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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톤 댐’이 터지던 날
  • 깨어라!—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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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것이 물속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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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7
깨77 2/8 8-11면

‘테톤 댐’이 터지던 날

잔잔한 강물에서 잠시 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90‘미터’ 높이로 산처럼 밀려오는 물을 피해 절벽을 기어올라 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지난 6월 5일 ‘테톤’ 강에서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테톤’ 호수의 ‘댐’이 터졌을 때 있었던 일은 ‘소설 이상 가는 실화’였다. 예를 들어 그 고기잡이 하던 사람들의 체험담을 들어 보자.

청명한 날씨에 토요일이어서 ‘테톤’ 강에서 고기 잡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아이다호’ 주에서 가장 송어가 많은 곳”으로 생각한다. 오전 11시경에 그 일행 다섯명은 ‘테톤 댐’ 바로 아래에 고무 ‘보우트’를 띄웠다. 그들은 거기에서 하류 쪽으로 조금 내려와 닻을 내렸다.

이미 “물이 우유빛으로 변”한 것을 관찰했는데 갑자기 산 꼭대기에서 어떤 남자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댐’에서 물이 조금씩 새고” 있기 때문에 물이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였다. 그래서 그 고기잡이하던 사람들은 더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협곡의 꼭대기에서 친척 한 사람이 권총을 발사하며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 대는 것을 보고 그들은 깜짝 놀랐다.

또한 물이 갑자기 불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되었음을 직감하였다. 그 일행 중의 한 부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강변을 향해 미친 듯이 노를 저었고 사력을 다해 절벽을 기어올라 갔읍니다. 나는 뒤를 돌아다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우트’를 버리라고 하였읍니다. 높은 지점에 올라 잠간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보니 직경 15‘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철제 용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 내려가고 있었읍니다. 그 용기는 밀려오는 물에 부딪혀 ‘코르크’ 마개처럼 떠내려 갔읍니다. 나는 정신없이 절벽을 기어 올라 갔읍니다!’

그 일행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엄청난 물이 깊이 90‘미터’ 정도 되는 그 협곡을 완전히 메웠다.

‘테톤’ 홍수라고 할 수 있는 그 엄청난 물은 계속 빠른 속도로 흘러내렸다. 한 젊은 낚싯군이 물에 빠져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거센 물결에 휩싸였으나 용케도 8‘킬로미터’ 정도를 밀려 내려오다 한 나무를 붙잡았다. 그는 몇 시간 후 그 나무에서 구출되었다.

많은 시계들은 전력이 끊어진 오전 11:57을 가리킨 채 정지해 있었다. ‘아이다호’ 주 그 지방에 사는 십만명의 주민 대부분은 시간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 홍수로 인해 11명이 사망하였고 수천명이 집을 잃었다. 재산상의 손해는 4억 ‘달러’ 내지 1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피해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홍수가 다섯 갈래로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수로가 급하게 꺾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그 물은 강 줄기를 따라 돌지 않고 그 일부가 강둑을 “뛰어 넘어” 계속 서쪽으로 향하였다. 그 물은 이곳 산간 지방의 작은 골짜기에 넘쳐 흘렀고 결국 다섯 갈래로 나뉘었다. 물론 커다란 흐름은 (‘테톤’ 강이 흘러 들어가는) ‘스네이크’ 강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협곡에서 더 넓은 골짜기로 몰려든 물은 어떠 했는가? 여호와의 증인 회중 장로인 ‘다렐 싱글톤’은 ‘댐’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농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들려 주었다.

“모든 것이 물속에 잠겼다”

“작은 ‘트럭’에 몇 가지 기구를 싣고 있는데 ‘렉스버어그’에 사는 딸이 전화를 걸어 왔읍니다. 딸의 얘기인즉 ‘테톤 댐’이 터졌으니 모두 대피하라고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딸에게 아마 ‘댐’이 넘쳐서 약간 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 너무 염려를 한 것일거라고 하였읍니다. 딸은 그게 아니라 훨씬 심각하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대피하겠으니 딸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리 염려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차를 몰고 ‘댐’으로 직접 가보기로 하였읍니다. 도착해보니 겁에 질린 사람들이 정신없이 도망하고 있었읍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읍니다. 아래를 보니 협곡에서 엄청나게 많은 흙탕물이 골짜기로 몰려들어 오고 있었읍니다. 물가에서는 먼지 구름이 일고 있었읍니다. 그 물이 어떤 물체에 닿을 때는 그 물체들이 폭발되는 듯하였읍니다.

“우리는 농장으로 돌아 오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경고해 주었읍니다. 어떤 가족은 떠나기를 주저했으나 전선줄이 밑으로 처지는 것을 보고는 피신하였읍니다. 우리 집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높이 9‘미터’ 이상 되는 물이 우리 주위를 덮쳤읍니다. 모든 것이 물속에 잠겼읍니다. 너무나 엄청나서 속수무책이었읍니다. 모든 것이 다 파괴되었읍니다.

“오후 5시경 우리는 걸어서 농장으로 돌아왔읍니다. 그 홍수로 우리의 집은 140‘미터’나 밀려가서 파괴되었읍니다. 우리의 다른 모든 건물들과 농장 시설도 다 망가졌읍니다. ‘보우트’와 작은 ‘트럭’은 나란히 나무 위에 얹혀 있었읍니다.”

맨 처음 홍수를 맞은 그곳 ‘윌포드’ 지역의 주민 대부분은 홍수가 있기 겨우 10분 전에야 경고를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물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서야 사태를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수목이 부러지는 무서운 음향 때문에 홍수가 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부인은 “벽돌 집이 장난감처럼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목격하였다.

즉시 대피하라!

홍수가 휩쓸고 지나갈 바로 그곳에 작은 부락들이 줄지어 있었다. ‘슈가’ 시가 그 첫 도시였다. 폭이 10‘킬로미터’로 늘어난 홍수가 그 도시를 덮쳤을 때는 다행히 모두가 대피한 후였다. 뿌리채 뽑힌 나무, 목재, 원통, 자동차나 농장 기구들이 건물에 충돌하였다.

서글픈 일이지만 짐승의 시체도 많이 떠내려 왔다. 그 계곡에는 소떼가 수천 마리나 살고 있었다. 많은 경우 시간이 없어서 그 주인들은 우리의 문을 열어 놓고 “천운”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난 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였다.

시립 경찰관들과 주립 경찰들이 홍수 전에 ‘즉시 대피하라!’는 경고를 하였다. 그 다음 도시인 ‘렉스버어그’에서는 아슬아슬하게 피난을 하였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건물들의 지붕까지 물이 잠겼다.

급류가 남쪽으로 휩쓸고 내려감에 따라 조그마한 마을들은 대피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관리들이 밀려오는 물의 속도를 예상 못하였기 때문에 많은 경우 발표된 홍수 예정 시간이 부정확하였다. 전기가 끊겼고 교량이 씻겨 나갔으므로 교통과 통신이 두절되었다.

몇몇 도시들의 저항

홍수 진행로 상의 도시들 중에서는 ‘아이다호 폴스’가 가장 큰 도시였다. 수백명이 비상 작업에 자원하였다. 청명한 날씨에 바쁘게 모래 가마니로 ‘스네이크’ 강둑을 막고 있는 장면은 이색적이었다. 홍수가 밀어 닥친 일요일에는 그 물의 높이가 6‘미터’ 정도 되었다. 그러나 교량은 하나도 파괴되지 않았으며 홍수는 제어되었다. 그 전날 밤낮 활동했던 자원자들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는 그렇지 못했다. 몇몇 도시에서 자원자들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물이 계속 밀려와서 결국 부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댐’에서 약 1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물결은 맹렬하였다.

결국 월요일 저녁부터는 물이 줄기 시작하였다. ‘테톤’ 홍수는 지나갔다. 홍수를 당한 도시들은 문자 그대로 완전 폐허였다. 많은 사람들은 홍수가 밤이 아니라 대낮에 일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밤이었다면 많은 사람이 졸지에 홍수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사소한 발단

제방에 물이 새는 것을 보자 즉시 손가락으로 그 구멍을 틀어막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몇 시간 동안 견딘 ‘네델란드’ 소년에 관하여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는 “영웅”이라고 불리웠고 그의 공로로 인근 도시가 구출되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테톤 댐’의 비극이 일어난 것도 새는 물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도움이 너무 늦게 베풀어졌다.

그 ‘댐’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그 공사비는 5천 5백만 ‘달러’로 알려졌다. 1976년 6월 5일 오전 8시경 작업반이 현장에 소집되었다. 며칠 동안 계속 물이 새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 근무자들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그 구멍으로 흙탕물이 흘러나왔고 또 다른 곳에서도 물이 샜다. ‘댐’에 처음으로 물을 채웠기 때문에 물이 샌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다.

‘불도저’ 두 대를 사용하여 물이 많이 새는 ‘댐’ 구멍에 돌을 밀어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때에는 이미 ‘댐’의 물 구멍에 심한 소용돌이가 생겼다. 그것은 물이 강하게 흘러 나감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큰 ‘불도저’가 ‘댐’의 흙에 틀어박히자 두 운전사는 두 ‘불도저’를 쇠사슬로 매어 두 대를 다 끌어 올리려고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감독은, 그러한 노력을 중단하고 그 ‘불도저’를 그대로 둔 채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구멍에서는 물이 훨씬 더 많이 흘러 나오고 물로 인해 ‘댐’ 구멍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대형 ‘불도저’들이 ‘댐’의 꼭대기로 이동하여 소용돌이를 향해 둥근 돌들을 밀어 넣었다. 그래도 물은 더욱 많이 새 나왔으며 쇠사슬로 연결한 그 ‘불도저’ 두 대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즉시 모든 인원과 장비들을 ‘댐’에서 철수시켰다. 물길을 잡으려는 투쟁에서 실패한 것이다.

목격 증인은 다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이렇게 말하였다. “홍수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그렇게 엄청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읍니다. 마치 바다가 쏟아지는 것 같았읍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었읍니다. 한 덩어리[‘댐’ 벽의 거대한 부분]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읍니다. 진흙 폭탄이었읍니다.”

그러나 건설 기술이 극도로 발전되었는데 어떻게 구멍이 생겨났는가? 5주 후 1976년 7월 15일자 「엔지니어링 뉴우스 레코오드」지의 보도에 의하면 일단의 전문가들은 “높이 93‘미터’의 ‘댐’이 무너지게 된 원인으로서 가능성 있는 다섯 가지 점을 제시하였다.” 가장 타당성이 있는 설명은 소위 “그라우트 커튼”이라고 하는 것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이론이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댐’의 바닥이나 양쪽 끝에 닿는 암석이 다공성이라고 생각될 때는 그 암석에 일련의 커다란 구멍들을 뚫고 거기에 ‘콘크리이트’를 주입한다. 그 ‘콘크리이트’ 곧 “커튼”은 ‘댐’ 아래 혹은 주변으로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해 준다. ‘테톤 댐’의 경우에는 분명히 그 ‘커튼’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협곡벽과 연결된 ‘댐’의 한쪽 끝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 것 같다. 일단 물이 ‘댐’의 끝 부분을 침식하기 시작하면 즉시 “호수” 즉 물의 압력으로 ‘댐’의 약한 부분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반응과 회고

그 홍수 중에 이재민을 도우려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썼다. 미국 서부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반응은 “압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홍수 피해자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보니 식품, 의류, 침구 등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고 운전대에는 두 형제(동료 증인들)가 앉아서 자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밤새 차를 몰고 왔던 것입니다.”

사실상 길이 14‘미터’되는 대형차가 ‘유타’ 주에서 왔고 ‘트레일러’에 실린 또 다른 큰 짐이 ‘캘리포니아’ 주로부터 왔다. 그 물건을 받은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읍니다. 우리는 형제들이 그 물품을 필요한 사람 아무에게나 주도록 보낸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와 같은 환경에 처한 이웃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 썼읍니다.” 얼마 있지 않아 증인들의 구제 활동을 감독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3일간의 시련기를 돌이켜 보건데 놀라운 대조를 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협조하였고 서로 친절을 나타내었다. 자기의 생명을 무릅쓰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구출한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은 얼마 있지 않아 도둑들 때문에 골치를 앓게 되었다. 주립 경찰이 그 재해 지역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무정한 절도 행위는 이재민들의 ‘이웃 사람’이 자행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재산을 잃은 데 대한 태도도 역시 대조적이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은 무서운 경험이었읍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사하여 정말 기쁩니다. 그러한 사건을 통해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물질적인 소유가 아님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테톤’ 홍수가 어떤 교훈을 주었든지간에 그 홍수는 땅과 생존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기고.

[9면 삽화]

미 내무성 간척국 제공

‘댐’이 터져서 생긴 거대한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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