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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 파도”보다 더 좋은 것
  • 깨어라!—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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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2007
깨 07/12 22-25면

“멋진 파도”보다 더 좋은 것

칼 하인츠 슈워러의 체험기

나는 1952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플로리다 주 뉴스머나비치에서 자랐습니다. 십 대 시절부터 파도타기를 굉장히 좋아했으며 그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민간 항공기 조종사가 되려고 1970년에 플로리다 주 데이토나비치에 있는 엠브리-리들 항공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베트남 전쟁을 벌이고 있던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그 전쟁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젊은이들처럼 사회 전반에 환멸을 느낀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는 머리를 기르고 마약을 사용하며 히피족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수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전은 모험심 많고 미술과 사진에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검소하게 살면 1년에 6개월에서 8개월 동안은 플로리다 주에서 공사장 일을 하고 나머지는 수전과 함께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의 태평양 해변에서 캠핑을 하며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적인 갈구

아름다운 열대의 해변에서 수전은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고 나는 파도타기를 즐기면서 아무 걱정 없이 정말 즐겁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해가 가면서 그런 생활이 진정한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의 태평양 해변에서 지내던 1975년 중반부터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당시에 인기를 끌던 동양 종교와 철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내용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성서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성서가 진리의 기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환각 효과가 있는 버섯 몇 개를 주고 낡은 「킹 제임스 성경」 한 권을 구했습니다. 그 후 매일 오전에는 파도타기를 하고 오후에는 앉아서 성서를 읽었습니다. 읽기는 정말 열심히 읽었지만 이해가 되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성서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세요?”

1975년 8월 수전과 나는 코스타리카에서 미국으로 가던 중 엘살바도르에서 약을 사려고 약국에 들렀습니다. 약사와 말이 안 통해 쩔쩔매고 있는데 제니라는 미국인 소녀가 약을 사러 왔다가 우리를 도와 주었습니다. 당시 열여섯 살이던 제니는 스페인어를 아주 잘했습니다. 부모와 자신은 여호와의 증인인데 사람들에게 성서에 관해 알려 주기 위해 함께 엘살바도르로 이사 왔다고 제니는 말했습니다.

“혹시 성서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세요?” 하고 제니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 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히피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도 제니는 곧바로 우리를 집으로 초대하면서 자기 부모를 만나 보라고 권했습니다. 우리는 제니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오후 내내 제니의 부모인 조 트렘블리와 낸시 트렘블리에게 성서에 관해 질문을 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가지고 계신 성서로 이 구절을 펴서 읽어 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처럼 성서를 사용해서 대답해 주는 것을 보고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전과 내가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방을 쓸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수전과 제니는 늦게까지 자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아담에서부터 아마겟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녹색 성서

다음날 그 집을 떠나기 전에 조와 낸시는 우리에게 읽을거리를 잔뜩 주었습니다. 그중에는 「파수대」와 「깨어라!」 여러 부와 서적 몇 권, 성서 한 권이 있었습니다. 성서는 「신세계역 성경」이었는데, 당시에는 「신세계역」이 녹색 양장본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조는 또한 여호와의 증인이 모여 성서를 연구하는 곳인 왕국회관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나는 단순하게 지은 그 건물을 보면서, 성서에 관해 가르쳐 주는 것도 별로 없이 겉만 화려한 기독교 교회들하고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과테말라로 들어가기 위해 국경 검문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 관리들이 녹색 성서를 보고 의아해했습니다. 그 성서는 주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보는 것인데, 우리는 아무리 보아도 전혀 증인 같지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은 몇 분 만에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마약이나 밀수품이 있는지 보려고 차나 소지품을 뒤졌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 우리도 어리둥절했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녹색 성서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서와 성서 연구 보조서를 읽을수록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우리는 차를 타고 멕시코로 들어갔습니다. 푸에르토에스콘디도로 가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곳의 멋진 파도에 몸을 싣고 파도타기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렜습니다. 2주 동안 파도타기를 마음껏 즐긴 후 플로리다로 돌아가 여호와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 2주 동안 오전에는 파도타기를 즐기고 오후에는 해변에서 성서와 성서 연구 보조서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덟 살 된 한 여자 아이가 녹색 성서를 보더니 저녁때 어디를 함께 가자고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를 가자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녹색 성서와 관련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우리가 거절하는데도 그 아이는 계속 와서 같이 가자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에 결국 그 아이를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우리를 데려 간 곳은 바로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이었는데, 초가지붕을 얹은 작은 대나무 건물이었습니다. 회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오래된 친구에게 하듯 악수와 포옹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모두가 진지한 태도로 잘 듣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처럼 긴 금발 머리를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잘 들으라고 계속 주의를 주어야 했습니다. 어쨌든 여호와께서는 바로 그런 어린이들을 사용해서 우리가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하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려는 결심

나는 2주 동안 멋진 파도가 이는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즐긴 후 보드를 모두 팔았습니다. 그런 다음 수전과 함께 차를 타고 플로리다로 곧장 돌아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 연구를 하고 회중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기로 결심한 우리는 따로 살기로 했고 예전에 어울리던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나는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이발을 했으며, 수전은 단정한 옷을 몇 벌 샀습니다. 우리는 4개월 후 결혼식을 올렸고, 1976년 4월에 하느님에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도 목적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축복들에 대해 여호와께 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가서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려는 열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중 장로들은 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도와 주려면 먼저 자신의 영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장로들의 조언을 따랐으며, 먼저 파이오니아 즉 여호와의 증인의 전 시간 봉사자가 되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내는 1978년 1월에 파이오니아를 시작했습니다. 나도 파이오니아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교 등록금을 내느라 진 빚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간단한 해결책을 생각해 냈는데, 개인 파산 신청을 하면 홀가분하게 파이오니아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로들은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모든 일에서 정직”해야 한다는 성서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 13:18) 그래서 나는 계속 일을 하면서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1979년 9월에 마침내 아내와 함께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려는 목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일주일에 며칠만 일하면서 검소하게 생활했습니다.

베델 봉사

함께 파이오니아 봉사를 한 지 1년이 채 안 된 1980년 4월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건축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발표를 듣고 베델 봉사 신청서를 낸 적이 있었는데, 30일 이내로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로 오라는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물론 기뻤지만 파이오니아 봉사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져서 두 명의 장로와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받은 임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도와주었고 베델에 가서 1년 정도 일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것을 다 팔고 브루클린으로 갔습니다.

2년 동안 건축 일을 하다가 건축 설계 사무실로 가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구조 설계를 배웠습니다. 아내는 1년 정도 제본부에서 일하다가 그래픽부로 부서가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매년 결혼기념일이 되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우리의 상황과 욕구를 점검해 보면서 베델 봉사를 계속하려는 결심을 다져 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베델에서 여호와와 세계 전역에 있는 우리 형제들을 섬기면서 매우 의미 깊은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델 봉사를 계속하려는 결심을 더욱더 굳히게 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해서 브루클린에 있는 스페인어 회중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델 봉사를 하면서 외국어 봉사까지 하는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한번은 앞서 언급한 제니가 우리를 만나러 브루클린 베델로 와서 엘살바도르에서 어떻게 우리를 만나게 되었는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당시 제니는 성서 연구를 하다가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약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전에 가던 약국이 아니라 우리가 있었던 약국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국 지부에서의 봉사

1999년 어느 날 부서 감독자가 나에게 “오스트레일리아 지부로 가서 3개월 동안 지역 건축 기술 사무소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겠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안 되어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갔으며 그곳에서 3년 동안 봉사했습니다. 동양과 남태평양에 있는 여러 나라의 지부 시설을 설계하는 정말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2003년에 브루클린으로 돌아와 보니 깜짝 놀랄 일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외국에서 봉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상파울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브라질 지부의 지역 왕국회관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계속 브라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지역 왕국회관 사무소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행되는 왕국회관 건축을 감독합니다. 나는 그러한 건축 공사를 지원하고 공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아내도 함께 갑니다.

우선순위

내가 아직도 파도타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멋진 파도”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파도타기를 하나의 여가 활동 정도로 여기며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충실한 지원 덕분에 나는 사랑 많으신 우리 하느님 여호와를 섬기는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우리의 삶과 우리가 가진 기술로 왕국 권익을 증진시키고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순결한 숭배를 드높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깨달은 것은 어디서 여호와를 섬기느냐가 아니라 어디서든 영혼을 다해 그분을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골로새 3:23.

[25면 삽입]

“아직도 파도타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멋진 파도’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았습니다”

[22, 23면 삽화]

여름 파도타기 축제의 포스터로 사용된 내 사진

[23면 삽화]

열세 살 때

[23면 삽화]

히피 생활은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했다

[25면 삽화]

위: 왕국회관 건축 현장에서

오른쪽: 아내와 함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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