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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아주의’는 우리 모두를 희생시킨다
  • 깨어라!—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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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9
깨79 08월호 30-32면

‘자아주의’는 우리 모두를 희생시킨다

자아제일주의라는 자기 중심적인 철학의 영향은 참으로 광범위하다. 불행하게도, 이 나쁜 나무가 맺는 열매로부터 우리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쇠퇴해 가는 강국인가? 이것은 미국의 한 주간 잡지에 제기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유발시킨 요인을 그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자아주의의 풍조가 널리 퍼져서, 도덕적으로 근면, 자제, 희생 등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실제로 침식되고 있다. 자아주의는 태만과 가족의 붕괴 및 기타 분열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교육과 직장내의 표준을 저하시켜, 세상에서의 미국의 경쟁적인 지위를 손상시켜 왔다.”—「U. S. 뉴우스 앤드 월드 리포오트」지 1978년 11월 27일.

자아제일주의자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신조인 ‘자기 나름대로 행동하라’를 노래부르듯 한다. ‘시카코’의 한 남자가 바로 그렇게 하여 남색을 하였으며, 그 결과 32명의 소년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는 그들을 살해하여 얼마는 강에 던지고, 다른 시체는 자기 집과 차고 아래 묻었다. 28명의 유해가 거기서 발견되었다. 1968년에 그는 16세 소년과의 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고 10년 징역을 언도받았었다. 그는 단지 18개월간 복역하였다. 만일 그가 전체 기간 복역했었더라면, 그 32명의 소년은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소위 희생없는 동성애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5년 전 ‘휴스톤’에서 27명의 젊은이들이 동성애의 희생자로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형틀고리에 끼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성애적인 생활 방식에 대해 개방적인 견해를 취하기 시작하고 있다. ‘캘리포오니아’ 주 상원의원인 ‘H. L. 리처드슨’은 다른 견해를 표명한다.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병아리’라고 부르는 것을 찾아다닌다. 병아리란 어리고 민감한 보통 십대초의 소년들로서, 이런 일만 없었더라면 그들이 결코 상상도 못했을 형태의 생활 방식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나는 이 젊은이들과 이들의 부모가 희생이 되었다고 단정한다.”

이러한 동성애적 생활 방식은 선한 일인가 혹은 악한 일인가? 하나님의 견해는 이렇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수치스러운 욕정 속에 버려두셨읍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여자는 여자로서의 자연스러운 것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바꾸고 남자들도 또한 그와 같이 여자와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버리고 서로 그 정욕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고 있읍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여 그 잘못에 대한 댓가를 스스로 받고 있읍니다. ··· 이런 일 하는 자들이 죽어 마땅[합니다].”—로마 1:26, 27, 32, 새번역.

‘리처어드슨’ 상원의원은 그의 특별한 보고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도 이런 부도덕에 의해 희생되는가도 보여 주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가 느슨할 때는 언제나 외설 영화나 매춘부들, 범죄율이 갑자기 치솟는다. ‘헐리우드’가 그 실예이다. 그 일부 지역이 이런 범죄의 소굴이 된 나머지, 법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실업가들이 그 사회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경우 재산 및 사업상의 재정적 손실은 막대할 수 있다.

“외설물은 성적 탈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심리학 교수인 ‘빅터 B. 클라인’ 박사는 말한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진술한다.

“외설물 옹호에 대한 일차 수정안이 주장되지 않았을 때, 그 옹호자들은 그것을 무해한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으며—치료 방법이 될 수도 있어—그것은 강간범과 성적 탈선 행위자들이 거리로 나가는 것을 막아 준다고 했다. ··· 심리학적, 의학적 문헌들은 성적 탈선이 실제적 노출 행위에서 뿐 아니라 외설물로도 역시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로 가득차 있다. ··· 그러므로 자유로운 사회라서 각 사람이 외설물 사용의 모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지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성적 탈선과 환상의 희생에 빠지게 될지 모를 사람의 권리 또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모든 일은 어떤 사람이 단지 외설물을 접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는 묵인하기에 너무 큰 해가 예상되는 경우에 어떤 제한을 가해야 한다. 내 생각엔 외설물에 대해서는 그 점이 너무 오래 간과된 것 같다. 나는 외설물의 판매와 전시가 ‘희생없는 범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아주 그릇되다고 본다. 과학적인 증거는 그 점을 강력히 말해 주고 있다.”

도덕적인 붕괴는 ‘섹스’ 이외의 많은 다른 영역에까지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 한 가지는 경찰 보호, 재판 제도, 교도소의 경비 부담을 위한 더 무거운 세금을 치르는 일이다. 자아주의의 나무 뿌리가 미치는 다른 분야는, 앞서 주간 잡지에서 미국의 쇠퇴해 가는 세력을 염려하여 언급하였듯이 다음과 같은 분야이다.

‘저하되는 직장내의 표준’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는 상품의 질이 저하된 것을 알며, 또 그 희생자들이다.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생산자들은 저질의 재료를 사용한다.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근로자들은 보다 적게 일하고 형편없는 근로 정신을 가지면서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한다. 이것 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욕심많은 도둑들이다.

“고용인의 도둑질에 대한 조사 책임자 한 사람은—야구가 아니라—도둑질을 미국의 국가적인 오락이라고 말한다.”라는 내용이 「사무직 계급의 범죄—들키지 않더라도 그것은 범죄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 잡지에 게재되었다. “미국의 가장 계략적이고 성공적인 사기꾼은 사무직 계급이다.”라는 말로 그 기사는 시작되어 이렇게 이어진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존경할 만하고, 근면하고, 교회에 다니며 ··· 비폭력적인 사람이지만, 동시에 범죄자이다. 그 범죄란, 바로 공장이나 거래처, 고객, 정부로부터 훔치는 것으로서—이 도둑질의 총액은 놀랍게도 1년에 자그만치 400억 ‘달러’ 이상이다. 이 수자는 재산을 터는 강력 범죄로 인한 연 총액의 10배에 해당된다.”—「U. S. 가톨릭」지 1979년 1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입술로는 황금률을 지지하지만, 그것을 실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또한 각 사람은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는 그 나름의 방법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상점의 현금 기록기에서 돈을 훔쳐라—물건 값에는 이미 이런 손실이 계산되어 있으니까.’ ‘직장에서 물건들을 몰래 빼내라—어쨌든 그들이 내게 충분히 지불하지 않으니까.’ ‘모두가 이렇게 하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뭔가?’ 정신 근로자나 육체 근로자 모두가 이것을 부가적 이익으로 생각한다. 고용주는 이것을 도둑질로 보지만, 대가를 치르는 쪽은 당신이나 나다. 우리가 희생자들인 것이다.

사업가들은 더 심하게 행하고 있으며, ‘뉴우요오크’ 지방 검사는 그 점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한다. “증권시장의 사기꾼들과 조작자들, 법인 조직의 역원들은 내부 정보로부터 불법적 이익을 취하고, 사업가들은 세무당국에 이익을 숨기며, 증권시장 투자가 대다수는 그들의 거래 이익에 대한 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외국 은행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웃의 강도나 절도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불평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누구를 고소할 수 있는가?

미국에서 단 1년에 700만건이 넘는 소송이 있었다고 한다. 소송들이 눈사태처럼 쇄도하여 법정을 뒤덮고 있다. 정당한 소송도 많지만, 하찮은 것도 많고, 탐욕스러운 것도 많다. 그것은 한 법학자가 말했듯이 ‘즉각적인 소송’ 유행병이다. 환자는 의사를 고소하고, 변호 의뢰인은 변호사를, 학생은 선생을, 노무자는 고용주를, 고객들은 제조업자를 고소하며, 사람들은 서로를 고소한다. 심지어 가정내까지 영향이 미친다.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를 법정으로 끌어온다. 또한 남편과 아내는 서로 고소한다. 형제들 끼리, 친구들 끼리 서로 고소한다.”라는 기사를 「U. S. 뉴우스 앤드 월드 리포오트」지 1978년 12월 4일호에서 보게 된다.

그 기사는 소송하려는 충동이 몰고간 몇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열거했다. 학생이었던 한 사람은 ‘미시건’ 대학에 손해 배상으로 853,000‘달러’를 청구했는데 “A” 학점을 기대했던 독일어에서 “D” 학점을 받은 결과 그가 겪은 정신적 고통이 그 이유 중 일부였다. 탈옥했던 한 죄수는 그가 다시 잡히자, 그를 탈출하도록 놔 두었다는 이유로 보안관과 간수에 대해 1백만 ‘달러’를 요청하는 소송을 걸었는데, 두번째 형 언도로 그의 형기가 더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한 어머니는 공용 수영장 안에서 자기 아기에게 젖먹이는 것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500,000‘달러’를 요구하며 한 공무원을 고소했다. 한 청년은 그의 부모가 그를 적절히 양육시켜 주지 않은 까닭에 지금 그가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350,000‘달러’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부모가 그들의 딸이 학교 배구 시합에서 공을 잡으려다가 손가락을 부러뜨린 데 대해 교사가 올바로 잡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다고 주장하여 소송을 걸었다.

전문가들은 “소송의 유령이 생산성과 창조력, 인간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고,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행동의 두려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소송은 사회의 결합에 도움이 되어 온 대인 관계와 제도를 침식해 갈 것으로 느껴진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대로 행동하고 싶어하면서 그 결과를 남들이 감당해 줄 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리석고 방탕한 것을 심기 원하면서, 그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들을 남들이 거두게 한다. 이것이 바로 ‘자아주의’의 요구이다. 모두가 그것의 희생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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