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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팔라틴’ 근위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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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팔라틴’ 근위병이었다
  • 깨어라!—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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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5
깨75 9/22 14-17면

나는 ‘팔라틴’ 근위병이었다

아마 당신은 교황에게 군대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군대가 있다. 아홉 해 동안 나는 ‘바티칸’ 군대에서 ‘팔라틴’ 의장대의 일원으로 근무하였다.

물론, 과거의 교황과 같이 현재의 교황에게 정규군이 있는 것은 아니다.

16세기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자기의 군대를 직접 지휘하여 전쟁터로 가곤 하였다. 또한 과거에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교적인 군대를 유지하였다. 이에 대하여 「가톨릭 백과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군대는 모든 군사 조직의 이상인 단결력 면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예 부대보다 뛰어났다.”—1911년판, 제 10권 307면.

그러므로 현대 국가인 ‘바티칸’ 시에도 역시 민병대가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의 군사 조직

‘바티칸’이 근년에 유지하여 온 네 개의 군단 가운데 ‘스위스’ 근위대가 아마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스위스’로부터 계속 250명을 자기의 호위병으로 제공받는다는 협정을 체결한 1505년 이래 ‘스위스’ 군단이 교황을 섬겨 왔다. 1959년 8월에 교황 ‘요안’ 23세는 군단을 재편성하여 많은 장교와, 북치는 사람 둘, 군목 한 사람 및 칠십명의 근위병을 포함시켰다.

‘노우블’ 근위대는 분명히 한때 더욱 큰 명성을 누렸다. 「가톨릭 백과 사전」은 그 근위대를 “교황의 군대 중 가장 유명한 군단”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1801년에 편성되었다. 교황 헌병대와 ‘팔라틴’ 근위대를 포함하여 교황의 방위 군단이 완성되었다.

‘팔라틴’ 의장대는 1850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편성되었다. 그는 두개의 기존 민병대를 하나로 병합하여 새로운 명칭을 붙이도록 명하였다. 1870년 이전에는 ‘팔라틴’ 근위대의 임무가 전시의 군사 작전이었으나 그 후로 기능은 주로 의식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1968년에서 1971년 사이에, ‘노우블’ 근위대와 ‘팔라틴’ 근위대와 헌병대는 해체되었다. 그래서 ‘바티칸’ 군대 가운데서 ‘스위스’ 근위대만이 남아 있다.

내가 입대하기를 원한 이유

나의 아버지는 약 30년간 ‘팔라틴’ 근위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나의 부모는 큰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모는 나도 가족의 전통을 잇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내가 근위대에 입대하고 싶어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적 교육에 깊은 영향을 받고 십대 소년이었을 때에 종교에서 떠났다. 그래서 나는 교황 자신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종교 지도자들과 가까이 접촉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솔직히 말하여, 내가 입대하기를 원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지위와 관련된 존경과 매력 때문이었다. ‘팔라틴’ 근위대의 일원이 되면 많은 유명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중요한 종교 행사에서 탁월한 자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락

그래서 1960년에 열 여덟살에 나는 ‘팔라틴’ 근위대에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나의 교구 사제의 좋은 추천을 받고 나서 나는 면접 시험을 받게 되었다.

나는 ‘바티칸’의 인상적인 건물들에 가까이 갈 때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을 잘 기억한다. 나는 접대실에 들어갔으며 나의 앞에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테이블’ 뒤에 군단 사령관, 군목 대령과 다른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접대실의 한쪽에 열명의 교황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각 초상화 옆에는 과거의 전쟁을 상기시켜 주는 주름잡힌 깃발이 걸려 있었다.

먼저 나는 몇가지 개인적인 질문을 받았다. 다음에 군목은 종도 신경, 신앙 기도문, 희망 기도문 등 몇가지 ‘가톨릭’ 기도문을 암송해 보라고 말하였다. 나는 종교 교훈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얄팍한 지식이 드러날까봐 우려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필요한 기우였다. 그 면접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약 한달 뒤에 나는 ‘팔라틴’ 근위대에 입대되었다.

훈련과 복장

짤막한 종교 의식이 있은 후에 종교에 관한 약 한 시간의 교훈으로 나의 훈련은 시작되었다. 다음에 매주 목요일이면 나는 종교 강의를 들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에 관한 나의 지식을 증가시켜 주고 그분의 존재에 대한 나의 의심을 제거하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배운 교회의 교의는 나의 의심을 증가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군사 훈련이 즐거웠다. 얼마 후 나는 ‘팔라틴’ 근위대의 인상적인 군복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제복에는 검은 상의, 어린 해리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푸른 바지, 흰 ‘벨트’, 검은 구두, 및 챙과 붉은 깃털 장식이 달린 빳빳하고 검은 모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두꺼운 황금 줄, 관광객들이 행진 중에 떼기를 원할 황금빛 화려한 견장 등이 ‘액세서리’에 포함되었다.

교황을 섬기다

교황은 방문자들을 알현실 혹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만났다. 대개 나는 대기실 근무에 임명되어 교황이 방문객을 맞이하는 현관 입구에 배치되었다. 방문자는 실내 담당자 즉 종복과 함께 들어 오는데 방문자가 우리 앞을 지나갈 때, 우리는 재빨리 차려 자세를 취하곤 하였다. 나는 특히 두 번의 고위층 인사의 방문을 기억한다.

하나는 노란색 예복을 입은 불교 승려의 방문이었다. 그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중 월남 평화를 위하여 연설하기 위해 교황 ‘바오르’ 6세를 방문하였다. 그 방문은 물의를 일으켰다. 왜냐하면 당시 신문에 자주 분신 자살하는 불교 승려에 대한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방문은 영국의 정치적 수반일 뿐 아니라 영국 국교회의 수반으로도 인정받는 ‘엘리자베드’ 여왕의 방문이었다. ‘바티칸’의 의례에 따라 여왕과 그의 수행원 각자는 교황의 궁전 대표자의 안내를 받았다. 교황이 도착하기 전에 귀빈의 시종은 일반적으로 교황이 손을 내밀 때 반지에 ‘키스’를 하라고 귀빈에게 일러 둔다. 그리하여 여왕은 허리를 굽혀 교황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영국 국교회의 수반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반에게 허리를 굽힌 것이다. 교황측으로서는 참으로 성공적인 외교 전략이다!

또 다른 생생한 기억으로, 장엄한 ‘트럼펫’ 소리를 앞세우고 ‘팔라틴’ 근위대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는 행진이 있다. 예를 들면, 매년 6월 2일이면 ‘이탈리아’ 군대를 위한 경축식이 있었는데, 그 때 교황은 ‘천하만민에게’라는 엄숙한 축복을 전달하였다.

나는 또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요르단’의 ‘후세인’ 왕,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 ‘이디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등 여러 국가 수반의 공식 방문이 있을 때에 의장병으로 일하였다. 나는 또 1963년 6월에 교황 ‘요안’ 23세의 임종실 입구 근무를 맡았으며, 그 직후 교황 ‘바오로’ 6세의 선출시에도 일하였다.

화려한 행렬과 의식

수요일 아침이면 교황은 알현실에서 그를 만나 그의 축복을 받기로 미리 약속한 사람들과 공개 알현식을 열었다. 교황이 이러한 행사를 위하여 수행원들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실로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교황은 발판 위에 있는 일종의 보좌에 앉아 있고 종들이 그 발판을 메고 입장하였다. 이들 뒤에는 다채로운 그리고 호화롭게 차려 입은 성직자들과 수종자들이 많이 따랐다. 그들은 ‘‘망토’와 칼의 기사’, ‘비밀 신사의 종’, ‘실내 담당자’ 등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또 그 행렬 가운데는 ‘바티칸’의 여러 군단의 사령관들과 장교들이 포함되었다.

이 때에는 거의 믿기 어려운 별의 별 광경이 다 보였다. 예를 들면, 교황이 난간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지나갈 때, 자기 머리를 쥐어 뜯으며 교황에게 십자가 상을 들어 올려 보이고 비명을 지르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광적 흥분에 빠져 강제로 끌어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기들은 교황이 만질 수 있도록 높이 들려졌다.

또한 어떤 탄원문을 쓴 편지나 종이를 든 수십 개의 손이 교황을 향하여 뻗쳐졌다. 교황의 운반용 보좌 가까이에 있는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이러한 것을 겸손한 태도로 받았다. 그러나 웃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고, 시종 일관 냉담한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성가를 부르고 손수건을 흔들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이러한 공개 알현이 있을 때에는 더욱 인상적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교황이 입장할 때에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바다의 파도와 같은 환호가 따랐다. 그러나, 근년에는 방문자의 수가 줄어들었다.

교황의 대관식

그러나 교황의 알현식의 화려함과 찬란함보다 능가하는 것이 교황의 대관식이었다. 목격자들은 “그 장엄한 광경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나는 1963년 6월 30일 교황 ‘바오로’ 6세의 대관식에 참석하였으며, 그것은 ‘팔라틴’ 근위병으로서의 나의 생애에서 실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국가의 원수들과 장관들과 대사들과 정계 및 군부 고위층 인사들과 언론인들과 세계 각처의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대표자들이 그때에 참석하였다.

그 호화로움, 보석, 참가자들의 눈부시고 값비싼 의상, 특히 개선 보좌에 실려오는 교황의 의상, 교황 옆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타조 깃털 장식의 부채, 음악, 의식—그것은 거의 꿈 같았다. 필설로는 도저히 그 장엄함을 표현할 수가 없다. 교황의 대관식의 선구였던 고대 ‘비잔틴’ 제국의 대관식도 확실히 이보더 더 화려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 다음 ‘팔라틴’ 근위대를 선두로 하여 교황청 궁중 역원 전체의 웅장하고 화려한 입장 행렬이 있었다. 서서히 움직이는 행렬은 회전 목마와 같이 찬란한 색깔로 거의 한 시간 계속되었으며, 수백 명의 추기경과 주교들의 행렬에 이어 젊은 목소리의 합창대가 따랐다. 마침내 교황 ‘바오로’ 6세는 보석이 박힌 번쩍 번쩍하는 관을 썼다. 그 관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표자로서의 교황에게 수여된다고 하는 권력의 당당한 상징물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자문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지상에 대표자를 두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인가? 이 모든 화려한 의식은 적절한가? 그리스도께서 승인하시는가?

내가 얻은 대답

나는 내가 보통 일하는 사무실에서 나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얻은 한 맹인으로부터 대답을 얻었다. 그가 성서에서 나에게 보여 준 귀절을 읽고 나는 교황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본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태리 군대 장교가 사도 ‘베드로’의 발 아래 엎드려 그에게 절하려고 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일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였음을 알았다. (사도 10:25, 26, 공동 번역)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그 ‘베드로’와 전혀 반대로 처신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범한 죄의 종류에 따라 지옥불 혹은 연옥에서 영원히 불태워질 불멸의 영혼이 인간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나는 성서에서 인간이 영혼이며 불멸의 구별된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성서는 가르친다. (에스겔 18:4) 그리고 성서 지옥은 분명히 불타는 장소가 아니다. 그 증거로, ‘다윗’ 왕이 하나님께 “내가 지옥에 내려갈지라도 당신이 거기 계시니이다” 하고 기도한 것과 같은 성서 귀절들이 있다. 성경은 지옥이 단순히 인류의 공통 무덤임을 명시하고 있다.—시 138:8, 두우에이역; 또한 욥 14:13; 전도 9:5, 10; 사도 2:31 참조.

더우기, 그는 나에게 하나님이 삼위일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여 주었다. ‘가톨릭’의 삼위일체 교리와는 달리, 하나님이 동등한 세 하나님인 동시에 한 하나님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하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고 그는 또한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십니다” 하고 인정하셨다. (마가 12:29; 요한 14:28, 공동 번역) 나는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인 이 맹인과 성서 토론을 하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자 나는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내가 이러한 진리와 일치하게 행동할 책임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팔라틴’ 근위대 ‘클럽’ 회관 영사실에서 한 고위 성직자 곁에 앉아 있었다. 물레를 바꾸는 동안에 나는 그에게 침착한 태도로, 삼위일체가 없다는 것과 영혼이 불멸이 아니며 지옥불이 없다는 것을 성서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였다. 그는 누구 말이냐고 질문하였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대답은 놀라웠다. “아아, 허지만 그들도 그리스도인들이지.”

그리하여 나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나는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참으로 강하게 해 준 성서에 근거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나는 얼마 후에 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기로 헌신하였으며, 그 때 이후로 실제 칼을 휘두르는 기쁨이 아니라,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휘둘러 다른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웅대한 목적에 관하여 배우도록 돕는 기쁨을 누려왔다. (에베소 6:17)—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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