀들 역시 그리스도인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데, 하나는 회중 장로로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먼 곳에서 선교인으로 봉사하고 있다. 나의 아내와 나는 지금 그리스도인 봉사에 전 시간을 바치고 있으며, ‘왙취타워’ 협회 본부 직원으로서 동료 전 시간 봉사자들과 다른 이들을 돕고 있다. 이 모든 특권이 나에게 크게 유익하였기 때문에 나는 잠언 10:22에 나오는 현명한 필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진실로 동의함을 부언해야 하겠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기고.
[각주]
a 그동안 몇차례 거절당하였다가, 12년 후, 다시 신청하라는 권고를 받고 신청하여 의학 협회의 회원 자격을 완전히 회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