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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9
깨79 06월호 20-23면

무역에 편리한 인공 지름길

「깨어라!」 ‘캐나다’ 통신원 기

그것은 전쟁의 승리, 영토의 획득 혹은 사원의 건축과 더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이것이 운하 건설을 평가해 온 말이다.

당신은 놀랐는가? 그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왜냐 하면 가장 간단한 운하로서 그것은 물을 끌어들이려고 단지 도랑 한개를 파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 그것은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거대한 운하들이 “세기의 경이” 또는 “세계 경이 중 하나”라고 환영받아 왔다. 그것은 이들 수로들이 인간 업적에 대한 기념비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위하여 이룬 업적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 지구의 수로들을 감사해 왔으며, 수로들을 수송이나 무역 그리고 오락에 사용해 왔다. 그러나 강들은 항상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너무 거칠어서 배들이 다닐 수 없다. 대양들이 대륙들을 갈라놓았기 때문에 돌아서 항해하는 데 여러 날이 걸린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강에 있는 장애물들 주위에 우회로를 만들어서 육지의 좁은 어귀를 통과하는 지름길을 팠다. 그리하여 이러한 운하들은 지구의 천연 수로들을 보충해 준다.

고대 운하들

기록상 선박이 다닐 수 있는 최초의 운하는 통용 기원전 두번째 천년기에 ‘이집트’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 수로는 지금의 ‘수에즈’ 운하와 거의 동일한 항로였다.

고대 ‘페니키아’인, ‘앗시리아’인, ‘수메리아’인, 그리고 ‘이집트’인들 모두가 정교한 운하 시설들을 만들어 교통 기관과 수송 기관으로 사용하였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얕은 광주리처럼 생긴 배와 뗏목이 바다를 왕래하면서 물건들을 운반하였다. 성서에 나오는 ‘그발’ 강과 ‘아하와’ 강은 운하였을 것이다.—에스겔 1:1; 에스라 8:21.

그러나, 우리는 운하 건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혁신으로 고대 중국을 살펴보아야 한다. 통용 기원 983년에 대운하 지구에 수송을 담당한 부감독관인 ‘치히아오 웨이요’가 최초의 수갑식 운하를 고안해 냈다고 한다.

갑문(閘門)

갑문이란 한 수면에서 다른 수면으로 배를 올리거나 내리는 운하 시설로 물을 사용하는 일종의 수력 승강기이다. 수갑식 운하가 그 한 종류인데 이것은 각 끝에 문이 달려 있고, 운하의 윗 수면까지 물을 채우거나 운하의 아랫 수면까지 물을 빼내는 개폐식 장치가 되어 있다. 기원 1373년 ‘네델란드’의 ‘브리스비크’에 세워진 것이 아마 ‘유럽’ 운하에서 최초의 수갑식 운하일 것이다.

통용 기원 1485년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형태로서 전후 개폐 자동식 혹은 연귀식(燕口式) 문을 고안해 냄으로써 기본적 갑문 설계에 마무리를 지었다. 문이 닫힐 때 그 두개의 문짝은 문 끝이 각을 이루어 아래로 흐르는 물은 그 문짝을 더 탄탄하게 결합시킨다.

운하 건설자들은 새로운 갑문 설계로 정상의 한쪽 면으로는 선박들을 올릴 수 있고 다른 한쪽 면으로는 내릴 수 있어서 선박이 통행할 수 있는 강들을 따라 폭포나 급류를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운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운하 시대

‘유럽’의 최초의 주요 운하는 17세기 초에 ‘프랑스’에 건설되었다. 이 ‘브리아르’ 운하는 1642년에 개통되었다. 40개의 갑문이 있는 이 운하는 길이가 55‘킬로미터’이며 ‘르와르’ 강가 ‘브리아르’에서 39‘미터’ 올라와 있으며, 그로부터 81‘미터’ 내려와 결국 ‘센’ 강에 이르게 된다. 이 운하는 개조하여 현재 ‘센’ 강에서 ‘론’ 강에 이르는 운하 시설의 부분으로 사용된다.

잇따라 곧 다른 주요 운하들이 생겨났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241‘킬로미터’나 되는 ‘랑도크’(지금은 ‘두 미디’ 운하라고 함)가 1681년에 개통하였다. 이것은 거의 300년 전에 세워졌기 때문에 최초의 현대식 운하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수로 시설은 계속 확장되었으며, 특히 19세기 전반에 그러하였다. 새로운 갑문들과 운하들이 지름길을 열어 주었으며 산업 혁명과 더불어 수천 ‘마일’이나 되는 상호 연결 방법을 고안해서 오늘날 사용하고 있다.

좀 더 동쪽으로, ‘발트’ 해가 백해와 연결되고 ‘볼가’ 강을 거쳐 흑해와 ‘카스피’ 해와도 연결되는 운하들이 ‘러시아’에 건설되었다. 많은 지류를 끼고 있는 이 거대한 강은 약 11,585‘킬로미터’의 항행을 하게 했다.

영국에서는 1760년에서 1800년까지의 열광적인 운하 굴착 활동으로 수로가 약 3,862‘킬로미터’로 거의 두배나 되었다. 1772년중 이 사업의 발전상을 보려고 순시하던 미국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런던’에서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강이란 다스릴 수 없는 것이며, 구릉이 많은 나라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운하들은 조용하고 아주 제어하기 쉽다.”

영국 운하에 대한 ‘프랭클린’의 찬사가 미국이 운하를 건설하도록 자극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하 시대를 북미로 끌어오게 한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북미에는 고속도로가 거의 없었고, 그 도로들은 하나도 포장되지 않아 수로 여행이 편리하고 효율적이었다. 운하를 따라 짐배를 제방으로 끌어올리는 데 말 한마리가 50‘톤’의 화물을 나를 수 있는데, 이것은 말의 등에 지워 나를 수 있는 것의 약 400배나 된다!

미국과 영국 간의 1812년 전쟁에 뒤이어 운하를 건설하는 일이 서쪽으로 뻗치게 되었다. ‘센트로렌스’ 강을 따라 ‘온테리오’ 호에 이르는 수로는 이것이 대부분 ‘캐나다’에 의해서 통제되었기 때문에 미국에게는 불편하였다. 더우기, 아직까지 ‘나이애가라’ 폭포를 건너 ‘이리’ 호로 들어가는 수로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리’ 대운하가 굴착되었다. 82개의 갑문이 있는 이 운하는 길이가 584‘킬로미터’이며, ‘뉴우요오크’ 시 북쪽 ‘허드슨’ 강 유역의 ‘올바니’에서 ‘이리’ 호 유역에 있는 ‘버팔로’까지 이른다. 1825년에 개통한 ‘이리’ 운하는 처음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외국 무역에 있어서 ‘뉴우요오크’ 시는 ‘보올티모어’, ‘보스턴’ 그리고 ‘필라델피아’를 능가하였다. ‘이리’ 운하는 ‘뉴우요오크’를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로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1816년에는 미국에 운하들이 161‘킬로미터’였는데 그 나라의 수로들이 40,225‘킬로미터’까지 내륙 시설을 증가시켰으며 연안 수로를 개발시켰다. 증기 기관차의 등장으로 운하가 최고라고 하던 때는 끝났을지라도 아직도 미국내 화물 전체의 육분의 일이 수로로 운송되고 있다.

1812년 종전 후 ‘캐나다’는 ‘센트로렌스’와 미국 경계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 내륙 지방과 5대호에 이르는 안전한 항로를 원하였다. 그 주된 이유가 방어를 위한 목적이었으며 특히 ‘몬트리오올’에서 5대호 유역에 있는 ‘킹스턴’으로 공급품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정된 수로는 ‘센트로렌스’ 강의 한 지류인 ‘오타와’ 강 위쪽으로 ‘몬트리오올’ 서북쪽 약 193‘킬로미터’ 되는 곳까지인데, 이는 ‘리도우’ 강이 ‘몬트리오올’ 남쪽으로부터 합류하는 곳이다. 거기서부터 ‘온테리오’ 주 ‘킹스턴’까지 강과 호수를 따라 200‘킬로미터’에 이르는 ‘리도우’ 운하가 건설되었다. 이것이 1832년에 개통되었으며, 한 때는 ‘오타와’ 강과 더불어 5대호까지 가는 가장 좋은 증기선 항로였다. ‘리도우’ 운하와 ‘오타와’ 강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이 개척지가 지금은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로 알려져 있다. 그 운하가 아주 잘 건설되었기 때문에 본래의 갑문들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이전 여느 때보다도 여름마다 ‘리도우’ 시설은 수백명의 유람객들로 붐빈다.

‘온테리오’ 호를 건너 웅장한 ‘나이애가라’ 폭포가 5대호 중 나머지 4개호에 이르는 길을 차단시켰다. 1829년에 그 폭포를 지나 ‘이리’ 호에 이르는 높이 99‘미터’의 ‘웰런드’ 운하가 처음 개통되었다. 일세기 이상 지나 개량된 ‘웰런드’ 운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 수로로 ‘센트로렌스’와 5대호를 잇는 수로를 가능케 하였다.

거대한 선박 운하들

많은 선박 운하들이 있지만 그중 유명한 운하 세개를 살펴보자.

우선, ‘키일’ 운하 즉 ‘노르드 오스트시이-커낼’이 있는데 이것은 북해와 ‘발트’ 해를 갈라놓는 지협들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한 때 ‘바이킹’들이 육지를 가로질러 그들의 선박을 ‘로울러’로 끄는 데 말들을 사용하였었다. 독일은 그 나라의 증대하는 해군을 위한 주요 출구로 1895년에 바다 곳곳에 그 운하를 열었다. 98‘킬로미터’ 되는 운하가 곧 해군 기지로 커져,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운하 중 하나로, 유명한 두개의 운하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선박들을 취급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는 1869년에 “세계 연합을 위한 기증품”으로 개통되었다. 길이가 161‘킬로미터’를 넘는 이 운하가 “대운하”라고 불리우는 것은 적절하다. 왜냐 하면 지중해와 홍해는 높이가 같아서 그것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는 갑문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럽’과 인도간에 가장 긴 항해로부터 거의 6,436‘킬로미터’를 단축시켜 주는 것이다.

‘수에즈’ 운하는 평화시나 전쟁시나 모든 나라에게 개방되었는데 적대국들은 종종 협정을 무시했다. 1967년 6월부터 1974년까지 주로 ‘아랍’과 ‘이스라엘’의 싸움으로 이 운하가 폐쇄되었었다. 이제 다시 개통된 이 “대운하”는 ‘이집트’의 계획들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조만간 250,000‘톤’에 이르는 초대형 유조선이 통과하도록 확장될 것이다. 비록 다시 개통된 수로가 세계 무역과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을지라도 쾌속정이나 거대한 유조선들은 ‘수에즈’ 운하의 이전의 중요성을 경감시켜 주었다.

한편, ‘파나마’ 운하도 중요성을 잃어갔지만 정치적, 경제적 문제점이 여전히 남아 있다. 1914년에 폭이 80‘킬로미터’ 되는 ‘파나마’ 지협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로서 개통된 이 운하는 ‘뉴우요오크’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12,676‘킬로미터’를 단축시켜 준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들이 줄어들고 있다. 가장 큰 유조선을 비롯하여 세계의 3,000척이 넘는 상선들이 그 수로에 비해 너무 길거나 너무 넓은가 하면 만선일 경우 더 깊은 물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운하의 가까운 장래도 정치적, 경제적 및 군사적 문제로 인하여 찌푸려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959년에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 수로가 개통되었는데 지금까지 이 수로의 역사는 평화적이었다. 원양선들은 ‘센트로렌스’ 만을 지나 ‘센트로렌스’ 내륙 수로로 진입할 수가 있다. 그 다음에 원양선들은 ‘온테리오’ 호로, ‘웰런드’ 운하를 지나 ‘이리’ 호, ‘휴런’ 호, ‘미시간’ 호로 그리고는 ‘수우센트마리’ 갑문들을 지나 ‘슈피리어’ 호로 항행할 수 있다. 이 때 원양선들은 그 내륙 수로에 들어오면서부터 183‘미터’ 이상 올라왔는데, 이것은 60층 건물에 상당하는 높이이다! 이 선박들은 대서양에서 3,768‘킬로미터’나 떨어진 ‘슈피리어’ 호의 서쪽 끝에 위치한 ‘덜루드’까지 건너갈 수 있다. 또한, ‘파나마’ 운하와는 달리 이 내륙 수로의 교통량은 증가해 왔다. 벌써부터 1980년대 중반이 되기도 전에 이 내륙 수로의 수용량이 증가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운하들의 장래는 어떠한가?

이제는 운하들과 내륙 수로들이 무거운 물품을 운반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유일 수단은 아니지만 이것들은 이 점과 관련하여 계속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곡물, 광석, 석탄 및 목재와 같은 많은 물품들을 위하여는 내륙 수로 수송이 여전히 가장 경제적이다. 1960년대 이래로 북미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 모두가 내륙 수로 수송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음을 보아왔다. 운하들은 현대화되어 왔으며, 새로운 운하를 설립하려는 계획이 세워져 왔다.

그러나 일부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면, ‘유럽’에 계획된 두개의 새 운하는 ‘라인’ 강과 ‘다뉴브’ 강을 연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라인’ 강을 ‘센’ 강과 연결하려는 것이다. 서방측의 일부 관계자들은 ‘다뉴브’ 강이 공산권 상선들이 서부 ‘유럽’의 상업 수로로 들어올 수 있는 “침입로”를 열어 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고 있다.

인간 수로의 불균형에 대한 또 다른 염려는 자연 생물계에 일어날 수 있다. ‘이리’ 운하와 ‘웰런드’ 운하는 북대서양의 원 뱀장어와 같은 바다칠성장어가 5대호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는데, 그것은 이곳의 상업적으로 가치있는 고기떼가 죽게하였다. 또한, ‘센트로렌스’ 내륙 수로는 5대호와 더불어 산업 기능을 활발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그 강의 오염을 촉진시켜 왔다.

그렇다. 인공 수로들은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으며, 어떤 지역에 오염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강물을 다 바다로 흐르’게 하는 분께서는 오염을 그치게 하실 수 있으며, 생물계에 균형을 적절히 유지시킬 수 있다. (전도 1:7) 또한 운하 시설들이 뛰어나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특징은 지구의 천연 수로에 나타난 지혜와는 도저히 필적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우리 지구의 대양, 호수 그리고 강들을 보충할 수 있을 뿐이지 대용물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22면 도해]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상부 갑문

상부 ‘푸울’

조정 기점

갑실

하부 ‘푸울’

하부 갑문

발전소

[20면 삽화]

고대 ‘수메리아’

중국 대운하

‘뉴우요오크’의 ‘이리’ 운하

독일의 ‘키일’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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