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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78 09월호 17-19면
  • 선인장의 고장 ‘브라질’의 건조한 땅에서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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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인장의 고장 ‘브라질’의 건조한 땅에서의 생존
  • 깨어라!—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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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8
깨78 09월호 17-19면

선인장의 고장 ‘브라질’의 건조한 땅에서의 생존

「깨어라!」 ‘브라질’ 통신원 기

지도에서, 약 1,500,000평방 ‘킬로미터’ 되는 회색으로 나타나 있는 지역을 보라. 이곳은 ‘브라질’의 북동부, 타는 듯한 더위와 주기적인 한발 그리고 특이한 생활 방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건조한 계절에 생존해 나아가는 것만도 극적인 일이다!

좀더 가까이 가서 살펴 보자. 북쪽과 동쪽이 대서양에 잠겨 있는 이 지역에는 일년 내내 짓푸른 하늘과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아름다운 야자 나무가 줄줄이 서 있는 해변이 있어, ‘코스타도솔’(태양의 해변)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린다. 인구의 대부분은 해변에 살고 있다. 주민의 일반적인 용모는 이곳 특유의 기원 즉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친절하고, 솜씨좋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러나 해안을 뒤로 하고 내륙쪽으로 들어가 보자.

‘카아팅가스’—선인장이 자라는, 한발이 심한 건조한 곳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점차적으로 식물들의 모습이 바뀐다. 나무들은 듬성듬성 나 있고, 발육이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갑자기 우리는 ‘카아팅가’(“하얀 숲” 즉 빈약한 숲이라는 뜻)에 이른다. 이 이름은 토민들이 그 특이한 지역에 붙인 이름인데, 여기서는 건조한 계절이 지독히 그리고 오래 계속된다. 이 ‘카아팅가스’는 하나로 이어진 커다란 지역이 아니고 북동쪽에 산재해 있는 크고 작은 고원들이다.

처음에, 우리는 특히 이 땅에 푸르고 무성해 보이는 우기(雨期)에 식물군을 보고 정말 이곳이 그러한 곳인가 하는 의심이 생길 것이다. 가시달린 가지들이 뻗친 ‘만다카루’ 선인장(‘세레우스 자마카루’)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높이가 3‘미터’에 이른다. ‘키케키케’ 선인장은 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키가 조금 작은데, 때로는 마치 장식용 촛대 모양을 하고 있다. 가시달린 ‘메스키트’도 있는데, 이것은 뚫을 수 없는 양산 모양을 하고 있는 잔잔한 잎사귀들이 나 있는 나무로서, 축축한 그 나무 그늘을 드리워 식물들이 자라게 한다. ‘주주베’ 나무는 10 내지 15‘미터’ 높이에 커다란 상록의 관을 펼치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북채나무(‘카시아 피스툴라’)인데, 이 이름은 그 나무의 씨 꼬투리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봄에는 커다랗고 노란 꽃이 조밀한 잎에 다양한 색깔과 향기를 더해 준다. 또, 꽃이 피는 ‘미모사’와 ‘브라우나’ 나무가 있다. ‘파우-브란코’(‘아욱셈마 글라지오비아나’, ‘폴레모니알레스’의 일종)는 야생 벌떼를 모여들게 하는 향기짙은 흰 꽃을 피우는, 커다란 신부의 ‘베일’ 같이 보인다.

기름짜는 열매를 맺는 ‘오이티시카’ 나무가 둘레 약 15‘미터’의 둥근 관을 쓰고 견고하게 서 있다. 열대 참나무인 분홍빛깔의 꽃을 피우는 ‘움부-라나’와 언제나 눈에 띄는 ‘카르나우바’ 야자가 관목 숲과 가시덤불 근처에 점점이 나 있다. 여기에는 또 ‘크라우톤’(파두[巴豆]), ‘유럽’ 산 모과나무, 후추나무, 가시달린 잎사귀와 빽빽히 침이 돋아있는 꽃들이 피는 ‘브로멜리아드’ 등이 있다. 이런 식물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내구성이 강하고, 우기에는 색깔이 다채롭다. 그리고 몇개월이고 가뭄을 견딜 수 있다. 잎사귀를 전부 잃고 죽은 것처럼 보일 것이지만, 그들은 우기가 되면 곧 생기를 되찾아 열대의 다채로움을 발산한다.

나무들과 관목들만이 생물들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여러 가지 야생 동물들이 활기와 다양성을 더해 준다. 교활한 여우와 숨어다니는 ‘재규어’가 이곳에 있다. 2‘미터’나 되는 도마뱀, ‘테주’(도마뱀의 일종), ‘아마딜로스’, 주머니 쥐 및 바위틈에 사는 천축서 등이 눈에 띈다. 하늘 높이 떠서 빙빙돌고 있는 매서운 매도 있고, 지상 가까이에는 야생 비둘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계절적으로 토박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 나아갈 수 있는가? 소떼를 키우는 일이 있다. 그렇다. 계절적으로 생기는 목초지에는 커다란 축우 목장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월부터 3월까지 오는 비로는 좋은 목초지를 이루기에 불충분하다. 그 정도의 비로는 겨우 선인장과 덤불이 자랄 정도이며, 그러한 식물은 배가 고픈 소떼들에 의해, 그리고 일부는 사정없이 내려쬐는 태양에 의해 곧 삼켜지고 만다.

건기(乾期)를 살아남는 일

5월 또는 6월만 돼도 ‘카아팅가’의 목초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소를 먹이는 사람은 이제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그는 이 오래 계속되어 오는 문제로 인해 당황하지 않으며, 소떼를 먹일 수 없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소떼에게 폐문”을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소 우리를 폐쇄시키고, 소떼들이 제 힘으로 살아가도록 풀어 놓아 준다.

사실상 버려진 이 소떼는 생존을 위한 고된 투쟁에 나선다. 처음에 그들은 낮은 가지들을 씹어 먹는다. 그 다음에는 조그마한 나무들의 껍질을 먹어댄다. 드디어는 허기를 채울 만한 것이 거의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서서히, 한 때는 아름다왔으나 무섭게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잎사귀들은 사라지고, 새들은 이주해 버리고, 먹을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어 겨우 연명하거나 죽는다. 계절적으로 생기는 작은 강들과 냇물들도 말라 버린다. 모든 식물들은 볼품 없는 갈색으로 변해 버린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시떨기가 나있는 황야 뿐이다. 뿌리를 거꾸로 씌워놓은 것 같은 이들 관목들과 나무들은 키가 평균 3‘미터’ 되는데 거의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엉켜 있다. 아무리 멀리 보아도 한심한 정경이다. 동물들의 체중은 격감된다. 그들은 물을 찾아 헤매지만, 발견되는 것은 지난번 빗물이 남아 관목 그늘 밑에 약간 고여 있는 웅덩이뿐이다.

‘바쿠에이로’—필요한 능숙한 돕는 자

‘바쿠에이로’(소 모는 사람 또는 ‘카우보이’)는 말수가 적고, 깡마른 체구에 허리가 약간 굽어 있다. 그의 눈은 피곤하게 보이고, 아무 야망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올 건기에 자기 구역에서 직면할 극심한 고달픔에 대비한다. 이제부터 그는 이상스러운 복장을 할 것이다. 가죽 ‘자케트’를 깡마른 어깨에 걸친다. 흔히 ‘재규어’ 가죽으로 만든 흉배를 차는데, 이것은 목에서 허리까지 내려온다. 뻣뻣한 가죽 각반을 다리에 댄다. 우악스럽게 만든 ‘샌들’ 모양의 발싸개로 발을 덮는다.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원추형으로 생긴 챙달린 모자를 쓰면 완전한 의장을 갖춘 모습이 된다.

이렇게 입어야만 ‘카아팅가’의 관목 사이로 다닐 수가 있다. 그는 병든 짐승, 상처난 것, 또는 야위어 빠진 것, 걷지 못하는 것 등을 찾아낸다. 목동처럼 그는 그들을 일시적으로 우리 안으로 끌어온다. 최후 수단으로서 그 동물들에게 인근에 있는 ‘메스키트’ 숲에서 잘라온 나무 가지들을 먹이로 준다. 또는 그들에게 물이 많은 선인장인 신맛이 나는 ‘만다카루’나 ‘키케-키케’를 준다. ‘카우보이’는 우선 이들을 불에 거슬려 가시를 제거한다. 극도로 가물 때에는 이러한 형편없는 것도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소떼를 데려 옴

12월경부터 우기가 다시오고, 그와 더불어 무시무시한 가뭄이 물러간다. 대지와 나무들이 놀랍게 다시 깨어난다. 이제 싹이 돋아나는 관목 숲에서 큰 짐승들을 붙잡아다 우리에 가두고 어떤 것들은 도살장으로 보낸다. 또 다른 것들은 일년이나 또는 2년 동안 들에서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둔다.

가죽 갑옷을 입어서 ‘카우보이’라기보다 중세기의 기사처럼 보이는 ‘바쿠에이로’는 조심스럽게 말을 몰고 다닌다. 이전의 경험을 통하여 그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틀림없이 이것은, 그 지방에서 일컬어지는 “야성의 피”인 튼튼한 ‘인디언’ 혈통을 타고난 것에도 일부 기인한다.

짐승들을 잡는 일은 정말로 구경거리이다. 보라! 저기 황소가 한 마리 있다. 그렇다. 말도 그 소를 발견하였다. ‘카우보이’는 자기의 훈련받은 말이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 머리를 말의 갈기에 바짝대고 준비를 한다. 그 다음에는 미친 듯이 달려 간다!

그 황소는 야생 상태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말은 그 뒤를 바짝 따라서 자기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을 개의치 않고 덤불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데, 말탄 사람은 자기 말 잔등에 꼭 달라붙어 자기의 가죽 갑옷을 때리는 나무가지의 홍수를 피하려고 애를 쓴다. 말은 그 황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다!

공터가 보인다. 도망하는 짐승을 잡을 기회가 온 것이다! ‘카우보이’가 탄 말이 갑자기 급속도로 달려 나간다. ‘카우보이’는 오른 발로 등자를 딛고 한손으로는 말의 갈기를 잡고,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소의 꼬리를 잡는다. 적시에 홱 옆으로 잡아채면, 소는 쿵하고 땅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소가 쓰러지는 순간 ‘카우보이’는 그 위로 뛰어 내린다. 소의 머리를 옆으로 비틀어 뿔을 땅에 박는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동작은 그 소에게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카우보이’는 자기 가방에서 소의 눈을 가리는 가죽 ‘마스크’와 그 짐승의 앞발을 묶을 족쇄(조그마한 구멍이 뚫린 한쌍의 나무조각)를 꺼낸다. 그리하여 눈이 가려지고 발이 묶인 이 소는 원래의 우리로 옮겨질 때까지 꼼짝없이 가만히 있게 된다.

이제 ‘카우보이’는 다시 자기 가방께로 가서 노란 각설탕 한 덩이를 먹으며, 시장기와 갈증을 달래는 한편, 눈은 계속 ‘카아팅가’를 살핀다. ‘바쿠에이로’는 소떼를 함께 모을 때까지 관목 지대에 머물 것이다. 그 후에야 비로소 그는 간소하게 지은 초가 움막의 가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말타기 대회와 민속 음악

우기가 끝날 때쯤, 전통적인 북동부의 말타기 대회가 열린다. 이것의 기원은 ‘스페인’이지만, 이곳의 지방색이 가미되었다. 이것은 ‘바쿠에이로’의 일을 다시 시작하는 축제이지만, 즐겁고, 대중의 성원이 대단하다.

각지에서 무수한 소몰이꾼들이 말을 타고 몰려든다. 번쩍번쩍하는 안장, 깨끗한 옷, 그리고 솔질을 잘한 가죽 ‘자케트’를 입은 이들은 평소에 황야에서만 보여 주는 묘기를 펼친다.

‘카우보이’와 함께 ‘기타아’를 멘 벽지의 ‘아마튜어’ “가수들”이 따라온다. 그들은 사람들과 흥겨움을 나누며, 축제와 말타기 대회서 인기를 끈다. 또한 ‘페우일레토니스트’ 즉 벽촌의 소설가가 있는데, 그는 벽촌의 언어로 쓴 자기의 최신작을 찬양하며,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을 들려 준다. 한동안 모든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고생을 잊어 버린다.

‘카우보이’와 종교

이 지역에 퍼져 있는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지만 실상 인기있는 종교는 신비주의와 미신의 혼합물이다. 길에서는 이상한 모습, 수도승의 옷을 입은 사람, 조잡한 종교적 관습 등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이 지역에서 흔히 눈에 뜨인다. 그는 수도승과 같은 복장을 하였지만, 그의 수도 서원은 단지 일시적인 것이다. 종종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교회까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거나, 종교적인 노래와 시를 읊으며 순례자와 같이 걷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교회당 앞에 거대한 나무 십자가에 자신을 매달게 함으로써 “십자가의 고행”을 흉내낸다.

일년에 한번씩 수백명의 ‘카우보이’들이 죽은 동료를 기념하면서 “‘카우보이’ 찬미 ‘미사’”를 기념하기 위해 함께 모인다. 그들은 임시로 들에 마련해 놓은 제단 앞에서, 먼저 ‘카우보이’ 사제의 설교를 듣는다. 그 다음, 말을 타고 제물을 바치기 위해 줄을 지어 제단을 지나간다. 성찬 배수를 위하여, 그들 모두는 땅바닥에 앉아 자기들의 일상 음식 즉 말린 고기, 각설탕, ‘카사아버’ 가루 등을 함께 나눈다.

영적 우물이 열리다

‘브라질’의 건조한 이곳 북동부에서의 사람들의 생활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이곳 벽지의 경제적인 모습도 서서히 변모해 가고 있다. 마을들에서는 근로 조건들이 나아졌다. 최근 몇년 동안 수백개의 저수지가 축조되었으며, ‘오로스’에 있는 것은 20억 입방 ‘미터’의 물을 수용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에 만들어진 ‘댐’은 340억 입방 ‘미터’의 물을 저수할 수 있는 큰 호수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 지역에 크게 퍼지고 있다. 주기적으로 한발의 피해가 가장 심한 이 지역에서도 하나님의 진리의 풍부한 영적인 물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목을 축이기 위해 흘러 넘치고 있다. 많은 수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외딴 마을들과 격리되어 있는 농장들을 찾아가 위안이 되는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성공적으로 전해 주었다.—마태 24:14; 계시 22:17.

문맹과 미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인 갈증을 풀기를 원한다. 몇개의 그리스도인 회중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 “물이 솟”아 사막을 적실 때가 가까왔다는 소식을 부지런히 전해주고 있다. (이사야 35:6, 7) 매혹적이기는 하나 고생스러운 ‘브라질’ 북동부의 ‘카아팅가스’도 앞으로 온 땅이 낙원이 될 때 그 일부가 되어 생존을 위한 투쟁이 더는 없는 지역이 될 것이다.

[17면 지도와 삽화]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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