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6 1/8 14-17면
  • 공업에 의존한 생활 양식은 실패하고 있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공업에 의존한 생활 양식은 실패하고 있는가?
  • 깨어라!—1976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문제가 확대됨
  • 불행한 변화
  • 더 많은 문제들
  • 헛된 희망
  • 과감한 변화가 필요함
  • 제4부: 산업 혁명—무엇으로 인도하였는가?
    깨어라!—1992
  • 대기업화한 산업 첩보전
    깨어라!—1973
  • 과학 기술—그것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
    깨어라!—1986
  • 부족 현상은 얼마나 심각한가?
    깨어라!—1975
더 보기
깨어라!—1976
깨76 1/8 14-17면

공업에 의존한 생활 양식은 실패하고 있는가?

공업에 의존한 생활 양식은 실패하였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하여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최근 여러 해 동안의 증거들을 보면 공업국들이 심한 곤란에 처해 있음이 명백하다.

그렇지만, 갖가지 기후 조건 하에서 우물로부터 음료수를 길어 왔었던 나이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것을 좋아 하는지 아니면 “즉각적으로” 물 공급을 해 주는 현대식 실내 수도를 더 좋아하는지 물어 보라 실내 화장실이 있는데도 집 밖에 있는 변소를 계속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전등이 있다면 석유 등잔을 더 좋아하겠는가?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도 옷을 빨래 돌 위에 놓고 두드리거나 빨래판 위에 손으로 문질러서 세탁하려고 하겠는가? 전화를 들어 즉시 통화하는 대신 상대방에게 간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수 십리를 걷고자 하겠는가?

더운 목욕 물을 준비할 때 많은 사람들은 밖에서 물을 길어다가 장작불로 데워서 욕조에 채웠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나이든 분에게 그것을 좋아하는지, 현대식 욕실에서 더운 물꼭지를 트는 것보다도 그것을 더 좋아하는지 물어보라.

오늘날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 옛 방식으로 되돌아 가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없이 공업 문명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기 때문에 1600년경에 시작된 “산업혁명”이 훌륭한 생활 양식을 가져오리라는 기대가 높았던 것이다.

노동을 절약해 주는 기계, 기구, 신속한 교통과 통신 등으로 생활이 꾸준히 향상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공학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리고 자동차, 비행기, 전화, 전등, ‘라디오’ 등이 발명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새로운 광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확신하였다.

과거 수 십년 동안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텔레비젼’이 나오게 되었고, ‘컴퓨터’, 자동 기계, 인공 위성, ‘제트’기, 여러 형태의 복잡한 기계들이 속속 나타났다.

기계들의 유익성은 뚜렷이 보였지만 깊은 문제점들은 처음엔 뚜렷하지가 않았다. 문제점들은 비교적 사소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 문제들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문제가 확대됨

산업 혁명 전까지는 농업이 일상 생활 양식이었다. 소도시들은 있었으나 대도시는 별로 없었다. 그 당시 존재하던 몇몇 도시들에 있어서도 큰 고층 건물들은 없었으며 농촌의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공업 시대가 도래하자 변화가 일어났다. 기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이 필요하였다. 당시에는 빠른 교통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은 작업장 근처로 이사해야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결국 전세계에 걸쳐 수 천 수 백만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들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이차 세계 대전 전에 농업 종사자가 약 1,500만명이었는데, 이제는 그 수가 약 650만으로 떨어졌다. 전에는 매년 학교 졸업생 중 약 400,000명이 가사를 돌보기 위해 농장에 돌아갔으나 지금은 일년에 20,000명 정도만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인구는 1억을 넘는다.

또 다른 좋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산업 혁명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에서 어느 정도 만족을 느꼈다. 거기서 다소나마 솔선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기계가 주가 되며 사람들을 거기에 맞춘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여러 경우에 기계들이 직공들을 대치하게 됨으로 그들의 기술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자리를 빼앗긴 이들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업을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행한 변화

그러한 문제들이 증가되어 가는 반면 과학과 공학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인류는 “황금 시대”로 접어 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일대 타격이 들이 닥쳤다. 인류를 도울 것으로 생각되었던 기계들이 1914-1918년의 1차 세계 대전중에는 인간에게 해를 주었다. 거의 천만명의 사람들이 살륙을 당하였다. 기관총, 잠수함, ‘탱크’, 비행기 등등의 새로운 장비들은 가공할 만큼 생명을 앗아갔다.

산업 혁명의 직접적인 결과로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 살륙 무기가 사용 되었다. 다른 면으로도 공업 시대는 전쟁에 기여하였다. 그러한 전쟁이 있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공업 성장에 대비하여 원자재와 시장 개척을 위해 세계를 분할하고자 ‘유럽’ 열강들이 상호 도전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저술가 ‘리차드 리’는 「위대한 약속, 1914-1918년의 전쟁」이란 책에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1914-1918년의 전쟁은 두 가지 사실을 밝혀 주었다. 첫째로, 공학의 발달은 극도에 달하여 통일된 세계에서만이 재난 없이 발달을 계속할 만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 그리고 둘째로, 세계의 현존하는 정치, 사회 제도는 그러한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1차 세계 대전 직후 공업국들은 또 군비 경쟁에 돌입하여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2차 세계 대전을 폭발 시켰기 때문이다. 원자탄을 포함하여 더 끔찍스러운 대량 파괴 무기가 개발되었다. 그 결과로 살륙 규모가 훨씬 거대하였다. 5,500만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살륙당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업은 이전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무기들을 쏟아놓았다. 나라들은 현재도 매년 2,400억 ‘달러’를 군비로 지출하고 있다.

공업 시대는 그 발명자를 배반한 ‘프랑켄쉬타인 괴물’을 창조해 낸 셈이다. 그 점은 자기 형 ‘월버’와 함께 비행기를 연구하였던 ‘오빌 라이트’가 이차 세계 대전 중에 남긴 흥미있는 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자동차 대량 생산의 기수였던 ‘헨리 포오드’에게 보낸 것이었다. ‘라이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윌버’ 형과 나는 비행기가 세계 평화를 촉진하리라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와 정반대의 현상을 낳게 된 것 같군요.

“귀하도 역사상 위대한 발명 중 하나인 대량 생산 기술을 소개했을 때 그것이 35년 후에 세계 파괴를 위한 ‘탱크’를 건조하는 데 사용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유익한 것이 소개되면 반드시 누군가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게 되나 봅니다.”

더 많은 문제들

그 사람들은 그러한 발명품과 기타 발명품들이 그후에 더 많은 재난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유럽’과 ‘아메리카’의 선진 공업국에서는 교통 시설의 통제가 점점 힘들어 가고 신뢰도가 약해지고 있다.

대도시에서의 ‘러쉬 아우어’에는 교통이 대단히 혼잡하다. 차를 타고 직장에 출퇴근하는 수 백만명의 사람들은 교통의 둔화, 오염, 신경질, 시간 낭비 등등을 경험하게 된다. 대도시 주변의 하늘도 많은 비행기 왕래로 더욱 복잡해 지고 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 가지로 미국에서도 자동차는 발명품 중 가장 무서운 살인 무기임이 입증되었다. 자동차의 발명 이후 그것으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수는 그 나라의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 보다 더 많다.

「제 2의 방주」라는 책에서 ‘데니스 피라지스’와 ‘폴 에르리히’는 이렇게 말하였다.

“장거리 수송에 있어서 기차에서 ‘버스’로, 그리고 자동차에서 비행기로의 역사적인 변천은 비슷하게 발전이라는 말로 정의된다. 그러나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각 단계가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덜 효과적이기 때문에 각각 퇴보인 것이다.

“개개인의 행복에 의해 평가해 볼 때 사실상 교통 혁명이 생활의 질을 높여 주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자동차와 비행기로 인한 모든 사회적, 자원적, 환경적인 희생을 고려해 볼 때 세계는 자전거, 기차, 전차, 및 범선에서 그 발전이 정지되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헛된 희망

공업의 발전으로 인해 생활상의 악조건이 제거되리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은 헛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공업국에도 가난한, 극히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인디아나’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허버트 뮬러’는 이렇게 말하였다. “점점 증가되는 상품들은 공업주의의 기본적인 실패를 더욱 분명하게 해 주었다. 처음부터 공업주의는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아담한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품 즉 적절한 식사, 적당한 의료 혜택, 아담한 가정, 좋은 환경 등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새로운 공업 도시의 생활 환경은 매우 한심스럽다. ··· 무엇보다도, 부유한 미국에도 빈민굴이 있으며, 점점 악화될 위해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범죄, 공해, 인구과잉, 마약 중독, 빈곤, 굶주림 등등의 “위해 요소”들도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심장병, 정신 질환 및 암 등과 같은 공업화한 생활에서 받는 압력과 관련된 질병들도 그렇다.

‘뮬러’ 교수는 그러한 갖가지 재난에 대한 한가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인 인간 가치를 그렇게 무시 내지 경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분명하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즉 그것은 개인 이득을 위하여 공업화를 초래한 오만한 개인 자유 기업에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 혁명의 “영웅들”이 “대 규모의 착취, 약탈, 사기 등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이기적으로 이윤과 세력을 추구하게 되어 공업적인 생활 양식이 병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발명만 추구하였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계나 공정이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는 듯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하퍼스」 잡지의 기고가인 ‘죤 피셔’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학은 쓸모가 조금밖에 없고 신뢰성이 박약한 시종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것이 어떤 한가지 문제를 해결했을 때 두가지의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으며 그 부작용은 보통 예견하기 어렵다. ···

“현대 공학의 놀라운 작품들을 보면 어느 것이나 뜻하지 않고 예상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종종 치명적인 부산물들을 보게 된다.

“더우기 공학은 달의 암석 채취라든가 초음속 수송기의 건조 등 사실상 아무에게도 필요치 않은 것들에 가장 잘 사용된다. 그것을 중대한 문제에 적용하려고 하면 언제나 그것은 무력하게 되고 만다.”

더욱 좋지 않은 것으로, 공학이 만들어 낸 문제들은 지금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뉴우요오크 타임즈」지는 여러 과학자들이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보도하였다. “공학의 급속적인 발전으로 인한 압력과 긴장감은 신체 및 정신적인 인간의 적응 능력을 압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생존 자체까지 위험하게 하고 있다.”

과감한 변화가 필요함

해가 거듭할 수록 악화되어 가는 이 엄청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간의 전망에 대한 연구」라는 책에서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장기적인 해결책으로서 생명에 해를 끼치는 기술, 적합하지 못한 생활 방식, 공업 문명자체의 위험한 심리 상태등을 점진적으로 버려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하려면 어떠한 일이 수반되어야 하는가? ‘하일브로너’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생산 방식을 철저히 재조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대한 공장, 커다란 사무실 그리고 아마도 복잡한 도시의 종말을 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정신 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 공업 사회의 질병은 “과거 6,000년 동안 존재해 온 전체 제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로 바꾸어 질 수 있을 때만” 없앨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고딕체는 우리가 부가한 것임)

당신은 인간 스스로가 “전체 제도”를 바꾸는 그러한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생각되는가? 지금까지 그렇게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자기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을 보면 절실히 요망되는 그런 과감한 변화가 사람의 의지로는 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말은 그러한 변화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과감한 변화, 즉 인류에게 평화와 안전과 행복을 주기 위해 필요한 전혀 새로운 생활 양식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한 과감한 변화를 누가 이룩할 것인가? 인류의 창조주인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며 현존하는 사물의 제도를 “쳐서 멸”할 것을 보증하셨다.—계시 11:18; 다니엘 2:44.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사물의 제도는 온 지구를 위한 한 정부 즉 하늘로부터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대치될 것이다. (마태 6:10)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 회복된 지구에서는 기계가 생활의 질을 결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기계들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유익을 줄 것이다. 또한 인간은 원래 공원과 같은 낙원에 살도록 되었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강철, 공해 및 소음보다는 자연적인 환경 가운데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낙원의 회복을 약속하셨다.—누가 23:43.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탐욕적인 공업 문명이 빨리 끝나고 인류의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줄 경건한 제도가 회복될 것을 바라고 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